예림의집 2440번째 이야기
결과에 초점을 맞추게 되면.. 사역을 감당하는 사람들은 그 열매를 보기 원합니다. 순전히 하나님을 섬기기 원하지만, 때로는 우리의 섬김이 어떤 결과로 나타나는지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결과에 초점을 맞추게 되면, 그것에 매이게 되고, 하나님이 주시는 자유함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사역의 결과는 하나님의 영역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사역을 하나님보다 우선하는 것을 경계하십니다. 상겨의 열매가 우리의 우상이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열심히 사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열매가 아니라 우리 자신을 원하십니다! ![]() |
함께 할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15년 전, 모 은행에서 개설했던 통장에 4만 8천 원이 남아있다는 사실을 "토스"라는 앱을 통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비록 적은 돈이지만, 생각지 못했던 돈이 생겨서 그런지, 기분이 나쁘지 않았습니다. 토스를 설치하고, 전체 메뉴에서 "숨은 내 계좌 찾기"를 실행하면 됩니다. 이제 우리가 거저 받은 사랑을 나눌 차례가 되었습니다. 20여 년간, 오직 이 한 가지 목표를 향하여 달리다 보니, 어느새 이 정신은 저만의 것이 아니라, 전 직원의 것이 되었습니다. 직원들은 우리가 가진 이 정신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기고 날마다 실행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우리는 "열심히 일하면 어려운 이웃을 돕게 된다."라는 사실을 기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새로운 직원을 뽑을 땐, 잠언 31장을 설명하고, "우리 회사가 일반 회사와 어떻게 다른지?"에 대하여 설명합니다. 우리는 연봉 1만 달러를 더 받기 위하여 직장을 옮기는 사람을 원하지 않습니다. 지원자가 8만 달러의 연봉을 원하면, 우리는 7만 2천 달러를 제시합니다. 이때, 우리와 함께 할 수 있는 사람과 그럴 수 없는 사람이 갈리게 됩니다. 그런데, 대개는 그 조건에 동의합니다. 그들에게 ‘왜 우리 회사를 선택하느냐?’고 물으면, 그들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이런 정신을 가진 회사에서 일하는데, 연봉이 조금 적은 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런 조건을 제시했을 때 입사를 포기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돈을 더 주고 데려와도 얼마 못 가서 회사를 떠날 것입니다. 잠언 31장과, 조금 적은 연봉으로, 우리는 진짜 가족이 될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구분해 내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입사한 사람들을 3개월 더 지켜봅니다. 그러고 나서 성실히 일한다 싶으면, 다른 회사와 동등하게, 혹은 그 이상으로 연봉을 인상해 줍니다. 물론, 이 사실을 그들에게 말하지 않습니다.(하형록 회장) 그렇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지음 받은 존재이기에 기본적으로 진선미(眞善美)를 추구하면서 좋아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적잖은 사람들이 욕심 때문에 선한 양심과 진선미 대신 돈을 따라가고 있는 것입니다. 고로, 우리는 진리가 되시는 예수로 말미암아 다시 거듭나야 합니다. 그래야 거짓이 아닌 진실을 따라가게 됩니다. 물론, 우리 양심은 다시금 세상 욕심으로 더러워지고, 그 결과 ‘올바른 판단력’을 잃어버릴 염려가 많습니다. 그러니 날마다 말씀과 기도와 찬양으로 영적으로 무장하고 예수님을 닮아가기를 힘써야 할 것입니다! ![]() |
기독교의 핵심 진리-독생자 예수 성경에서 예수님을 "아버지의 독생자"(요한복음 1:14)라고 언급한 부분은 교회사에 큰 논쟁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또 예수님은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골로새서 1:15)라고 불리시는데, 이 구절은 예수님은 하나님이 아니라 다만 높여진 창조물이라고 논쟁거리가 되었습니다. 여호와 증인과 몰몬교도 이러한 개념에 호소하면서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정합니다. 그들이 이단 종파로 분류되는 이유는 주로 그들이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정하는 데 원인이 있습니다. 이단인 아리우스파가 삼위일체를 부인했던 4세기에는 예수님이 신성이 중요한 현안이었습니다. 당시 그리스도의 신성에 반대했던 아리우스의 중요 주장은 현대 여호와의 증인과 몰몬교의 주장을 예고하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아리우스는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서 이단으로 정죄 받았습니다. 그는 "독생하신"으로 번역된 헬라어는 "발생하다, 되다, 시작하다"의 의미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독생한" 존재는 시간적인 시작이 있어야 하므로 이는 시간의 관점에서 볼 때 유한한 것이며 피조물의 성격을 지녔다는 뜻이 됩니다. 그러나 니케아 신조는 아리우스 이단에 대한 교회의 반응을 보여줍니다. 니케아 신조는 예수님이 "피조되지 않고 독생하셨다"라고 고백합니다. 이 간단한 신조를 가지고 교회는 "독생한다"라는 용어가 피조성을 의미하거나 암시한다는 해석에 반대하기 위해 많은 애를 섰습니다. "독생하다"라는 단어에 "피조된 것이 아니라"라는 한정어를 붙인 것에는 정당한 근거가 있었습니다. 첫째, 교회는 이 용어들을 그리스도의 본성에 관한 성경의 전체 문맥 속에서 이해하려 했습니다. 신약성경이 분명히 그리스도의 신성을 말하므로 교회는 성경의 한 부분이 다른 부분에 대치되는 데 반대 입장을 취했던 것입니다. 둘째, 신약성경이 헬라어로 기록되었지만 대부분의 사상과 형태, 개념에는 히브리어적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즉 히브리어의 개념들이 헬라어를 통해 표현된 것입니다. 이 사실은 헬라어의 고정된 뉘앙스를 지나치게 신뢰하지 말 것을 경고합니다. 가령 요한이 예수님을 가리켜 "말씀(logos)"이라고 말한 것으로 그 용어를 전적으로 헬라어의 "말(word)"이라는 단어와 연관 지어 이해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셋째, "독생하다"라는 용어는 신약성경에서 제한적으로 사용됩니다. 요한복음 1장 14절에서 "아버지의 독생자"라고 언급됩니다. 그러나 요한복음 1장 18절에서는 "독생하신 하나님"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결론은 예수 그리스도는 독(only)생하셨습니다(monogenais). 헬라어 접두사 "mono"는 영어의 "only"보다 더 강합니다. 즉 예수님은 나심에 있어 전적으로 유일하십니다. 그리고 독자적이십니다. 그 누구도, 다른 어떤 것도 예수님의 나심과 같지 않습니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심에 대해 말하는 것은 이것을 제대로 다루려는 시도입니다. 아들은 영원히 아버지로부터 비롯됩니다. 피조물로서가 아니라 삼위 중 제2위로서입니다! 예수님에 관해 "내가 너를 낳았다(begotten)"(히브리서 1:5)라고 이야기하는 히브리서는 신약에서 가장 뛰어난 기독론이 들어 있는 서신서입니다. 히브리서를 정독하시기 바랍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히브리서와 견줄만한 신약성경의 유일한 책은 요한복음입니다. 요한은 예수님을 분명하게 "하나님"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독생자"라고 부른 사람 역시 사도 요한입니다. 마지막으로,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라는 말은 1세기 유대의 문화적 배경과 관련지어 이해해야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가장 먼저 나다"라는 말이 아버지의 상속자로서 그리스도의 높아진 상태를 의미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대체로 맏아들이 열조의 유산을 상속받았듯이 예수님도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의 나라를 그의 유업으로 받으십니다. ![]() |
![]() |
인간의 지혜와 능력 "은이 나는 곳이 있고 금을 제련하는 곳이 있으며 철은 흙에서 캐내고 동은 돌에서 녹여 얻느니라 사람은 어둠을 뚫고 모든 것을 끝까지 탐지하여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있는 광석도 탐지하되 그는 사람이 사는 곳에서 멀리 떠나 갱도를 깊이 뚫고 발길이 닿지 않는 곳 사람이 없는 곳에 매달려 흔들리느니라 음식은 땅으로부터 나오나 그 밑은 불처럼 변하였도다 그 돌에는 청옥이 있고 사금도 있으며 그 길은 솔개도 알지 못하고 매의 눈도 보지 못하며 용맹스러운 짐승도 밟지 못하였고 사나운 사자도 그리로 지나가지 못하였느니라 사람이 굳은 바위에 손을 대고 산을 뿌리까지 뒤엎으며 반석에 수로를 터서 각종 보물을 눈으로 발견하고 누수를 막아 스며 나가지 않게 하고 감추어져 있던 것을 밝은 데로 끌어내느니라"(욥기 28장 1-11절). 함께 읽은 본문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만물보다 뛰어난 인간의 지혜와 능력에 대해 시적이고 은유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은과 금과 철과 동 등을 얻는 방법을 터득해 이를 얻기 위해 위험을 무릅씁니다. 그는 사람이 사는 데서 멀리 떨어진 곳에 갱도를 깊이 뚫습니다. 또한 각종 보물을 캐내고자 매달려 흔들리는 위험을 감수합니다. 심지어 굳은 바위를 뚫고 산을 뒤엎어 보물을 발견하면 그것을 밝은 데로 끌어냅니다. 하나님께서 유일하게 인간에게만 부여하신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본능을 뛰어넘는 지혜를 갖고 있습니다. 보물을 채굴해 내는 능력(1-8절). 하나님은 인간에게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는 지혜와 능력을 심어 주셨습니다. 28장은 "지혜의 노래"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지혜와 관련이 깊습니다. 오늘 본문 제1연(1-11절)에서는 보물을 채굴하는 과정이 상세히 기술됩니다. 은, 금, 철, 동은 인간의 삶에 귀하게 쓰이는 재료들입니다. 사람은 땅속에 있는 광석을 채굴하려고 다양한 기술을 동원합니다. 땅을 파서 갱도를 만들고 절벽 같은 곳에 매달려 귀금속들을 찾아냅니다. 채굴 과정을 보면 인간이 얼마나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이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 작업이 얼마나 어렵고 위험한지는 4절, "매달려 흔들리느니라"라는 말에 매우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인간의 지혜는 결코 동물들이 따라올 수 없는 것입니다. 또한 사람은 참된 지혜를 얻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합니다. 돈과 시간을 들여 순례에 나서거나 자신을 학대하며 고행을 자처하기도 합니다. 이는 어둠을 뚫기 위한 노력이요, 죽음의 그늘에 가까이 다가서는 용기 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지혜는 이런 행동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지혜와 능력을 어떻게 개발하고 활용해야 할지 생각해 봅시다. 인간의 능력을 찬양함(9-11절). 하나님 없이 세상에서 지혜를 얻으려는 시도는 허무함을 맛보게 할 뿐입니다. 참된 지혜를 얻는 유일한 길은 잠언 9장 10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분을 깊이 아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욥은 인간의 능력이 얼마나 큰지를 말합니다. 여기서 묘사된 활동들은 하나님의 활동에 비교될 수 있습니다. 9-11절은 히브리어로 주어가 3인칭 남성 단수이기에 활동의 주체가 사람인지 하나님인지 알 수 없습니다. 이렇듯 혼동된 서술은 인간의 활동이 하나님과 견줄 만큼 대단하고 위력적임을 보여 주려는 의도로 보입니다. 9절, "산을 뿌리까지 뒤엎으며"라는 표현은 욥이 9장 5절에서 "그가(하나님이) 진노하심으로 산을 무너뜨리며"라고 한 것을 떠오르게 합니다. 산을 뒤엎은 인간의 지혜로운 활동은 하나님 능력에 견줄 만합니다. 인간의 능력은 바위산에 수로를 트거나 누수를 막기도 합니다. 욥을 당시 최고로 발달된 지식을 보여 주는 채굴 기술을 통해 사람의 능력이 어디까지 가능한지 말합니다. 이러한 인간의 지혜와 능력은 모든 만물을 잘 다스리도록 부여한 것임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 주신 능력을 통해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바는 무엇인지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 세상을 관리할 수 있도록 지혜와 능력을 주신 창조주 하나님 아버지, 귀중한 것을 찾아내는 능력을 인간에게 허락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날마다 말씀과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탁월한 지혜와 능력을 덧입게 하시옵소서. 하나님이 각 사람에게 주신 재능을 무시하지 않고 잘 발휘할 수 있도록 격려하는 가정과 교회와 사회가 되게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에게 주신 각각의 분량에 따라 지혜와 능력을 잘 개발하고 활용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생명을 구원하는 사용하게 하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
![]() |
목자의 음성 여러분은 군중 속에서 엄마를 잃은 아이를 본 적이 있습니까? 비록 어머니가 시야에서 멀어졌어도, 어린아이는 여전히 엄마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있을 것입니다. 그는 비슷한 음성을 찾고, 그의 내부의 레이더는 그 주위에서 나는 소리를 자세히 조사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이 청중들에게 하나님의 음성을 잘 알도록 격려하고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오늘 요한복음 10장 1-5절을 읽어보십시오. 이 말씀 속에서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을 대목자장의 지시 아래 있는 양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목자이시고, 우리는 그의 기르시는 양입니다! 이 비유에서 우리는 목자만이 예고 없이 가축에게 가까이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정체불명의 침입자가 가까이 온다면 양은 곧 위험을 감지하고 문지기는 우리의 문을 열어주지 않을 것입니다. 또 양은 목자가 인도하는 곳이면 어디든지 따른다는 것을 압니다. 왜냐하면 양은 목자의 목자의 음성을 알기 때문입니다. 아이가 엄마의 음성을 듣는 것처럼 양은 즉시 그의 음성을 듣고 목자를 알아봅니다. 왜 이 비유가 오늘 우리에게 중요할까요? 그것은 우리는 양이고 예수님은 목자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예수님과 우리의 관계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들어오셔서 우리 양 무리를 인도하시고 우리를 자신에게로 말과 행동으로 부르십니다. 여러분은 주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까? 그분은 여러분의 삶에서 그분을 알아가기를 바라십니다. 만약 여러분이 그분의 음성을 듣지 못하고 있다면, 잠시 멈추어 서서 대목자장이신 예수님의 음성에 열심히 귀를 기울이기 위해 세상의 소리가 줄어들게 해달라고 기도드립시다. "주님, 우리가 당신의 음성을 구분하지 못할 때, 당신에게 더 큰 소리로 말씀해 달라고 요구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듣기 위해 주님께 조용히 집중하게 도와주시옵소서!" ![]() |
역사적 조망: 종교개혁 이전의 운동(300-1500년) 국가 교회가 지속되던 이후 천 년의 기간 동안 개혁과 갱신을 위한 수많은 운동도 나란히 일어났습니다. 도나투스파, 프리실리아누스파, 파울리시아파, 피터 발도와 발도 파, 이시시의 프란치스코, 작은 형제회, 존 위클리프와 롤라들파, 피터 첼치츠키 그리고 체코 형제회 등입니다. 어떤 이들은 국가 교회의 개혁을 시도하고 다른 이들은 거기서 분리되어 나오기도 했습니다. 몇몇 이들은 다른 이들보다 교리에 있어 좀 더 정교회적이었습니다. 그들은 종종 평화주의를 옹호했고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과 함께 고통과 어려움을 나누고자 노력했습니다. 또한 일반인들이 성경을 쉽게 접하고 이해하도록 장려하고 여성 편들을 주장했습니다. 이러한 많은 운동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한 가지는 이들이 주로 개인 가정에서 모였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박해나 가난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성경적 신념 때문이었는지는 판단하기 힘듭니다. 그러나 이런 급진적인 운동은 사고와 관행에 있어 기성 종교 체계에 끊임없이 도전을 주었고, 초대 교회의 정신을 떠올리도록 자극을 주었습니다. 이제 프리실리아누스파와 피터 발도에 대해 살펴봄으로써 어둠의 시대에도 가정교회의 흔적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프리실리아누스파(340-385년) 입니다. 로마 제국 내 이베리아반도 출신인 프리실리아누스는 부와 지위 그리고 높은 교육을 받고 굉장한 카리스마를 갖춘 귀족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기독교보다 헬라 철학에 더 큰 관심을 가졌다가 그리스도인으로 회심하고 세례를 받은 후 하나님께 깊이 헌신된 삶을 살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열심히 성경을 공부하여, 평신도이지만 성경을 설교하고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이베리아 지역에서 세례를 받은 신자만이 참여할 수 있는 평신도 운동인 "형제단"을 일으켰습니다. 남녀가 참석하여 성경을 읽는 모임이었습니다. 많은 주교와 성직자들이 지역 회중 모임의 독립을 주장하고 국가 교회에 반기를 들면서 이 운동에 동참했습니다. 프리실리아누스가 일종의 영지주의적 마니교식 이원론을 신봉하면서 물질적인 것은 모두 악하다고 가르친다는 그릇된 비난이 제기되었습니다. 이 관점에 따르면, 모든 인류는 덫에 걸렸고, 구원에 이르려면 물질세계를 포기하고 영적 세계를 포용하는 길뿐이라는 것입니다. 로마 황제 막시무스는 국가 교회와 이 당파(형제단) 사이에 어떤 식으로든 긴장이 조성되는 것을 반기지 않았습니다. 이 운동은 심한 박해를 받고 두 세기 후에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다음으로는 피터 발도(1150-1206년)입니다. 프랑스 리옹의 발도는 당시 전통적인 봉건제도 안에서 자신들의 위상을 확보하려 했던 상인과 예술가로 구성된 신흥 도시 계급에 속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생애를 담고 있는 복음서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그는 수사를 고용하여 성경의 몇 군데를 자국어로 번역했습니다. 성경을 깊이 읽고 연구한 후에 그는 동료들이 추구하는 부와 권력에 더 이상 집착하지 않기로 결단했습니다. 결국 그는 자신의 부를 포기하였고 선한 양심에 따라 사도들처럼 가난한 삶을 사는 사람만이 복음의 메시지를 전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리옹의 가난한 사람들 또는 발도파 교도라고 알려진 발도의 추종자들은 프랑스 시골 곳곳을 둘씩 짝지어 다니며 순회 전도를 벌였습니다. 그들의 사역은 전 유럽에 걸쳐 널리 확산되는데 노트르담 교인 명부에 있는 신자들의 3분의 1 이상이 발도파 모임에 참석했을 정도라고 알려졌습니다. 그들의 모임은 주로 한밤에 야외에서 이루어졌으며 순회하는 형제가 인도했습니다. 설교를 마치면 그들은 집으로 돌아가 기도하고 토론하며 성찬과 저녁식사를 나누었습니다. 그들은 교회와 시민권이 통치하는 사회에 대한 지전으로 들떠 있었습니다. 발도파 교도들은 맹세하는 것을 금지했고, 자발적으로 부를 포기하도록 권장했으며, 국가의 봉건체제를 대체할 만한 자체 경제구조를 조직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모든 형태의 폭력에 참여하는 것을 거부하고 기성 교회의 가르침과 관행에 있어 많은 부분에 의문을 제기했으며 가난한 사람들과 교육받지 못한 사람들 그리고 여자들을 위해 헌신했습니다. 발도의 죽음 이후 로마 가톨릭 교회는 제4차 라테란 회의(1215년)에서 발도파 운동을 공식적으로 이단으로 정죄했고, 불순종하는 사람들을 그 즉시 징계하거나 축출했습니다.(다음 주 계속..) ![]() |
마지막 때를 감사로 준비하게..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헤아릴 수 없는 주님의 도우심으로 이처럼 풍요로운 한 해의 결실을 안고 주님을 생각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천지에 흐르는 주님의 호흡과 산천을 적시는 주님의 손길, 그 어는 곳에도 주님의 흔적이 닿지 않는 곳이 없음을 깨닫습니다. 이 시간, 한 해 동안 지켜주신 주님의 사랑을 가슴에 품고 마음 깊숙한 곳에서 나오는 감사의 찬양을 드리길 원합니다. 저희의 마음을 주관하셔서 농부들이 한 해의 결실을 가슴에 안고 뿌듯함과 풍만함으로 마음의 풍요를 느끼듯, 그 마음을 가지고 감사의 예배를 드리는 저희가 되게 하시옵소서. 은혜로우신 주님! 이 시간 저희들이 감사의 마음을 담아 주님을 예배하면서 지난 한 주간의 삶을 돌이켜 봅니다. 부끄럽게도 많은 죄를 범한 한 주간이었습니다. 형제를 미워하고, 탐욕에 젖었고, 거짓말을 했으며, 음욕을 품기도 했습니다. 먹지 말아야 할 음식을 먹기도 했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기도 했으며, 가지 말아야 할 곳을 가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주님을 멀리 떠나 있었습니다. 경건의 시간을 소홀히 했고, 기도를 해도 형식적인 기도를 드렸을 뿐입니다. 간절히 회개하오니 긍휼을 베푸시고 성령의 사람으로 변화시켜 주시옵소서. 우리에게 감사를 가르쳐주신 주님! 금주는 추수감사주일로 주님께 영광을 돌리고자 합니다. 감사 주일을 맞이하여 주님께 대한 감사를 기억하며, 주님의 은혜를 돌아볼 수 있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주님께 감사하는 심령이 되게 하셔서 주님께 감사의 제사를 드릴 수 있는 저희 모두가 되게 하시옵소서. 세상을 시간이 지날수록 강퍅해져만 가고 있습니다. 경악을 금치 못하는 일들이 매일 일어나고 있고, 충격을 더하는 일들이 매일 뉴스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이때가 만물의 마지막 때인 줄은 알 수 없으나, 주님의 심판이 가까이 와 있음을 깨닫습니다. 이런 때일수록 세속에 미련을 갖지 말게 하시고, 주님의 선하신 뜻을 잘 분별하여 주님의 은혜를 따라 살아갈 수 있는 저희의 삶이 되게 하시옵소서. 주님을 향한 넘치는 소망 속에 항상 찬송하며 살 수 있게 하시고, 감사로 마지막 때를 잘 준비할 수 있는 저희 모두가 되게 하시옵소서. 주님께서 저희들에게 공급해 주시는 성령의 능력 안에서, 성령의 도와주시는 지혜 속에서 더욱 충성스러운 청지기의 직분을 감당할 수 있는 저희들이 되게 하시고, 선하고 충성되고 지혜로운 청지기의 삶으로 마지막 때를 살아갈 수 있는 저희들이 되게 하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
![]() |
참된 기독교는..! 참된 기독교는 "나"와 "나 자신"과 "나를"에 얽매여 있는 자아 중심적인 삶의 문제를 해결합니다. 하나님의 영은 단호한 태도와 최종적인 파괴를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하십니다. 자아를 거부하고 회개하십시오! 그러면 자아에게 지배당하는 나라에서 도망하여 임마누엘의 나라로 넘어가 영적 승리와 복을 누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군기(軍旗) 아래 기쁨으로 살아갈 수 있는 권리와 능력을 얻게 될 것입니다. 옛사람, 즉 자아 중심적 옛 생활을 최종적으로 처리하는 방법은 무엇인가요? 그것은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통과하신 예수님과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 |
“예림의집”이란? 예림의집은 “예수님께서 임하셔서 거하시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세상 가운데로 보내시면서 마태복음 28장 29절,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임재를 통하여 실제로 그리스도인에게 오셔서 그리스도인의 모든 삶을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예림의집은 예수님의 사역에 동참시키시는 주님의 그 부르심에 순종하여 세워진 후원 모임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으로 주님이 주신 권능으로 담대히 나아가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영접하는 우리의 마음을 거처로 삼으십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요한복음 14장 23절,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여러분은 사도행전 2장을 기억하실 겁니다. 오순절에 예수님이 약속하신 성령님이 그들에게 임하시자 그들은 예수님께서 전에 하신 말씀의 성취를 생생하게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마음에 거하시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몸과 마음을 비롯한 전인격이 예수 그리스도의 거처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성령님이 제 마음속에 들어오셔서, 그분을 섬기고 거기서 그분과 즐거워하고 그분을 알아가는 것이 가장 큰 축복임을 고백합니다. 그분을 제 마음에 모셨던 그날 저녁을 저는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1986년 여름, 제가 고 2 때 청소년 연합 여름 수련회 저녁 집회 설교시간에 일어난 일입니다. 주님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사건은 얼마나 감격적인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주님의 임재하심은 제 중심에서 발생한 엄연한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그 후로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모신 것에 대해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영원히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그리스도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새로운 삶이 시작된 나는 “주님, 저의 모든 것은 주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뜻대로 사용하옵소서!”라고 고백했습니다. 물론 주님은 기꺼이 저의 고백을 받으셨고, 저를 주님의 영광된 사역에 동역자로 삼으셨습니다. 주님을 마음에 모신 저는 날마다 주님을 찬송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저의 삶에서의 주님과의 동거가 시작되었고, 예림의 집의 사역도 시작되었습니다. 예림의집의 "예림"은 세 가지 깊은 의미를 가집니다. 첫째, 예수님이 임재하신 마음, 모임이란 뜻이고, 둘째, 예수님의 그림자로 빛과 소금으로 살겠다는 마음가짐이며, 셋째, 예수님의 재림을 기대하고, 기다리며, 준비한다는 뜻입니다! 이 세 가지의 정신을 모토로 하여 선교사와 개척교회를 돕고 있으며, 온라인 사역과 찬양사역, 그리고 21세기 새로운 교회의 모델인 가정교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예림의집 사역을 소개합니다 첫째, 온라인 선교사역 ①다음 카페 “예림의집”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회원가입을 하시면 그 순간부터 저의 예림의집 사역이 동참하게 됩니다. 현재 회원 수 1300여 명으로 이들이 잠정 후원자가 되어 기도 후원, 물질 후원, 재능기부 등을 하게 됩니다. 카페를 매개로 하여, 서로의 비전과 기도 제목을 나누고, 힘을 합쳐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해 갑니다. 저의 사역에 동참하시길 원하시는 분은 다음 검색 창에 예림의집을 치세요! ②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은 따로 회원 가입을 할 필요 없이 언제, 어디서나 방문하여 필요한 정보와 신앙 글들을 접할 수 있습니다. 검색어를 통해 접근하여, 현재 다음 블로그 80만여 건, 네이버 블로그 40만 건의 방문자 수를 기록 중입니다. 다음 카페 예림의집과 연동되어 하루 평균 20건 이상의 정보가 업로드되어 현재 4만 편이 넘는 좋은 글들을 접하실 수 있습니다. ③페이스북 활동(김정민) 요즘 활성화되어있는 페이스북 활동을 통하여 온라인 선교의 지경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저를 친구 초대해 주시고 팔로우해 주시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현재 25개의 그룹을 만들어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친구들을 만나고, 복음을 전하며, 선교 동원가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제 이름 "김정민"을 많이 친구 추가해 주세요! ④유튜브 방송 "예림의집TV" 복음 전파와 영적 무장의 방편으로 유튜브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매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6일 방송하며, 새벽 기도회(월-금 오전 5:00), 예림의집 이야기(월-금: 오후 5:00),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토: 오후 5:00)을 실시간 방송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주일예배, 짤 영상 모음 등 영적 무장과 복음 전파에 관련된 영상들을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검색창에 "예림의집TV"를 치시고 많이 오셔서 ✔️구독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둘째, 선교사/개척교회 후원 사역 이 사역은 찬양사역을 하던 저에게 새로운 비전을 주셔서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게 하신 사역입니다. 선교사님들과 개척교회를 바르게 후원하기 위해서는 제가 먼저 선교와 교회 개척 사역에 헌신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예림의집 카페 회원들을 포함한 그동안 주께서 연결해 주신 후원자 1800여 명이 함께 감당해 가는 사역입니다. 첫 번째, 기도 후원 사역은 주께서 연결해 주신 선교사님이나 개척교회를 위해 40 명의 기도 용사를 세우는 사역입니다. 제1호 필리핀 “김성재 선교사님”과 서울 상도동 “주님의 교회”를 필두로, 현재 26명의 선교사님과 20개의 개척교회를 기도로 후원하고 있고, 그 지경을 넓혀 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물질 후원 사역으로 앞에서 말씀드린 기도 후원자들 중에 하나님께서 자원하는 마음을 주신 분들이 물질 후원을 하게 됩니다. 재정 후원은 선교사님과 개척교회 목회자 가정의 기초 생활비를 우선적으로 지원하도록 원칙을 세웠습니다. 물품 후원은 선교나 교회 개척에 필요한 다양한 물품들을 자원하여 후원하게 됩니다. 특히 도서 후원은 성경책, 신앙 도서, 아이들 학습 도서 등. 작은 도서관을 만들 수 있도록 후원합니다. 세 번째, 재능기부 사역은 주님께서 주신 모든 달란트를 활용하여 선교와 교회 개척을 지원하는 사역입니다. 예를 들어, 선교 지원팀, 여름 성경 학교 진행팀, 찬양팀, 자원봉사단 등이 있습니다. 모든 재능 기부 사역은 “자비량”을 원칙으로 합니다. 특히 전도 지원팀을 구성하여 개척교회를 지원합니다. 이 사역을 통하여 새로운 선교사들과 교회 개척자들이 새워질 것입니다. 선교지나 개척 현장에서 필요한 프로젝트 그룹을 조직하여 지원합니다. 셋째, 찬양 세미나/찬양 집회 사역 제가 약 30년간 해오던 찬양 사역의 일환으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찬양을 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특별히 부여하신 사역입니다. 아직도 찬양에 대한 무지와 편견으로 주님을 맘껏 찬양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제가 경험한 찬양에 대한 놀라운 비밀을 나누는 사역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잠시 멈추고 준비 중이며 내년부터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이 2018년 가을에 발간되었습니다. 저는 비록 짧은 시간 동안 여러분을 만나지만, 찬송은 너무나 소중하기에 글로써 여러분들의 곁에서 치침이 되어드리고자 합니다. 찬송에 대한 저의 지난 30년간의 찬양사역의 총결산의 책입니다. 본 책의 내용은 앞서 설명한 다음 카페와 블로그 예림의집과 페이스북 그리고 토요일에 방송되는 찬양 방송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통해 미리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특히 개척교회는 요청하는 수량을 무료로 제공해 드립니다. 예림의집 사역에 동참하는 방법 첫째, 유튜브 <예림의집TV>방송을 봐주시고,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이나 페이스북 <김정민>의 글을 봐 주시는 것만으로도 일차적으로 동참하는 방법입니다. "구독/좋아요/홍보"까지 해 주시면 더욱 좋겠죠. 둘째,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오셔서 회원이 되어 주시고, 여러 게시판의 글을 통해 영성 훈련을 하시고, 여러분의 삶 속에 적용하셔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십시오. 좋은 글들과 댓글을 올려주시면 더욱 좋겠지요. 셋째, 다음 카페 <사역>코너에 있는 찬양사역/선교후원사역/개척후원 사역에 적금 동참하시는 방법입니다. 제일 중요한 기도 후원과 성령님이 인도하심을 따라 재정과 재능 후원에 동참하시면 더욱 좋습니다. 넷째, 여러분이 섬기는 공동체에 저를 초청하는 방법입니다.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3개월 전에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다섯째, 제가 펴낸 책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구입하셔서 정독하시는 것입니다. 포털 검색창에 책 이름을 치시고, 온라인상으로는 구매하시면 됩니다. 정독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하십시오! 김정민 목사 010-9442-6928 yerim21@hanamil.net 다음 카페 예림의집: http://cafe.daum.net/HomeOfYERIM 다음 블로그 예림의집: http://blog.daum.net/yerim21 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https://blog.naver.com/yerimess 유튜브 예림의집TV: https://www.youtube.com/channel/UCarpDnpNgU0RQn9ksDdSPPw 후원 계좌: 농협 3560686657493(예금주: 김정민) |
예림의집 김정민 목사 올림.
'예림의집 메일 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예림의집 2442번째 이야기 (0) | 2021.11.23 |
---|---|
예림의집 2441번째 이야기 (0) | 2021.11.22 |
예림의집 2439번재 이야기 (0) | 2021.11.18 |
예림의집 2438번째 이야기 (0) | 2021.11.17 |
예림의집 2437번째 이야기 (0) | 2021.11.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