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림의집 2443번째 이야기
성령님의 찌르심..!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사역자가 되기 위해서는 성령의 검 앞에 사역의 열매를 내 것으로 누리려는 욕구를 내려놓아야 합니다. 우리가 성령으로부터 칼을 받아 우리의 거룩하지 못한 욕구들을 찌를 때, 하나님의 위로와 자유함이 우리에게 오는 것입니다. 성령의 찌르심을 외면하거나 거부하는 한, 우리는 여전히 묶임 가운데서 놓임을 받지 못하게 됩니다. 깊이 기도하는 가운데 임하는 어떤 생각이 거룩함의 칼과 안위의 손길로 함께 임하는 것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성령님께서 우리의 전 인격을 그분의 뜻대로 재단하실 수 있도록 자신을 내어드립시다! ![]() |
세상의 모든 만물은 제자리가 있습니다. 규칙적인 취침시간과 기상시간은 심혈관계 질환 발병을 낮출 뿐 아니라, 삶의 만족감과 행복감을 높인다고 합니다. 그리고 스트레스를 감소시킨답니다. 세상의 모든 만물은 자기 자리가 있습니다. 우리 몸에는 약 100조 개의 세포가 있습니다. 각각의 세포는, 세포 핵을 가지고 있으며, 세포핵 안에서 발견되는 핵산 즉 DNA도 가집니다. DNA는 이중 나선 구조로 되어 있으며, 생물의 다양한 유전정보를 저장하고 복제합니다. 아데닌, 구아닌, 시토신, 티민과 같은 독특한 염리 서열의 배치에 따라, 자녀는 부모의 다양한 유전적인 특성과 기질을 물려받습니다. 체형과 혈액형뿐 아니라, 얼굴 모양, 피부색, 머리카락 색깔, 눈동자 색깔, 목소리, 심지어 걸음걸이를 비롯해서 거의 모든 유전적인 성향이 고스란히 다음 세대에 전해집니다. 세포 내의 염기서열이 정상적인 배열, 즉 제자리를 차지할 때, 우리는 건강한 몸 상태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염기서열이 뒤바뀌거나, 마땅히 있어야 하는 제자리에 위치하지 않으면, 각종 유전성 질환을 앓게 됩니다. 몸이 탈이 나는 것이지요. 이처럼 "미시(微視)의 세계"에도, 비록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저마다의 염기가 제자리를 차지할 때 건강한 몸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거시(巨視)의 세계"에 존재하는 우주의 모든 행성 역시, 제자리를 차지하고서 제 궤도를 따라 돌고 있습니다. 수천억 개 이상의 행성들이 제자리에 있지 않으면, 행성들은 대충돌을 일으켜 흔적도 없이 우주 먼지로 영원히 사라질 수 있습니다. 이처럼 다양한 유전정보를 가진 인체의 유전자가 제자리를 지켜야 건강할 수 있고, 행성도 제자리를 지켜야 안정적인 궤도를 유지하면서 계절의 변화와 우주의 질서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습니다. 제자리를 잃고 방황하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고, 제자리로 돌아와 역할을 감당하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박재만) 그렇습니다. 80년대 신군부가 들어설 즈음, 서울 시내 곳곳에는 ‘자기 자리로 돌아가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습니다. 그 현수막은 독재의 잔재였습니다. 하나님이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기 전에는 혼돈(混沌, 카오스) 상태였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씀(法)에서 벗어나면 혼돈 상태에 빠지게 마련입니다. 인간의 육(肉)과 영(靈)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씀(法) 안에서 책임과 역할을 잘 감당하는 질서 있는 삶을 살아야, 보람과 기쁨이 있는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을 성경을 부지런히 읽고 그 말씀대로 열심히 살아갑시다! ![]() |
기독교의 핵심 진리 33-예수님의 승천 우리는 그리스도의 탄생(성탄절), 죽음(성금요일), 부활(부활절)을 기념하기 위해 특별한 행사를 하지만 그리스도의 승천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승천은 크나큰 중요성을 잦는 구속 사건의 하나입니다. 그것은 재림에 앞서서 그리스도께서 가장 높아지신 순간을 나타냅니다. 즉 그리스도께서 그의 영광을 들어가신 때였습니다. 누가는 그리스도의 승천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사도행전 1:9-11절입니다. "이 말씀을 마치시고 그들이 보는데 올려져 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하더라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옷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우리는 예수님이 구름 속으로 떠나가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아마도 하나님의 영광의 구름,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셰키나)와 관계될 것입니다. 이 셰키나(shekhinah)는 일반적인 구름의 광채를 능가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빛나는 영광의 현현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떠나신 방식은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놀랍고 웅대한 순간이었습니다. "승천하다(ascend)라는 말은 "올라가다", 혹은 "솟아오르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 용어가 그리스도와 관련되어 사용될 때 더 깊고 풍성하고 특별한 의기가 됩니다. 예수님은 아버지 하나님의 우편으로 가셨습니다. 우주의 권세의 자리로 올라가신 것입니다. 대관식을 위해, 만왕의 왕이신 것을 확증하기 위해 하늘로 가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우리의 대제사장 일을 계속하시기 위해 하늘 지성소로 올라가셨습니다. 하늘 보좌에서 예수님은 왕 노릇 하시며 대제사장으로 우리를 위해 중보 하십니다. 그는 올리우신 그 권위의 자리로부터 성령을 교회에 부어 주십니다. 존 칼빈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수님이 하늘로 올리우시고 우리 시야에서 그의 모습을 감추신 것은 아직 이 땅에서 순례의 길을 가는 그의 제자들과 함께하시기를 그만두시려 함이 아니라 하늘과 땅에서 그의 능력으로 직접 다스리시기 위함이다." 예수님께서 왕 중의 왕으로서 대관식을 위해 하늘로 올리우셨을 때, 그는 하나님 우편 보좌에 앉으셨습니다. 그곳에서 예수님은 몸 된 교회의 머리로 좌정하십니다. 그러나 이 위치에서 예수님의 권위와 통치 상의 심판권과 행정권을 교회의 범위를 넘어온 세상에 미칩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자는 예수님의 위엄을 경외하고 그분의 통치를 받고 그분께 합당한 영광을 돌리며 그분의 능력에 복종하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마침내 모든 사람이 예수님이 앉아 계신 마지막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이고 예수님은 세상의 모든 통치자들에게 책임을 물으시며 만왕의 왕, 만주의 주로서 그들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교회 위에 성령을 우리에게 부어주실 권세를 가지고 계십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우편 보좌에 앉으신 후 아버지와 아들은 믿는 자들에게 그리스도의 구원의 역사를 입혀주시기 위해 성령을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에 따라 우리의 대언자로 임명되셨습니다. 그는 우리를 옹호해 주는 변호자십니다. 마지막 심판 대 법정에서 우리의 변호자가 되실 분은 바로 수석 재판관이신 그분이십니다. 스데반이 순교하는 장면에서 성도들을 위해 예수님께서 중재하시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 사도행전 7장 55-56절입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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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되지 않는 탄식 "이제는 내 생명이 내 속에서 녹으니 환난 날이 나를 사로잡음이라 밤이 되면 내 뼈가 쑤시니 나의 아픔이 쉬지 아니하는구나 그가 큰 능력으로 나의 옷을 떨쳐 버리시며 나의 옷깃처럼 나를 휘어잡으시는구나 하나님이 나를 진흙 가운데 던지셨고 나를 티끌과 재 같게 하셨구나 내가 주께 부르짖으나 주께서 대답하지 아니하시오며 내가 섰사오나 주께서 나를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다 주께서 돌이켜 내게 잔혹하게 하시고 힘 있는 손으로 나를 대적하시나이다 나를 바람 위에 들어 불려가게 하시며 무서운 힘으로 나를 던져 버리시나이다 내가 아나이다 주께서 나를 죽게 하사 모든 생물을 위하여 정한 집으로 돌려보내시리이다 그러나 사람이 넘어질 때에 어찌 손을 펴지 아니하며 재앙을 당할 때에 어찌 도움을 부르짖지 아니하리이까 고생의 날을 보내는 자를 위하여 내가 울지 아니하였는가 빈궁한 자를 위하여 내 마음에 근심하지 아니하였는가 내가 복을 바랐더니 화가 왔고 광명을 기다렸더니 흑암이 왔구나 내 마음이 들끓어 고요함이 없구나 환난 날이 내게 임하였구나 나는 햇볕에 쬐지 않고도 검어진 피부를 가지고 걸으며 회중 가운데 서서 도움을 부르짖고 있느니라 나는 이리의 형제요 타조의 벗이로구나 나를 덮고 있는 피부는 검어졌고 내 뼈는 열기로 말미암아 탔구나 내 수금은 통곡이 되었고 내 피리는 애곡이 되었구나"(욥기 30장 16-31절). 함께 읽은 본문에서 욥은 응답되지 않는 탄식이 통곡과 애곡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욥은 환난에 사로잡혀 끝없는 아픔을 느낍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던져 버리시고 티끌과 재 같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가 부르짖지만 주님은 대답하지도, 돌아보지도 않으십니다. 그는 빈궁한 자들과 마음을 같이했던 일을 추억합니다. 그는 자신의 처지가 짐승처럼 되었다고 부르짖습니다. 그는 환난으로 인해 통곡과 애곡을 멈추지 않습니다. 오랜 육체적 고통과 친구들에 의한 심적 타격으로 그의 생명이 녹고, 뼈가 쑤셔 아픔이 쉬지 않는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적대적 행동(16-23절). 그 끝을 알 수 없이 계속되는 육체의 고통을 겪을 때는 믿음의 고백보다는 절망을 토로하기 쉽습니다. 16절, "내 생명이 내 속에서 녹으니"라는 말은 한 사람의 내면이 환난 앞에 속절없이 무너지는 모습을 생생하게 표현합니다. 바가지의 물을 한 번에 땅에 쏟아붓듯, 한 사람의 내면이 일순간에 와르를 무너져 내리는 모습입니다. 때로 극심한 고난은 한 사람의 내면을 일순간에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생명(삶)에 대한 의지와 기운을 땅에 쏟아 버려 무력하게 만듭니다. 하나님을 향해 더욱 엎드리는 것뿐입니다. 현재 욥의 삶은 고통의 연속입니다. 밤이면 뼈가 쑤시니 고통이 쉬지 않고 이어집니다. 고난의 날이 그를 꽉 쥐고 놓아주지 않습니다. 그는 티끌이나 재같이 되었습니다. 이에 욥은 하나님께 직접 호소합니다. 20절, "내가 주께 부르짖으나" 그는 자신의 간구에 무응답으로 대응하시는 하나님, 자신을 그저 바라만 보고 계시는 하나님, 자신을 잔혹하게 다루시고 원수처럼 대하시는 하나님께 마음을 토로합니다. 그리고 마침내는 자신을 모든 사람이 가게 되는 죽음의 길로 몰아가신다고 탄식합니다. 우리는 간절히 기도했지만, 응답이 없을 때 어떠했나요? 애가로 변한 욥의 노래(24-31절). 욥과 같이 이해할 수 없는 고난으로 힘겨워할 때는 탄식의 말을 쏟아 놓으며 마음의 고통을 호소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욥이 보기에 하나님의 행동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넘어질 때 돕지 않으시는 것 같습니다. 이는 지난날 욥이 고난 당한 자를 위해 울고, 빈궁한 자를 위해 슬퍼한 것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힘듭니다. 욥은 자신의 기대와 달리 복을 바랐으나 화가 닥쳤고, 빛을 바랐으나 어둠이 임했다고 탄식합니다. 그는 마음(내장)이 끓어오르는 깊고 심한 몸과 마음의 고통을 느낍니다. 육체적 고통을 안고 회중 가운데서 도움을 얻고자 부르짖지만 그는 철저한 소외를 경험합니다. 이제 그의 형제와 친구는 광야와 황무지에서 사는 이리와 타조입니다. 그래서 그의 음악은 모두 슬픔으로 변합니다. 그가 연주하는 모든 악기의 곡조는 슬픔과 통곡인 "애가"입니다. 우리에게도 이러한 고통이 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무거운 현실을 이겨 내려는 모든 몸부림이 사명 감당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셨기에 우리는 이 고난을 통과해야 합니다. 우리도 철저한 소외를 경험한 적이 있습니까? 그때 얻은 교훈은 무엇인가요? "우리의 고난을 외면치 않으시는 하나님 아버지, 생명이 녹아내리는 것 같은 환난 날에 우리가 누구에게 부르짖겠습니까! 통곡을 그치게 하시고 끝없는 기쁨의 찬양을 부르게 하실 주님께만 소망을 둡니다. 잔혹하게 내쳐진 것 같은 시련의 광야가 우리를 주님께로 가까이 이끄는 축복의 현장임을 깊이 새기게 하시옵소서. 어떠한 이유로 하나님께서 원수를 통해 징계하실지라도 우리가 영원토록 억울함을 당하게 허락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믿습니다. 우리의 믿음을 굳건히 지켜주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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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길을 선택하기 아주 중요한 결정을 앞에 두고 정말 하나님의 가장 좋은 것을 이루어주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가장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거절당하고 비난을 받을 때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요? 육체적인 욕망에 빠지는 시험을 받을 때, 우리는 어디로 피하겠습니까? 만약 인생에서 중요한 결정을 하는데 자신의 계획을 신뢰한다면, 절대적으로 우리의 행동이 하나님의 가장 좋은 것을 가져온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우리가 현명한 선택을 할지는 모르겠지만 인생 앞에 놓인 것을 볼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우리에게 좋은 결정을 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은 우리를 형통하게 하시고 장래에 소망을 주실 계획이 있으십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을 인정한다면 우리의 인생에서 완전한 길을 선택할 수 있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의 아버지이신 하나님보다 당신을 더 사랑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예레미야는 낙심될 때, 그는 위로자가 되신 하나님께로 돌아갔습니다(예레미야 8:18-19). 우리도 하나님께 되돌아갈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성도들에게 유혹에서 자유를 위해서 기도하라고 촉구했습니다. 우리가 한창 부도덕한 자극을 받을 때,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십시오! 그분께 기도합시다! 그러면 당신의 마음이 그분의 가르침을 따르게 될 것입니다. 지혜로운 자는 시험을 통해 하나님이 그의 요새가 되심을 믿습니다. 우리가 적의 유혹에 경쟁할만한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항상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현명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당신을 떠나지 않고 버리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송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언하는 입술의 열매니라"(히브리서 13:15). 이렇게 고백합시다. "주님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주님을 찾을 때 그곳에 계시옵소서!" ![]() |
역사적 조망: 종교개혁 이후의 운동③ 우리가 살펴볼 다음 인물은 "잔 드 라바디(1610-1674)"입니다. 1635년 임명된 예수회 사제인 라바디는 1650년까지 가톨릭교회를 개혁하고자 노력했지만 실패했습니다 그는 가톨릭교회에 대한 헌신을 버리고 개신교 신학자요 신학 교수가 되었고, 그 후 20년간 개신교회를 초기 교회의 사도적 형태로 되돌리고자 노력했지만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그는 로마 가톨릭과 개신교의 제약으로부터 벗어나 완전히 새롭게 출발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는 모두가 초기 교회의 단순함으로 돌아가 의식과 예식에서 자유로운 날을 꿈꿨습니다. 암스테르담에서는 수천 명의 사람들이 이러한 급진적인 비전에 기초한 공동체를 세우기 위해 그의 주위로 몰려들었습니다. 홀랜드의 개혁교회들은 특히 라바디가 지지한 즉흥 기도에 대해 반대했습니다. 라바디는 또한 프랑스와 스위스에 "비밀 집회" 또는 "형제애"라는 모임을 만들었습니다. 그는 가정 모임에 대한 최초의 "방법론" 책을 썼으며 이를 통해 기도와 찬송, 성경공부, 토론 그리고 자유로운 예언에 대한 매우 실제적인 조언을 주고 있습니다. 라바디는 홀랜드 개혁교회의 권위에 굴복하지 않았고, 벨직 신앙고백에 서명하지 않아 결국 추방당했습니다. 다음 인물은 "조지 폭스(1624-1691년)"입니다. 서로를 친구라고 부르는 "퀘이커 교도"의 설립자인 폭스는 매우 종교적인 가정에서 자랐으며 10대 후반과 20대 초반에 영국 전역을 여행하며 기존 교회들의 관행에 대해 사람들과 의견을 나누었지만 많은 성과는 얻지 못했습니다. 펜들 언덕에서 많은 사람들이 그의 메시지를 받아들이는 환상과 관련된 깊은 영적 체험을 한 후 그는 설교를 통해 빠르게 청중들을 확보해 나갔습니다. 그는 자서전에서 자신의 사명을 이렇게 요약했습니다. "주 하나님은 영원한 복음과 생명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 또한 초기 사도 시대부터 제정된 모든 성전(개념)과 십일조, 성직자들과 세상의 초보로부터 사람들을 벗어나게 해 주기 위해 나를 보내셨다고 그들에게 선포했다. 이런 것들은 초기 사도들이 의지했던 성령과 능력으로부터 벗어난 것들로 세워졌다." 초기의 퀘이커 교도들은 둘씩 짝지어 전 영국과 세계를 순회했으며 사역을 시작한 지 5년 만에 2만 명의 회심자를 얻었고 국가와 종교 권력으로부터 심한 박해도 받았습니다. 퀘이커 교도들은 신자의 삶 가운데 일어나는 성령의 역사와 각 개인 안의 내적인 빛과 씨앗, 개인적 경건, 성령이 인도하는 열린 교회 모임, 완전한 비폭력주의, 가난한 자와 평범한 노동자의 단결, 양성평등을 강조했고 가톨릭과 개신교의 "뾰족탑 건물"과 성직자 제도에 반대했습니다. 그들은 예배의 신성한 장소와 세속적인 장소 사이의 잘못된 구별을 없애기 위해 실외에서 설교했으며 가정집에서 모였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종파들의 가정교회 운동을 살펴봄으로써 가정교회 운동의 목표점과 위험성, 그리고 우리가 발전시켜할 점과 배격해야 할 점들을 발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들의 이러한 노력들은 옳고 그름을 떠나 오늘날 가정교회 운동의 초석이 될 것임에 의심이 없습니다! ![]() |
더욱 사랑하게 하소서! 우리의 힘이시며, 우리의 노래시며, 우리의 구원이신 하나님 아버지! 지난 하루하루 저희들을 주님의 은혜로 지켜 보호하여 주시고, 오늘 이렇게 주님의 백성들이 방송으로 한자리에 모여 주님 앞에 찬양하며 예배할 수 있도록 이끄심을 감사드립니다. 이 시간 새 힘을 얻어 기쁨의 노래를 힘껏 부를 수 있게 하시고, 주님의 영광을 찬송할 때 주님의 그 귀하신 이름이 선포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자비로우신 주님! 올해도 저희들은 많은 날들을 흘려보냈습니다. 돌아보면 주님의 사랑 속에 거하며 기쁨을 누린 시간이 매우 짧고 부족하였음을 고백합니다. 세상과 어울려 보내면서 근심에 싸였던 때가 오히려 많았음을 부끄럽게 여깁니다. 이름은 주님의 백성이지만 실제로는 세상에 속한 사람과 전혀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겨울의 초입에 서서 지난날의 허물을 들추어 보며 회개의 시간을 갖습니다. 긍휼을 베푸셔서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사랑의 주님! 성탄의 계절에 저희로 하여금 더욱 사랑할 수 있게 하시옵소서. 저희를 잠잠히 사랑하시고 조건 없이 사랑하시며, 끝이 없는 사랑으로 대하시는 그 깊은 사랑을 생각하며, 주님께서 관심 가지신 모든 것을 사랑할 수 있는 저희들이 되게 하시옵소서. 영혼을 구원하시는 것에 온몸을 불사르셨던 주님의 사랑을 본받아 저희도 그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삶이 되게 하시옵소서. 저희가 있음으로 말미암아 이 세상이 사랑으로 바뀌어져 가는 놀라운 역사가 있게 하시옵소서. 주님이 친히 세우신 교회도 마음을 다하여 사랑할 수 있게 하시고, 진실을 담은 사랑의 수고를 아끼지 않는 저희들이 되게 하시옵소서. 우리가 함께 하는 이 방송 "예림의집 이야기"를 통하여 그리스도인에게는 영적 무장을 돕고,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예수님을 소개하는 사랑이 넘치는 은혜의 방송이 되게 하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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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코 쉬지 않으신다..! 우리가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하나님을 보는 날까지, 그분의 이름이 우리의 이마에 기록되는 날까지, 그분은 그분의 소중한 자녀인 우리 안에서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는 일을 결코 쉬지 않으십니다. 누군가 예수님을 닮게 되었다 할지라도 그는 그것을 알지 못할 것입니다. 변화되어 하나님을 닮은 사람은 겸손하기 때문입니다. 참된 겸손은 자기를 들여다보지 않습니다. 당신은 무엇을 위해 기도합니까? "나라이 임하옵시며"의 의미가 "주여, 제 나가가 사라지게 하시고, 하나님 나라가 임하게 하소서!"라고 뜻풀이를 해주어야 정신을 차릴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 |
“예림의집”이란? 예림의집은 “예수님께서 임하셔서 거하시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세상 가운데로 보내시면서 마태복음 28장 29절,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임재를 통하여 실제로 그리스도인에게 오셔서 그리스도인의 모든 삶을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예림의집은 예수님의 사역에 동참시키시는 주님의 그 부르심에 순종하여 세워진 후원 모임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으로 주님이 주신 권능으로 담대히 나아가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영접하는 우리의 마음을 거처로 삼으십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요한복음 14장 23절,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여러분은 사도행전 2장을 기억하실 겁니다. 오순절에 예수님이 약속하신 성령님이 그들에게 임하시자 그들은 예수님께서 전에 하신 말씀의 성취를 생생하게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마음에 거하시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몸과 마음을 비롯한 전인격이 예수 그리스도의 거처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성령님이 제 마음속에 들어오셔서, 그분을 섬기고 거기서 그분과 즐거워하고 그분을 알아가는 것이 가장 큰 축복임을 고백합니다. 그분을 제 마음에 모셨던 그날 저녁을 저는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1986년 여름, 제가 고 2 때 청소년 연합 여름 수련회 저녁 집회 설교시간에 일어난 일입니다. 주님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사건은 얼마나 감격적인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주님의 임재하심은 제 중심에서 발생한 엄연한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그 후로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모신 것에 대해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영원히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그리스도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새로운 삶이 시작된 나는 “주님, 저의 모든 것은 주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뜻대로 사용하옵소서!”라고 고백했습니다. 물론 주님은 기꺼이 저의 고백을 받으셨고, 저를 주님의 영광된 사역에 동역자로 삼으셨습니다. 주님을 마음에 모신 저는 날마다 주님을 찬송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저의 삶에서의 주님과의 동거가 시작되었고, 예림의 집의 사역도 시작되었습니다. 예림의집의 "예림"은 세 가지 깊은 의미를 가집니다. 첫째, 예수님이 임재하신 마음, 모임이란 뜻이고, 둘째, 예수님의 그림자로 빛과 소금으로 살겠다는 마음가짐이며, 셋째, 예수님의 재림을 기대하고, 기다리며, 준비한다는 뜻입니다! 이 세 가지의 정신을 모토로 하여 선교사와 개척교회를 돕고 있으며, 온라인 사역과 찬양사역, 그리고 21세기 새로운 교회의 모델인 가정교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예림의집 사역을 소개합니다 첫째, 온라인 선교사역 ①다음 카페 “예림의집”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회원가입을 하시면 그 순간부터 저의 예림의집 사역이 동참하게 됩니다. 현재 회원 수 1300여 명으로 이들이 잠정 후원자가 되어 기도 후원, 물질 후원, 재능기부 등을 하게 됩니다. 카페를 매개로 하여, 서로의 비전과 기도 제목을 나누고, 힘을 합쳐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해 갑니다. 저의 사역에 동참하시길 원하시는 분은 다음 검색 창에 예림의집을 치세요! ②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은 따로 회원 가입을 할 필요 없이 언제, 어디서나 방문하여 필요한 정보와 신앙 글들을 접할 수 있습니다. 검색어를 통해 접근하여, 현재 다음 블로그 80만여 건, 네이버 블로그 40만 건의 방문자 수를 기록 중입니다. 다음 카페 예림의집과 연동되어 하루 평균 20건 이상의 정보가 업로드되어 현재 4만 편이 넘는 좋은 글들을 접하실 수 있습니다. ③페이스북 활동(김정민) 요즘 활성화되어있는 페이스북 활동을 통하여 온라인 선교의 지경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저를 친구 초대해 주시고 팔로우해 주시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현재 25개의 그룹을 만들어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친구들을 만나고, 복음을 전하며, 선교 동원가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제 이름 "김정민"을 많이 친구 추가해 주세요! ④유튜브 방송 "예림의집TV" 복음 전파와 영적 무장의 방편으로 유튜브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매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6일 방송하며, 새벽 기도회(월-금 오전 5:00), 예림의집 이야기(월-금: 오후 5:00),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토: 오후 5:00)을 실시간 방송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주일예배, 짤 영상 모음 등 영적 무장과 복음 전파에 관련된 영상들을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검색창에 "예림의집TV"를 치시고 많이 오셔서 ✔️구독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둘째, 선교사/개척교회 후원 사역 이 사역은 찬양사역을 하던 저에게 새로운 비전을 주셔서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게 하신 사역입니다. 선교사님들과 개척교회를 바르게 후원하기 위해서는 제가 먼저 선교와 교회 개척 사역에 헌신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예림의집 카페 회원들을 포함한 그동안 주께서 연결해 주신 후원자 1800여 명이 함께 감당해 가는 사역입니다. 첫 번째, 기도 후원 사역은 주께서 연결해 주신 선교사님이나 개척교회를 위해 40 명의 기도 용사를 세우는 사역입니다. 제1호 필리핀 “김성재 선교사님”과 서울 상도동 “주님의 교회”를 필두로, 현재 26명의 선교사님과 20개의 개척교회를 기도로 후원하고 있고, 그 지경을 넓혀 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물질 후원 사역으로 앞에서 말씀드린 기도 후원자들 중에 하나님께서 자원하는 마음을 주신 분들이 물질 후원을 하게 됩니다. 재정 후원은 선교사님과 개척교회 목회자 가정의 기초 생활비를 우선적으로 지원하도록 원칙을 세웠습니다. 물품 후원은 선교나 교회 개척에 필요한 다양한 물품들을 자원하여 후원하게 됩니다. 특히 도서 후원은 성경책, 신앙 도서, 아이들 학습 도서 등. 작은 도서관을 만들 수 있도록 후원합니다. 세 번째, 재능기부 사역은 주님께서 주신 모든 달란트를 활용하여 선교와 교회 개척을 지원하는 사역입니다. 예를 들어, 선교 지원팀, 여름 성경 학교 진행팀, 찬양팀, 자원봉사단 등이 있습니다. 모든 재능 기부 사역은 “자비량”을 원칙으로 합니다. 특히 전도 지원팀을 구성하여 개척교회를 지원합니다. 이 사역을 통하여 새로운 선교사들과 교회 개척자들이 새워질 것입니다. 선교지나 개척 현장에서 필요한 프로젝트 그룹을 조직하여 지원합니다. 셋째, 찬양 세미나/찬양 집회 사역 제가 약 30년간 해오던 찬양 사역의 일환으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찬양을 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특별히 부여하신 사역입니다. 아직도 찬양에 대한 무지와 편견으로 주님을 맘껏 찬양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제가 경험한 찬양에 대한 놀라운 비밀을 나누는 사역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잠시 멈추고 준비 중이며 내년부터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이 2018년 가을에 발간되었습니다. 저는 비록 짧은 시간 동안 여러분을 만나지만, 찬송은 너무나 소중하기에 글로써 여러분들의 곁에서 치침이 되어드리고자 합니다. 찬송에 대한 저의 지난 30년간의 찬양사역의 총결산의 책입니다. 본 책의 내용은 앞서 설명한 다음 카페와 블로그 예림의집과 페이스북 그리고 토요일에 방송되는 찬양 방송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통해 미리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특히 개척교회는 요청하는 수량을 무료로 제공해 드립니다. 예림의집 사역에 동참하는 방법 첫째, 유튜브 <예림의집TV>방송을 봐주시고,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이나 페이스북 <김정민>의 글을 봐 주시는 것만으로도 일차적으로 동참하는 방법입니다. "구독/좋아요/홍보"까지 해 주시면 더욱 좋겠죠. 둘째,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오셔서 회원이 되어 주시고, 여러 게시판의 글을 통해 영성 훈련을 하시고, 여러분의 삶 속에 적용하셔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십시오. 좋은 글들과 댓글을 올려주시면 더욱 좋겠지요. 셋째, 다음 카페 <사역>코너에 있는 찬양사역/선교후원사역/개척후원 사역에 적금 동참하시는 방법입니다. 제일 중요한 기도 후원과 성령님이 인도하심을 따라 재정과 재능 후원에 동참하시면 더욱 좋습니다. 넷째, 여러분이 섬기는 공동체에 저를 초청하는 방법입니다.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3개월 전에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다섯째, 제가 펴낸 책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구입하셔서 정독하시는 것입니다. 포털 검색창에 책 이름을 치시고, 온라인상으로는 구매하시면 됩니다. 정독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하십시오! 김정민 목사 010-9442-6928 yerim21@hanamil.net 다음 카페 예림의집: http://cafe.daum.net/HomeOfYERIM 다음 블로그 예림의집: http://blog.daum.net/yerim21 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https://blog.naver.com/yerimess 유튜브 예림의집TV: https://www.youtube.com/channel/UCarpDnpNgU0RQn9ksDdSPPw 후원 계좌: 농협 3560686657493(예금주: 김정민) |
예림의집 김정민 목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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