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림의집 메일 모음

예림의집 2438번째 이야기

예림의집 2021. 11. 17. 14:20

예림의집 2438번째 이야기

사색의 바다

영적 지도자를 판단하는 일..


우리가 우리의 영적 지도자를 판단하는 일은, 우리에게 위임된 책임과 원한을 넘어서는 위험한 일이기에 삼가고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은 종의 모습으로 낮아지시고 자기를 쳐서 복종시키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과 본성이 우리 안에 자라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하나님께 드린 순종의 행위는 예수님이 결단하셔야 했던 철저한 내려놓음의 예포가 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오르기로 결정하시면서 모든 것을 내려놓을 준비를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하신 이유는 바로 우리를 위해서였습니다!

 

예림가족 이야기

자신부터 정확하게 파악해야..

셰익스피어가 말하기를 “프러포즈할 때 남자의 마음은 5월이지만, 결혼하고 난 뒤에는 12월이 된다.”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여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프러포즈 받을 때는 5월의 날씨처럼 마음이 화창하고 맑은데, 결혼하고 나면 곧바로 겨울처럼 시리고 추워지게 마련입니다. 결혼생활이라는 풀타임 직업을 갖게 되어 심신이 지치기 때문입니다. 혼자일 때는 주말마다 늦잠도 자면서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았는데, 결혼한 후에는 주말이 지옥으로 변합니다. 요리도 해야지, 청소도 해야지.. 일터만 바뀔 뿐, 일해야 한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요즘은 이전처럼 결혼을 못 해서 안달복달하는 여성의 모습을 찾아보기가 힘듭니다. "결혼하면 여자가 손해다"라는 인식의 확산도 많은 영향을 미치는 듯합니다. 단, 서른 전에는 가야 한다는 식으로 나이를 기준으로 결혼 계획을 세우지는 말아야 합니다. 모교(이화여대)에서 강의할 기회가 있었는데, 이런 질문이 나왔습니다. “어떤 남자와 결혼해야 하나요?” 저는 평소처럼 대답했습니다. “남자도 중요하지만, 타이밍도 그만큼 중요합니다.”라고.. 결혼에 대하여 생각하면 보통 대상에만 신경을 기울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옳은 태도가 아닙니다.
결혼은 여자와 남자가 만나서 하는 일인데, 왜 상대방에게만 신경을 써야 하나요? 결혼하기 전에, "나"라는 사람이 경제적으로 또는 심리적으로 얼마나 준비되어 있는지, 점검하고 성찰하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요? 대부분의 여성은 이상형으로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을 꼽습니다. 대화가 통한다는 것은 사고(思考)의 방향은 물론, 능력과 지식수준이 비슷하다는 뜻입니다. 이것을 알려면, 먼저 자기 자신을 정확하게 파악해야 합니다. 남자 보는 안목은 많은 연애 경험을 통하여 생기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일에서부터 생깁니다.(유은정)

그렇습니다. 우리 주변에 노총각 노처녀들이 엄청 많습니다. 하지만, 그들 대부분은 "자신에게 맞는 짝이 없어서 아직 결혼하지 못하고 있다"라고 말합니다. 그럴 수도 있을 겁니다. 어쨌든, 남녀가 만나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는 것은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그리고 유은정 박사님이 말했듯이, 진정 결혼하기를 원한다면 "자기 자신을 먼저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니" 마태복음 19장 6절의 예수님의 가르치심입니다!

 

단장 칼럼

기독교의 핵심 진리 28-죄 없으신 예수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가 없으시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본이 될 뿐 아니라 우리의 구원을 위한 기초적이고 필수적인 부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흠 없는 어린양"이 아니었다면 그 누구의 구원도 이룰 수 없을뿐더러 그 자신도 구원자를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흠과 티가 없는 성결한 분이요(베드로전서 1:29), 온유하시고 거짓과 허물이 없으신 분으로서(이사야 53:9; 누가복음 23:25; 베드로전서 2:21-23) 만민의 죄를 지시고 자신을 희생 제물로 드리신 하나님의 어린양이십니다(요한복음 1:36). 예수님께 죄가 없으시다는 사실에는 두 가지 면이 있습니다.
소극적인 면은 그리스도께서 모든 죄로부터 자유로웠다는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거룩한 법을 단 한 번도 어기지 않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례를 받으시고, 세례를 받으시고,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하셨습니다. 한편 적극적인 면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율법에 복종하기 원하셔서 아버지의 듯을 행하는 데 헌신하셨다는 것입니다.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요한복음 2:17)라는 말씀과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요한복음 4:34)라는 말씀이 그것을 증언합니다.
반면, 예수 그리스도께 죄가 없으시다는 구체적으로 알려주는 성경 구절이 있습니다. 바로 히브리서 4장 15절입니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할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도한 야고보서 1장 14-15절,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지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이러한 욕망은 그 본질상 이미 죄입니다. 만일 예수님께서도 이러한 욕망을 갖고 계셨다면, 그분도 역시 우리와 같은 죄인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마태복음 4장에서 사탄의 세 가지 유혹을 거절하셨던 예수님을 볼 때 그분에게는 개인적 욕망이 없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직 우리의 구원의 목적을 위해 십자가를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셨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위한 희생 제물이 되실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죄가 없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구속의 두 가지 측면을 요구합니다. 즉 예수님이 우리의 대리인이 되셔서 우리 죄에 대한 형벌을 받으셔야 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율법을 완성하셔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의를 보장해 주셔야만 합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완전한 자로서 불완전한 우리를 위해, 죄 없는 자로서 죄인인 우리를 위해 죽으셨을 뿐 아니라 끝까지 순종하심으로 우리의 구원에 필요했던, 완전한 순조의 의의 삶을 사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구주로 믿는 것 외에는 그 어떤 구원의 길은 없습니다. 요즘 구원의 길이, 천국에 이르는 길이 다른 곳에도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이 등장했습니다. 유튜브나 카톡 등 인터넷과 유튜브를 통해서 주변에 널려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미혹되지 마십시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구원이 되십니다!

 

새찬송가 부르기

 

오늘의 Q.T.

맹세로 증언하는 무죄함의 진정성


"욥이 또 풍자하여 이르되 나의 정당함을 물리치신 하나님, 나의 영혼을 괴롭게 하신 전능자의 사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의 호흡이 아직 내 속에 완전히 있고 하나님의 숨결이 아직도 내 코에 있느니라 결코 내 입술이 불의를 말하지 아니하며 내 혀가 거짓을 말하지 아니하리라 나는 결코 너희를 옳다 하지 아니하겠고 내가 죽기 전에는 나의 온전함을 버리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내 공의를 굳게 잡고 놓지 아니하리니 내 마음이 나의 생애를 비웃지 아니하리라 나의 원수는 악인 같이 되고 일어나 나를 치는 자는 불의한 자 같이 되기를 원하노라 불경건한 자가 이익을 얻었으나 하나님이 그의 영혼을 거두실 때에는 무슨 희망이 있으랴 환난이 그에게 닥칠 때에 하나님이 어찌 그의 부르짖음을 들으시랴 그가 어찌 전능자를 기뻐하겠느냐 항상 하나님께 부르짖겠느냐 하나님의 솜씨를 내가 너희에게 가르칠 것이요 전능자에게 있는 것을 내가 숨기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다 이것을 보았거늘 어찌하여 그토록 무익한 사람이 되었는고"(욥기 27장 1-12절).


본문은 26장에 이어 욥이 풍자로 맹세로 자신의 무죄함을 증언하는 내용입니다. 그는 3절, 아직도 기회가 남아 있음을 천명하며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그는 자신이 살아 있는 동안 결코 불의나 거짓을 말하지 않겠다고 맹세합니다. 또한 자신의 온전함을 버리지 않고 자신의 공의를 굳게 잡겠다고 합니다. 욥은 자신의 원수가 악인과 같이 되기를 원한다고 하며, 하나님이 하신 일을 이미 알고 있는 친구들이 지금은 무익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는 이러한 맹세로 자신의 무죄함을 주장하지만, 결국 친구들을 원망하는 데에서 끝이고 맙니다.


내 의를 굳게 잡고(1-6절).
결백한 사람은 자신의 진정성을 결코 포기할 수 없습니다. 1절 "풍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마샬"은 "격언" 혹은 "비유"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이는 욥의 발언이 이전과는 다른 성격임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욥은 2절,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두고, 생명 있는 동안 진실을 말하며 불의에 굴복하지 않겠다고 맹세합니다. 그는 자신의 유죄를 주장하는 친구들의 말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며, 죽기까지 자신의 온전함과 공의를 버리지 않겠다고 맹세합니다. 그가 얼마나 절박하고 억울한지를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이제 욥은 그의 친구들에게 더는 옳은 것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그가 기댈 대상은 하나님뿐입니다. 욥에게 이러한 맹세 행위는 교만에 기초한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진정선을 나타내고 온전히 하나님께로만 향하겠다는 강력한 의지적 표현인 것입니다. 욥의 이 맹세는 매우 적극적인 방식으로 표현됩니다. 성경은 세상의 고통이 인간이 저지른 죄의 결과라고 말하지만, 인간이 겪는 역경이 모두 죄의 결과는 아님을 동일하게 강조합니다. 욥은 친구들보다 훨씬 큰 고난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결백함을 나타내기 위해 주로 어떤 방법을 사용하나요?


나의 원수는 악인같이 되고(7-12절).
욥은 7절에서 자신의 원수와 자신을 치는 자에 관해 말합니다. "원수를 악인같이 되게 하소서"라는 기도는 "저주의 기도"입니다. 다윗도 시편 10편 2절에서 "악인이 자기 꾀에 빠지도록" 저주하며 기도한 적이 있고, 예레미야도 자신을 암살하려던 자들을 저주하며, 예레미야 18장 23절, "그들을 주 앞에 넘어지게 하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이러한 저주의 기도는 불신앙의 기도가 아닙니다. 오히려 원수를 하나님께 맡기는 믿음의 행동인 동시에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희망의 몸부림입니다.
하나님께서 생명을 끊으실 때 불경건한 자는 소망이 없습니다. 그는 곤경 중에도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대할 수 없으며, 하나님과 단절된 삶을 살다가 결국 멸망의 길을 갑니다. 욥은 친구들을 향해 11절, 하나님의 손이 자신에게 행하신 일과 그에 담긴 전능자의 뜻이 무엇인지 있는 그대로 보여주겠다고 합니다. 친구들이 하나님이 하신 일을 다 같이 보고서도 헛된 것만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욥에게 닥친 고난을 하나님이 행하신 일로 보는 것은 일치하지만, 그 원인의 해석은 전혀 다릅니다. 오늘날 해석이 서로 다를 때, 우리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요?


"우리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고 모든 일의 결정권자이신 하나님 아버지, 사람의 인정이나 비난에 일희일비하지 않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투명하게, 바르게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영혼을 괴롭게 하시는 분처럼 생각되는 고통의 때에도 하나님은 우리의 영혼을 살리시는 전능자라고 선포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시옵소서. 주님을 앙모하는 자, 새 힘을 얻으리라 하셨사오니 우리가 날마다 주님을 바라고 사모하게 하시옵소서. 날마다 주님을 신뢰하며 의지하게 하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찬양의 향기

 

그리스도인의 삶

하나님의 음성을 구별하기

세상에는 시선을 끄는 수많은 소리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텔레비전의 매력은 이것저것 구매하게 합니다. 우리는 잡지와 신문을 열독하고, 여러 시간 동안 인터넷 여행을 하며 귀에는 라디오 이어폰을 꽂고 듣습니다. 이런 혼돈 속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음성을 알기를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당신이 주님의 말씀을 듣고 있다면 그 메시지가 성경과 일치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결코 거룩하고 완전한 말씀과 반대되게 말씀하시지 않으십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고 믿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경에 대립되는 것이라면, 그 메시지를 버려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하나님의 메시지를 확인하기 위해 성경을 의존하기보다도 오히려 자신의 요구와 도덕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것은 큰 실수입니다. 우리의 개인적인 판단은 들쭉날쭉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불변하고 계속적으로 신뢰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판단하는 데 있어서 저지르는 또 다른 실수는 우리에게 오는 메시지를 우리 일상생활에 정확하게 적용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종종 일생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저도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삶 자체가 완전히 변화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 가운데서 어는 한 부분을 "비틀기" 원하신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한 부분이 아니라 우리의 삶 전체를 완전히 변화시키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각자에게 하시는 특별한 말씀이 있는데 우리가 담대함과 신뢰화 확신을 가지고, 그 메시지를 좇아 행하기 위해서는 그분의 음성을 분명히 듣기 위해 온 힘을 다해 힘써야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성경을 주셔서 구원에 이르게 하실 뿐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영원한 지혜에 어긋나는 음성을 구별하게 하시기를 기뻐하신다는 사실을 명심합시다!

 

가정교회를 말하다

역사적 조망: 가정교회 운동, 그때와 지금

"역사적 조망: 가정교회 운동, 그때와 지금"이라는 거창한 말로 이번 주제를 열어볼까 합니다. 가정교회 운동은 현대에 와서 어느 날 갑자기 생긴 운동이 아닙니다. 초대 교회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시대의 변화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지만 꾸준하게 이 운동은 계속되어 왔습니다. 왜냐하면, 가정교회는 예수님께서 그의 제자들과 따르는 무리들을 바라보며, 흐뭇하게 바라보셨을 미래의 청사진이었기 때문입니다. 역사를 공부한다는 것은 재미없고 지단 한 작업 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것을 살펴봄으로써 이 시대의 가정교회의 밑거름을 삼고자 합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신약성경에 나타난 1세기 교회의 모습과 필수적인 기본 요소 및 관례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초대 교회는 가정에서 모인 제자들의 작은 무리들이 거대한 바다와 같이 가정교회들의 네트워크로 확대된 것이 분명합니다. 저는 이러한 초기 교회의 단순성과 분명한 능력이 언제부터 사라졌는지 궁금해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가정교회의 운동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가정교회는 역사를 통해 지속되어 왔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가 큰 부흥과 개혁을 맞이하는 결정적 순간마다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 왔습니다.
심지어 오늘날에도 전 세계의 많은 곳에서 가정교회를 통하여 교회의 패러다임을 일깨우는 하나님의 역사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과거의 한 역사가는 통찰력 있게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습니다. "사도 시대의 교회 역사 가운데 일어난 사건들은 뒤 이를 교회들을 위한 지속적인 본보기로 선택된 후 사도행전에 기록되었다. 이러한 모습에서 멀어질수록 결과는 참혹했고, 그와 반대로, 모든 부흥과 회복은 이러한 성경의 원리와 모습으로 돌아가려는 노력에서 비롯되었다!" 오늘날의 교회가 얼마나 초대 교회와 거리가 있는가를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 나타나는 세계적인 가정교회 운동에 적용할 만한 교훈을 알아내기 위해서는 역사적이고 현대적인 정황을 좀 더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도 아직 공부하는 중이라 이번 주제에서 기술하는 가정교회 운동에 나타난 모든 가르침과 실행들에 대해 제가 완벽하게 이해한 것은 아닙니다. 일단은 여러분과 함께 역사를 공부하며, 문제점과 보안점을 발견하고, 좀 더 넓은 마음, 전체적인 시각으로 하나하나 만들어 간다는 심정으로 한 걸음씩 나아가려고 합니다. 오늘은 서론 격이고 내일부터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차근차근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기도의 횃불

살아있는 신앙이 되게 하소서!


우리가 비록 약하고 추해도 주 앞으로 나오라 부르시고, 힘을 더하시며 씻어주시는 하나님 아버지, 저희가 이 부르심을 받들어 지금 주님 앞에 나아왔습니다. 서서히 한 해가 가고 있건만 부르심의 은혜에 응답하지 못한 인생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단지 주님 앞에 나온 것으로만 만족하지 말게 하시고, 이웃과 함께 주님을 부르며 씻김의 은혜를 사모하는 백성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죽기까지 저희를 사랑하신 주님! 주님이 이 땅에 오셔서 사랑으로 사시며 죽기까지 자신을 희생하신 그 모습을 본받을 수 있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린 자의 친구가 되어주신 주님의 사랑을 본받아, 소외되고 외로운 자들을 대접하고 섬기는 교회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은혜의 주님! 오늘 저희의 신앙도 살아있는 신앙이 되기를 원합니다. 갈수록 말씀에 대한 감격이 없고 죽어있는 저희의 마음에 감격과 찬양과 감사가 살아있는 믿음을 소유하게 하시옵소서. 게으르고 나태한 자리에서 열심한 헌신의 자세로 새롭게 변화되는 믿음을 주시옵소서. 주님께서 "너희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니고 나를 따르라"라고 말씀하셨사오니 저희 자신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지게 하시옵소서.
그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를 수 있게 하시옵소서. 자신의 욕망과 계획 때문에 주님이 짊어지라고 주신 십자가를 외면하는 일이 없게 하시고, 주님의 듯을 높이고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세워 가는데 마음을 쏟는 저희 모두가 되게 하시옵소서. 오늘 하루도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갈 수 있는 새 힘과 새 능력을 공급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이 시간에도 말씀과 기도와 찬양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영적 무장하며, 복음을 전할 수 있게 하시옵소서. 이 방송을 통하여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나기를, 그리하여 구원을 받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축복의 노래

복음 쪽지~㉾

생명 얻는 회개..!

우리가 어떤 회개를 해야 할까요? 바로 "생명을 얻는 회개"를 해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허물이 있고 죄가 있고 게으릅니다. 그러니까 괜한 고집을 피우며 회개하지 않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없고, 영적 지각이 없는 사람은 왜 스스로 자아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이것에 대한 해답을 알고 있는 종교는 오직 기독교뿐입니다. 거듭나지 못한 인간은 자신의 자연적 자아와 이기심의 문제를 붙들고 계속 씨름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교훈에 따르면, 누구나 거듭나서 예수님 안에서 새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예림의집”이란?

예림의집은 “예수님께서 임하셔서 거하시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세상 가운데로 보내시면서 마태복음 28장 29절,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임재를 통하여 실제로 그리스도인에게 오셔서 그리스도인의 모든 삶을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예림의집은 예수님의 사역에 동참시키시는 주님의 그 부르심에 순종하여 세워진 후원 모임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으로 주님이 주신 권능으로 담대히 나아가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영접하는 우리의 마음을 거처로 삼으십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요한복음 14장 23절,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여러분은 사도행전 2장을 기억하실 겁니다. 오순절에 예수님이 약속하신 성령님이 그들에게 임하시자 그들은 예수님께서 전에 하신 말씀의 성취를 생생하게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마음에 거하시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몸과 마음을 비롯한 전인격이 예수 그리스도의 거처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성령님이 제 마음속에 들어오셔서, 그분을 섬기고 거기서 그분과 즐거워하고 그분을 알아가는 것이 가장 큰 축복임을 고백합니다. 그분을 제 마음에 모셨던 그날 저녁을 저는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1986년 여름, 제가 고 2 때 청소년 연합 여름 수련회 저녁 집회 설교시간에 일어난 일입니다. 주님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사건은 얼마나 감격적인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주님의 임재하심은 제 중심에서 발생한 엄연한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그 후로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모신 것에 대해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영원히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그리스도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새로운 삶이 시작된 나는 “주님, 저의 모든 것은 주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뜻대로 사용하옵소서!”라고 고백했습니다. 물론 주님은 기꺼이 저의 고백을 받으셨고, 저를 주님의 영광된 사역에 동역자로 삼으셨습니다.
주님을 마음에 모신 저는 날마다 주님을 찬송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저의 삶에서의 주님과의 동거가 시작되었고, 예림의 집의 사역도 시작되었습니다. 예림의집의 "예림"은 세 가지 깊은 의미를 가집니다. 첫째, 예수님이 임재하신 마음, 모임이란 뜻이고, 둘째, 예수님의 그림자로 빛과 소금으로 살겠다는 마음가짐이며, 셋째, 예수님의 재림을 기대하고, 기다리며, 준비한다는 뜻입니다! 이 세 가지의 정신을 모토로 하여 선교사와 개척교회를 돕고 있으며, 온라인 사역과 찬양사역, 그리고 21세기 새로운 교회의 모델인 가정교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예림의집 사역을 소개합니다

첫째, 온라인 선교사역
①다음 카페 “예림의집”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회원가입을 하시면 그 순간부터 저의 예림의집 사역이 동참하게 됩니다. 현재 회원 수 1300여 명으로 이들이 잠정 후원자가 되어 기도 후원, 물질 후원, 재능기부 등을 하게 됩니다. 카페를 매개로 하여, 서로의 비전과 기도 제목을 나누고, 힘을 합쳐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해 갑니다. 저의 사역에 동참하시길 원하시는 분은 다음 검색 창에 예림의집을 치세요!
②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은 따로 회원 가입을 할 필요 없이 언제, 어디서나 방문하여 필요한 정보와 신앙 글들을 접할 수 있습니다. 검색어를 통해 접근하여, 현재 다음 블로그 80만여 건, 네이버 블로그 40만 건의 방문자 수를 기록 중입니다. 다음 카페 예림의집과 연동되어 하루 평균 20건 이상의 정보가 업로드되어 현재 4만 편이 넘는 좋은 글들을 접하실 수 있습니다.
③페이스북 활동(김정민)
요즘 활성화되어있는 페이스북 활동을 통하여 온라인 선교의 지경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저를 친구 초대해 주시고 팔로우해 주시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현재 25개의 그룹을 만들어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친구들을 만나고, 복음을 전하며, 선교 동원가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제 이름 "김정민"을 많이 친구 추가해 주세요!
④유튜브 방송 "예림의집TV"
복음 전파와 영적 무장의 방편으로 유튜브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매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6일 방송하며, 새벽 기도회(월-금 오전 5:00), 예림의집 이야기(월-금: 오후 5:00),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토: 오후 5:00)을 실시간 방송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주일예배, 짤 영상 모음 등 영적 무장과 복음 전파에 관련된 영상들을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검색창에 "예림의집TV"를 치시고 많이 오셔서 ✔️구독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둘째, 선교사/개척교회 후원 사역
이 사역은 찬양사역을 하던 저에게 새로운 비전을 주셔서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게 하신 사역입니다. 선교사님들과 개척교회를 바르게 후원하기 위해서는 제가 먼저 선교와 교회 개척 사역에 헌신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예림의집 카페 회원들을 포함한 그동안 주께서 연결해 주신 후원자 1800여 명이 함께 감당해 가는 사역입니다.
첫 번째, 기도 후원 사역은 주께서 연결해 주신 선교사님이나 개척교회를 위해 40 명의 기도 용사를 세우는 사역입니다. 제1호 필리핀 “김성재 선교사님”과 서울 상도동 “주님의 교회”를 필두로, 현재 26명의 선교사님과 20개의 개척교회를 기도로 후원하고 있고, 그 지경을 넓혀 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물질 후원 사역으로 앞에서 말씀드린 기도 후원자들 중에 하나님께서 자원하는 마음을 주신 분들이 물질 후원을 하게 됩니다. 재정 후원은 선교사님과 개척교회 목회자 가정의 기초 생활비를 우선적으로 지원하도록 원칙을 세웠습니다. 물품 후원은 선교나 교회 개척에 필요한 다양한 물품들을 자원하여 후원하게 됩니다. 특히 도서 후원은 성경책, 신앙 도서, 아이들 학습 도서 등. 작은 도서관을 만들 수 있도록 후원합니다.
세 번째, 재능기부 사역은 주님께서 주신 모든 달란트를 활용하여 선교와 교회 개척을 지원하는 사역입니다. 예를 들어, 선교 지원팀, 여름 성경 학교 진행팀, 찬양팀, 자원봉사단 등이 있습니다. 모든 재능 기부 사역은 “자비량”을 원칙으로 합니다. 특히 전도 지원팀을 구성하여 개척교회를 지원합니다. 이 사역을 통하여 새로운 선교사들과 교회 개척자들이 새워질 것입니다. 선교지나 개척 현장에서 필요한 프로젝트 그룹을 조직하여 지원합니다.

셋째, 찬양 세미나/찬양 집회 사역
제가 약 30년간 해오던 찬양 사역의 일환으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찬양을 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특별히 부여하신 사역입니다. 아직도 찬양에 대한 무지와 편견으로 주님을 맘껏 찬양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제가 경험한 찬양에 대한 놀라운 비밀을 나누는 사역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잠시 멈추고 준비 중이며 내년부터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이 2018년 가을에 발간되었습니다. 저는 비록 짧은 시간 동안 여러분을 만나지만, 찬송은 너무나 소중하기에 글로써 여러분들의 곁에서 치침이 되어드리고자 합니다. 찬송에 대한 저의 지난 30년간의 찬양사역의 총결산의 책입니다. 본 책의 내용은 앞서 설명한 다음 카페와 블로그 예림의집과 페이스북 그리고 토요일에 방송되는 찬양 방송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통해 미리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특히 개척교회는 요청하는 수량을 무료로 제공해 드립니다.


예림의집 사역에 동참하는 방법

첫째, 유튜브 <예림의집TV>방송을 봐주시고,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이나 페이스북 <김정민>의 글을 봐 주시는 것만으로도 일차적으로 동참하는 방법입니다. "구독/좋아요/홍보"까지 해 주시면 더욱 좋겠죠.
둘째,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오셔서 회원이 되어 주시고, 여러 게시판의 글을 통해 영성 훈련을 하시고, 여러분의 삶 속에 적용하셔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십시오. 좋은 글들과 댓글을 올려주시면 더욱 좋겠지요.
셋째, 다음 카페 <사역>코너에 있는 찬양사역/선교후원사역/개척후원 사역에 적금 동참하시는 방법입니다. 제일 중요한 기도 후원과 성령님이 인도하심을 따라 재정과 재능 후원에 동참하시면 더욱 좋습니다.
넷째, 여러분이 섬기는 공동체에 저를 초청하는 방법입니다.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3개월 전에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다섯째, 제가 펴낸 책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구입하셔서 정독하시는 것입니다. 포털 검색창에 책 이름을 치시고, 온라인상으로는 구매하시면 됩니다. 정독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하십시오!


김정민 목사
010-9442-6928
yerim21@hanamil.net
다음 카페 예림의집: http://cafe.daum.net/HomeOfYERIM
다음 블로그 예림의집: http://blog.daum.net/yerim21
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https://blog.naver.com/yerimess
유튜브 예림의집TV: https://www.youtube.com/channel/UCarpDnpNgU0RQn9ksDdSPPw
후원 계좌: 농협 3560686657493(예금주: 김정민)

예림의집 김정민 목사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