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림의집 2435번째 이야기
하나님의 관심사..! 예수님의 발 앞에 드려졌어도 옥합이 깨어지지 않으면 향기를 발할 수 없습니다. 옥합이 깨어져 안에 있는 향유가 다 흘러나올 때에만 예수님의 십자가를 기념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어디에 속해 있는가를 가지고 평가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주님에게 누구이며 어떤 모습으로 주님 앞에 서 있는가가 예수님께는 중요합니다. 우리가 어느 교회, 어느 선교회, 어느 학교, 어느 기관, 어느 부서에 있는지는 하나님의 관심사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저 그분의 자녀로서 지켜보시고, 보호하시고, 사랑하는 우리의 아버지십니다! ![]() |
바르게 살지 않고는..! 두부는 단백질과 비타민 등, 각종 영양소가 풍부하게 들어있는 대표적인 건강식품 중의 하나입니다. 하지만, 이처럼 좋은 두부도 시금치와 함께 먹으면 독(毒)이 된다고 하네요. 소크라테스는 아테네 법정에서 시민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사랑하는 아테네 시민들이여, 여러분은 가장 위대하고 지혜와 위력으로 명성을 자랑하면서, 될수록 재물이나 많이 모으려 하고, 이름과 명예에만 관심이 쏠려있습니다. 그 결과, 진정으로 관심을 두어야 할 지혜와 진리와 자기의 인격을 깨끗하게 하는 일에 대해서는 조금도 마음을 쓰려고 하지 않고 있으니, 어찌하여 이 사실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가?” 그는 감옥에서 독배를 마시기 전에 그의 사랑하는 제자 플라톤에게 말하기를 “사는 것이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 바르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했습니다. 생존하는 것은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닙니다.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합니다. ‘어떻게’라는 말이 가장 중요합니다. 매국노나 배신자나 변절자나 살인범이나 패륜아나 강도나 매춘부처럼 살기를 원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누구나 인생을 바로 살기를 원합니다. 바르게 산다는 것은 어떻게 사는 것일까요? 소크라테스에 의하면, 첫째로 진실하게 사는 것이요, 둘째로 아름답게 사는 것이요, 셋째로 보람 있게 사는 것입니다. 거짓되게 살거나 추잡하게 살고 무의미하게 살기를 바라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바르게라는 말이 제일 중요합니다. 말도 바르게 하고, 생각도 바르게 하고, 행동도 바르게 하고, 생활도 바르게 해야 합니다. 정치도 바르게 하고, 경제도 바르게 하고, 교육도 바르게 하고, 모든 것을 바르게 해야 합니다. 풍족하게 사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바르게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바르게 살아야 잘 살 수 있습니다. 바르게 살지 않고는 잘 살 수가 없습니다.(안병욱 교수) 그렇습니다. 안 교수님은 "삶의 근본 문제"를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가치는 "생존(生存)"보다도 "바르게 사는데"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즐겁게 사는 것"에다 삶의 의미를 부여합니다만, 안 교수님은 "바르게 사는 것"이 인간의 삶에 있어서 최고의 가치라고 말합니다. 아무튼, 바른길이 아닌 곳으로 가면서 모든 수고를 아끼지 않은들 과연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삶의 방향이 중요합니다. 우리에게는 방향을 잘 인도하는 나침반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입니다. 날마다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삶이 잘 사는 것입니다! ![]() |
기독교의 핵심 진리 26-예수님의 복종 "복종하는 자"는 어떤 사람인가요? 복종한다는 것은 복종하는 자가 복종 대상의 권위 "아래" 있음이 분명합니다. 즉 복종하는 자는 복종을 받는 자와 대등하지 않으며, 같은 수준의 권위를 갖지 않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복종을 이야기하려면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우리 문화에서는 복종을 불평등과 동일시합니다. 그러나 성부 성자 성령 삼위는 그 본성과 명예와 영광이 동등합니다. 삼위 모두가 영원하며 스스로 계시며 모든 신의 속성에 동일하십니다. 하나님의 구속 계획에서 아들이신 예수님은 자발적으로 아버지께 복종하십니다.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이는 아버지입니다. 그리고 아들은 아버지의 뜻을 행하기 위한 순종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마지못해 억지로 순종하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아버지와 아들은 그 영광과 품으신 뜻이 같습니다. 아들이 구속 사업을 원한 것과 동일하게 아버지도 그것을 원하셨습니다. 아버지가 그 아들에게 구원의 역사를 수행하기 원하신 만큼 아들도 그 일을 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요한복음 2:17) 선포하셨고 십자가 위에서 그의 살과 피로 그 일을 하셨습니다. 결국 그리스도의 복종과 순종은 고통에만 이른 것이 아님을 주목해야 합니다. 그 계획은 우리를 위한 그리스도의 모든 사역과 영광을 포함합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이와 같이 아버지의 목적과 그리스도의 사역이 연결됨을 설명합니다. "하나님은 그 기쁘시고 영원하신 뜻을 따라 독생자 주 예수를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로 삼으시고, 선지자요 제사장이요 왕이요 그의 교회의 머리요 구주요 모든 것의 상속자요 세상의 심판주로 삼으시고, 그에게 영원 전부터 한 백성을 주사 그의 씨가 되게 하시고, 때가 되매 그로 말미암아 구속받고 부르심을 받고 의롭다 하심과 거룩하게 하심과 영화롭게 하심을 받게 하셨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완전하신 뜻에 자신을 복종시키심으로써 우리는 하고 싶지도 않고 할 수도 없는 일을 우리를 위해 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셨습니다. 그분은 세례를 받으시면서 요한에게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마태복음 3:1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전 생애와 사역은 이 완전한 순종을 보여줍니다. 이와 같은 순종으로 예수님은 가장 중요한 세 가지 일을 성취하셨습니다. 첫째는 흠 없는 어린양, 우리의 구주가 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범죄 하셨다면 그는 우리의 죄는 고사하고 자신의 죄도 속하지 못하셨을 것입니다. 둘째는 예수님의 완전한 순종으로 말미암아 언약을 지키는 모든 자에게 하나님이 약속하신 상을 얻으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가 우리에게 주시는 하늘의 상을 받을 만한 공로를 쌓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복종하는 한 사람으로서 복종하지 않은 모든 사람을 구원하셨습니다. 셋째는 십자가의 순종으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완성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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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위로가 결여된 교훈 "너는 하나님과 화목하고 평안하라 그리하면 복이 네게 임하리라 청하건대 너는 하나님의 입에서 교훈을 받고 하나님의 말씀을 네 마음에 두라 네가 만일 전능자에게로 돌아가면 네가 지음을 받을 것이며 또 네 장막에서 불의를 멀리 하리라 네 보화를 티끌로 여기고 오빌의 금을 계곡의 돌로 여기라 그리하면 전능자가 네 보화가 되시며 네게 고귀한 은이 되시리니 이에 네가 전능자를 기뻐하여 하나님께로 얼굴을 들 것이라 너는 그에게 기도하겠고 그는 들으실 것이며 너의 서원을 네가 갚으리라 네가 무엇을 결정하면 이루어질 것이요 네 길에 빛이 비치리라 사람들이 너를 낮추거든 너는 교만했노라고 말하라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구원하시리라 죄 없는 자가 아니라도 건지시리니 네 손이 깨끗함으로 말미암아 건지심을 받으리라"(욥기 22장 21-30절). 24절, "오빌"은 금과 각종 보석의 생산지로 유명한 지역입니다. 오빌의 질 좋은 순금은 풍요의 상징이었습니다(시편 45:9; 이사야 13:12). 27절 "서원"은 하나님께 무엇을 하겠다거나 일정 기간 무엇을 하지 않겠다고 자발적으로 약속하는 것을 말합니다(레위기 27:1-29). 엘리바스는 욥에게 하나님과 화목하고 평안하고 충고합니다. 또 하나님의 교훈을 받고 그분의 말씀을 마음에 두며 불의를 멀리하라고 합니다. 욥이 보화를 티끌처럼 여기면 전능자가 보화가 되시고, 하나님께 기도하면 들어주신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구원하신다는 것입니다. 너는 하나님과 화목하라(21-26절). 회개와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 그리고 복된 삶은 성경이 말하는 일반적 교훈입니다. 엘리바스는 21절, 명령조로 욥에게 "하나님과 화목하라"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평안과 복이 임할 것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교훈을 받고 그분의 말씀을 마음에 두라는 말은 욥이 하나님의 교훈에서 멀리 떠나 있음을 전제합니다. 엘리바스는 욥의 지금의 처지가 그가 하나님을 떠나 스스로 교만해져서 하나님이 치신 것이라는 확증 편향성을 가지고, 욥의 친구로서 그의 삶을 바르게 잡아준다는 생각으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엘리바스는 하나님께 돌아왔을 때 주어질 변화와 회복을 열거합니다. 보화나 금을 티끌로 여기고 전능자를 찾으면, 전능자가 보배가 되어 전능자로 인해 기뻐할 것이라고 교훈합니다. 이렇듯 엘리바스는 욥에게 하나님께로 돌이키라고 말하지만, 욥은 계속해서 하나님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19장 25절을 보면, 욥은 "내가 알기에는 나의 대속자가 살아 계시니 마침내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 하며 하나님만이 그의 유일한 대속자가 되심을 믿고 그분이 응답하기만을 고대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가장 귀하게 여기는 보화는 무엇인지 깊이 묵상합시다. 너의 기도를 들으실 것이다(27-30절). 엘리바스는 욥을 죄인으로 전제하며 회개를 강조합니다. 욥이 기도하면 하나님이 들으시고, 그는 서원한 바를 갚을 것이라고 합니다. 회개가 하나님과의 온전한 사귐을 가능하게 하고, 하나님이 욥의 보호자와 인도자가 되시게 한다는 것입니다. 기도 응답과 용서는 일간의 행동이 아닌 하나님의 주권에 달려 있습니다. 엘리바스는 욥에게 겸손을 권면하며 중보 기도자로서의 삶을 말합니다. 이러한 엘리바스의 교훈은 멋진 설교는 될 수 있지만, 애매하게 고난당하는 이에게 진정한 위로와 감동을 줄 수는 없습니다. 욥은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사람이었습니다. 엘리바스도 욥의 경건함과 무죄함을 알았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는 욥에게 불의를 버리고 하나님과 화목할 것을 고집스레 타이릅니다. 교만했음을 실토하고 겸손하라고 다그칩니다. 하지만 이러한 충고를 귀담아들어야 할 사람은 엘리바스 자신이었습니다. 작은 경험과 짧은 생각으로 하나님의 뜻을 모두 아는 것처럼 말하는 것은 오만입니다. 자신이 경험하고 이해하는 바에 대한 믿음을 가지되 열려 있는 성숙한 믿음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주권 앞에 우리의 최선을 무엇인가요? "기도 응답과 용서의 주권자이신 하나님 아버지, 인생의 방향을 돌이켜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감이 우리에게 가장 큰 복임을 믿습니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하나님 뜻을 분별하지 못한 채 그럴듯한 충고를 앞세우지 않도록 겸손함을 더해 주시옵소서. 무엇보다 고난을 통해 가장 귀한 보배이신 주님만으로 우리의 삶을 채우게 하시옵소서. 엘리바스처럼 작은 경험과 짧은 생각으로 하나님의 뜻을 모두 아는 것처럼 교만스럽게 행동하지 않게 하시고, 언제나 겸손과 사랑으로 다가가게 하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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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을 찢는 회개 욥의 친구들이 고난 당하는 욥을 찾아와 그의 참혹한 실상을 보았습니다. 욥의 고통이 어찌나 심했던지 친구들은 자신들의 옷을 찢고 7일간이나 침묵하며 욥의 곁을 지켰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이후에 친구들은 욥에게 그이 죄 때문에 이런 고난을 당한다고 말로 화살을 쏘았습니다. 이 말은 하는 엘리바스의 마음에 욥에 대한 사랑이 없었을까요? 나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는 주님이 욥을 대하는 방식을 몰랐을 뿐입니다. 욥은 하나님이 보시기에도 의인이었지만, 하나님은 욥을 믿었기에 그에게 시간제 고난을 허락하신 것이었습니다. 아마존 선교의 충실한 동역자였던 아내 허윤석 선교사가 암으로 투병하게 되었을 때, 나는 여러 가지 충고를 했습니다. "당신도 나처럼 살려 달라고 기도 좀 해. 나는 손이 발이 되도록 기도하느데 왜 당신은 기도하지 않지?"라고 다그쳤습니다. 하나님과 그녀가 완전히 연합된 평안에 들어가 있는 것을 모른 채 엘리바스처럼 율법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했습니다. 당시에는 내가 잘못하는 줄도 몰랐습니다. 오히려 도와준다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그녀에게 이런 말들을 늘어놓았을 때마다 아내는 얼마나 내가 야속했으며, 가슴이 아팠을까요? 2013년 9월 허 선교사가 소천하고 난 뒤에야 나는 깨닫게 되었습니다. 모질고 힘에 겨운 고통을 당하면서도 하나님 아버지의 최선의 사랑을 신뢰하며 원망도 불평도 하지 않았던 아내가 떠난 후, 나는 비로소 가슴 찢는 회개를 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하는 모든 것이 내 자랑과 업적이고 자기 의였던 나에게, 아내 허 선교사의 죽음은 강력한 회개의 통로가 되었습니다. 그녀의 믿음이 나를 변화시키고 길 잃은 많은 사람을 주님께로 돌이켰습니다. 죽음은 누구에게는 끔찍한 종말이지만, 하나님의 사람에게는 생명을 소성케 하는 새로운 시작입니다.(김철기 선교사) ![]() |
자신들의 청사진을 따를 것을 기대했나? 이제 자연스럽게 대두되는 질문은 새로 시작하는 교회의 형태와 역할을 확립하고자 할 때, 사도들이 자신들의 권위가 어디까지 미칠 것이라고 보았는가 하는 데에 있습니다. 사도들은 그들이 세운 모델을 모든 교회의 표준으로 삼고자 했을까요? 아니면 단순한 선택사항으로 보았을까요? 신자들은 그들이 원하는 방식대로 자유롭게 할 수 있었을까요? 이를 알아보기 위해 바울이 고린도와 데살로니가 교회에 보낸 편지를 봅시다. 이들 교회는 바울이 직접 개척하고 사도로서 지도력을 발휘한 곳입니다. 사도행전 17장 1-4절과 18장 1-18절을 읽어보십시오. 여기에 인용한 몇몇 구절은 바울과 그의 동역자들이 교회 공동체에서 행하는 여러 관례들에 대해 어떤 생각을 품고 있었는지를 보여줍니다. "너희가 모든 일에 나를 기억하고 또 내가 너희에게 전하여 준 대로 그 전통을 너희가 지키므로 너희를 칭찬하노라"(고린도전서 11:2). "그러므로 형제들아 굳건하게 서서 말로나 우리의 편지로 가르침을 받은 전통을 지키라"(데살로니가후서 2:15). "논쟁하려는 생각을 가진 자가 있을지라도 우리에게 하나님의 모든 교회는 이런 관례가 없느니라"(고린도전서 11:16).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로부터 난 것이냐 또는 너희에게만 임한 것이냐? 만일 누구든지 자기를 선지자나 혹은 신령한 자로 생각하거든 내가 너희에게 편지하는 이 글이 주의 명령인 줄 알라"(고린도전서 14:36-38). 여기서 몇 가지 언급할 필요가 있습니다. 처음 두 인용 구절에서 바울은 자신이 개인적으로 혹은 서신으로 신자들에게 전하여 준 "전통"을 굳게 붙들고 있음을 칭찬하고 있습니다. 전통이란 전해 내려오는 사고방식이나 행동 양식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로부터 말미암지 않고 사람이 만든 바리새인들의 전통에 대해 책망하셨는데(마가복음 7:5-14), 이것과 혼동해서는 안 됩니다. 또한 이런 전통은 단순 가르침과 동일시되어서도 안 됩니다. 여기서 ㅁ라하는 "전통"에는 사도들이 자신들이 세운 교회에 도입한 행동 양식과 간행들이 포함됩니다. 그들은 교회가 실행해가야 할 역할과 양식에 대한 청사진을 심었습니다. 둘째, 세 번째 인용 구절은 이 책의 범위를 벗어나는 논쟁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여기서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성도뿐만 아니라 모든 교회가 따라야 하는 보편적인 실천 원리에 대해 말합니다. 이것 말고 다른 대안은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도들의 지침을 무시하는 사람은 논쟁과 분란을 일으키는 사람입니다. 셋째, 첫 번째와 네 번째 인용 구절은 특별히 그리스도인들이 교회로서 모임을 가질 때와 관련된 언급입니다. 바울은 이런 모임은 모두에게 열려 있고 참여 지향적이며 구성원 간 상호작용이 활발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한 사람의 일방적인 독주가 펼쳐져서는 안 되며, 그러면서도 혼란이 아닌 품위와 분명한 질서가 있어야 합니다. 넷째, 네 번째 성경 구절은 바울이 성령의 이끄심에 열려 있는 교회 모임의 형식에 관한 기나긴 논의 끝에 제기하는 내용입니다. 분명히 바울은 자신이 제공하는 가르침이 취사선택할 수 있는 단순한 제안이나 개인적인 의견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강하게 느꼈습니다. 사도 바울은 어떤 사람이라도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들 역시 인정받지 못한다고 직설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주 예수님이 사도들의 권위에 대해 어떻게 여기시는지 주의해야 합니다. 자신의 처음 열두 사도들에 대해 주님은 "너희 말을 듣는 자는 곧 내 말을 듣는 것이요 너희를 저버리는 자는 곧 나를 저버리는 것이요 나를 저버리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저버리는 것이다"(누가복음 10:16)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초대 교회에서는 이 말이 분명 의미심장하게 들렸을 것입니다. 사도들의 말을 듣는다는 의미는 신자들이 사도들의 가르침과 관례를 그 형태와 역할, 본보기와 능력, 교리와 삶의 양식에 있어 최대한 실행한다는 의미였습니다. 인간의 발상이나 관행들은, 그것이 어떤 이들에게 아무리 실용적이고 필요한 것처럼 보이며 순수한 의도를 갖고 있을지라도, 사도들의 지도 아래 언제나 기도로 면밀히 검증되어야만 했습니다. 오늘날 이러한 사항을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요? 일단 가정교회는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 곧 성경 위에 굳건히 서야 합니다. 그리고 지도자는 그 성경 말씀을 요리하는 최고의 요리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 |
감사를 회복하게 하소서! 찬송을 받으실 하나님 아버지! 높은 영광 속에서 인생을 돌보시는 위엄을 찬양합니다. 이 방송을 함께하는 저희들도 그 영광을 찬미하게 하시옵소서. 우리의 길이 되신 그리스도 예수님, 간절히 구하며 주님을 찾는 저희들의 앞길을 빛으로 인도하시옵소서. 은혜의 성령님, 예배를 드리는 저희 영혼의 소원을 만족하게 하시고 충만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성삼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예배가 되게 하시옵소서. 은혜의 주님! 저희들에게 추수의 계절인 가을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들에게 추수의 계절을 주신 것은 이 계절을 통하여 주님께 대한 감사를 회복할 수 있도록 이끄시는 주님의 섭리임을 깨닫습니다. 그동안 감사 생활을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불평불만으로 살아왔던 저희들 아닙니까? 이 시간, 지나온 일 년을 돌이켜 보면 감사생활을 하지 못했던 것을 회개하며 참으로 감사해야 될 일이 무엇인지를 기억하게 하시고, 주님께 깊은 감사를 드릴 수 있는 저희 모두가 되게 하시옵소서. 조건적인 감사를 찾지 말게 하여 주시고, 절대적인 감사생활을 할 수 있는 저희들이 되게 하시옵소서.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둔다고 하셨사오니(고린도후서 9:6), 저희가 감사의 열매를 거두게 하시옵소서. 주님! 그동안 저희가 복음의 씨앗을 얼마나 뿌렸는지를 돌이켜 봅니다. 주님은 저희들에게 영적인 결실을 기대하시는데 코로나19 팬데믹이란 이유로 저희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고 했고, 아무 데도 가지 않으려고 했던 것은 아닌지요. 지금부터라도 영적인 결실을 맺기 위해 사랑의 수고를 아끼지 않는 저희 모두가 되게 하시고, 영적인 추수기 때에 빈손 들고 주님 앞에 서는 인생이 되지 않게 하시옵소서. 오늘 우리가 나누는 모든 이야기와 주님께 드리는 찬양과 기도를 통해 우리를 다듬어 주시옵소서. 주님의 자녀답게 우리를 길러 주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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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을 믿는다는 착각..? 예수님의 말씀이 항상 결론입니까? 예수님의 말씀이 자기 인생의 결론이 아니라면 당신은 왜 자신이 예수님을 믿는다고 착각합니까? 자기 경험에 늘 "아멘" 하고 살면서, 예수님의 말씀은 늘 코너에 몰려 있는데, 어떻게 예수님이 당신의 주님이 될 수 있습니까? 천국은 회개해야 들어갈 수 있습니다. 회개한다는 것은 예수님을 믿는다는 전인적 돌이킴이기 때문입니다. 회개 없이 적당히 눈치 보고, 적당히 끼어서 갈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형식적인 회개를 했다고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란 말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진정으로 회개하시길 간곡히 당부합니다! ![]() |
“예림의집”이란? 예림의집은 “예수님께서 임하셔서 거하시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세상 가운데로 보내시면서 마태복음 28장 29절,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임재를 통하여 실제로 그리스도인에게 오셔서 그리스도인의 모든 삶을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예림의집은 예수님의 사역에 동참시키시는 주님의 그 부르심에 순종하여 세워진 후원 모임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으로 주님이 주신 권능으로 담대히 나아가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영접하는 우리의 마음을 거처로 삼으십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요한복음 14장 23절,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여러분은 사도행전 2장을 기억하실 겁니다. 오순절에 예수님이 약속하신 성령님이 그들에게 임하시자 그들은 예수님께서 전에 하신 말씀의 성취를 생생하게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마음에 거하시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몸과 마음을 비롯한 전인격이 예수 그리스도의 거처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성령님이 제 마음속에 들어오셔서, 그분을 섬기고 거기서 그분과 즐거워하고 그분을 알아가는 것이 가장 큰 축복임을 고백합니다. 그분을 제 마음에 모셨던 그날 저녁을 저는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1986년 여름, 제가 고 2 때 청소년 연합 여름 수련회 저녁 집회 설교시간에 일어난 일입니다. 주님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사건은 얼마나 감격적인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주님의 임재하심은 제 중심에서 발생한 엄연한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그 후로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모신 것에 대해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영원히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그리스도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새로운 삶이 시작된 나는 “주님, 저의 모든 것은 주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뜻대로 사용하옵소서!”라고 고백했습니다. 물론 주님은 기꺼이 저의 고백을 받으셨고, 저를 주님의 영광된 사역에 동역자로 삼으셨습니다. 주님을 마음에 모신 저는 날마다 주님을 찬송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저의 삶에서의 주님과의 동거가 시작되었고, 예림의 집의 사역도 시작되었습니다. 예림의집의 "예림"은 세 가지 깊은 의미를 가집니다. 첫째, 예수님이 임재하신 마음, 모임이란 뜻이고, 둘째, 예수님의 그림자로 빛과 소금으로 살겠다는 마음가짐이며, 셋째, 예수님의 재림을 기대하고, 기다리며, 준비한다는 뜻입니다! 이 세 가지의 정신을 모토로 하여 선교사와 개척교회를 돕고 있으며, 온라인 사역과 찬양사역, 그리고 21세기 새로운 교회의 모델인 가정교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예림의집 사역을 소개합니다 첫째, 온라인 선교사역 ①다음 카페 “예림의집”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회원가입을 하시면 그 순간부터 저의 예림의집 사역이 동참하게 됩니다. 현재 회원 수 1300여 명으로 이들이 잠정 후원자가 되어 기도 후원, 물질 후원, 재능기부 등을 하게 됩니다. 카페를 매개로 하여, 서로의 비전과 기도 제목을 나누고, 힘을 합쳐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해 갑니다. 저의 사역에 동참하시길 원하시는 분은 다음 검색 창에 예림의집을 치세요! ②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은 따로 회원 가입을 할 필요 없이 언제, 어디서나 방문하여 필요한 정보와 신앙 글들을 접할 수 있습니다. 검색어를 통해 접근하여, 현재 다음 블로그 80만여 건, 네이버 블로그 40만 건의 방문자 수를 기록 중입니다. 다음 카페 예림의집과 연동되어 하루 평균 20건 이상의 정보가 업로드되어 현재 4만 편이 넘는 좋은 글들을 접하실 수 있습니다. ③페이스북 활동(김정민) 요즘 활성화되어있는 페이스북 활동을 통하여 온라인 선교의 지경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저를 친구 초대해 주시고 팔로우해 주시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현재 25개의 그룹을 만들어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친구들을 만나고, 복음을 전하며, 선교 동원가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제 이름 "김정민"을 많이 친구 추가해 주세요! ④유튜브 방송 "예림의집TV" 복음 전파와 영적 무장의 방편으로 유튜브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매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6일 방송하며, 새벽 기도회(월-금 오전 5:00), 예림의집 이야기(월-금: 오후 5:00),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토: 오후 5:00)을 실시간 방송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주일예배, 짤 영상 모음 등 영적 무장과 복음 전파에 관련된 영상들을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검색창에 "예림의집TV"를 치시고 많이 오셔서 ✔️구독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둘째, 선교사/개척교회 후원 사역 이 사역은 찬양사역을 하던 저에게 새로운 비전을 주셔서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게 하신 사역입니다. 선교사님들과 개척교회를 바르게 후원하기 위해서는 제가 먼저 선교와 교회 개척 사역에 헌신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예림의집 카페 회원들을 포함한 그동안 주께서 연결해 주신 후원자 1800여 명이 함께 감당해 가는 사역입니다. 첫 번째, 기도 후원 사역은 주께서 연결해 주신 선교사님이나 개척교회를 위해 40 명의 기도 용사를 세우는 사역입니다. 제1호 필리핀 “김성재 선교사님”과 서울 상도동 “주님의 교회”를 필두로, 현재 26명의 선교사님과 20개의 개척교회를 기도로 후원하고 있고, 그 지경을 넓혀 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물질 후원 사역으로 앞에서 말씀드린 기도 후원자들 중에 하나님께서 자원하는 마음을 주신 분들이 물질 후원을 하게 됩니다. 재정 후원은 선교사님과 개척교회 목회자 가정의 기초 생활비를 우선적으로 지원하도록 원칙을 세웠습니다. 물품 후원은 선교나 교회 개척에 필요한 다양한 물품들을 자원하여 후원하게 됩니다. 특히 도서 후원은 성경책, 신앙 도서, 아이들 학습 도서 등. 작은 도서관을 만들 수 있도록 후원합니다. 세 번째, 재능기부 사역은 주님께서 주신 모든 달란트를 활용하여 선교와 교회 개척을 지원하는 사역입니다. 예를 들어, 선교 지원팀, 여름 성경 학교 진행팀, 찬양팀, 자원봉사단 등이 있습니다. 모든 재능 기부 사역은 “자비량”을 원칙으로 합니다. 특히 전도 지원팀을 구성하여 개척교회를 지원합니다. 이 사역을 통하여 새로운 선교사들과 교회 개척자들이 새워질 것입니다. 선교지나 개척 현장에서 필요한 프로젝트 그룹을 조직하여 지원합니다. 셋째, 찬양 세미나/찬양 집회 사역 제가 약 30년간 해오던 찬양 사역의 일환으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찬양을 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특별히 부여하신 사역입니다. 아직도 찬양에 대한 무지와 편견으로 주님을 맘껏 찬양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제가 경험한 찬양에 대한 놀라운 비밀을 나누는 사역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잠시 멈추고 준비 중이며 내년부터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이 2018년 가을에 발간되었습니다. 저는 비록 짧은 시간 동안 여러분을 만나지만, 찬송은 너무나 소중하기에 글로써 여러분들의 곁에서 치침이 되어드리고자 합니다. 찬송에 대한 저의 지난 30년간의 찬양사역의 총결산의 책입니다. 본 책의 내용은 앞서 설명한 다음 카페와 블로그 예림의집과 페이스북 그리고 토요일에 방송되는 찬양 방송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통해 미리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특히 개척교회는 요청하는 수량을 무료로 제공해 드립니다. 예림의집 사역에 동참하는 방법 첫째, 유튜브 <예림의집TV>방송을 봐주시고,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이나 페이스북 <김정민>의 글을 봐 주시는 것만으로도 일차적으로 동참하는 방법입니다. "구독/좋아요/홍보"까지 해 주시면 더욱 좋겠죠. 둘째,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오셔서 회원이 되어 주시고, 여러 게시판의 글을 통해 영성 훈련을 하시고, 여러분의 삶 속에 적용하셔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십시오. 좋은 글들과 댓글을 올려주시면 더욱 좋겠지요. 셋째, 다음 카페 <사역>코너에 있는 찬양사역/선교후원사역/개척후원 사역에 적금 동참하시는 방법입니다. 제일 중요한 기도 후원과 성령님이 인도하심을 따라 재정과 재능 후원에 동참하시면 더욱 좋습니다. 넷째, 여러분이 섬기는 공동체에 저를 초청하는 방법입니다.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3개월 전에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다섯째, 제가 펴낸 책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구입하셔서 정독하시는 것입니다. 포털 검색창에 책 이름을 치시고, 온라인상으로는 구매하시면 됩니다. 정독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하십시오! 김정민 목사 010-9442-6928 yerim21@hanamil.net 다음 카페 예림의집: http://cafe.daum.net/HomeOfYERIM 다음 블로그 예림의집: http://blog.daum.net/yerim21 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https://blog.naver.com/yerimess 유튜브 예림의집TV: https://www.youtube.com/channel/UCarpDnpNgU0RQn9ksDdSPPw 후원 계좌: 농협 3560686657493(예금주: 김정민) |
예림의집 김정민 목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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