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림의집 2436번째 이야기
그만 낮추라고 하실 때까지.. 스스로를 "적당히"가 아니라 "충분히" 낮추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오해를 이기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하나님께서 그만 낮추라고 하실 때까지 인내하며 낮아지는 것입니다.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는 선교사와 목회자를 포함한 사역자들에게 꼭 넘어야 할 산과 같은 문제입니다. 사탄의 유혹에 따라 예수님이 만약 성전에서 뛰어내리면서 천사들이 당신을 수종 들게 했다면, 세상의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것을 거부하셨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자신을 부인하고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릅시다! ![]() |
엄마, 괜찮아요! 제가 지켜줄게요! 우리 엄마는 어린 시절 엄마 없이 자랐다고 합니다. 그래서였을까요? 엄마는 홀로 오빠와 저를 키우면서도 우리에게 많은 애정을 쏟았습니다. 아빠의 빈자리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밤늦게 일하고 와도 피곤한 기색 없이 우리를 안아주셨습니다. 엄마를 세상에서 가장 존경했던 제 마음이 변한 것은 결혼과 이혼을 겪은 후였습니다. 자신을 챙기지 않고 자식을 위하여 희생만 하는 엄마의 삶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라"라는 엄마의 말씀이 있었지만, 더 이상 "가족"이라는 울타리에 얽매이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 정도로 닫힌 마음이었습니다. 하루는 오빠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엄마가 치과에 갔는데, 치료비가 3천만 원 넘게 나왔다는 겁니다. 자세히 알아보기 위하여 엄마와 함께 치과에 가는 동안, 저는 내내 싫은 소리를 했습니다. “도대체 치아를 어떻게 관리한 거예요?” 엄마의 어깨가 한껏 움츠러들었습니다. 다시 상담을 받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저는 연신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엄마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혹시, 좀 깎아줄 수 없나요? 우리 자식들이 힘들게 일하는데, 제가 이렇게 짐이 되다니.. 최대한 싸게 안 될까요?” 그 순간, 엄마의 얼굴이 너무나 연약해 보였습니다. 엄마는 힘겹게 살아온 날들을 이야기하더니,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며 사정했습니다. 엄마가 잘못한 것은 하나도 없는데, 그저 자신보다 우리를 먼저 돌본 것뿐인데, 불현듯 제가 27살 때 엄마에게 쓴 편지가 생각났습니다. “엄마, 생신 축하드려요. 다음 생에는 제가 엄마의 엄마로 태어날게요. 이번 생에 받은 사랑은 한평생 갚아도 부족할 것 같으니, 우리 모녀지간 바꿔서 다시 만나요!” 다음 생이라니.. 이 얼마나 비겁한 말인가요? 엄마는 지금 제 앞에 있건만.. 저는 엄마의 손을 잡고 말했습니다. “엄마, 괜찮아요! 아무 걱정 하지 마세요. 제가 지켜줄게요!”(손보람) 그렇습니다. 모녀지간(母女之間)이 서로 가깝게 지내야 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왜냐하면, 딸은 어쩔 수 없이 엄마의 뒤를 따라가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누구보다 엄마의 심정을 이해하면서 응원해야 할 겁니다. 손보람 님도 젊었을 땐 엄마의 형편과 마음을 잘 이해했기에 다음 생(生)은 바꿔서 태어나자고 했겠지요. 그러나 그녀에게 닥친 현실은 그런 소망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습니다. 그러다가, 바꿔 태어날 것 없이 지금 이 세상에서 엄마를 잘 모시는 것이 옳은 길임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십계명의 5 계명을 기억하십시오! ![]() |
기독교의 핵심 진리 27-그리스도의 인성 성자 하나님께서 실제로 인간의 본성을 입으셨다는 사실은 역사적으로 기독교가 가지는 지극히 중요한 교리 중 하나입니다. 451년, 전 세계적 교회 회의인 칼케돈 공의회에서는 예수님이 "참사람이시며 참하나님"이시라는 것과 그리스도의 이 두 가지 본성은 서로 연합되어 혼합, 혼동, 분리, 불일치 없이 각각의 본성을 그분의 속성으로 가지신다고 환언했습니다. 초대교회는 예수님이 실제 육체와 진정한 인간의 본성을 갖지 않았다고 믿는 "가현설(假現設) 이단"과 맞서 싸웠습니다. 가현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너무 강조한 나머지 말씀이 육신이 된 성육신을 부정하고 하나님의 아들이 아닌 인간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었다고 생각하는 이단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육체를 가지신 것처럼 보이는 것일 뿐 실제는 환영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사도 요한은 예수님이 참으로 육신을 입고 오신 사실을 부인하는 자는 적그리스도에게 속은 자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교회가 물리친 도 하나의 이단은 "그리스도 단성론자"들입니다. 이 이단은 예수님이 참된 신성도 참된 인성도 아닌 "신인 양성"을 가지셨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임재 방식을 고려하면서 그 두 가지 본성을 구분해야 합니다. 그리스도가 지니신 인성은 우리와 똑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는 우리를 위하여 인간이 되셨고 우리의 구세주가 되시기 위하여 우리 가운데 오셨습니다. 우리 대신 고통 받으시기 위해 우리 죄를 지시고 우리의 대리자가 되셨습니다. 또한 우리를 위해 하나님의 율법을 완성하심으로써 우리의 옹호자가 되셨습니다. 구속에는 이중적 교환이 있습니다. 즉 "우리의 죄는 예수님께 전가되고 그의 의는 우리에게 전가되는 것"입니다. 그는 우리의 불완전한 인성 때문에 심판을 받으시고 우리는 그의 완전한 인성으로 인해 축복을 받습니다. 예수님께 죄가 없으셨다는 사실을 제외하고는 그 인성 속에 우리 모든 인류가 갖고 있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인간으로서의 예수님은 시공간의 제한을 받으셨습니다. 땀을 흘리셨고 배고프셨고 고통을 견디셨습니다. 그는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였고 죽음을 괴로워하셨습니다. 이 모든 면에서 예수님은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셨습니다. 예수님의 나심, 사심, 죽으심, 다시 오심 모두가 인성을 가진 상태에서 이루어졌으며 이루어질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인성과 신성 그 무엇도 부정하지 않고 모두 믿는 올바른 신앙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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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으신 하나님, 비천한 인생 "수아 사람 빌닷이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은 주권과 위엄을 가지셨고 높은 곳에서 화평을 베푸시느니라 그의 군대를 어찌 계수할 수 있으랴 그가 비추는 광명을 받지 않은 자가 누구냐 그런즉 하나님 앞에서 사람이 어찌 의롭다 하며 여자에게서 난 자가 어찌 깨끗하다 하랴 보라 그의 눈에는 달이라도 빛을 발하지 못하고 별도 빛나지 못하거든 하물며 구더기 같은 사람, 벌레 같은 인생이랴"(욥기 25장 1-6절). 오늘 함께 읽은 본문은 수아 사람 빌닷의 마지막 대답입니다. 그는 높으신 하나님 앞에 한없이 비천한 인생을 말하며 욥이 벌레 같은 인간이니 잠잠하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빌닷은 하나님 앞에서 사람이 의롭다 할 수 없음을 강조합니다. 여자에게서 난 자가 깨끗하다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주권과 위엄을 가지고 화평을 베푸십니다. 그분이 보시기에는 달도, 별로 빛나지 않습니다. 하물며 구더기 같은 사람, 벌레 같은 인생은 더욱 그러할 것입니다. 전체적인 맥락이 아니라 본문만 떼어서 살펴본다면 정말 인생에 대한 탁월한 통찰이라 할 수 있습니다. 높으신 하나님의 주권과 위엄(1-3절). 빌닷의 마지막 발언은 매우 짧습니다. 이에 반해 이어서 이어지는 욥의 발언은 26-31장으로 매우 깁니다. 비록 단순하고 짧은 발언이지만 빌닷의 발언에는 분명한 강조점이 있습니다. 그는 연약하고 비천한 인간에 대비되는 하나님의 주권과 높으심을 강조함으로 욥의 주장을 반박하려 합니다. 하나님께는 주권과 위엄이 있으며, 그분은 높은 곳에서 화평을 이루십니다. 그분이 부리시는 군대는 셀 수 없고, 그분의 통치가 미치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이러한 빌닷이 인식하고 있는 하나님은 지극히 옳습니다. 빌닷은 하나님이 힘과 존재 방식 면에서 다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분임을 분명히 합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순종만 필요할 뿐, 그분을 향한 탄식이나 질문은 필요하지 않다는 전제가 깔려 있습니다. 빌닷이 하나님의 주권과 위엄을 강조하는 이유는 욥의 대답을 반박하기 위함입니다. 그는 욥에게 하나님의 주권과 위엄을 강조하며 감히 그분께 탄원하거나 대들 수 없다고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피조물로서 창조주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위엄만 강조할 때 나타날 수 있는 문제점은 무엇인가요?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사람은 없다(4-6절). 하나님의 주권과 높으심을 강조한 후 빌닷은 결론을 이끌어 냅니다. 주권과 위엄을 가지신 하나님 앞에서 의로움과 정결함을 주장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입니다. 무능함과 연약함에 휩싸여 있는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보일 태도는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고 돌이키는 것뿐입니다. 하나님 눈에는 달빛이나 별빛도 청명하지 않기에 구더기 같은 인생은 자신의 의로움에 대한 그 어떤 주장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빌닷의 주장은 욥의 입장에서는 그저 또 듣는 반복되는 "옳은 말"에 불과합니다. 욥이라고 해서 하나님의 주권과 위엄, 그분이 베푸시는 평화를 모르겠습니까? 하나님 앞에서 깨끗한 인생은 없다는 사실을 부정하겠습니까? 욥은 다만 연약한 자신의 인생에 베푸실 하나님의 평화를 인내함으로 기다리고자 했을 뿐입니다. 만일 빌닷이 옳은 말을 반복하기보다 말없이 함께 기다려 주었다면, 그것으로 충분히 옳은 일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빌닷은 하나님과 비교할 수 없는 인간 실존을 문제 삼으며 욥의 주장을 부정합니다. 이는 반복되는 자기주장에 불과합니다. 주님 뜻에 순종하면서도 때로는 탄식하고 질문하는 것이 왜 필요할까요? "높으신 주님의 주권과 위엄을 찬양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사람은 없음을 고백합니다. 그러나 벌레 같은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셔서 우리를 존귀한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신 은혜가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우대하신 하나님이 우리가 내뱉는 여린 탄식에도 귀를 기울이시고 계심을 믿습니다. 고난의 밤에도, 역경의 파도 속에서도 주님을 의지함으로 힘을 얻게 하시옵소서. 우리 자신도, 다른 지체도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깨닫고 귀하게 여기는 마음을 부어 주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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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변에서 긍휼 요청으로.. 목이 터져라 부르짖고 기도해도 하나님이 응답하지 않으시는 것 같던 경험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하박국의 마음을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박국서는 "율법이 해이하고 정의가 전혀 시행되지 못하는 상황"을 하나님이 언제까지 보고만 계시겠느냐는 항변으로 시작합니다(1:2-4). 하나님은 바벨론(갈대아) 사람을 일으켜 악한 자들을 징벌하실 것이라 하셨습니다(1:6). 유다의 악한 자들을 심판하시고 의인의 딱한 사정을 돌보아 주시길 요청했는데, 더 악한 사람들에 의해 모두가 환난을 당하게 될 것이라는 대답이 돌아온 것입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아연실색해 더욱 거칠게 질문합니다(1:12-17). 하나님은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차마 보지 못하시는 분"이라 알고 있는데, "어찌하여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키는데도 잠잠하십니까"라고 항변합니다(1:13). 이 질문에 대해 하나님은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2:4)라고 하십니다. 이어지는 말씀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바벨론을 더 크게 심판하실 것이라는 말을 기대합니다. 그러나 2장에서 예언되는 심판은 바벨론에게만 한정되지 않습니다. 유대인이라고 해서 심판에서 제외될 수 없습니다. 교만한 모든 이가 심판받을 것입니다. 바울이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상관없이 "믿음"이라는 같은 기준에 의해 구원받는다는 진리를 선포한 것도 이 구절에 근거해서입니다(로마서 1:17). 하박국이 처음 가졌던 문제의식, 곧 민족 공동체 내 교만한 자들에 대한 척결은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정의 실현은 그들에게 한정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주님이십니다(2:14; 3:3). 문제는 하나님께 아무런 대책이 없는 것이 아니라 하박국의 시야가 좁은 것이었습니다. 하박국은 자신의 눈에 보이는 불의만으로 씨름했지만, 하나님은 세상 모든 불의를 바로잡을 큰 구원을 계획하고 계십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믿음으로 사는 의인이 되는가"(의인 2:4)입니다. 이 진리를 깨달은 하박국은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3:2)라고 간구합니다. 악인들을 심판해 달라던 사람이 하나님의 진노에서 자신도 예외가 아님을 인정하는 겸손의 자리에 선 것입니다. 이는 하박국에게 환난 중에도 기뻐하는 신앙을 가져다주었습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3:17-18).(박영호 목사) ![]() |
결론..!① 우리는 몇 주에 걸쳐서 초대 교회는 어떠했는지 살펴보았습니다. 그렇게 하여 1세기 교회를 하나의 운동으로서 성경적으로 이해해보고자 시도했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시작한 교회의 핵심적인 특징을 발견했는데, 교회가 효과적으로 그 역할을 최새한 감당할 수 있기 위해 교회의 형태를 최대한 단순화했다는 점입니다. 그들은 가정교회라는 운동으로 조직을 최소화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제자를 양육하고 미지의 세상으로 지경을 넓혀가는 역동적인 사명에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그 필수 요소들을 요약하며 미치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유기체"입니다. 초개 예수 운동은 어떤 조직체의 회원으로 가입시키는 것보다는 신자들 및 그리스도와의 관계 안으로 유입되는 것으로 그 정체성을 규정했습니다. 가족, 몸, 가정, 무리, 신령한 성전 같은 많은 비유 표현들은 교회가 신령한 공장이라기보다 하나의 유기적 실체임을 나타냅니다. 그들은 교회가 하나의 가족이자 유기체라는 신학을 붙들었습니다. 둘째 "가정 단위의 교회"입니다. 초대 교회는 관습적으로 개인의 가정에서 최대 30명 정도의 적은 무리로 모였고, 결과적으로, 가정교회 운동이라고 부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가정교회는 일종의 "거실 혁명"이었습니다. 각각의 모임은 그 자체로 온전한 교회였습니다. 게다가 기독교의 초기 역사 250여 년 동안에는 교회 건물에 대한 어떠한 고고학적 증거나 문서상의 증거도 찾을 수 없습니다. 비록 그들은 가정교회 형태를 필수적으로 취해야 한다는 의도는 없었으나, 서로를 영적인 가족으로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참여와 상호작용이 활발하게 일어나는 모임을 추구했기에 가정 단위의 교회 형태는 그에 따른 자연스러운 결과였습니다. 가정 단위의 교회는 단순하고, 작고 자연스러우며 친밀하고 비용이 많이 들지 않으며, 새로운 환경에 쉽게 적용할 수 있고 재생산 또한 용이한 까닭에, 새로운 지도자를 세우는 일도 비교적 수월했습니다. 셋째, "열린 모임"입니다. 만일 누군가가 1세기 가정교회를 방문한다면, 그곳이 상호작용과 참여가 그 어떤 모임보다 활발하다는 사실을 즉시로 알아차렸을 것입니다. 여기서는 모두가 자신의 영적 은사들을 제공할 기회와 책임을 동등하게 누렸습니다. 한 사람의 일방적인 독주는 인정되지 않았습니다. 그곳에서 늘상 목격할 수 있는 핵심 요소로는, "기도, 정식 만찬인 성찬, 가르침, 그룹 토의, 치유, 방언, 그리고 대언" 등입니다.(내일 계속..) ![]() |
수능 시험을 잘 보게 하소서! 자비하시고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저희를 진리의 빛으로 비추셔서 방송을 통하여 교류하면서 예배할 수 있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세상에 매여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은혜에 매여 살아갈 수 있게 하시니 얼마나 감사한지요.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 주님의 은총을 받은 자로 주님의 은혜를 놓치지 않는 삶이 되게 하여 주시고, 항상 주님을 높이고 그 영광을 드러낼 수 있는 삶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 저희들이 주님을 찾은 것은 오직 주님을 찬양하고 예배하기 위함임을 하나님 아버지께 고백하오니 받아주시옵소서. 저희의 마음을 주장하여 주셔서 주님께 온전한 예배가 드려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사랑의 주님! 이번 주에는 대학 진학을 위한 수능시험이 있습니다. 이제껏 시험에 대한 스트레스를 받아 가며 학업에 전념해 온 학생들이 최종적으로 평가를 받는 날입니다. 시험을 보는 학생들마다 좋은 점수를 얻어서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는 대학에 들어가는데 어려움이 없게 하시옵소서. 시험에 임할 때 평정심을 잃지 말게 하시고, 복잡한 문제가 나와도 당황하지 않고 착실이 풀어가게 하시옵소서. 아는 문제라고 자만하지도 않게 하시옵소서. 침착함을 가지고 조심스럽게 문제를 풀어갈 수 있게 하시옵소서. 서두름도 없기를 원합니다. 차분함과 여유를 갖게 하셔서 답안을 잘못 작성하는 일이 없게 하시옵소서. 특별히 믿음의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주일을 온전히 지키며 시험을 준비해 온 학생들입니다. 능력의 주님이 놀라운 지혜를 부어 주셔서 배우고 익혔던 모든 것들이 생각나게 하시고, 문항들을 대할 때마다 머리가 되어 주시는 주님의 사랑을 경험하게 하시옵소서. 신실한 그리스도의 학생들에게 신실하신 주님을 경험하는 수능시험이 되게 하실 것을 간곡히 기도합니다.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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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진노로부터..! 보혈의 강에 들어가 그 죄를 씻지 않으면 하나님의 진노밖에는 받을 것이 없습니다. 일본이 진주만을 폭격하듯이, 하나님의 진노가 우리를 폭격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디로부터 구출함을 받아야 할까요? 바로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구출함을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당신의 주님입니까? 예수님이 주님이 아니라면, 예수님이 당신의 하인입니까? 당신이 구원받았다고 쉽게 선언해 준 말들을 지금 다 잊으십시오. 예수님을 자신의 주님으로 대접해 본 일도 없으면서 "주여!"라고 함부로 부르지 마십시오! 주여라고 부르려면 진정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기 바랍니다! ![]() |
“예림의집”이란? 예림의집은 “예수님께서 임하셔서 거하시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세상 가운데로 보내시면서 마태복음 28장 29절,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임재를 통하여 실제로 그리스도인에게 오셔서 그리스도인의 모든 삶을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예림의집은 예수님의 사역에 동참시키시는 주님의 그 부르심에 순종하여 세워진 후원 모임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으로 주님이 주신 권능으로 담대히 나아가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영접하는 우리의 마음을 거처로 삼으십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요한복음 14장 23절,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여러분은 사도행전 2장을 기억하실 겁니다. 오순절에 예수님이 약속하신 성령님이 그들에게 임하시자 그들은 예수님께서 전에 하신 말씀의 성취를 생생하게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마음에 거하시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몸과 마음을 비롯한 전인격이 예수 그리스도의 거처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성령님이 제 마음속에 들어오셔서, 그분을 섬기고 거기서 그분과 즐거워하고 그분을 알아가는 것이 가장 큰 축복임을 고백합니다. 그분을 제 마음에 모셨던 그날 저녁을 저는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1986년 여름, 제가 고 2 때 청소년 연합 여름 수련회 저녁 집회 설교시간에 일어난 일입니다. 주님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사건은 얼마나 감격적인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주님의 임재하심은 제 중심에서 발생한 엄연한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그 후로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모신 것에 대해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영원히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그리스도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새로운 삶이 시작된 나는 “주님, 저의 모든 것은 주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뜻대로 사용하옵소서!”라고 고백했습니다. 물론 주님은 기꺼이 저의 고백을 받으셨고, 저를 주님의 영광된 사역에 동역자로 삼으셨습니다. 주님을 마음에 모신 저는 날마다 주님을 찬송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저의 삶에서의 주님과의 동거가 시작되었고, 예림의 집의 사역도 시작되었습니다. 예림의집의 "예림"은 세 가지 깊은 의미를 가집니다. 첫째, 예수님이 임재하신 마음, 모임이란 뜻이고, 둘째, 예수님의 그림자로 빛과 소금으로 살겠다는 마음가짐이며, 셋째, 예수님의 재림을 기대하고, 기다리며, 준비한다는 뜻입니다! 이 세 가지의 정신을 모토로 하여 선교사와 개척교회를 돕고 있으며, 온라인 사역과 찬양사역, 그리고 21세기 새로운 교회의 모델인 가정교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예림의집 사역을 소개합니다 첫째, 온라인 선교사역 ①다음 카페 “예림의집”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회원가입을 하시면 그 순간부터 저의 예림의집 사역이 동참하게 됩니다. 현재 회원 수 1300여 명으로 이들이 잠정 후원자가 되어 기도 후원, 물질 후원, 재능기부 등을 하게 됩니다. 카페를 매개로 하여, 서로의 비전과 기도 제목을 나누고, 힘을 합쳐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해 갑니다. 저의 사역에 동참하시길 원하시는 분은 다음 검색 창에 예림의집을 치세요! ②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은 따로 회원 가입을 할 필요 없이 언제, 어디서나 방문하여 필요한 정보와 신앙 글들을 접할 수 있습니다. 검색어를 통해 접근하여, 현재 다음 블로그 80만여 건, 네이버 블로그 40만 건의 방문자 수를 기록 중입니다. 다음 카페 예림의집과 연동되어 하루 평균 20건 이상의 정보가 업로드되어 현재 4만 편이 넘는 좋은 글들을 접하실 수 있습니다. ③페이스북 활동(김정민) 요즘 활성화되어있는 페이스북 활동을 통하여 온라인 선교의 지경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저를 친구 초대해 주시고 팔로우해 주시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현재 25개의 그룹을 만들어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친구들을 만나고, 복음을 전하며, 선교 동원가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제 이름 "김정민"을 많이 친구 추가해 주세요! ④유튜브 방송 "예림의집TV" 복음 전파와 영적 무장의 방편으로 유튜브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매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6일 방송하며, 새벽 기도회(월-금 오전 5:00), 예림의집 이야기(월-금: 오후 5:00),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토: 오후 5:00)을 실시간 방송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주일예배, 짤 영상 모음 등 영적 무장과 복음 전파에 관련된 영상들을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검색창에 "예림의집TV"를 치시고 많이 오셔서 ✔️구독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둘째, 선교사/개척교회 후원 사역 이 사역은 찬양사역을 하던 저에게 새로운 비전을 주셔서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게 하신 사역입니다. 선교사님들과 개척교회를 바르게 후원하기 위해서는 제가 먼저 선교와 교회 개척 사역에 헌신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예림의집 카페 회원들을 포함한 그동안 주께서 연결해 주신 후원자 1800여 명이 함께 감당해 가는 사역입니다. 첫 번째, 기도 후원 사역은 주께서 연결해 주신 선교사님이나 개척교회를 위해 40 명의 기도 용사를 세우는 사역입니다. 제1호 필리핀 “김성재 선교사님”과 서울 상도동 “주님의 교회”를 필두로, 현재 26명의 선교사님과 20개의 개척교회를 기도로 후원하고 있고, 그 지경을 넓혀 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물질 후원 사역으로 앞에서 말씀드린 기도 후원자들 중에 하나님께서 자원하는 마음을 주신 분들이 물질 후원을 하게 됩니다. 재정 후원은 선교사님과 개척교회 목회자 가정의 기초 생활비를 우선적으로 지원하도록 원칙을 세웠습니다. 물품 후원은 선교나 교회 개척에 필요한 다양한 물품들을 자원하여 후원하게 됩니다. 특히 도서 후원은 성경책, 신앙 도서, 아이들 학습 도서 등. 작은 도서관을 만들 수 있도록 후원합니다. 세 번째, 재능기부 사역은 주님께서 주신 모든 달란트를 활용하여 선교와 교회 개척을 지원하는 사역입니다. 예를 들어, 선교 지원팀, 여름 성경 학교 진행팀, 찬양팀, 자원봉사단 등이 있습니다. 모든 재능 기부 사역은 “자비량”을 원칙으로 합니다. 특히 전도 지원팀을 구성하여 개척교회를 지원합니다. 이 사역을 통하여 새로운 선교사들과 교회 개척자들이 새워질 것입니다. 선교지나 개척 현장에서 필요한 프로젝트 그룹을 조직하여 지원합니다. 셋째, 찬양 세미나/찬양 집회 사역 제가 약 30년간 해오던 찬양 사역의 일환으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찬양을 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특별히 부여하신 사역입니다. 아직도 찬양에 대한 무지와 편견으로 주님을 맘껏 찬양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제가 경험한 찬양에 대한 놀라운 비밀을 나누는 사역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잠시 멈추고 준비 중이며 내년부터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이 2018년 가을에 발간되었습니다. 저는 비록 짧은 시간 동안 여러분을 만나지만, 찬송은 너무나 소중하기에 글로써 여러분들의 곁에서 치침이 되어드리고자 합니다. 찬송에 대한 저의 지난 30년간의 찬양사역의 총결산의 책입니다. 본 책의 내용은 앞서 설명한 다음 카페와 블로그 예림의집과 페이스북 그리고 토요일에 방송되는 찬양 방송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통해 미리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특히 개척교회는 요청하는 수량을 무료로 제공해 드립니다. 예림의집 사역에 동참하는 방법 첫째, 유튜브 <예림의집TV>방송을 봐주시고,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이나 페이스북 <김정민>의 글을 봐 주시는 것만으로도 일차적으로 동참하는 방법입니다. "구독/좋아요/홍보"까지 해 주시면 더욱 좋겠죠. 둘째,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오셔서 회원이 되어 주시고, 여러 게시판의 글을 통해 영성 훈련을 하시고, 여러분의 삶 속에 적용하셔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십시오. 좋은 글들과 댓글을 올려주시면 더욱 좋겠지요. 셋째, 다음 카페 <사역>코너에 있는 찬양사역/선교후원사역/개척후원 사역에 적금 동참하시는 방법입니다. 제일 중요한 기도 후원과 성령님이 인도하심을 따라 재정과 재능 후원에 동참하시면 더욱 좋습니다. 넷째, 여러분이 섬기는 공동체에 저를 초청하는 방법입니다.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3개월 전에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다섯째, 제가 펴낸 책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구입하셔서 정독하시는 것입니다. 포털 검색창에 책 이름을 치시고, 온라인상으로는 구매하시면 됩니다. 정독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하십시오! 김정민 목사 010-9442-6928 yerim21@hanamil.net 다음 카페 예림의집: http://cafe.daum.net/HomeOfYERIM 다음 블로그 예림의집: http://blog.daum.net/yerim21 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https://blog.naver.com/yerimess 유튜브 예림의집TV: https://www.youtube.com/channel/UCarpDnpNgU0RQn9ksDdSPPw 후원 계좌: 농협 3560686657493(예금주: 김정민) |
예림의집 김정민 목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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