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림의집 2437번째 이야기
십자가의 사역과 상치되는 것..! 예수님은 공생애 기간 중에 군중들을 모아 당신 편에 두시는 일에 관심이 없으셨습니다. 쉽게 갈 수 있는 길과 인기와 명예를 통해 이루는 사역이 십자가의 사역과 상치되는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사울 왕이 다윗 왕과 같이 쓰임 받지 못한 이유는 궁극적으로 사울 왕의 관심이 사람들의 평판, 인정, 인기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울 왕을 통해 우리는 세상의 인정을 추구하는 삶이 영적 지도자를 어떻게 파괴하는지를 잘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안에 있는 사울 왕의 모습을 제거하시기 위해 우리에게 고난을 허락하십니다. 다윗 왕처럼, 예수님처럼 살아갑시다! |
살아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한다 해도.. 그해 초겨울, 저는 도서관에서 신앙에 관한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나이가 마흔이 넘어서도 독신으로 살면서 가난한 광부들을 돌본다."라는 간호사의 이야기였습니다. 어느 비바람이 사납게 치던 밤, "갱이 무너지고 광부들이 그 안에 갇혔다"는 소식을 들은 간호사는 사고 현장으로 급히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전봇대에 부딪쳐 땅에 나뒹굴었습니다. 안타깝게도, 그 간호사는 척추를 다쳐 하반신을 쓸 수 없게 되었습니다. 몇 년 후, 휠체어를 타고 그곳에 다시 나타난 그 간호사는 변함없는 모습으로 광부들을 치료해 주었습니다. 누군가가 그녀에게 물었습니다. “도대체 어디서 이런 힘이 나오는 겁니까?” 그녀는 담담하게 대답했습니다. “하나님이 저를 지켜보면서 미소 지어주시면, 저는 평생이라도 이렇게 살 수 있어요.” 아, 그제야 저는 깨달았습니다. 이 세상에서 아무도 나를 지켜봐 주는 사람이 없어도, 제가 이 세상에서 살아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한다 해도, 저에게 조용히 미소 지어주시는 ‘그 한 분’이 계시다는 것을! 삶의 의미는 내가 노력한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라, 위에 계신 하나님께로부터 계시된다는 것과, 그동안 수없이 물었던 응답 없는 "왜?"에 대한 대답은 오직 그분만이 가지고 계신다는 사실을! 그분은 제가 인생의 외로움과 그 외로움을 지닌 자들의 고통을 이해하는 법을 배우게 하려고 기다리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전능하시지만, 자신의 무한함을 시간과 공간의 제한 속에 스스로 가둬두셨던 것입니다. 몇십 년 후에는 흙으로 돌아갈 나약한 육신에 그분의 무한함과 전능함을 담아서, 저처럼 외로워하고 저처럼 괴로워하며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에게, 작은 아기로 오신 것입니다. "그 겸손함을 배우라"라고, 주님은 저에게 수많은 질문과 아픔을 허락하신 겁니다. 여러분도 살면서 많은 의문점이 들 때 주님께 겸손한 모습으로 나아가십시오.(김인강 교수) 우리가 성구를 달달 외우지는 못해도 다음의 세 단어는 꼭 외우면서 자주 묵상해야 하리라고 봅니다. 첫째 임마누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 둘째, 코람데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고 있다" 셋째 모멘트 모리 "우리는 모두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입니다. 이 세 단어를 자주 묵상하다 보면, 우리는 좀 더 경건하게 신앙인답게 살아갈 수 있으리라고 봅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 41:10). |
기독교의 핵심 진리 28-죄 없으신 예수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가 없으시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본이 될 뿐 아니라 우리의 구원을 위한 기초적이고 필수적인 부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흠 없는 어린양"이 아니었다면 그 누구의 구원도 이룰 수 없을뿐더러 그 자신도 구원자를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흠과 티가 없는 성결한 분이요(베드로전서 1:29), 온유하시고 거짓과 허물이 없으신 분으로서(이사야 53:9; 누가복음 23:25; 베드로전서 2:21-23) 만민의 죄를 지시고 자신을 희생 제물로 드리신 하나님의 어린양이십니다(요한복음 1:36). 예수님께 죄가 없으시다는 사실에는 두 가지 면이 있습니다. 소극적인 면은 그리스도께서 모든 죄로부터 자유로웠다는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거룩한 법을 단 한 번도 어기지 않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례를 받으시고, 세례를 받으시고,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하셨습니다. 한편 적극적인 면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율법에 복종하기 원하셔서 아버지의 듯을 행하는 데 헌신하셨다는 것입니다.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요한복음 2:17)라는 말씀과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요한복음 4:34)라는 말씀이 그것을 증언합니다. 반면, 예수 그리스도께 죄가 없으시다는 구체적으로 알려주는 성경 구절이 있습니다. 바로 히브리서 4장 15절입니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할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도한 야고보서 1장 14-15절,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지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이러한 욕망은 그 본질상 이미 죄입니다. 만일 예수님께서도 이러한 욕망을 갖고 계셨다면, 그분도 역시 우리와 같은 죄인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마태복음 4장에서 사탄의 세 가지 유혹을 거절하셨던 예수님을 볼 때 그분에게는 개인적 욕망이 없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직 우리의 구원의 목적을 위해 십자가를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셨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위한 희생 제물이 되실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죄가 없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구속의 두 가지 측면을 요구합니다. 즉 예수님이 우리의 대리인이 되셔서 우리 죄에 대한 형벌을 받으셔야 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율법을 완성하셔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의를 보장해 주셔야만 합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완전한 자로서 불완전한 우리를 위해, 죄 없는 자로서 죄인인 우리를 위해 죽으셨을 뿐 아니라 끝까지 순종하심으로 우리의 구원에 필요했던, 완전한 순조의 의의 삶을 사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구주로 믿는 것 외에는 그 어떤 구원의 길은 없습니다. 요즘 구원의 길이, 천국에 이르는 길이 다른 곳에도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이 등장했습니다. 유튜브나 카톡 등 인터넷과 유튜브를 통해서 주변에 널려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미혹되지 마십시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구원이 되십니다! |
탄식의 근거가 된 창조주 하나님의 힘 "욥이 대답하여 이르되 네가 힘 없는 자를 참 잘도 도와 주는구나 기력 없는 팔을 참 잘도 구원하여 주는구나 지혜 없는 자를 참 잘도 가르치는구나 큰 지식을 참 잘도 자랑하는구나 네가 누구를 향하여 말하느냐 누구의 정신이 네게서 나왔느냐 죽은 자의 영들이 물 밑에서 떨며 물에서 사는 것들도 그러하도다 하나님 앞에서는 스올도 벗은 몸으로 드러나며 멸망도 가림이 없음이라 그는 북쪽을 허공에 펴시며 땅을 아무것도 없는 곳에 매다시며 물을 빽빽한 구름에 싸시나 그 밑의 구름이 찢어지지 아니하느니라 그는 보름달을 가리시고 자기의 구름을 그 위에 펴시며 수면에 경계를 그으시니 빛과 어둠이 함께 끝나는 곳이니라 그가 꾸짖으신즉 하늘 기둥이 흔들리며 놀라느니라 그는 능력으로 바다를 잔잔하게 하시며 지혜로 라합을 깨뜨리시며 그의 입김으로 하늘을 맑게 하시고 손으로 날렵한 뱀을 무찌르시나니 보라 이런 것들은 그의 행사의 단편일 뿐이요 우리가 그에게서 들은 것도 속삭이는 소리일 뿐이니 그의 큰 능력의 우렛소리를 누가 능히 헤아리랴"(욥기 26장 1-14절). 함께 읽은 본문 중 11절, "하늘 기둥"은 하늘을 지탱한다고 여겨졌던 높은 산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말입니다. 12절의 "라합"은 여호수아서의 기생 라합이 아니라 고대 근동 신화에 나오는 바다 괴물의 이름입니다. 욥은 빌닷에게 힘없는 자를 잘 도와준다고 비꼬면서, 자신이 아는 하나님에 대해 열거합니다. 그분은 북쪽을 허공에 펴시고 땅을 매다시며 물에 싼 구름을 달 위에 펴십니다. 또한 능력으로 하늘과 바다를 주관하시며 지혜로 라합과 뱀을 무찌르십니다. 그러나 욥이 말한 이러한 내용들은 하나님의 큰 능력의 일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참 잘도 도와주는구나(1-4절). 빌닷을 신랄하게 비난하며 비꼬는 욥의 말투는 생소하면서도 어딘가 묘하게 친구들의 말본새와 많이 닮아 있습니다. 세 차례나 말을 섞었지만, 오히려 서로 신뢰가 깨졌고 감정이 상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깨어진 관계로 인해 괴롭다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 괴로움을 에너지 삼아 회복을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비아냥거림과 거친 말로 반목하는 것은 모두가 망하는 길입니다. 화목한 교제와 소통은 바른 신앙과 건강한 공동체를 이루는 비결입니다. 힘과 지혜가 부족한 이에게 줄 것은 비난이 아닙니다. 오히려 위로와 격려입니다. 욥은 빌닷을 향해 직접적으로 2인칭 단수형으로 말합니다. 25장에서 인간과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주권과 높으심을 강조했던 빌닷에게 욥이 묻습니다. 2-3절을 직역하면 "그렇다면 너는 힘없는 자와 기력 없는 자를 얼마나 도왔으며, 그러한 자를 얼마나 구원했는가? 그러한 자에게 지혜와 지식을 갖게 하려고 얼마나 힘썼는가? 너는 누구에게 말하고 있지는 아는가?"입니다. 욥은 그토록 인간 실존을 잘 아는 빌닷이 연약함과 비천함에 싸여 있는 자신을 돕기는커녕 더욱 괴롭게 하고 있다고 비꼬는 것입니다. 주님 일의 단편일 뿐이다(5-14). 인간 실존을 아는 자혜자라면 마땅히 약자를 비난하지 말고 위로하고 격려해야 합니다. 인간 실존의 연약함과 비참함을 기억하고 우리가 적극적으로 호의를 베풀 대상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피조물은 하나님의 힘과 능력으로부터 피할 수 없습니다. 욥은 창조주 하나님의 힘에 대해 말합니다. 5-6절, 지하 세계까지 미치는 하나님의 힘, 7-9절, 창조 세계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힘, 11-13절, 원시 시대에 수행된 하나님의 창조 활동(신화적 배경)이 그것입니다. 하나님의 힘은 그 범위가 미치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힘이 바다의 깊이, 하늘의 높이, 땅의 넓이까지 세 차원에서 묘사되고 혼돈과 투쟁에서 승리함으로 입증됩니다. 창조자와 위로자로서 하나님의 위대한 행위는 14절 그의 행사의 단편에 지나지 않습니다. 욥은 은유적 표현인 우렛소리로 하나님 행동의 위협적 측면을 묘사합니다. 그러한 행동은 욥에게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욥에게 하나님의 힘이라는 주제는 찬양의 동기가 아니라 탄식의 근거가 됩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오묘하신 행동을 욥과 같이 탄식의 근거로 이해하는 사람에게 어떤 조언이나 도움을 줄 수 있을지 깊이 묵상합시다. "전지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시며, 영원하신 하나님 아버지, 창조주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의 한 조각조차 다 헤아릴 수 없는 존재가 우리임을 인정하며 겸손하게 하시옵소서. 힘없는 사람을 비난과 책망과 가르치려 하지 않고 적절하게 도울 수 있는 지혜를 우리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남에게 가르친 훌륭한 내용이 곧 자신의 삶인 것처럼 기만하지 않고, 가르친 것을 실천하기에 힘쓰는 성도가 되게 하시옵소서. 우리가 살면서 경험하는 하나님의 놀라운 성품과 현상들을 찬양하게 하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진리의 눈이 어둡다..! 이 시대에 수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복음을 듣게 됨에도 불구하고 그것에 무지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현대 선교사들은 세계 곳곳에 라디오, 텔레비전, 인터넷, 도서와 말로서 구원의 메시지를 전파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슬프게도 이런 상황이 새로운 일은 아닙니다. 바울이 고린도후서 4장 4절에서 고린도 교회에 편지를 보낼 때, 똑같은 문제를 인정하고 그것이 생긴 이유를 제시했는데 그것은 사탄이 불신자의 마음을 혼미케 하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집요하게 우리를 미혹합니다. 우리는 이런 문제에 대한 증거를 뒷받침하는 뉴스를 듣거나 신문을 펴 들기만 하면 됩니다. 얼마나 많은 범죄자들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행했다고 주장하는지 모릅니다. "내 마음속에 들려온 음성은 이 범죄를 저지르라고 말했다."라고 그들을 변호하고 있습니다. 슬픈 사실은 이 사람들이 들은 것들이 살아계신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의 신들" 곧 악한 영으로부터 온 것이라는 것입니다. 바울이 말한 것처럼 이 불쌍한 영혼들은 하나님의 진리에 어두워져 있습니다. 깨어있는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우리는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오늘 기도할 때, 우리는 진리로 그분에게 이끌어온 것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합시다. 하나님께 충분히 감사를 올려드린 후에, 우리의 가족과 공동체 중에 아직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중보기도를 하십시오. 하나님께 그들의 눈에서 영적인 어둠의 "비늘"을 벗겨 달라고 이 사람들을 위해 기도합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합시다. "사랑의 주님, 나의 눈에서 비늘을 벗겨주심을 매우 감사하나이다. 내 주위에 완악한 심령을 가진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오니, 그들이 주님을 영접할 수 있도록 마음을 열어주시옵소서!" |
결론..!② 이 모든 것은 성령님의 이끄심을 따라 단순하고 상호작용이 활발하게 일어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넷째, "두 종류의 지도자"입니다. 초대 교회에는 순회 지도자와 지역 지도자가 있었습니다. 순회 지도자들이 감당하는 사명은 일시적이고 보편적인 특성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미개척 지역에 교회를 세우고 지도할 뿐 아니라 그곳을 맡아 이끌어갈 지역 지도자를 양육하고 훈련시켰습니다. 그들은 대개의 경우 사역을 위해 재정적인 도움을 받았습니다. 반면 지역 지도자들이 감당하는 사명은 장기적이고 해당 지역에 국한되는 특성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동등한 위치의 여러 사람으로 팀을 이루었고, 개별적인 가정교회들의 활동을 감독하고 지도했으며 해당 도시 지역으로 연결된 네트워크를 관할했습니다. 그들은 자원하는 자로 봉사했으며 사역을 위해 별도의 재정적인 도움을 받지 않았습니다. 다섯째, "함께 연결됨"입니다. 가정교회들은 홀로 떨어져 살아가지 않고 지역의 다른 신자 모임과 함께 늘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이 서로 연결되는 방식은 주로 다음 세 가지였습니다. 이 도시에서 다음 도시로 순회하는 사도들이 전해주는 격려와 가르침을 통해, 한 지역 내에서 소로 관계를 맺은 여러 가정 교회들의 모임을 통해, 그리고 도시 단위에서 이따금씩 열리는 가정교회들과 장로들과 사도들의 회합을 통해서입니다. 여섯째, "성장"입니다. 신약시대 신자들은 지중해 전 지역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지를 그들의 말과 행실로 증거 하기 위해 적극 뛰어들었습니다. 그들은 평소는 물론 심지어 박해를 받을 때에도 담대함과 창의성을 발휘했습니다. 그들은 공공장소에서의 선포, 사적 대화, 여러 편의 편지들, 성경의 능력 체험, 그리고 새로운 가정교회의 확산 과정에 언제나 적극적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사도들의 청사진"입니다. 최초의 사도들과 이후의 사역자들은 초기 교회의 역할과 조직이 어떻게 운영되어야 하는지를 확립했습니다. 이런 방식들은 제멋대로 만든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모범과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기초하여 구성된 것입니다. 따라서 사도들은 믿음의 공동체들이 자신들의 청사진에 따라 관례대로 수행하는 것을 기대했습니다. 자! 이렇게 가능한 한 초대 교회의 모든 면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초대 교회의 주요한 요소들을 오늘날 가정교회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가 숙제인 것입니다. 지금부터 최선을 다하여 열심히 연구해야 할 것입니다! |
영적으로 승리하게 하소서! 아름다운 계절과 풍성한 수확의 절기를 주신 하나님 아버지! 자연의 섭리를 보며 이 땅을 주관하시는 주님의 섭리하심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죄 짐을 지고 가는 저희 인생들을 긍휼이 여기셔서 구원의 자녀가 되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날이 갈수록 성숙된 믿음을 보여줄 수 있는 저희들이 되게 하시고, 아름다운 영적인 열매를 알차게 맺을 수 있는 저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갈수록 시대가 악하고 어두워져 감을 깨닫습니다. 이런 때에 영적으로 승리하는 삶이 되려면 강한 영성을 소유하는 방법밖에는 없는 줄 압니다. 하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주님의 전을 멀리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피곤을 핑계 삼아 영적인 모임을 피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서서히 영적으로 죽어가고 있음에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영적인 자리를 육신의 안일로 대치하려고 하는 저희들을 보며 사탄이 얼마나 기뻐하겠습니까? 이제는 어렵고 힘들더라도 주님이 기뻐하시는 자리에 저희들이 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이제는 저희들이 잡다한 핑계로 주님의 전을 멀리하기보다 모이기에 힘쓸 수 있게 하시옵소서. 더 이상 코로나19 핑계를 대지 않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교회 공동체를 멀리할수록 형식적인 신앙인으로 기울어질 수 있음을 깨달아, 어떤 환경에 놓여 있든지 주님의 전을 가까이할 수 있는 저희들이 되게 하시옵소서. 그리하여 깊은 곳에서부터 흘러나오는 주님의 말씀을 통하여 새 힘을 얻을 수 있게 하시고, 부르짖는 기도를 통하여 새 능력을 공급받을 수 있게 하시옵소서. 주님! 질병으로 고통당하는 성도가 있습니까? 이 시간 말씀과 기도와 찬양을 통하여 치료하시는 주님의 손길을 느끼게 하시옵소서. 이 인터넷 방송도 예배인 줄 믿습니다. 이 예배를 통하여 주님을 만나는 기쁨을 얻게 하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우리가 피할 수 있는 방공호 무엇이 우리를 구원해 줍니까? 누가 우리를 구원해 줍니까? 우리가 피할 수 있는 방공호가 어디입니까? 우리는 예수님 안으로 피해야 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십니다. 예수 생명의 능력은,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는 데 있습니다. 예수 생명의 능력은 상처받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언제 상처받았다고 합니까? 예수님은 자존심 상했다고 하신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예수 생명의 능력은 다른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는 데 있습니다. 주변 사람들과 내가 몸담고 있는 공동체를 어떻게 섬길지를 고민하는 것입니다! |
“예림의집”이란? 예림의집은 “예수님께서 임하셔서 거하시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세상 가운데로 보내시면서 마태복음 28장 29절,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임재를 통하여 실제로 그리스도인에게 오셔서 그리스도인의 모든 삶을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예림의집은 예수님의 사역에 동참시키시는 주님의 그 부르심에 순종하여 세워진 후원 모임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으로 주님이 주신 권능으로 담대히 나아가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영접하는 우리의 마음을 거처로 삼으십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요한복음 14장 23절,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여러분은 사도행전 2장을 기억하실 겁니다. 오순절에 예수님이 약속하신 성령님이 그들에게 임하시자 그들은 예수님께서 전에 하신 말씀의 성취를 생생하게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마음에 거하시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몸과 마음을 비롯한 전인격이 예수 그리스도의 거처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성령님이 제 마음속에 들어오셔서, 그분을 섬기고 거기서 그분과 즐거워하고 그분을 알아가는 것이 가장 큰 축복임을 고백합니다. 그분을 제 마음에 모셨던 그날 저녁을 저는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1986년 여름, 제가 고 2 때 청소년 연합 여름 수련회 저녁 집회 설교시간에 일어난 일입니다. 주님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사건은 얼마나 감격적인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주님의 임재하심은 제 중심에서 발생한 엄연한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그 후로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모신 것에 대해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영원히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그리스도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새로운 삶이 시작된 나는 “주님, 저의 모든 것은 주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뜻대로 사용하옵소서!”라고 고백했습니다. 물론 주님은 기꺼이 저의 고백을 받으셨고, 저를 주님의 영광된 사역에 동역자로 삼으셨습니다. 주님을 마음에 모신 저는 날마다 주님을 찬송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저의 삶에서의 주님과의 동거가 시작되었고, 예림의 집의 사역도 시작되었습니다. 예림의집의 "예림"은 세 가지 깊은 의미를 가집니다. 첫째, 예수님이 임재하신 마음, 모임이란 뜻이고, 둘째, 예수님의 그림자로 빛과 소금으로 살겠다는 마음가짐이며, 셋째, 예수님의 재림을 기대하고, 기다리며, 준비한다는 뜻입니다! 이 세 가지의 정신을 모토로 하여 선교사와 개척교회를 돕고 있으며, 온라인 사역과 찬양사역, 그리고 21세기 새로운 교회의 모델인 가정교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예림의집 사역을 소개합니다 첫째, 온라인 선교사역 ①다음 카페 “예림의집”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회원가입을 하시면 그 순간부터 저의 예림의집 사역이 동참하게 됩니다. 현재 회원 수 1300여 명으로 이들이 잠정 후원자가 되어 기도 후원, 물질 후원, 재능기부 등을 하게 됩니다. 카페를 매개로 하여, 서로의 비전과 기도 제목을 나누고, 힘을 합쳐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해 갑니다. 저의 사역에 동참하시길 원하시는 분은 다음 검색 창에 예림의집을 치세요! ②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은 따로 회원 가입을 할 필요 없이 언제, 어디서나 방문하여 필요한 정보와 신앙 글들을 접할 수 있습니다. 검색어를 통해 접근하여, 현재 다음 블로그 80만여 건, 네이버 블로그 40만 건의 방문자 수를 기록 중입니다. 다음 카페 예림의집과 연동되어 하루 평균 20건 이상의 정보가 업로드되어 현재 4만 편이 넘는 좋은 글들을 접하실 수 있습니다. ③페이스북 활동(김정민) 요즘 활성화되어있는 페이스북 활동을 통하여 온라인 선교의 지경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저를 친구 초대해 주시고 팔로우해 주시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현재 25개의 그룹을 만들어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친구들을 만나고, 복음을 전하며, 선교 동원가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제 이름 "김정민"을 많이 친구 추가해 주세요! ④유튜브 방송 "예림의집TV" 복음 전파와 영적 무장의 방편으로 유튜브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매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6일 방송하며, 새벽 기도회(월-금 오전 5:00), 예림의집 이야기(월-금: 오후 5:00),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토: 오후 5:00)을 실시간 방송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주일예배, 짤 영상 모음 등 영적 무장과 복음 전파에 관련된 영상들을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검색창에 "예림의집TV"를 치시고 많이 오셔서 ✔️구독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둘째, 선교사/개척교회 후원 사역 이 사역은 찬양사역을 하던 저에게 새로운 비전을 주셔서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게 하신 사역입니다. 선교사님들과 개척교회를 바르게 후원하기 위해서는 제가 먼저 선교와 교회 개척 사역에 헌신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예림의집 카페 회원들을 포함한 그동안 주께서 연결해 주신 후원자 1800여 명이 함께 감당해 가는 사역입니다. 첫 번째, 기도 후원 사역은 주께서 연결해 주신 선교사님이나 개척교회를 위해 40 명의 기도 용사를 세우는 사역입니다. 제1호 필리핀 “김성재 선교사님”과 서울 상도동 “주님의 교회”를 필두로, 현재 26명의 선교사님과 20개의 개척교회를 기도로 후원하고 있고, 그 지경을 넓혀 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물질 후원 사역으로 앞에서 말씀드린 기도 후원자들 중에 하나님께서 자원하는 마음을 주신 분들이 물질 후원을 하게 됩니다. 재정 후원은 선교사님과 개척교회 목회자 가정의 기초 생활비를 우선적으로 지원하도록 원칙을 세웠습니다. 물품 후원은 선교나 교회 개척에 필요한 다양한 물품들을 자원하여 후원하게 됩니다. 특히 도서 후원은 성경책, 신앙 도서, 아이들 학습 도서 등. 작은 도서관을 만들 수 있도록 후원합니다. 세 번째, 재능기부 사역은 주님께서 주신 모든 달란트를 활용하여 선교와 교회 개척을 지원하는 사역입니다. 예를 들어, 선교 지원팀, 여름 성경 학교 진행팀, 찬양팀, 자원봉사단 등이 있습니다. 모든 재능 기부 사역은 “자비량”을 원칙으로 합니다. 특히 전도 지원팀을 구성하여 개척교회를 지원합니다. 이 사역을 통하여 새로운 선교사들과 교회 개척자들이 새워질 것입니다. 선교지나 개척 현장에서 필요한 프로젝트 그룹을 조직하여 지원합니다. 셋째, 찬양 세미나/찬양 집회 사역 제가 약 30년간 해오던 찬양 사역의 일환으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찬양을 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특별히 부여하신 사역입니다. 아직도 찬양에 대한 무지와 편견으로 주님을 맘껏 찬양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제가 경험한 찬양에 대한 놀라운 비밀을 나누는 사역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잠시 멈추고 준비 중이며 내년부터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이 2018년 가을에 발간되었습니다. 저는 비록 짧은 시간 동안 여러분을 만나지만, 찬송은 너무나 소중하기에 글로써 여러분들의 곁에서 치침이 되어드리고자 합니다. 찬송에 대한 저의 지난 30년간의 찬양사역의 총결산의 책입니다. 본 책의 내용은 앞서 설명한 다음 카페와 블로그 예림의집과 페이스북 그리고 토요일에 방송되는 찬양 방송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통해 미리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특히 개척교회는 요청하는 수량을 무료로 제공해 드립니다. 예림의집 사역에 동참하는 방법 첫째, 유튜브 <예림의집TV>방송을 봐주시고,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이나 페이스북 <김정민>의 글을 봐 주시는 것만으로도 일차적으로 동참하는 방법입니다. "구독/좋아요/홍보"까지 해 주시면 더욱 좋겠죠. 둘째,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오셔서 회원이 되어 주시고, 여러 게시판의 글을 통해 영성 훈련을 하시고, 여러분의 삶 속에 적용하셔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십시오. 좋은 글들과 댓글을 올려주시면 더욱 좋겠지요. 셋째, 다음 카페 <사역>코너에 있는 찬양사역/선교후원사역/개척후원 사역에 적금 동참하시는 방법입니다. 제일 중요한 기도 후원과 성령님이 인도하심을 따라 재정과 재능 후원에 동참하시면 더욱 좋습니다. 넷째, 여러분이 섬기는 공동체에 저를 초청하는 방법입니다.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3개월 전에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다섯째, 제가 펴낸 책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구입하셔서 정독하시는 것입니다. 포털 검색창에 책 이름을 치시고, 온라인상으로는 구매하시면 됩니다. 정독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하십시오! 김정민 목사 010-9442-6928 yerim21@hanamil.net 다음 카페 예림의집: http://cafe.daum.net/HomeOfYERIM 다음 블로그 예림의집: http://blog.daum.net/yerim21 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https://blog.naver.com/yerimess 유튜브 예림의집TV: https://www.youtube.com/channel/UCarpDnpNgU0RQn9ksDdSPPw 후원 계좌: 농협 3560686657493(예금주: 김정민) |
예림의집 김정민 목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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