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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의 핵심 진리 20-섭리

예림의집 2021. 11. 4. 10:49

기독교의 핵심 진리 20-섭리

 

저는 한 세기 이전의 신앙서적을 읽으면서 "하나님의 섭리"라는 말이 수없이 등장하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이전의 그리스도인들은 우리보다 더 민감하게 하나님의 섭리대로 살아가려 했던 것 같습니다. 우리 세대에는 자연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자연의 독립적인 힘으로 다스려진다는 자연주의의 영향이 큽니다. 섭리라는 말의 어원적 의미는 "앞서서 보다", 혹은 "공급하다"입니다. 이처럼 이 단어는 섭리 교리의 깊은 의미를 전달하지는 못합니다. 이 교리는 하나님이 단순히 인간사를 지켜보는 이. 즉, 방관자가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예지에 대한 단수한 언급을 뛰어넘는 그 무엇이 담겨 있습니다. 17세기 <웨스터민스터 신앙 고백>에서는 섭리를 다음과 같이 정의합니다. "만물의 위대한 창조주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을 붙드시고 그 행동과 사건들을 가장 큰 것에서부터 지극히 작은 것에 이르기까지 지도하시고 처리하시며 그의 가장 지혜롭고 거룩하신 섭리와 무오 하신 예지와 그 마음의 자유롭고 변함없으신 뜻을 따라 다스리시니 이는 하나님의 지혜와 권능과 공의와 선하심과 긍휼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함이다."입니다. 조금은 어렵지만 풀어 설명해 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보존하십니다. 그분은 우주를 조성하셨을 뿐 아니라 유지하십니다. 우주는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면 존재할 수도 없고 활동할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능력으로 만물을 붙들고 계십니다.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살고 움직이고 존재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이 우주를 통치하신다는 것이 섭리 교리의 핵심입니다. 하나님은 피조물을 절대 주권과 권위로 다스리십니다. 하나님은 가장 큰 것에서 가장 미미한 것에까지 일어나는 모든 일을 다스리십니다. 그 무엇도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의 통치 범위를 벗어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비가 내리게 하시고 해가 비치게 하십니다. 나라를 일으키시고 멸하십니다. 우리의 머리카락 수를 세시며 우리 평생의 날을 세십니다. 하나님의 섭리와 운명, 숙명, 운수에는 각각의 차이가 있습니다. 그 차이는 하나님의 인격적인 성품에서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운명은 앞을 못 보지만 하나님은 모든 것을 보십니다. 숙명에는 인격이 없지만 하나님은 인격적인 아버지십니다. 운수는 말하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말씀하실 수 있습니다. 인류 역사상 보지 못하는, 인격이 아닌 힘이 영향력을 미치는 예는 그 어디에도 절대로 없습니다. 

모든 것이 보이지 않는 섭리에 의해 움직입니다.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우주에 우연한 사건이란 없습니다. 우연이란 우리가 수학에서 확률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하는 말일 뿐입니다. 섭리의 또 다른 면은 협력입니다. 협력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과 사람이 하는 일이 경계선을 같이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의지가 있는 피조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의 자유를 파괴하지 않으시면서 인간의 의지적 행동을 통하여 자신의 의지를 실행하십니다. 우리가 성경에서 볼 수 있는 가장 분명한 예는 창세기의 요셉과 그 형제들 간의 경우입니다.

요셉의 형제들은 그를 속이고 죄를 범했지만 하나님의 섭리는 그들의 죄를 통해서까지 역사하셨습니다. 요셉은 형제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하게 하시려 하셨나니"(창세기 50:20). 하나님의 구속의 섭리는 사악한 행동을 통해서도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인간이 범한 가장 극악한 범죄는 유다가 그리스도를 배반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죽음은 역사의 우연한 사고가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확고한 의도였습니다. 이것이 섭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