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림의집 메일 모음

예림의집 2428번째 이야기

예림의집 2021. 11. 3. 13:10

예림의집 2428번째 이야기

사색의 바다

영적 성장의 큰 장애..!


주변 사람들의 사랑과 관심은 우리가 온전한 인성을 이루는데 꼭 필요한 요소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주변 사람들의 인정에 집착하게 될 때 우리의 영적 성장에 큰 장애가 오게 됩니다. 이렇게 기도합시다. "하나님, 저는 제 안에 깊이 뿌리박혀 있는 고질적인 문제, 인정받고 싶은 욕구를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저는 이것을 내려놓고 싶습니다. 이제 이 싸움을 시작할 용기를 주세요!" 하나님은 일부러 우리의 약점을 드러내기를 원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약점을 가리려고만 할 때, 오히려 우리가 명예욕이라는 올무에 걸릴 수 있습니다!

 

예림가족 이야기

자기를 나타내고자 하는 마음

더운 여름날에는 셔츠 바람으로 다니고,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넥타이는 생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그러나 배짱이 그다지 두둑한 편이 아니라서, 나 하고 싶은 대로 못하고 관습이라는 것에 얽매여 살고 있습니다. 누가 뭐라고 말하는 것도 아닌데, 다른 사람들과 옷차림이 다르면 공연히 마음이 불안합니다. 남의 이목에 신경이 쓰이기 때문입니다. 나와는 정반대로, 아주 파격적인 옷차림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모두 뒤돌아볼 정도로, 아주 희한한 모습으로 유유히 대로를 활보하며 다니는 사람들 말입니다.
어떨 때는 예기치 못하는 복장으로 나타나는 사람을 간혹 볼 수 있습니다. 나와 잘 아는 친구 중에도 그런 사람이 있어서 ‘왜 그렇게 하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여러 사람들의 주목을 끌기 위해서’라고, 그는 태연하게 대답했습니다. 그 친구와 나는 ‘옷차림에 대한 태도’가 크게 다름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으로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남의 이목을 의식하는 마음이 그 바탕에 깔려 있다’는 점입니다. 남의 이목을 의식한다는 것은, 나 자신을 의식하는 마음의 반영이고, 나 자신을 돋보이게 나타내고 싶은 마음과 동전의 앞뒤를 이루고 있습니다.  
‘자기를 나타내고자 하는 마음’ 또는 ‘나를 돋보이게 하고 싶은 심정’은 거의 모든 사람이 일반적으로 갖고 있는 공통된 심리가 아닐까 싶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 별로 이상하게 보이고 싶지 않은 것도 나의 영상(映像, 이미지)을 위하는 마음이요, 보통 사람들과 다르게 보이고 싶은 것도 나의 영상(映像)을 위하는 마음일 것입니다. 아니면, 다른 사람한테 좋게 보임으로써 다른 이익을 얻고자 하는 이해타산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다른 사람들에게 잘 보이고 싶어 하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지만 심하면 자신에게 병이 될 수도 있습니다.(김태길 교수)

그렇습니다. 요즘 매스컴에 자주 등장하는 용어 중에 ‘관심종자(觀心鍾子)’라는 말이 있습니다. 소위 ‘관심병’을 일컫는 말인데, 관심을 받고 싶어 하는 욕구가 지나치게 높은 ‘병적인 상태’를 말합니다. 물론, 누가 뭐라고 하든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한다는, 그야말로 내 멋에 취해서 하는 행동일 겁니다. 생각하건대, 신앙을 가진 이들은 그 무엇을 하든지 언제나 항상 "하나님께서 어떻게 보실까?"에 초점을 맞춰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하지 않겠나 싶습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모든 행복도 궁극에는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단장 칼럼

기독교의 핵심 진리 19-창조

시공간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시작이 있습니다. 저에게도 시작이 있었고, 여러분에게도 시작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집에도 시작이 있었고, 입고 있는 옷에도 시작이 있습니다. 우리 집도, 우리 옷도, 차도, 세탁기도, 우리 자신도 존재하지 않은 때가 있었습니다. 이처럼 분명하게 시작이 있는 사물과 사람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우리는 모든 것에 시작이 있다고 결론지으려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결론은 불합리의 깊은 심연으로 빠져들게 하는 치명적인 독약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분명히 시공간 속의 모든 것에 시작이 있지 않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에 시작이 있다는 것은 논리적으로나 과학적으로 불가능한 말입니다. 잠시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것을 상상해 보십시오. 완전한 무(無) 말입니다. 과학과 논리의 절대 법칙은 "아무것도 없는 데서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입니다. 무는 아무것도 만들어낼 수 없습니다. 무는 웃을 수도, 노래할 수도, 울 수도, 일한 수도, 춤출 수도, 숨 쉴 수도 없습니다. 무가 어떤 것을 창조할 수 없다는 사실도 분명합니다. 무는 그 자체가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무는 존재할 수조차 없습니다.
또한 무는 존재가 아니기에 아무런 능력도 없습니다. 따라서 무에서 나오는 어떤 것은 자기 창조의 능력을 소유하고 있어야 합니다. 자신을 만들어내거나 자신을 존재하게 하는 능력이 있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명백하게 이치에 어긋납니다. 무언가가 자신을 창조하거나 만들어내려면 그 존재 이전에 뭔가가 있어야 하고 이미 뭔가가 있다면 그것은 창조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자신을 창조하기 위해서는 같은 시간, 같은 관점에 있으면서 있지 않아야 하고 존재하면서 존재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모순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인가가 존재하려면 어딘가에 그 시작을 갖지 않는 다른 무엇이 있어야 합니다. 문제는 그것이 "무엇"이며, "누구"냐 인 것입니다. 진지한 학자들 중 다수는 그 "무엇"에 대한 답을 우주에서 얻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들은 시작을 갖지 않는 어떤 것, 그로부터 다른 모든 것이 나왔다고 보는 그 어떤 것을 우주보다 높은 데서 찾을 필요가 없다고 주장합니다. 즉 우주를 초월하는 "신"과 같은 존재를 가정할 필요 없이 우주, 혹은 그 안에 있는 것들이 스스로 역할을 잘 수행한다는 것입니다. 이에는 알아보기 힘든 오류가 숨어 있습니다.
그 오류는 "초월"이라는 용어와 관련이 있습니다. 철학과 신학에서 초월은 "신"이 다른 존재보다 높은 서역이라는 의미에서 신이 "우주를 넘어서며 그보다 높은 데 있다"라는 뜻으로 쓰입니다. 우리는 신을 최고의 존재로 부릅니다. 그렇지만 최고의 존재를 인간과 다르게 만드는 것은 무엇입니까? 여기서 존재라는 단어가 공통으로 사용된 점을 주목하십시오. 하나님을 최고의 존재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보통의 존재와 그 본질이 다르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시작을 갖지 않으시므로 초고의 존재라 불립니다. 이제 최고의 핵심 명제를 이야기합니다.
"다름 모든 존재가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았으며 하나님은 그 자신 외에 아무로부터 말미암지 않았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최고이십니다. 영원한 창조자이십니다. 다른 모든 것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작품입니다. 쉽게 말해서 하나님은 피조되지(창조되지) 않았고, 다른 모든 것들을 창조하셨으며, 또한 자체로 존재하는 능력을 가지고 계십니다. 성경의 첫 구절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입니다. 이 말씀은 모든 기독교 사상의 근원이 됩니다. 이것은 종교적인 말일뿐 아니라 합리적이고, 온 세계와 온 인류에 유일한 창조 법칙입니다!

 

새찬송가 부르기

 

오늘의 Q.T.

고통을 더할 뿐인 헛된 위로자


"욥이 대답하여 이르되 이런 말은 내가 많이 들었나니 너희는 다 재난을 주는 위로자들이로구나 헛된 말이 어찌 끝이 있으랴 네가 무엇에 자극을 받아 이같이 대답하는가 나도 너희처럼 말할 수 있나니 가령 너희 마음이 내 마음 자리에 있다 하자 나도 그럴 듯한 말로 너희를 치며 너희를 향하여 머리를 흔들 수 있느니라 그래도 입으로 너희를 강하게 하며 입술의 위로로 너희의 근심을 풀었으리라 내가 말하여도 내 근심이 풀리지 아니하고 잠잠하여도 내 아픔이 줄어들지 않으리라 이제 주께서 나를 피로하게 하시고 나의 온 집안을 패망하게 하셨나이다 주께서 나를 시들게 하셨으니 이는 나를 향하여 증거를 삼으심이라 나의 파리한 모습이 일어나서 대면하여 내 앞에서 증언하리이다 그는 진노하사 나를 찢고 적대시 하시며 나를 향하여 이를 갈고 원수가 되어 날카로운 눈초리로 나를 보시고 무리들은 나를 향하여 입을 크게 벌리며 나를 모욕하여 뺨을 치며 함께 모여 나를 대적하는구나 하나님이 나를 악인에게 넘기시며 행악자의 손에 던지셨구나 내가 평안하더니 그가 나를 꺾으시며 내 목을 잡아 나를 부숴뜨리시며 나를 세워 과녁을 삼으시고 그의 화살들이 사방에서 날아와 사정 없이 나를 쏨으로 그는 내 콩팥들을 꿰뚫고 그는 내 쓸개가 땅에 흘러나오게 하시는구나 그가 나를 치고 다시 치며 용사 같이 내게 달려드시니 내가 굵은 베를 꿰매어 내 피부에 덮고 내 뿔을 티끌에 더럽혔구나 내 얼굴은 울음으로 붉었고 내 눈꺼풀에는 죽음의 그늘이 있구나 그러나 내 손에는 포학이 없고 나의 기도는 정결하니라"(욥기 16장 1-17절).


본문에서 욥은 세 친구들의 충고와 조언을 곡해하여 그들과 자신을 비교하며 친구들을 깎아내립니다. 왜냐하면 지금 고통으로 괴로워하고 있는 욥에게 세 친구들은 그가 정작 필요한 것을 주지 않고, 이론적으로 그의 죄를 지적할 뿐이기 때문입니다. 욥은 친구들이 재난을 주는 위로자들이라고 힐랄 합니다. 자신이라면 친구를 입으로 강하게 하고, 입술의 위로로 근심을 풀어 주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욥은 하나님이 자신을 악인의 손에 넘겨 모욕 받게 하셨다고 하소연합니다. 그러면서 자기 손에는 포학이 없고 자신의 기도는 정결하다고 말합니다.


재난을 주는 위로자들(1-6절).
공감과 배려가 결여된 말은 상처만 줄 뿐입니다. 욥은 친구들로부터 위로는커녕 오히려 수모와 상처를 받습니다. 이에 욥은 친구들을 2절, "재난을 주는 위로자들"이라고 힐랄 하며 평가합니다. 이는 상반된 의미의 말로 대조시켜 효과를 극대화하는 "모순 어법"입니다. 욥은 자신을 위로하려고 방문한 친구들이 오히려 재난을 가중시키는 모순을 폭로합니다. 그러나 친구들 입장에서는 그것이 그들의 최선일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욥의 고난을 도저히 이해할 수도 설명할 수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욥은 그의 세 친구들의 말을 3절, "헛된 말" 즉 바람의 말들로 묘사하면서 이전에 그들이 "바람" 비유로 자신의 말을 비난했던 것을 그대로 되돌려 줍니다. 8장 2절 "네가 어느 때까지 이런 말을 하겠으며 어느 때까지 네 입의 말이 거센 바람과 같겠는가"라며 수아 사람 빌닷이 비난했고, 15장 2절에서는 "지혜로운 자가 어찌 헛된 지식으로 대답하겠느냐 어찌 동풍을 그의 복부에 채우겠느냐"라며 데만 사람 엘리바스가 비난했었습니다. 하지만 욥이 아무리 온갖 말을 쏟아 내도 그의 고통은 그대로입니다. 욥이 기대고 소망할 대상은 하나님 한 분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원수로 여기신다(7-17절).
욥은 현실을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이해합니다. 그는 자신을 기진맥진하게 하고 지신의 온 집안을 황폐하게 만든 주체가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합니다. 욥을 원수처럼 대하시는 하나님으로 인해 그를 향한 사람들의 태도 또한 적대적으로 변한다고 합니다. 욥의 7-8절의 진술에서 하나님이 죄인을 얼마나 무섭게 대하시는지를 유추할 수 있습니다. "시들게 하다"는 "묶다"라는 뜻으로 번역할 수도 있어, 이는 하나님이 욥을 포박하여 죄수처럼 다루신다는 의미입니다. 죄의 대가를 치르게 하시는 것입니다.
욥은 무리가 자신을 경멸하고 뺨을 치며 대적하는 것은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마치 사냥감을 찾아 추적하는 맹수나 사냥꾼과도 같습니다. 그 결과 욥은 살아 있다고 말하기 어려운 비참한 지경에 이르렀다고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욥은 17절, 자신의 손에는 포학이 없고 자신의 기도는 정결하다고 주장합니다. 이는 시편 기자들이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것을 떠올리게 합니다. 고난 중에 우리가 의지해야 할 분은 누구인지 깊이 묵상하는 시간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우리의 인생 여정 가운데 유일하신 참 인도자이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판단이 앞선 말로 고통당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더 아프고 힘들게 하지은 않았는지 돌아봅니다. 인간적 위로는 내려놓고 말씀으로 어루만지시는 하나님의 위로를 전하게 하시옵소서. 하나님의 진노가 우리를 공격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의로움을 잃지 않고 주님의 긍휼을 구하게 하시옵소서. 주님의 위로를 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어려움과 괴로움을 당하는 모든 이들에게 위로자가 되게 하시고, 가장 큰 위로는 예수님을 증거하게 하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찬양의 향기

 

그리스도인의 삶

하나님을 발견하기


우리가 종종 운전을 하거나 낯선 길을 가다가 길을 헤매고 있을 때, 대부분은 도움을 요청하기보다 오히려 자기 자신이 가고자 하는 곳을 우연히 발견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방법은 보통 알고 있는 지역에서는 그래도 통합니다. 그러나 만약 낯선 도시에서 목적지를 향해 가고 있다면, 그곳에 도달하는 길을 확실히 알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도 똑같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세우신 특별한 계획이 있다고 믿고 있지만 하나님의 계획에 안전하게 이르기 위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가야 할 곳을 보여 주실 수 있는 유일하신 분에게 의논하지 않고 어떻게 하나님의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겠습니까? 주님은 우리를 인도해 주시겠다고 약속하고 계십니다. 시편 15장 11절에서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은 시련과 실수를 통해 "저쪽에서" 발견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그분의 마음을 더욱 분명히 알려고 노력할 때 말씀과 기도와 찬양을 통해서 "그분 안에서" 그분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을 발견하기 위해 노력한다면, 여러분 스스로가 주님을 찾으려는 시도를 멈추고 단순히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하나님은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를 알고 계시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정확히 알고 계십니다. 시편 16편 7-11절을 읽고 묵상하십시오. 그리고 다음과 같이 기도합시다. "주님, 우리가 당신에게 직접 가서 나의 인생의 방향을 추구할 때, 귀중한 시간을 방황하는데 낭비하지 않게 하시옵고, 오직 주님의 말씀을 통하여 나아갈 방향과 행할 일들을 알아가게 하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가정교회를 말하다

초기 교회의 지도력은 어떠했을까?④


오늘은 "순회 사역자"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초기 교회는 여러 지역을 다니며 교회를 강화시키고 자라게 하는 순회 사역자들이 있었습니다. 1세기의 순회 사역자들은 주로 사도들이었습니다. 장로와 집사들의 역할이 장기적이고 지역적이었던 데 비해 순회 사역자들의 임무는 일지적이고 포괄적이었습니다. 그들은 지역에 기초를 놓는 건축가들이었습니다. 핵심적으로 보면 미개척 지격에 새로운 교회 공동체를 설립하고 스스로 자립할 수 있게 하면서 필요할 때마다 가르침을 주었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순회 사역자들의 주된 역할이었습니다.
그들은 메시지를 전하고, 회심자들을 가정으로 모았으며, 자신들이 떠난 후 교회를 인도할 자격이 있는 지역 지도자들을 세웠습니다. 그들은 또한 교회에 활력을 주고 그들을 가르치기 우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 다시 교회로 돌아왔습니다. 바울은 다섯 번 정도는 몇 년 동안 머물렀지만, 상황이 위급했던 경우에는 몇 주 내지 몇 달 정도만 머물렀습니다. 성경에는 바울처럼 여러 지역을 순회하며 생활했던 사람들이 적어도 15명은 존재했습니다. 이동을 그렇게 많이 하지 않으면서 더 넓은 지역이나 많은 사람들을 책임진 야고보처럼 사역한 이들도 있었습니다.
야고보는 예루살렘에 머물렀던 것으로 보이고, 요한은 교회를 지역 네트워크로 돌보았으며, 베드로는 유월절 직후 예루살렘 교회를 지도하면서 새로운 지역 교회나 기족 교회에 힘을 주기 위해 잠깐씩 여러 교회를 방문했습니다. 그들은 순회 사도 및 지역 장로의 임무를 병행하여 함께 수행했습니다. 지역 장로들이 지도력을 공유했던 것과는 달리 사도들이 참여했던 순회 지도자 팀에는 다른 이들보다 다소 영향력이 큰 한두 명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예를 들면, 택함 받은 열두 사도 중에 특별히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지도력을 넘겨주셨습니다.
다른 사도들은 예수님과 그 정도로 친밀한 관계를 갖지는 못했습니다. 오순절이 지난 후 처음 며칠 동안 베드로는 주요 대변인, 권위자 그리고 예루살렘 교회의 책임자로 여겨졌습니다. 또한 바울은 사도들 중에서 낮은 자처럼 일했지만, 그는 모임에서 보다 영향력 있는 지도자 대우를 받았습니다. 바울의 이름은 그와 동료들이 교회에 보내는 모든 서신에서 맨 처음에 등장했습니다. 그는 또한 젊은 동역자들을 보내고 돌보게 하는 것과 그들의 임무 등도 지도했습니다. 이방인 세계에서 복음을 전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있었지만, 예루살렘의 사도들은 바울을
이방인의 사도 중 으뜸으로 여겼습니다. 사도들 사이에서 이처럼 한두 사람에게 지도력이 집중된 이유는 그들이 특정 지역 교회를 섬겼던 것이 아니라 보다 특별한 사명을 수행하는 팀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들 사이에서도 일종의 교회가 세워졌다고 말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그들의 주된 목적이 아니었기에, 지역 지도자와 같은 방식으로 지도력이 구성될 필요는 없었습니다. 오늘날 세계적으로 순회 사역자의 역할이 강력하게 요청됩니다. 특히 공산권과 복음이 자유롭지 못한 지역에서 더욱 그렇고, 한국 교회도 이를 미리 준비하고 훈련해야 할 것입니다!

기도의 횃불

주님의 기도를 닮아가게 하소서!


언약을 반드시 이루시는 하나님 아버지! 말씀을 통하여 맺으신 약속이 일점일획도 어긋남이 없음을 보며 그 신실하심에 머리 숙여 감사를 드립니다. 약속하신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고, 구속의 사역을 완성하심으로 말미암아 저희가 생명을 얻게 되었음을 감사합니다. 이 은혜에 감사하는 저희들이 오늘도 찬송과 기도로 주님을 경배하오니 받아주시옵소서. 의로우신 주님! 날마다 자신을 죽이고 주님의 뜻을 따르는 삶을 살고자 하여도 죄 앞에서 자주 넘어지는 저희들입니다. 하루하루 은혜의 열매를 맺으며 살아가야 함이 당연합니다.
그런데, 열매로 맺혀지는 것은 오히려 죄악의 열매들임을 고백합니다. 엎드려 회개하오니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기도의 본을 보여주신 주님! 주님은 저희들에게 항상 기도하며 깨어있어 기도하라고 당부하셨은데, 저희들의 기도생활을 점점 더 식어져가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이 시간을 통하여 저희의 기도생활을 반성해 보며 주님의 깊이 있는 기도를 닮아가기를 다시 한번 다짐할 수 있게 하시옵소서. 매일 기도하셨던 주님을 본받아 하루도 기도하지 않고 살 수 없는 저희들이 되게 하시고, 항상 기도에 대한 갈급함이 저희 심령에 사무치게 하여 주시옵소서.
지금 이 시대야말로 깨어 기도할 수밖에 없는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임을 깨닫습니다. 경제와 안보, 사회불안의 총체적인 위기감이 이 나라를 뒤덮고 있는 이때에, 예루살렘을 보시며 눈물을 흘리셨던 주님처럼 이 민족을 끌어안고 눈물의 기도를 드릴 수 있는 저희 모두가 되게 하시옵소서. 깊이 있는 기도가 항상 주님께 드려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오늘도 말씀과 기도와 찬양으로 무장하여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게 하시고, 성령님의 충만하심이 이 방송을 함께하는 모든 이들에게 있게 하여 주시고, 우리를 위하여 쉬지 않고 중보 하시는 주님을 바라봅니다!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축복의 노래

복음 쪽지~㉾

내가 했다고 말하면..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몸 버려 피 흘려주셨는데, 우리는 예수님이 고쳐주신 열 명의 문둥병자 중 예수님께 감사하지 않은 아홉과 무엇이 다른가요? 조심하십시오! "우리가 했습니다, 내가 했다"라고 말하면 그 시간부터 죽음입니다. 성령님이 하셨고 내 속에 예수님이 하게 하셨지 우리는 한 게 없습니다. 예수님이 그런 마음을 주셔서 했지 우리 힘으로는 못합니다. 예수님을 잘 믿는 사람일수록 매일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만약, "나는 제일 소중한 사람이야"라고 말하는 사람과 평생을 살아보십시오. 당장 노예생활이 시작될 것입니다!

 

“예림의집”이란?

예림의집은 “예수님께서 임하셔서 거하시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세상 가운데로 보내시면서 마태복음 28장 29절,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임재를 통하여 실제로 그리스도인에게 오셔서 그리스도인의 모든 삶을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예림의집은 예수님의 사역에 동참시키시는 주님의 그 부르심에 순종하여 세워진 후원 모임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으로 주님이 주신 권능으로 담대히 나아가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영접하는 우리의 마음을 거처로 삼으십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요한복음 14장 23절,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여러분은 사도행전 2장을 기억하실 겁니다. 오순절에 예수님이 약속하신 성령님이 그들에게 임하시자 그들은 예수님께서 전에 하신 말씀의 성취를 생생하게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마음에 거하시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몸과 마음을 비롯한 전인격이 예수 그리스도의 거처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성령님이 제 마음속에 들어오셔서, 그분을 섬기고 거기서 그분과 즐거워하고 그분을 알아가는 것이 가장 큰 축복임을 고백합니다. 그분을 제 마음에 모셨던 그날 저녁을 저는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1986년 여름, 제가 고 2 때 청소년 연합 여름 수련회 저녁 집회 설교시간에 일어난 일입니다. 주님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사건은 얼마나 감격적인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주님의 임재하심은 제 중심에서 발생한 엄연한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그 후로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모신 것에 대해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영원히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그리스도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새로운 삶이 시작된 나는 “주님, 저의 모든 것은 주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뜻대로 사용하옵소서!”라고 고백했습니다. 물론 주님은 기꺼이 저의 고백을 받으셨고, 저를 주님의 영광된 사역에 동역자로 삼으셨습니다.
주님을 마음에 모신 저는 날마다 주님을 찬송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저의 삶에서의 주님과의 동거가 시작되었고, 예림의 집의 사역도 시작되었습니다. 예림의집의 "예림"은 세 가지 깊은 의미를 가집니다. 첫째, 예수님이 임재하신 마음, 모임이란 뜻이고, 둘째, 예수님의 그림자로 빛과 소금으로 살겠다는 마음가짐이며, 셋째, 예수님의 재림을 기대하고, 기다리며, 준비한다는 뜻입니다! 이 세 가지의 정신을 모토로 하여 선교사와 개척교회를 돕고 있으며, 온라인 사역과 찬양사역, 그리고 21세기 새로운 교회의 모델인 가정교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예림의집 사역을 소개합니다

첫째, 온라인 선교사역
①다음 카페 “예림의집”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회원가입을 하시면 그 순간부터 저의 예림의집 사역이 동참하게 됩니다. 현재 회원 수 1300여 명으로 이들이 잠정 후원자가 되어 기도 후원, 물질 후원, 재능기부 등을 하게 됩니다. 카페를 매개로 하여, 서로의 비전과 기도 제목을 나누고, 힘을 합쳐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해 갑니다. 저의 사역에 동참하시길 원하시는 분은 다음 검색 창에 예림의집을 치세요!
②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은 따로 회원 가입을 할 필요 없이 언제, 어디서나 방문하여 필요한 정보와 신앙 글들을 접할 수 있습니다. 검색어를 통해 접근하여, 현재 다음 블로그 80만여 건, 네이버 블로그 40만 건의 방문자 수를 기록 중입니다. 다음 카페 예림의집과 연동되어 하루 평균 20건 이상의 정보가 업로드되어 현재 4만 편이 넘는 좋은 글들을 접하실 수 있습니다.
③페이스북 활동(김정민)
요즘 활성화되어있는 페이스북 활동을 통하여 온라인 선교의 지경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저를 친구 초대해 주시고 팔로우해 주시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현재 25개의 그룹을 만들어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친구들을 만나고, 복음을 전하며, 선교 동원가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제 이름 "김정민"을 많이 친구 추가해 주세요!
④유튜브 방송 "예림의집TV"
복음 전파와 영적 무장의 방편으로 유튜브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매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6일 방송하며, 새벽 기도회(월-금 오전 5:00), 예림의집 이야기(월-금: 오후 5:00),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토: 오후 5:00)을 실시간 방송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주일예배, 짤 영상 모음 등 영적 무장과 복음 전파에 관련된 영상들을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검색창에 "예림의집TV"를 치시고 많이 오셔서 ✔️구독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둘째, 선교사/개척교회 후원 사역
이 사역은 찬양사역을 하던 저에게 새로운 비전을 주셔서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게 하신 사역입니다. 선교사님들과 개척교회를 바르게 후원하기 위해서는 제가 먼저 선교와 교회 개척 사역에 헌신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예림의집 카페 회원들을 포함한 그동안 주께서 연결해 주신 후원자 1800여 명이 함께 감당해 가는 사역입니다.
첫 번째, 기도 후원 사역은 주께서 연결해 주신 선교사님이나 개척교회를 위해 40 명의 기도 용사를 세우는 사역입니다. 제1호 필리핀 “김성재 선교사님”과 서울 상도동 “주님의 교회”를 필두로, 현재 26명의 선교사님과 20개의 개척교회를 기도로 후원하고 있고, 그 지경을 넓혀 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물질 후원 사역으로 앞에서 말씀드린 기도 후원자들 중에 하나님께서 자원하는 마음을 주신 분들이 물질 후원을 하게 됩니다. 재정 후원은 선교사님과 개척교회 목회자 가정의 기초 생활비를 우선적으로 지원하도록 원칙을 세웠습니다. 물품 후원은 선교나 교회 개척에 필요한 다양한 물품들을 자원하여 후원하게 됩니다. 특히 도서 후원은 성경책, 신앙 도서, 아이들 학습 도서 등. 작은 도서관을 만들 수 있도록 후원합니다.
세 번째, 재능기부 사역은 주님께서 주신 모든 달란트를 활용하여 선교와 교회 개척을 지원하는 사역입니다. 예를 들어, 선교 지원팀, 여름 성경 학교 진행팀, 찬양팀, 자원봉사단 등이 있습니다. 모든 재능 기부 사역은 “자비량”을 원칙으로 합니다. 특히 전도 지원팀을 구성하여 개척교회를 지원합니다. 이 사역을 통하여 새로운 선교사들과 교회 개척자들이 새워질 것입니다. 선교지나 개척 현장에서 필요한 프로젝트 그룹을 조직하여 지원합니다.

셋째, 찬양 세미나/찬양 집회 사역
제가 약 30년간 해오던 찬양 사역의 일환으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찬양을 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특별히 부여하신 사역입니다. 아직도 찬양에 대한 무지와 편견으로 주님을 맘껏 찬양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제가 경험한 찬양에 대한 놀라운 비밀을 나누는 사역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잠시 멈추고 준비 중이며 내년부터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이 2018년 가을에 발간되었습니다. 저는 비록 짧은 시간 동안 여러분을 만나지만, 찬송은 너무나 소중하기에 글로써 여러분들의 곁에서 치침이 되어드리고자 합니다. 찬송에 대한 저의 지난 30년간의 찬양사역의 총결산의 책입니다. 본 책의 내용은 앞서 설명한 다음 카페와 블로그 예림의집과 페이스북 그리고 토요일에 방송되는 찬양 방송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통해 미리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특히 개척교회는 요청하는 수량을 무료로 제공해 드립니다.


예림의집 사역에 동참하는 방법

첫째, 유튜브 <예림의집TV>방송을 봐주시고,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이나 페이스북 <김정민>의 글을 봐 주시는 것만으로도 일차적으로 동참하는 방법입니다. "구독/좋아요/홍보"까지 해 주시면 더욱 좋겠죠.
둘째,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오셔서 회원이 되어 주시고, 여러 게시판의 글을 통해 영성 훈련을 하시고, 여러분의 삶 속에 적용하셔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십시오. 좋은 글들과 댓글을 올려주시면 더욱 좋겠지요.
셋째, 다음 카페 <사역>코너에 있는 찬양사역/선교후원사역/개척후원 사역에 적금 동참하시는 방법입니다. 제일 중요한 기도 후원과 성령님이 인도하심을 따라 재정과 재능 후원에 동참하시면 더욱 좋습니다.
넷째, 여러분이 섬기는 공동체에 저를 초청하는 방법입니다.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3개월 전에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다섯째, 제가 펴낸 책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구입하셔서 정독하시는 것입니다. 포털 검색창에 책 이름을 치시고, 온라인상으로는 구매하시면 됩니다. 정독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하십시오!


김정민 목사
010-9442-6928
yerim21@hanamil.net
다음 카페 예림의집: http://cafe.daum.net/HomeOfYERIM
다음 블로그 예림의집: http://blog.daum.net/yerim21
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https://blog.naver.com/yerimess
유튜브 예림의집TV: https://www.youtube.com/channel/UCarpDnpNgU0RQn9ksDdSPPw
후원 계좌: 농협 3560686657493(예금주: 김정민)

예림의집 김정민 목사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