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가정교회를 말하다

초대 교회는 어떤 모습이었을까?⑧

예림의집 2021. 10. 26. 13:35

초대 교회는 어떤 모습이었을까?⑧

열 번째, 시간적 요소로 "날, 시간, 그리고 모임의 길이"입니다. 우리가 기울여야 할 또 다른 관심은 초기 교회의 시간적 특성입니다. 날을 정하거나 시간 그리고 모임의 길이를 정할 때 주로 어떤 기준을 적용했을까요? 이에 대한 몇 가지 사례가 있는데 그들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기 위해 주의 첫날 즉 일요일에 모여 서로 떡을 나누며 갖는 모임을 선호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함께한 공동체에게 주중의 어떤 한 날을 다른 날보다 신성시하는 것에 너무 집착하지 말 것을 청합니다. 상황에 따라 아침이든 저녁이든 주 중이든 자유롭게 모였던 것입니다.

교회 모임의 시간적 길이에 대하여는 분명한 사례가 없습니다. 모임을 끝나는 시간이 자유로웠거나, 바울이 가정교회를 방문하여 동이 틀 때까지 밤새도록 토록을 한 경우처럼 길었을 수도 있습니다. 비슷한 경우로 헤롯이 베드로를 체포했을 때, 예루살렘의 성도들은 각자의 가정교회에 모여 그의 석방을 위해 밤새도록 기도했습니다. 모임 시간에 대한 일반적인 규정은 특정한 필요에 달려 있었습니다. 따라서 오늘날의 가정 교회도 시간에 너무 얽매이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정해진 시간과 필요에 의해 자유롭게 모임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아홉 번째, 사회적 요소로 "가정교회의 크기에 관하여"입니다. 개인적 경험과 사회학적 연구에 의하면 모임의 크기는 회원들 사이의 관계와 그룹의 역동성, 그리고 배움의 과정에 영향을 미칩니다. 따라서 1세기 가정교회에 있어 모임의 크기에 대한 사회적 요소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전형적인 1세기 가정교회에 참여한 사람들이 몇 명 정도였는지에 대한 기록이 있는지 보도록 합시다. 불행히도 성도들의 지역 모임 크기에 대해 신약성경에서 직접적으로 언급한 것은 그리 많지 않고 또한 사도들의 직접적인 명령도 없습니다.

그러나 몇 가지 단서들은 검토해 볼 만합니다. 예수님과 열두 제자들의 작은 모임이 하나의 본보기가 될 수 있습니다. 바울이 세운 교회의 방식을 따른 가정교회는 아니었지만, 이 모임은 자연스럽게 사도들이 세운 믿음 공동체를 위한 본보기가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와 제자들은 함께 유월절을 기념하기 위해 "큰 다락방"이 있는 가정에 소그룹으로 모였습니다. 이렇게 친밀한 장소는 그들 사이의 강렬한 상호 교감을 위한 이상적인 곳이었습니다. 이곳에서 발을 씻기고 음식을 나누며, 예수님의 임박한 체포와 죽음에 앞서 성찬에 참여하고, 찬송을 불렀으며,

배반과 부인에 관한 마음 아픈 대화가 오갔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전형적인 모임의 크기에 대한 다른 단서는 유월절 직전의 장면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열두 제자와 120명의 제자들이 예루살렘의 어느 집 다락방에 모여 기도에 전념했습니다. 좀 더 깊은 고찰을 위해 베드로가 로마 장교 고넬료의 가정을 방문했을 때를 봅시다. 그곳에는 베드로의 메시지를 듣고자 큰 무리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이 모두 그날에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이 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이 큰 무리들이 새롭게 세워진 가정교회로 함께

모였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성경이 전하는 정보는 충분하진 않지만 다행히 평균 가정의 실제 크기를 알려주는 고고학적인 증거가 있습니다. 1세기의 가정교회는 최대 30명에서 35명의 사람을 충분하게 수용할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아마 30명 내외의 사람들이 모이면 큰 교회 하나가 형성되었을 것입니다. 대부분의 가정교회는 이보다 작았을 것이며 따라서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의 모임을 연상시켰을 것입니다. 이러한 규모의 가정교회는 보다 역동적이었으며 가깝고도 친밀한 가정의 분위기로 서로 영향을 주는 교회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