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림의집 2423번째 이야기
판단의 영에 지배를 받게 되면.. 판단의 영에 지배를 받게 되면 잘못을 누군가에게 전가하되 책임은 지려하지 않습니다. 주위를 비난하지만 용서와 화해를 위한 노력은 하지 않습니다. 판단의 영은 판단하는 사람의 영혼을 무디게 만들고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깨뜨립니다. 내가 지속적으로 누군가를 판단하고 있다면, 내가 선악과를 먹은 아담과 하와의 후예로, 내가 아직 옛사람을 벗어버리지 못했음을 증명하는 것이 됩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란, 스스로가 선악을 판단하게 하는 실과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기준이 아니라 스스로의 기준을 갖고 싶어 하는 욕구 때문입니다! ![]() |
있다가 없으니.. "빈 둥지 증후군"이라는 말을 들어보셨는지요? 이는 자녀들이 함께 살다가 떠난 뒤에 밀려오는 "허무함"을 말한다고 합니다. 자녀와 같이 사는 분들은 이 "빈 둥지 증후군"을 미리 준비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아이들이 있다가 없으니, 그동안의 생활이 얼마나 자식 중심이었는지 절감했습니다. 밥을 꼬박꼬박 새로 지은 것도, 냉장고의 음식을 채우느라 부지런을 핀 것도, 모두 자식에게 먹이기 위해서였습니다. 둘만 있으니, 휴일이라고 나들이할 마음도 외식하고 싶은 생각도 들지 않았습니다. 말 그대로 "빈 둥지 증후군'에 걸린 듯싶었습니다. 연년생 자식 둘을 다른 지역 대학에 보낸 친구는 ‘하도 밥을 안 하다 보니, 쌀에 벌레가 생겼다’고 했습니다. 우리 부부도 마찬가지여서 뭐든 대충 건너뛰었습니다. 집안일이 단순해졌습니다. 매일 돌아가던 세탁기도 멈추고, 어지럽히는 사람이 없으니 청소할 것도 없었습니다. 삶이 갑자기 껍데기만 남은 듯 공허했습니다. 친정어머니와 시어머니가 떠올랐습니다. 두 분 다 남편 없이 홀로 자식들을 키웠습니다. 저는 늦둥이라서 형제가 모두 출가한 뒤에도 어머니 품에 오래 있었습니다. 그런 딸이 다 컸다고 밖으로 돌 때, 어머니는 어떠했을까요? 시어머니도 남편처럼 의지한 외아들을 다른 지역으로 떠내 보내고 오래도록 혼자 지냈습니다. 함께 하던 일상을 홀로 꾸려가는 게 얼마나 쓸쓸한 일인지 새삼 알 듯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자식이 빠져나간 공간으로 점점 시어머니가 들어왔습니다. 아흔 살의 어머니는, 딸이 자라는 딱 그만큼의 속도로, 나날이 늙어갔습니다. 점차 어머니의 손과 발, 눈과 귀가 되어야 하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가까운 곳에 계시지만 따로 살고 있어서, 아침저녁으로 안부전화를 하고, 경로당이 쉬는 날이면 무료하지 않도록 건너가서 밥도 같이 먹습니다.(김유경) 그렇습니다. "있어서 불편한 것"과 "없어서 불편한 것"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말할 것도 없이 "있어서 불편한 것"을 선택하게 될 것입니다. 모든 게 다 장단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일이 자기 마음에 원하는 대로 다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 있을 땐 없을 때를 생각하고, 없을 땐 있을 때를 생각하면, 좀 더 지혜롭게 살아갈 수가 있을 것입니다.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전도서 3장 1절, 2절 말씀입니다. 항상 때를 준비하며 살아갑시다! ![]() |
기독교의 핵심 진리⑭ 하나님의 편재하심 "하나님의 편재"라고 하면 보통 하나님이 모든 장소에 계신다는 의미로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곳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물질이 공간을 차지하는 것처럼 공간을 차지하시지는 않습니다. 이 역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른 차원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놓인 장벽은 공간이나 시간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마나는 것은 "어디로" 가서 "언제" 만나는 것이 아닙니다. 즉각적인 하나님의 임재 속에 있기 위해 우리는 다른 차원으로 발걸음을 내디뎌야 합니다. 하나님의 편재하심에서 간과하기 쉬운 측면이 있습니다. 편재하심에서 "편(遍, omni)"이라는 말은 하나님이 어디에게 계신다는 의미뿐 아니라 주어진 장소에 하나님이 얼마나 "많이" 계시는가의 의미도 담겨 있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모든 장소에 계실 뿐 아니라 어느 곳에나 충만하게 임재하십니다. 하나님으로 가득 찾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이것을 하나님의 광대하심이라고도 말합니다. 한국에 있는 신자들이 하나님의 충만한 임재를 느낄 때 뉴욕에 있는 신자들도 동일한 하나님의 임재를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편재하심 즉, 광대하심은 하나님의 크기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디에나 충만히 거하실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편재하심은 우리에게 경외감을 느끼게 할 뿐 아니라 편안함도 줍니다.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께서 주목하고 계심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있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거나 미리 약속 시간을 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하심 가운데 있을 때, 하나님은 세상 저편의 일로 마음을 빼앗기시지 않습니다. 사실 이 교리는 불신자들에게 전혀 위로가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피해 숨을 곳이 없습니다. 온 우주에 하나님께서 계시지 않는 곳은 없습니다. 지옥의 악인도 하나님에게서 분리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하나님의 자비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시편에서 하나님의 편재하심을 찬양한 다윗은 우리에게 이 교리를 요약해 줍니다. "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스올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주할지라도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시편 139:7-10). 하나님의 편재하심은 그리스도인에게는 복이요, 불신자들에게는 재앙입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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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땅을 통치하시는 주님의 권능 "지혜와 권능이 하나님께 있고 계략과 명철도 그에게 속하였나니 그가 헐으신즉 다시 세울 수 없고 사람을 가두신즉 놓아주지 못하느니라 그가 물을 막으신즉 곧 마르고 물을 보내신즉 곧 땅을 뒤집나니 능력과 지혜가 그에게 있고 속은 자와 속이는 자가 다 그에게 속하였으므로 모사를 벌거벗겨 끌어 가시며 재판장을 어리석은 자가 되게 하시며 왕들이 맨 것을 풀어 그들의 허리를 동이시며 제사장들을 벌거벗겨 끌어 가시고 권력이 있는 자를 넘어뜨리시며 충성된 사람들의 말을 물리치시며 늙은 자들의 판단을 빼앗으시며 귀인들에게 멸시를 쏟으시며 강한 자의 띠를 푸시며 어두운 가운데에서 은밀한 것을 드러내시며 죽음의 그늘을 광명한 데로 나오게 하시며 민족들을 커지게도 하시고 다시 멸하기도 하시며 민족들을 널리 퍼지게도 하시고 다시 끌려가게도 하시며 만민의 우두머리들의 총명을 빼앗으시고 그들을 길 없는 거친 들에서 방황하게 하시며 빛 없이 캄캄한 데를 더듬게 하시며 취한 사람 같이 비틀거리게 하시느니라"(욥기 12장 13-25절). 함께 읽은 본문은 소발의 처참한 비난에 대한 대답입니다. 그는 온 세상을 뒤흔드는 통치자 하나님의 두려운 권능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본문 18절의 "왕들이 맨 것"은 왕들이 가진 권세를 말합니다. 모든 지혜와 권능, 계략과 명철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사와 재판장, 왕과 제사장, 권력 있는 자를 어리석게 하시고 멸시당하게 하십니다. 하나님만이 어둠 가운데서 은밀한 것을 드러내시고, 죽음의 그늘을 광명한 데로 나오게 하시며, 민족들도 커지게도 하시고 멸하기도 하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통치는 오늘날도, 영원토록 동일할 것입니다! 지혜와 권능의 하나님(13-15절). 지혜와 권능, 지략과 명철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13절, 계략과 명철이 하나님께 속했다고 욥이 말한 것은 그분의 지혜와 권능을 인정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욥의 속내는 자신을 파괴하시는 하나님께 항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권능으로 죄를 심판하기도 하시지만, 세상을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며 죄인을 구원해 의로운 나라를 건설하기도 하십니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의도에도 불구하고 욥이 고백하는 이러한 하나님의 속성은 그분이 온 세계의 통치자심을 나타냅니다. 하나님은 만물의 주인이십니다. 이러한 속성은 이사야 11장 2절에 묘사된 "메시아"의 속성과 거의 일치합니다. 메시아적 인물은 그러한 능력을 갖추고 하나님의 통치를 대신 행할 것입니다. 욥은 14-15절, 하나님이 무엇을 행하시면 그것을 되돌리거나 막을 자가 아무도 없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최고의 권능과 지혜를 가지신 분입니다. 욥이 묘사하는 하나님의 행동은 권능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그것도 안정과 유지가 아닌 불안정과 파괴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오늘날 주위에서 재앙과 파괴로 나타나는 하나님의 권능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깊이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인간사에 드러난 하나님의 권능(16-25절). 욥은 인간 사회의 다양한 계층 구조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행동을 묘사합니다. 욥의 진술은 찬양 시의 형식을 빌린 탄식과도 같습니다. 하나님은 모사들과 재판장들, 제사장들과 권력자들의 위엄을 무력하게 하십니다. 왕들을 통제하시며, 귀족들과 강한 자들의 힘을 없애십니다. 충신들과 원로의 입을 막으시고 판단력을 빼앗으십니다. 은밀한 곳에 있는 것도 빛으로 드러나게 하시며, 민족들을 크게도 하시고 멸하기도 하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해동은 그가 전능자이시며 세상의 주관자이심을 보여줍니다. 또한 하나님은 지도자들에게서 총명을 제거해 황량한 곳에서 헤매게 하시며, 술 취한 자들과 같이 비틀거리게 하십니다. 이러한 묘사는 이 땅에 하나님의 권능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음을 보여줍니다. 욥이 말하고자 하는 요지는 그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하나님의 파괴적인 힘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하나님의 모습은 고통 속에 있는 욥이 바라본 하나님의 단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날 우리가 바른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택하신 백성을 친히 인도하시는 은혜로운 분이십니다. 최근에 내가 두렵다고 느낀 하나님의 주권적 행동은 어떤 것이 있을지 묵상합시다. "무한한 권능으로 세상을 다스리시는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지혜와 권능의 주인이시요 지략과 명철이 한없이 뛰어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부조리한 현실을 마주하더라도 주권자 되신 하나님을 변함없이 신뢰하게 하시옵소서. 세상의 권세자들이 자기 한계를 철저히 깨닫고 인정하며, 완전하고도 영원한 통치자이신 주님께 순복하게 하시옵소서. 아무리 어렵고 힘들더라도, 고난과 역경이 둘러쌓더라도 하나님의 파괴적인 힘만을 바라보지 않고 은혜와 사랑을 의지하는 우리가 되게 하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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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듣고 있는가? 하나님께서 오늘날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두 가지 방식이 있는데 곧 속삭임과 외침입니다. 종종 우리가 그분의 음성에 민감하지 않음으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집중을 요구하는 방법으로 그것을 사용하게 됩니다. 여호수아와 사울의 생애에 일어난 사건들은 하나님의 속삭임과 외침 원칙이 있음을 설명합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명령을 마음에 새겼습니다. "죄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여호수아 1:7). 반면에 하나님은 사울을 다메섹 도상에서 땅에 엎드러뜨리고 잠시 눈을 멀게 함으로 그의 주의력을 고정시켰습니다. 하나님은 구약과 신약 시대의 사람들과 꿈으로 혹은 선지자들과 천사들 그리고 들리는 소리를 통하여 교통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듣게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그분의 뜻을 전달하기 위해 말씀을 주셨고 성령님으로 우리 마음에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들을 보내셔서 우리에게 축복하시고 명령하십니다. 심지어 절만 중에 있을 때에도, 하나님은 오늘의 실패가 내일의 성공이 되게 하실 수 있다고 알려주십니다(로마서 8:28).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계속 말씀하신다는 것, 그것이 그리스도인이 갖게 되는 특권입니다. 성도로서 당신은 모든 상황 속에서 하나님이 인도하시고, 위로하시고, 보호하시고, 복종을 가르치시고, 그리고 우리를 향한 불변의 사랑을 표현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인생에서 끊임없이 들리는 소음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에 방해하지 않도록 하십시오! 우리가 하나님의 부드러운 속삭임을 듣지 못할 때에, 우리의 주목을 끌게 하는 다른 효과적인 방식들도 있습니다. 그 방식은 각각의 성도의 상황에 따라 가장 적절한 방식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날마다 말씀과 기도와 찬양으로 무장하고 깨어 있어 들을 준비를 해야 합니다! ![]() |
초대 교회는 어떤 모습이었을까?⑦ 아홉째, 물질적 요소, "부를 공유함"입니다. 어떤 시대나 마찬가지로 초기 교회의 성도들도 매일의 삶 속에서 물질적 어려움과 경제적인 결단이 요구되는 도전을 헤쳐나가야 했습니다. 그리스도와 사도들은,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발적이며 기쁜 마음으로 관대하게 드리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습니다. 초기 교회 성도들은 자신의 재정을 어디에 집중했을까요? 분명한 사실은 전용 건물이나 고비용 프로그램에 자신들의 재정을 집중적으로 투입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즉 가난한 사람들과 순회 사역을 하는 사도 및 성도들에게 대부분의 재정을 사용하였습니다. 순회 사역을 하는 사도 및 성도들에게 대부분의 돈을 주었습니다. 순회 사역자나 지역 신자들에 대한 재정적 지원은 이후에 다시 논의할 것입니다. 따라서 여기서는 지역적 가난과 세계적인 가난의 문제에 대해 교회가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를 살펴볼 것입니다. 먼저 "지역적 필요"입니다. 1세기 성도들에게 있어 지역적인 가난을 해결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물질적 도움이 절실히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오순절 사건 이후 초창기 예루살렘 교회는 갑자기 3,000명이 넘는 신자들로 불어난 공동체의 필요를 채워야만 했습니다. 지중해 전역에서 이런 많은 수의 사람들이 새로운 영적 가족으로 합류하기 위해 모여들었으며 이들은 예루살렘에 머무를 생각이었습니다. 사도들에게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고 그들의 말씀 선포로 인한 결과를 감당해야만 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한 해결책은 모든 사람의 소유물을 공동체 안으로 가져와 각 사람의 물질적 필요를 채우는 것이었고, 순회 사역을 하는 사도들이나 지역 지도자들이 이 물질들을 모았을 것입니다. 이런 방법은 아주 효과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몇몇 교회에 있는 친척도 없는 과부들을 기독교 공동체가 잘 보살펴 주었습니다. 다음으로 "세계적 필요"입니다. 신자들은 자신들의 교회의 필요에만 관심을 가진 것이 아니라 세계 다른 지역의 형제자매들의 처지에도 관심을 가졌습니다. 예를 들면, 오순절 사건이 지나고 몇 년 후 예루살렘 교회는 그다지 많은 성장이 없었는데 이것은 이 시기에 세계 각지에서 발생하던 기근 때문으로 보입니다. 결과적으로, 사도 베드로, 야고보, 그리고 요한은 예루살렘 교회의 고통을 덜기 위해 이방인 교회에서 기금을 마련하는 계획을 담당하도록 사도 바울과 바나바에게 임무를 맡겼습니다. 그리고 그 일은 매우 성공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바울은 고린도와 갈라디아 사람들에게 그가 갈 때까지 각자 형편에 따라 매주 일정 금액을 따로 떼어놓게 함으로써 급하게 물질을 걷을 필요가 없도록 했습니다. 그 지역의 가정교회 장로들이 매주 모임에서 이러한 헌금을 모았고 바울과 바나바가 왔을 때, 그들에게 전달했습니다. 이러한 전통은 오늘날에도 많이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 넉넉한 교회가 가난한 교회를 돕고, 선교사님들을 후원하는 일은 매우 권장하고 싶습니다. 감사함으로 드리는 헌금은, 생명을 구원하는 일에, 하나님을 높이는 일에, 가난한 자를 돕는 일에 쓰여야 합니다! ![]() |
깨어있는 믿음이 되게 하소서!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이 시간도 방송을 통하여 주님께 예배할 수 있도록 저희의 마음을 주장하여 주심을 감사합니다. 저희로 하여금 평생에 하나님께 노래하며, 저희가 사는 동안 얹나 하나님을 찬양하는 삶이 되게 하시옵소서. 정해진 예배시간에도, 날마다의 생활 속에서도 항상 하나님을 소리 높여 찬양할 수 있는 기쁨의 가락이 영혼 깊은 곳에서 솟아나게 하시옵소서. 또한 저희의 영혼이 곤고하거나 상처가 있을 때에도, 낙심되며 불안할 때에도 회복의 은혜를 더하시는 주님을 바라보며 기쁨으로 찬양할 수 있는 주님의 사람이 되게 하시옵소서. 긍휼이 풍성하신 주님! 우리의 일상에서 죄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삶을 살았음을 고백합니다. 주님이 주신 그 소중한 삶을 은근슬쩍 죄짓는 자리로 밀어 넣는 삶을 살지나 않았는지 돌아보게 하시고, 고백하고, 회개하게 하시옵소서. 저희들의 믿음 없음을 꾸짖어 주시고 용서의 은총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저희가 깨어있는 믿음이 되기를 간절히 원하시는 주님! 만물이 무르익는 가을이 무르익어가고 있는데, 우리들의 믿음의 열매는 얼마나 맺히고 있는지 우리의 신앙 상태를 돌아봅니다. 주님께서 기대하시는 아름답고 알찬 열매를 많이 맺게 하시옵소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서 되었다"(로마서 13:11)라는 사도 바울의 권면을 기억합니다. 열심을 품고 주님을 섬길 수 있도록 저희를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항상 깨어서 기도할 수 있게 하시고,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도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께 받은 은사대로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힘을 다하여 봉사하며 섬길 수 있게 하시고,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항상 구할 수 있게 하시옵소서(야고보서 1:5). 지금 이 시간도 성령님의 충만하심을 사모하는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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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트머스 시험지로 판별해 보라! 주변 사람들에게 얼마나 성질내고 잔인한 말을 했는지 떠올려보십시오. 우리의 지난 죄를 마치 비디오처럼 떠올려보십시오. 성질부렸던 그 일을 모두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그 죄를 토설하십시오. 지금 당신의 믿음을 리트머스 시험지로 판별해 보십시오. 자신 안에 예수님이 없으면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2천 년 전에 나를 위해 오셔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자기 속에 있지 않다면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내 속에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까? 예수님이 함께하시는 삶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 |
“예림의집”이란? 예림의집은 “예수님께서 임하셔서 거하시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세상 가운데로 보내시면서 마태복음 28장 29절,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임재를 통하여 실제로 그리스도인에게 오셔서 그리스도인의 모든 삶을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예림의집은 예수님의 사역에 동참시키시는 주님의 그 부르심에 순종하여 세워진 후원 모임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으로 주님이 주신 권능으로 담대히 나아가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영접하는 우리의 마음을 거처로 삼으십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요한복음 14장 23절,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여러분은 사도행전 2장을 기억하실 겁니다. 오순절에 예수님이 약속하신 성령님이 그들에게 임하시자 그들은 예수님께서 전에 하신 말씀의 성취를 생생하게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마음에 거하시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몸과 마음을 비롯한 전인격이 예수 그리스도의 거처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성령님이 제 마음속에 들어오셔서, 그분을 섬기고 거기서 그분과 즐거워하고 그분을 알아가는 것이 가장 큰 축복임을 고백합니다. 그분을 제 마음에 모셨던 그날 저녁을 저는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1986년 여름, 제가 고 2 때 청소년 연합 여름 수련회 저녁 집회 설교시간에 일어난 일입니다. 주님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사건은 얼마나 감격적인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주님의 임재하심은 제 중심에서 발생한 엄연한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그 후로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모신 것에 대해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영원히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그리스도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새로운 삶이 시작된 나는 “주님, 저의 모든 것은 주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뜻대로 사용하옵소서!”라고 고백했습니다. 물론 주님은 기꺼이 저의 고백을 받으셨고, 저를 주님의 영광된 사역에 동역자로 삼으셨습니다. 주님을 마음에 모신 저는 날마다 주님을 찬송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저의 삶에서의 주님과의 동거가 시작되었고, 예림의 집의 사역도 시작되었습니다. 예림의집의 "예림"은 세 가지 깊은 의미를 가집니다. 첫째, 예수님이 임재하신 마음, 모임이란 뜻이고, 둘째, 예수님의 그림자로 빛과 소금으로 살겠다는 마음가짐이며, 셋째, 예수님의 재림을 기대하고, 기다리며, 준비한다는 뜻입니다! 이 세 가지의 정신을 모토로 하여 선교사와 개척교회를 돕고 있으며, 온라인 사역과 찬양사역, 그리고 21세기 새로운 교회의 모델인 가정교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예림의집 사역을 소개합니다 첫째, 온라인 선교사역 ①다음 카페 “예림의집”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회원가입을 하시면 그 순간부터 저의 예림의집 사역이 동참하게 됩니다. 현재 회원 수 1300여 명으로 이들이 잠정 후원자가 되어 기도 후원, 물질 후원, 재능기부 등을 하게 됩니다. 카페를 매개로 하여, 서로의 비전과 기도 제목을 나누고, 힘을 합쳐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해 갑니다. 저의 사역에 동참하시길 원하시는 분은 다음 검색 창에 예림의집을 치세요! ②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은 따로 회원 가입을 할 필요 없이 언제, 어디서나 방문하여 필요한 정보와 신앙 글들을 접할 수 있습니다. 검색어를 통해 접근하여, 현재 다음 블로그 80만여 건, 네이버 블로그 40만 건의 방문자 수를 기록 중입니다. 다음 카페 예림의집과 연동되어 하루 평균 20건 이상의 정보가 업로드되어 현재 4만 편이 넘는 좋은 글들을 접하실 수 있습니다. ③페이스북 활동(김정민) 요즘 활성화되어있는 페이스북 활동을 통하여 온라인 선교의 지경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저를 친구 초대해 주시고 팔로우해 주시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현재 25개의 그룹을 만들어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친구들을 만나고, 복음을 전하며, 선교 동원가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제 이름 "김정민"을 많이 친구 추가해 주세요! ④유튜브 방송 "예림의집TV" 복음 전파와 영적 무장의 방편으로 유튜브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매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6일 방송하며, 새벽 기도회(월-금 오전 5:00), 예림의집 이야기(월-금: 오후 5:00),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토: 오후 5:00)을 실시간 방송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주일예배, 짤 영상 모음 등 영적 무장과 복음 전파에 관련된 영상들을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검색창에 "예림의집TV"를 치시고 많이 오셔서 ✔️구독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둘째, 선교사/개척교회 후원 사역 이 사역은 찬양사역을 하던 저에게 새로운 비전을 주셔서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게 하신 사역입니다. 선교사님들과 개척교회를 바르게 후원하기 위해서는 제가 먼저 선교와 교회 개척 사역에 헌신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예림의집 카페 회원들을 포함한 그동안 주께서 연결해 주신 후원자 1800여 명이 함께 감당해 가는 사역입니다. 첫 번째, 기도 후원 사역은 주께서 연결해 주신 선교사님이나 개척교회를 위해 40 명의 기도 용사를 세우는 사역입니다. 제1호 필리핀 “김성재 선교사님”과 서울 상도동 “주님의 교회”를 필두로, 현재 26명의 선교사님과 20개의 개척교회를 기도로 후원하고 있고, 그 지경을 넓혀 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물질 후원 사역으로 앞에서 말씀드린 기도 후원자들 중에 하나님께서 자원하는 마음을 주신 분들이 물질 후원을 하게 됩니다. 재정 후원은 선교사님과 개척교회 목회자 가정의 기초 생활비를 우선적으로 지원하도록 원칙을 세웠습니다. 물품 후원은 선교나 교회 개척에 필요한 다양한 물품들을 자원하여 후원하게 됩니다. 특히 도서 후원은 성경책, 신앙 도서, 아이들 학습 도서 등. 작은 도서관을 만들 수 있도록 후원합니다. 세 번째, 재능기부 사역은 주님께서 주신 모든 달란트를 활용하여 선교와 교회 개척을 지원하는 사역입니다. 예를 들어, 선교 지원팀, 여름 성경 학교 진행팀, 찬양팀, 자원봉사단 등이 있습니다. 모든 재능 기부 사역은 “자비량”을 원칙으로 합니다. 특히 전도 지원팀을 구성하여 개척교회를 지원합니다. 이 사역을 통하여 새로운 선교사들과 교회 개척자들이 새워질 것입니다. 선교지나 개척 현장에서 필요한 프로젝트 그룹을 조직하여 지원합니다. 셋째, 찬양 세미나/찬양 집회 사역 제가 약 30년간 해오던 찬양 사역의 일환으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찬양을 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특별히 부여하신 사역입니다. 아직도 찬양에 대한 무지와 편견으로 주님을 맘껏 찬양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제가 경험한 찬양에 대한 놀라운 비밀을 나누는 사역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잠시 멈추고 준비 중이며 내년부터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이 2018년 가을에 발간되었습니다. 저는 비록 짧은 시간 동안 여러분을 만나지만, 찬송은 너무나 소중하기에 글로써 여러분들의 곁에서 치침이 되어드리고자 합니다. 찬송에 대한 저의 지난 30년간의 찬양사역의 총결산의 책입니다. 본 책의 내용은 앞서 설명한 다음 카페와 블로그 예림의집과 페이스북 그리고 토요일에 방송되는 찬양 방송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통해 미리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특히 개척교회는 요청하는 수량을 무료로 제공해 드립니다. 예림의집 사역에 동참하는 방법 첫째, 유튜브 <예림의집TV>방송을 봐주시고,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이나 페이스북 <김정민>의 글을 봐 주시는 것만으로도 일차적으로 동참하는 방법입니다. "구독/좋아요/홍보"까지 해 주시면 더욱 좋겠죠. 둘째,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오셔서 회원이 되어 주시고, 여러 게시판의 글을 통해 영성 훈련을 하시고, 여러분의 삶 속에 적용하셔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십시오. 좋은 글들과 댓글을 올려주시면 더욱 좋겠지요. 셋째, 다음 카페 <사역>코너에 있는 찬양사역/선교후원사역/개척후원 사역에 적금 동참하시는 방법입니다. 제일 중요한 기도 후원과 성령님이 인도하심을 따라 재정과 재능 후원에 동참하시면 더욱 좋습니다. 넷째, 여러분이 섬기는 공동체에 저를 초청하는 방법입니다.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3개월 전에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다섯째, 제가 펴낸 책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구입하셔서 정독하시는 것입니다. 포털 검색창에 책 이름을 치시고, 온라인상으로는 구매하시면 됩니다. 정독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하십시오! 김정민 목사 010-9442-6928 yerim21@hanamil.net 다음 카페 예림의집: http://cafe.daum.net/HomeOfYERIM 다음 블로그 예림의집: http://blog.daum.net/yerim21 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https://blog.naver.com/yerimess 유튜브 예림의집TV: https://www.youtube.com/channel/UCarpDnpNgU0RQn9ksDdSPPw 후원 계좌: 농협 3560686657493(예금주: 김정민) |
예림의집 김정민 목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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