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림의집 메일 모음

예림의집 2419번째 이야기

예림의집 2021. 10. 19. 14:08

예림의집 2419번째 이야기

사색의 바다

하나님의 관심..!


하나님과의 교제 가운데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의 어떤 부분에 대해 말씀하실 때, 우리는 방어하곤 합니다. 삶의 어두운 부분에 하나님의 빛이 비칠 때 하나님으로부터 숨으려고 합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사실은 하나님의 관심은 우리를 간섭하는 데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하고 온전케 하시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우상이 됩니다. 죄가 주는 은밀한 달콤함이나 습관을 따라 사는 편리함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그 무엇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지 맙시다. 더 앞세우지 맙시다!

 

예림가족 이야기

무엇을 골랐습니까? 

정신과 의사로서 상담실에서 만난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조건을 원망하고 다른 이들을 부러워했습니다. 저 또한 그랬습니다. 어려서부터 소심하고 예민했던 저는, 또래 관계나 학교생활이 유독 버거웠습니다. 그런 저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스스로를 부정하고, 늘 내가 아닌 ‘나’로 보이고자 까치발을 딛고 살았습니다. 그러한 자기 분열 때문에 암흑 같은 청춘을 보내야 했습니다.  제가 달라진 것은 첫아이가 태어난 뒤였습니다. 나를 닮은 생명체가 이 땅에 존재하게 된 것입니다. 신기했습니다. 
손가락 하나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아이가 참 사랑스러웠습니다. 어떤 조건 때문이 아니라, 그저 존재 자체로서 사랑스러웠습니다. 그 사랑은 저에게로 돌아왔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할 수 있었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스스로에게 겨눈 총부리를 내리고, 비로소 저 자신을 포옹했습니다. 놀랍게도 그 순간, 인생의 가장 큰 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저 자신 안에 이미 있었지만 발휘되지 못했던 가능성과 진정한 삶의 동력을 만났습니다. 뒤늦게 꿈을 꾸고 제 인생을 살게 된 것입니다. 이내 내 안에 모든 가능성이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인간을 제외한 모든 생명은 조건을 탓하지 않습니다. 그 삶의 시작과 조건이 어떠한들, 있는 힘껏 살아가고 있습니다. 바위틈이든, 절벽이든, 강가든, 그 어디에 씨앗이 뿌려지든지, 생명은 온 힘을 다하여 뿌리를 내리고 줄기를 뻗어 올립니다. 그리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씨앗을 퍼뜨립니다. 탄생은 수동이지만, 성장은 능동! 그것이 생명의 본질입니다. 결국 삶의 성장과 행복은 "얼마나 더 좋은 조건을 타고났느냐?"가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것들을 얼마나 가까이 받아들이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당신은 이 선택에서 무엇을 골랐습니까?(문요한) 

그렇습니다. 정신과 의사인 문요한 님도 어지간히 소심하고 자존감이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아이를 갖게 되어 사랑을 기울이다 보니, 그 사랑이 마중물이 되어 그 자신의 것도 사랑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자신이 갖고 있는 것들을 인정하고 사랑하게 된 것입니다. 아무튼, 자존심이 너무 강한 것도 문제지만, 기본적으로 자신의 것(팔자도)을 아끼고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오늘 복과 저주를 너희 앞에 두나니 너희가 만일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들으면 복이 될 것이요"(신명기 11:27).

 

단장 칼럼

무엇을 골랐습니까? 

정신과 의사로서 상담실에서 만난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조건을 원망하고 다른 이들을 부러워했습니다. 저 또한 그랬습니다. 어려서부터 소심하고 예민했던 저는, 또래 관계나 학교생활이 유독 버거웠습니다. 그런 저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스스로를 부정하고, 늘 내가 아닌 ‘나’로 보이고자 까치발을 딛고 살았습니다. 그러한 자기 분열 때문에 암흑 같은 청춘을 보내야 했습니다.  제가 달라진 것은 첫아이가 태어난 뒤였습니다. 나를 닮은 생명체가 이 땅에 존재하게 된 것입니다. 신기했습니다. 
손가락 하나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아이가 참 사랑스러웠습니다. 어떤 조건 때문이 아니라, 그저 존재 자체로서 사랑스러웠습니다. 그 사랑은 저에게로 돌아왔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할 수 있었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스스로에게 겨눈 총부리를 내리고, 비로소 저 자신을 포옹했습니다. 놀랍게도 그 순간, 인생의 가장 큰 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저 자신 안에 이미 있었지만 발휘되지 못했던 가능성과 진정한 삶의 동력을 만났습니다. 뒤늦게 꿈을 꾸고 제 인생을 살게 된 것입니다. 이내 내 안에 모든 가능성이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인간을 제외한 모든 생명은 조건을 탓하지 않습니다. 그 삶의 시작과 조건이 어떠한들, 있는 힘껏 살아가고 있습니다. 바위틈이든, 절벽이든, 강가든, 그 어디에 씨앗이 뿌려지든지, 생명은 온 힘을 다하여 뿌리를 내리고 줄기를 뻗어 올립니다. 그리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씨앗을 퍼뜨립니다. 탄생은 수동이지만, 성장은 능동! 그것이 생명의 본질입니다. 결국 삶의 성장과 행복은 "얼마나 더 좋은 조건을 타고났느냐?"가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것들을 얼마나 가까이 받아들이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당신은 이 선택에서 무엇을 골랐습니까?(문요한) 

그렇습니다. 정신과 의사인 문요한 님도 어지간히 소심하고 자존감이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아이를 갖게 되어 사랑을 기울이다 보니, 그 사랑이 마중물이 되어 그 자신의 것도 사랑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자신이 갖고 있는 것들을 인정하고 사랑하게 된 것입니다. 아무튼, 자존심이 너무 강한 것도 문제지만, 기본적으로 자신의 것(팔자도)을 아끼고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오늘 복과 저주를 너희 앞에 두나니 너희가 만일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들으면 복이 될 것이요"(신명기 11:27).

 

새찬송가 부르기

 

오늘의 Q.T.

원인자요 판결자이신 하나님

"나의 날이 경주자보다 빨리 사라져 버리니 복을 볼 수 없구나 그 지나가는 것이 빠른 배 같고 먹이에 날아 내리는 독수리와도 같구나 가령 내가 말하기를 내 불평을 잊고 얼굴 빛을 고쳐 즐거운 모양을 하자 할지라도 내 모든 고통을 두려워하오니 주께서 나를 죄 없다고 여기지 않으실 줄을 아나이다 내가 정죄하심을 당할진대 어찌 헛되이 수고하리이까 내가 눈 녹은 물로 몸을 씻고 잿물로 손을 깨끗하게 할지라도 주께서 나를 개천에 빠지게 하시리니 내 옷이라도 나를 싫어하리이다 하나님은 나처럼 사람이 아니신즉 내가 그에게 대답할 수 없으며 함께 들어가 재판을 할 수도 없고 우리 사이에 손을 얹을 판결자도 없구나 주께서 그의 막대기를 내게서 떠나게 하시고 그의 위엄이 나를 두렵게 하지 아니하시기를 원하노라 그리하시면 내가 두려움 없이 말하리라 나는 본래 그렇게 할 수 있는 자가 아니니라"(욥기 9장 25-35절).

함께 읽은 본문 중 30절 "잿물"은 재에 부어 체로 걸러 낸 물이며, 비누 대용 혹은 세탁물의 표백제로 사용했습니다. 욥은 본문에서 원인자요 판결자이신 하나님 앞에서 탄원을 이어갑니다. 욥은 자신의 날이 경주자보다 빨리 사라져 복을 볼 수 없다고 탄식합니다. 자신이 불평을 잊고 즐거워한다 해도 하나님이 자신을 정죄하실 것이니 두렵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기에 욥은 그분께 대답할 수 없다며, 그분의 위엄으로 자신을 두렵게 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그러나 긍휼이 많으신 하나님께서는 끝까지 우리 인생을 보살펴 주십니다.

나를 개천에 빠지게 하시니(25-31절).
인간에게 삶의 의미는 중요합니다. 그러나 욥은 다양한 비유로 삶의 "무상성"을 말합니다. 고난 중에 그가 느끼는 세월의 속도는 32-33절, 달리는 경주자, 빠른 배, 날렵한 독수리보다 빠릅니다. 그는 그 속에서 어떤 복도 누릴 수 없습니다. 인생의 허무함을 극복하기 위해 그는 불평(고통)을 잊고 기쁜 얼굴을 만들며 새 출발을 하고자 다짐해 보지만, 이내 두려움에 사로잡힙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28절, 하나님이 자신을 무죄하다 여기지 않으실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는 자신의 현제의 고난이 결과입니다.
29절 하나님이 "정죄" 하시면 그의 모든 노력은 물거품이 되고 맙니다. 일시적 망각이나 인위적 기쁨은 고난의 때에 해결책이 되지 못합니다. 온전한 해결책은 크신 섭리로 고난을 허락하시고 우리를 단련하시는 하나님께 있습니다. 욥은 모든 고난이 하나님의 유죄 판결이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만일 그렇다면, 정직한 삶을 위해 열심히 달려온 이들의 수고가 전부 헛된 것이 되고 말기 때문입니다. 욥이 두려워한 것은 자기 억울함을 밝히지도 못한 채 고난 중에 생을 마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고난의 때를 잘 통과하시기 위한 최선의 행동은 무엇일까요?

우리 사이에는 판결자가 없다(32-35절).
욥은 고난으로 인해 성실하고 정직하게 살고자 하는 용기마저 잃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의로운 고생이 정말 헛된 것은 아닙니다. 이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이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욥은 자신의 상황을 32-33절, 법정 소송에 비유합니다. 그는 하나님과 자신이 소송을 벌일 수 없는 일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기에 변론을 벌이는 재판을 하실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하나님과 자신 사이에 판결자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을 그 누가 판결할 수 있단 말입니까?
욥에게 하나님은 사건의 당사자(원인자)인 동시에 재판장이십니다. 그러니 공정하게 판결해 줄 이를 찾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욥은 하나님께 조건을 제시합니다. 34-35절, 하나님이 막대기를 거두시고 두렵게 하지 않으신다면, 자신도 두려움 없이 말하겠다는 것입니다. 현실은 욥의 바람대로 움직이지 않지만, 그의 진술은 계속해서 하나님을 향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만의 욥의 고통의 제공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제공자가 그 해결책 또한 가지고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고난을 허락하신 하나님 앞에 우리는 어떤 심정으로 기도해야 할까요?

"모든 세상의 주관자이신 하나님 아버지, 때론 하나님이 우리를 궁지에 몰아넣으시고, 우리를 피고로 삼아 심문하시는 것처럼 무섭게 느껴집니다. 하나님 앞에서 제 변호사가 되어 주시고 원수의 정죄를 무효화하시는 예수님!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를 구속하신 주님의 의와 공로에 기대어 오늘도 담대히 살아가게 하시옵소서. 이 세상은 나그네의 삶이며, 광야에서의 삶과 같습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사오니 우리를 말씀과 기도와 찬양으로 단단히 무장시켜 주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찬양의 향기

 

그리스도인의 삶

성령 충만은 감정 충만이 아니다!

나는 예수님을 안 믿는 가정에서 부모님을 어렵게 설득해 서른 살 이란 늦은 나이에 은혜로 신학교에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합격 통지서를 받았을 때 너무 기쁘고 감사했습니다. 그렇지만 이내 "내가 얼마나 고집이 세고 부족했기에 하나님은 나를 10년 동안 연단하시고 신학교로 인도하셨을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모세가 광야에서 40년 동안 하나님께 순종하는 법을 배운 것같이 나도 신학교 4년 동안 열심히 순종하며 하나님 말씀을 배워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렇게 들어간 신학교에서 예배를 드리는 모든 순간이 뜨거웠습니다.
그런데 한 형제가 오리엔테이션 때부터 유독 내 눈길을 끌었습니다. 그 형제는 모든 예배 시간에 손을 높이 들고 열심히 찬양하고 기도 때마다 눈물을 흘리며 큰 목소리로 회개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런데 1학기가 끝나 갈 무렵 갑자기 그 형제가 학교에서 안 보였습니다. 궁금해서 알아봤더니, 신앙의 열심이 식어 부르심을 의심하며 신학교를 떠났다는 것입니다. 6개월이 채 안 되는 사이에 그 뜨거웠던 모습이 사라졌습니다. 그 형제의 이전 모습에서 은혜를 받았던 학우들은 당황했고, 한동안 그 형제의 뜨거움은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말이 많았습니다.
우리는 뜨거움이 너무나 쉽게 식어 버리는 감정적 신앙의 한계를 종종 봅니다. 나오미가 이방인 며느리 룻과 오르바에게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말했을 때 룻과 오르바는 감정 상태가 같았어도 행동을 달리했습니다. "그들이 소리를 높여 다시 울더니 오르바는 그의 시어머니에게 입 마추되 룻은 그를 붙좇았더라"(룻기 1:14). 여기서 "붙좇았더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욥기 19장 20절 "내 피부와 살이 뼈에 붙었고 남은 것은 겨우 잇몸뿐이로구나"에서의 "붙었고"와 같은 단어입니다. 이는 딱 붙어서 그 사이에 어떤 것도 들어갈 수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오르바는 울면서 고향으로 돌아갔고 룻은 울면서 시어머니를 붙좇았습니다. 성령 충만은 감정 충만과는 다르게 내 안에 성령님으로 꽉 차 있어서, 감정을 포함해 어떤 것도 들어갈 수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하나님과 완전히 동행하는 상태이기에 어떤 시험에도 거뜬히 이겨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감정 충만은 곧 식어 하나님과의 사이에 틈을 만들기에 그만큼 시험에 빠지기가 쉽습니다. 감정의 뜨거움을 넘어 하나님의 말씀을 붙좇는 것, 하나님께 딱 달라붙어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 그것이 바로 성령 충만의 삶인 것입니다. 모두 성령 충만합시다.(김남국 목사)

 

기도의 횃불

거짓 영을 분별하게 하소서!


영원히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 연약한 저희들이 하나님의 존전에 나왔습니다. 저희들에게 방송을 통하여 주님과의 만남을 허락하여 주셨사오니 영과 진리로 예배할 수 있게 하시옵소서. 이 시간, 주님만을 높이기를 원합니다. 소리 높여 주님을 경배하며 찬양하기를 원합니다. 주의 성령님께서 저희의 생각과 마음을 온전히 주장하여 주시옵소서. 자비로우신 하나님 아버지! 허물 많은 저희들입니다. 주님께 받은 은혜를 따라 성령의 열매를 맺는 삶을 살아야 하는데, 오히려 죄악만 더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불량하고 악한 저희들임을 고백합니다.
긍휼히 여기시고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갈수록 이 세상이 악함을 더욱더 창궐해지고 있고, 교회 공동체를 무너뜨리고자 하는 사탄 마귀의 계략도 더욱더 극성을 부리고 있습니다. 사탄 마귀는 이미 하나님의 백성이 된 자들의 믿음을 넘어뜨리려고 온갖 방법을 총동원하여 공격하고 있사오니, 이런 때일수록 경성하여 항상 깨어 있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게 하시옵소서. 말씀을 가까이 함으로 언제든지 사탄 마귀의 거짓 영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갖게 하시고, 깨어 기도함으로 사탄 마귀의 집요한 공격을 물리칠 수 있는 능력을 공급해 주시옵소서.
거짓 영에 사로잡힌 자들은 말세가 임박한 것처럼 성도들의 마음을 들뜨게 하고 있사오니, 악령으로 충만한 자들을 물리치기 위해서 항상 성령 충만을 사모할 수 있게 하시옵소서. 교회 공동체 안에 거짓 영이 침투하는 것을 막아내기 위하여 영적 파수꾼의 역할을 힘써서 감당할 수 있게 하시고, 진리인 척 가장하는 이단도 잘 분별하여 철저히 경계할 수 있는 저희 모두가 되게 하시옵소서. 평상시에 말씀과 기도와 찬양으로 영적 무장하여 어떠한 영적 도전에도 흔들리지 않는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가 되게 하시옵소서. 언제나 굳센 믿음을 주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가정교회를 말하다

초대 교회는 어떤 모습이었을까③

어제 셋째, 지적 요소들로 "사도들의 가르침"을 이어서, 이러한 신자들 사이의 상호 가르침의 방식은 사도들의 방문에서도 적용됩니다. 사도 바울이 드로아 시에 있는 한 가정교회를 방문했을 때를 봅시다. "그 주간의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그들에게 강론할새 말을 밤중까지 계속하매 우리가 모인 윗 다락에 등불을 많이 켰는데 .. 떠들지 말라 생명이 그에게 있다 하고 올라가 떡을 떼어 먹고 오랫동안 곧 날이 새기까지 이야기하고 떠나니라 사람들이 살아난 청년을 데리고 가서 적지 않게 위로를 받았더라"
사도행전 20장 7-12절 말씀입니다. 이 성경 구절에서 강조된 "말하다, 이야기하다"의 헬라어 어근은 "디알레고마이"인데 여기서 "대화"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이 경우 그리스도의 메시지를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비 그리스도인들과 대화한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바울의 가르침은 강의나 독백이 아니라 양방향의 긴 토론 형식이었으며, 질문과 대답을 하면 또 다른 질문과 생각들이 생겨나는 방식이었습니다. 바울의 그런 토론은 날이 새도록 계속될 정도였습니다. 이러한 상호 토론과 배움은 초기 교회에서 활발히 활용된 전형적인 방식이었습니다.
넷째, 극적인 요소들로 "예언, 방언 그리고 다른 것들"입니다. 초기 교회 모임에서는 굉장히 독특한(신기한) 사건들이 많이 발생했으며, 요즈음은 이런 사건들이 "극적인" 요소로 분류됩니다. 당시 지역 교회의 여러 다양한 신자들에게 발생했던 이런 사건들은 평범한 것이 아니었고 인간적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었습니다. 여기서 분명한 것은 사람은 이런 사건에 있어 도구나 통로이지, 원천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모임에서 일어난 극적인 사건들의 예를 들자면, 예언, 방언, 병 고침, 기적적인 일들, 그리고 영분별 등이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바나바와 바울을 사도로 세울 때 하나님의 부르심을 분별했던 일이나, 늦은 밤까지 진행되던 토론에서 졸음을 견디지 못하고 높은 곳에서 떨어져 죽은 청년을 바울이 소생시킨 일을 들 수 있습니다. 이러한 영적 은사들은 교회 모임에 참석한 모든 사람에게 유익을 주기 위해 필요했습니다. 바울은 교회의 머리 되신 그리스도께서 몸 된 교회 구성원 모두의 유익을 위해 행하시는 일과 비교하면서, 성도 각자의 은사가 모임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음을 인식시키려 노력했습니다. 바울은 모든 사람이 각자 고유한 방식으로 교회에 도움이 된다고 하면서도, 이러한 신비적인 은사들은 교회와 공동체에 본질적으로 유익하고 널리 이해되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특히 예언을 매우 강조했습니다. 바울은 또한 하나님이 주신 이런 재능들은 각 사람들마다 다르며 모든 사람은 각자 다른 형태로 신비한 재능이 있음을 역설했습니다. 따라서 지역 교회나 모임마다 각기 다른 은사들이 나타났습니다. 이러한 은사들은 이 중 그 어떤 것도 억압되어서는 안 되며, 균형과 적절함을 가지고 발휘되어야 했습니다. 고린도 교인들에게는 이러한 은사의 매력이 비교 대상이 되고 자랑이 되기 때문에 바울은 은사들이 질서 정연하게 사용되어 교회 모임이 혼란스러워지거나 비생산적이 되지 않도록 강조했습니다.(내일 계속..)

축복의 노래

복음 쪽지~㉾

가해자 인식..!


"나 때문에 예수가 죽었다"라는 가해자 인식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없으면 예수 믿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에게 자신이 예수를 죽였다는 인식이 있습니까? "나는 2천 년 전에 태어나지도 않았고 예수님의 손에 못도 박지 않았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어떻게 지금 예수 믿어 구원받았다고 하겠습니까? 믿고 회개한다는 것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값싼 회개에 지적 동의만 해놓고 구원받았다고 착각하지 마십시오! 당신은 통회하며 예수님을 믿습니까? 우리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은 가해자라는 의식 속에 그분의 은혜를 누리시기 바랍니다!

 

“예림의집”이란?

예림의집은 “예수님께서 임하셔서 거하시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세상 가운데로 보내시면서 마태복음 28장 29절,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임재를 통하여 실제로 그리스도인에게 오셔서 그리스도인의 모든 삶을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예림의집은 예수님의 사역에 동참시키시는 주님의 그 부르심에 순종하여 세워진 후원 모임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으로 주님이 주신 권능으로 담대히 나아가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영접하는 우리의 마음을 거처로 삼으십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요한복음 14장 23절,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여러분은 사도행전 2장을 기억하실 겁니다. 오순절에 예수님이 약속하신 성령님이 그들에게 임하시자 그들은 예수님께서 전에 하신 말씀의 성취를 생생하게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마음에 거하시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몸과 마음을 비롯한 전인격이 예수 그리스도의 거처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성령님이 제 마음속에 들어오셔서, 그분을 섬기고 거기서 그분과 즐거워하고 그분을 알아가는 것이 가장 큰 축복임을 고백합니다. 그분을 제 마음에 모셨던 그날 저녁을 저는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1986년 여름, 제가 고 2 때 청소년 연합 여름 수련회 저녁 집회 설교시간에 일어난 일입니다. 주님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사건은 얼마나 감격적인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주님의 임재하심은 제 중심에서 발생한 엄연한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그 후로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모신 것에 대해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영원히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그리스도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새로운 삶이 시작된 나는 “주님, 저의 모든 것은 주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뜻대로 사용하옵소서!”라고 고백했습니다. 물론 주님은 기꺼이 저의 고백을 받으셨고, 저를 주님의 영광된 사역에 동역자로 삼으셨습니다.
주님을 마음에 모신 저는 날마다 주님을 찬송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저의 삶에서의 주님과의 동거가 시작되었고, 예림의 집의 사역도 시작되었습니다. 예림의집의 "예림"은 세 가지 깊은 의미를 가집니다. 첫째, 예수님이 임재하신 마음, 모임이란 뜻이고, 둘째, 예수님의 그림자로 빛과 소금으로 살겠다는 마음가짐이며, 셋째, 예수님의 재림을 기대하고, 기다리며, 준비한다는 뜻입니다! 이 세 가지의 정신을 모토로 하여 선교사와 개척교회를 돕고 있으며, 온라인 사역과 찬양사역, 그리고 21세기 새로운 교회의 모델인 가정교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예림의집 사역을 소개합니다

첫째, 온라인 선교사역
①다음 카페 “예림의집”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회원가입을 하시면 그 순간부터 저의 예림의집 사역이 동참하게 됩니다. 현재 회원 수 1300여 명으로 이들이 잠정 후원자가 되어 기도 후원, 물질 후원, 재능기부 등을 하게 됩니다. 카페를 매개로 하여, 서로의 비전과 기도 제목을 나누고, 힘을 합쳐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해 갑니다. 저의 사역에 동참하시길 원하시는 분은 다음 검색 창에 예림의집을 치세요!
②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은 따로 회원 가입을 할 필요 없이 언제, 어디서나 방문하여 필요한 정보와 신앙 글들을 접할 수 있습니다. 검색어를 통해 접근하여, 현재 다음 블로그 80만여 건, 네이버 블로그 40만 건의 방문자 수를 기록 중입니다. 다음 카페 예림의집과 연동되어 하루 평균 20건 이상의 정보가 업로드되어 현재 4만 편이 넘는 좋은 글들을 접하실 수 있습니다.
③페이스북 활동(김정민)
요즘 활성화되어있는 페이스북 활동을 통하여 온라인 선교의 지경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저를 친구 초대해 주시고 팔로우해 주시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현재 25개의 그룹을 만들어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친구들을 만나고, 복음을 전하며, 선교 동원가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제 이름 "김정민"을 많이 친구 추가해 주세요!
④유튜브 방송 "예림의집TV"
복음 전파와 영적 무장의 방편으로 유튜브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매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6일 방송하며, 새벽 기도회(월-금 오전 5:00), 예림의집 이야기(월-금: 오후 5:00),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토: 오후 5:00)을 실시간 방송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주일예배, 짤 영상 모음 등 영적 무장과 복음 전파에 관련된 영상들을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검색창에 "예림의집TV"를 치시고 많이 오셔서 ✔️구독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둘째, 선교사/개척교회 후원 사역
이 사역은 찬양사역을 하던 저에게 새로운 비전을 주셔서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게 하신 사역입니다. 선교사님들과 개척교회를 바르게 후원하기 위해서는 제가 먼저 선교와 교회 개척 사역에 헌신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예림의집 카페 회원들을 포함한 그동안 주께서 연결해 주신 후원자 1800여 명이 함께 감당해 가는 사역입니다.
첫 번째, 기도 후원 사역은 주께서 연결해 주신 선교사님이나 개척교회를 위해 40 명의 기도 용사를 세우는 사역입니다. 제1호 필리핀 “김성재 선교사님”과 서울 상도동 “주님의 교회”를 필두로, 현재 26명의 선교사님과 20개의 개척교회를 기도로 후원하고 있고, 그 지경을 넓혀 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물질 후원 사역으로 앞에서 말씀드린 기도 후원자들 중에 하나님께서 자원하는 마음을 주신 분들이 물질 후원을 하게 됩니다. 재정 후원은 선교사님과 개척교회 목회자 가정의 기초 생활비를 우선적으로 지원하도록 원칙을 세웠습니다. 물품 후원은 선교나 교회 개척에 필요한 다양한 물품들을 자원하여 후원하게 됩니다. 특히 도서 후원은 성경책, 신앙 도서, 아이들 학습 도서 등. 작은 도서관을 만들 수 있도록 후원합니다.
세 번째, 재능기부 사역은 주님께서 주신 모든 달란트를 활용하여 선교와 교회 개척을 지원하는 사역입니다. 예를 들어, 선교 지원팀, 여름 성경 학교 진행팀, 찬양팀, 자원봉사단 등이 있습니다. 모든 재능 기부 사역은 “자비량”을 원칙으로 합니다. 특히 전도 지원팀을 구성하여 개척교회를 지원합니다. 이 사역을 통하여 새로운 선교사들과 교회 개척자들이 새워질 것입니다. 선교지나 개척 현장에서 필요한 프로젝트 그룹을 조직하여 지원합니다.

셋째, 찬양 세미나/찬양 집회 사역
제가 약 30년간 해오던 찬양 사역의 일환으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찬양을 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특별히 부여하신 사역입니다. 아직도 찬양에 대한 무지와 편견으로 주님을 맘껏 찬양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제가 경험한 찬양에 대한 놀라운 비밀을 나누는 사역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잠시 멈추고 준비 중이며 내년부터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이 2018년 가을에 발간되었습니다. 저는 비록 짧은 시간 동안 여러분을 만나지만, 찬송은 너무나 소중하기에 글로써 여러분들의 곁에서 치침이 되어드리고자 합니다. 찬송에 대한 저의 지난 30년간의 찬양사역의 총결산의 책입니다. 본 책의 내용은 앞서 설명한 다음 카페와 블로그 예림의집과 페이스북 그리고 토요일에 방송되는 찬양 방송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통해 미리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특히 개척교회는 요청하는 수량을 무료로 제공해 드립니다.


예림의집 사역에 동참하는 방법

첫째, 유튜브 <예림의집TV>방송을 봐주시고,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이나 페이스북 <김정민>의 글을 봐 주시는 것만으로도 일차적으로 동참하는 방법입니다. "구독/좋아요/홍보"까지 해 주시면 더욱 좋겠죠.
둘째,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오셔서 회원이 되어 주시고, 여러 게시판의 글을 통해 영성 훈련을 하시고, 여러분의 삶 속에 적용하셔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십시오. 좋은 글들과 댓글을 올려주시면 더욱 좋겠지요.
셋째, 다음 카페 <사역>코너에 있는 찬양사역/선교후원사역/개척후원 사역에 적금 동참하시는 방법입니다. 제일 중요한 기도 후원과 성령님이 인도하심을 따라 재정과 재능 후원에 동참하시면 더욱 좋습니다.
넷째, 여러분이 섬기는 공동체에 저를 초청하는 방법입니다.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3개월 전에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다섯째, 제가 펴낸 책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구입하셔서 정독하시는 것입니다. 포털 검색창에 책 이름을 치시고, 온라인상으로는 구매하시면 됩니다. 정독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하십시오!


김정민 목사
010-9442-6928
yerim21@hanamil.net
다음 카페 예림의집: http://cafe.daum.net/HomeOfYERIM
다음 블로그 예림의집: http://blog.daum.net/yerim21
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https://blog.naver.com/yerimess
유튜브 예림의집TV: https://www.youtube.com/channel/UCarpDnpNgU0RQn9ksDdSPPw
후원 계좌: 농협 3560686657493(예금주: 김정민)

예림의집 김정민 목사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