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림의집 2420번째 이야기
우리가 하나님의 눈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눈으로 죄를 바로 볼 때, 우리는 죄를 이길 수 있습니다. 죄를 싫어하고 경멸하시는 하나님의 눈으로 우리가 우리의 삶과 생각 속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죄들을 바라볼 때, 우리는 이것들이 깨끗이 씻겨지기를 열망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선택한 순간 우리는 세상과 충돌하기로 선택한 것입니다. 세상에 한 발을 디디고 있는 상황에서는 하나님의 빛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 자명한 진리입니다. 우리 모두가 용기를 내어 세상에 마음을 두지 않고 하나님의 빛 가운데서 거닐면서 그분의 인도를 누리시길 바랍니다! ![]() |
사소한 거짓말도 해서는 안 되는 것! 가벼운 거짓말을 별것 아니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소한 거짓말에 의해서 인간관계에 금이 가기 시작합니다. 예를 들어, 아프다고 거짓말을 하고 하루 결근했다고 합시다. 사실 그는 어제 기분 나쁜 일이 생겨서 도저히 회사에 갈 마음이 아니었거나, 가족이나 친구들이 놀러 가자고 해서 결근한 것입니다. 다음 날 출근할 때, 그는 절대로 밝은 얼굴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만드셨기 때문에 아무리 감추려 해도 모든 것이 얼굴에 나타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거짓말이 들키지 않을 거라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삶에서, 얼굴에서, 태도에서, 거짓말은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아내나 남편이 바람을 피우면, 배우자가 금방 알아채는 것과 같습니다. 배우자에게 뭔가 숨기는 게 있으면, 예전에는 대화를 나눌 때 80% 이상 눈을 쳐다보고 말했으나, 이젠 10%밖에 눈을 똑바로 볼 수 없게 됩니다. 그런 작은 변화가 배우자에게 감지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감쪽같이 속였다 해도, 이후 어떤 태도나 표정에서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만드신 창조의 원리입니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상사는 부하직원의 작은 변화에도 "저 친구가 뭔가 달라졌다."라고 느낍니다. 그런 것이 신뢰관계를 무너뜨립니다. 대부분의 직원들은 상사에게 불만이 많습니다. 그러나 제가 볼 때, 그런 불만족스러운 상황을 만든 원인의 60~70%는 그 사람 자신에게 있습니다. 상사나 경영자는 보는 눈이 다르기 때문에 직원들의 변화를 예민하게 감지합니다. 이미 상사나 경영자에게 신뢰를 잃었기 때문에 불만이 생기는 것입니다. 고객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거래처가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 담당 직원이 진실을 말하고 있는지를 감지할 수 있습니다. 고객에게 신뢰받으려면, 사소한 거짓말도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팀하스 대표 하형록) 그렇습니다. 시편 52편 기자는 "사람들이 바른말보다는 거짓말을 더 사랑한다."라고 한탄했습니다. 제 주변에도 그런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그가 입을 열면 거짓말인 줄 알면서도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기술"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 주변에는 사람들이 다 떠나가고 없습니다. 하나님은 진실 그 자체이십니다. 고로, 거짓말하는 자는 하나님을 섬길 수 없습니다.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라" 에베소서 4장 25절 말씀입니다. 거짓말을 버리고 정직한 사람이 됩니다! ![]() |
기독교의 핵심 진리⑪ 삼위일체이신 하나님 오늘은 기독교의 가장 중심되는 교리 중에 하나인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해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삼위일체는 어렵고 까다로운 교리이며 세 위격이신 한 하나님을 타나 내는 말입니다. 이 교리는 하나님에 대한 것이기에 완전한 설명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저도 굳이 이해시키려 덧붙이지 않고 담백하게 소개하고자 합니다. 삼위일체는 그 통일성과 다양성에서 하나님의 충만하심을 정의하려는 용어입니다. "본질은 하나이고 위격은 셋이신 하나님"이라는 말이 삼위일체의 역사적인 공식입니다. 이 공식은 매우 신비롭고 역설적이지만 절대로 모순이 아닙니다. 즉 "일체"라는 용어는 본질과 존재의 관점에서 사용된 것이고 "위격"은 하나님의 다양성을 표현한 말입니다. 성경에는 "삼위일체"라는 말이 나와 있지 않지만, 그 개념은 성경 속에 명확하게 나타납니다. 성경은 신명기 6장 4절에서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하나님의 일체성을 확고하게 말합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세 위격의 충만한 신성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그 세 위격은 바로 성부, 성자, 성령이십니다. 더불어 주의해야 할 것은 양태론과 삼신론이라는 이단의 주장입니다. "양태론(modalism)"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단지 표현 방법에 불과하므로 하나님 안에 위격의 구별이 없다는 주장을 말합니다. 반면 "삼신론(tritheism)"은 하나님을 구성하는 세 존재가 있다는 그릇된 주장입니다. 다시 설명하면, 양태론은 하나님 한 분이 성부, 성자, 성령 각각의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주장하며 그리스도와 성령님의 위격을 부정하는 것이며, 삼신론은 하나님이 성부, 성자, 성령 이렇게 세 분이라고 주장하여 하나님이 한 분이심을 부정합니다. 둘 다 기독교의 이단 이론이며 삼위일체 교리를 정면으로 반박합니다. 그들을 주의합시다. 여기서 "위격"이라는 용어는 본질의 차별성이 아닌 하나님 안의 다른 실재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실재가 한 존재 안에서 차이를 가진 것입니다. 그러나 결코 존재나 본질 자체가 다른 것이 아닙니다. 다시 말해 각각의 위격은 하나님의 모든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삼위의 각 위가 하시는 일에도 차이가 있습니다. 구원의 역사는 어떤 의미에서 삼위의 모든 위가 공통으로 하시는 일입니다. 그러나 활동 방법에서 성부는 창조와 구속을 주도하시고, 성자는 창조물을 수속하시고, 성령님은 구속을 적용시키시면서 성도들을 거듭나게 하시고 거룩하게 하십니다. 삼위일체 교리로도 하나님의 신비로운 성품을 충분히 설명하지는 못합니다. 다망 우리가 발을 내디뎌서는 안 될 곳의 경계를 정해주는 것입니다. 이 교리는 우리의 유한한 사고의 한계를 뚜렷이 보여줍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어떤 의미에서는 하나이시고 다른 의미에서는 셋이신 하나님을 드러내는 성경의 계시를 신뢰할 것을 요구합니다. 이 교리는 어렵기도 하지만 매우 중요하기에 다시 한번 정리합니다. "첫째, 하나님은 본질적으로 하나이시고 위격에 있어서는 셋이시다. 둘째, 성경은 하나님의 하나 되심, 그리고 성부, 성자, 성령의 신성을 모두 확언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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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이 손수 빚으신 존재 "내 영혼이 살기에 곤비하니 내 불평을 토로하고 내 마음이 괴로운 대로 말하리라 내가 하나님께 아뢰오리니 나를 정죄하지 마시옵고 무슨 까닭으로 나와 더불어 변론하시는지 내게 알게 하옵소서 주께서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을 학대하시며 멸시하시고 악인의 꾀에 빛을 비추시기를 선히 여기시나이까 주께도 육신의 눈이 있나이까 주께서 사람처럼 보시나이까 주의 날이 어찌 사람의 날과 같으며 주의 해가 어찌 인생의 해와 같기로 나의 허물을 찾으시며 나의 죄를 들추어내시나이까 주께서는 내가 악하지 않은 줄을 아시나이다 주의 손에서 나를 벗어나게 할 자도 없나이다 주의 손으로 나를 빚으셨으며 만드셨는데 이제 나를 멸하시나이다 기억하옵소서 주께서 내 몸 지으시기를 흙을 뭉치듯 하셨거늘 다시 나를 티끌로 돌려보내려 하시나이까 주께서 나를 젖과 같이 쏟으셨으며 엉긴 젖처럼 엉기게 하지 아니하셨나이까 피부와 살을 내게 입히시며 뼈와 힘줄로 나를 엮으시고 생명과 은혜를 내게 주시고 나를 보살피심으로 내 영을 지키셨나이다"(욥기 10장 1-12절). 함께 읽은 본문에서 욥은 하나님께 직접적으로 호소합니다. 지신을 지으신 주님께서 자신의 고통을 제거해 달라는 내용입니다. 욥은 곤비한 가운데 불평과 괴로움을 토로합니다. 무엇 때문에 하나님이 자신과 변론하시는지 알려 달라고 탄원합니다. 욥은 자신이 악하지 않은 것을 하나님이 아신다고 믿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손으로 빚으셔서 생명과 은혜를 주시고, 그의 영을 지키셨음을 기억해 달라고 호소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셨습니다. 우리를 지으신 주님께서 우리의 불행을 방관하실 분이 아니심을 굳게 믿으시길 바랍니다. 왜 나와 변론하십니까?(1-7절). 현재 겪는 고난이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터널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욥 또한 그러합니다. 괴롭고 지친 가운데, 그는 하나님을 향해 탄식합니다. 하나님이 사건의 당사자이시고 하나님과 자신 사이에 어떤 판결자도 찾을 수 없기에 욥은 하나님 외에 다가갈 대상이 없습니다. 그는 2절, 하나님께 정죄를 멈추시고 자신과 변론하시는 이유를 알려달라고 호소합니다. 의로우신 하나님 앞에 당당히 설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욥은 자기 문제에 대해 하나님과 변론하기 위해 그분을 법정에 세우려 합니다. 왜냐하면 욥은 자신이 의롭다고 확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법정에서 하나님은 피고가 아니라 공의로운 재판관의 자리에 앉으십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해할 수 없는 순간조차, 사람은 다만 죄인일 뿐입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공의로운 판단을 구하는 성도에게 복이 있습니다. 욥에 입장에서는 하나님의 행동은 의문을 자아냅니다. 하나님은 욥이 악인이 아니라는 사실과 그분의 손으로부터 누구도 욥을 벗어나게 할 자가 없음을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 달라고 간구할 일은 무엇인가요? 왜 나를 지으시고 멸하십니까?(8-12절). 욥에 주장에 의하면 하나님은 그분이 지으신 것을 학대하시며 허물과 죄를 들추어내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행동 앞에서 욥은 탄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한 욥은 하나님의 이전 행동과 지금 행동 사이의 모순을 극적으로 묘사합니다. 하나님은 예술가가 작품을 만들 듯 공들여 욥을 빚으셨습니다. 그런데 3절, 8-9절, 이제는 하나님이 그 작품을 없애려 하십니다. 하나님은 "창조" 행동과 "파괴" 행동이 대립됩니다. 욥은 10-11절, "자연적인" 생식 과정을 통한 자신의 창조 과정에 관해 말하며 호소합니다. 12절, 하나님은 모태에서 욥을 지으셨고, 생명을 주셨을 뿐 아니라 은혜로 보호해 주셨습니다. 이러한 자신에 대한 하나님의 모순적 행동을 경험하는 욥은 9절에서 "기억하옵소서"라고 외칩니다. 이는 자신을 지으신 과거 행위를 기억하시고 지금 파괴적인 행동을 멈추어 달라는 강력한 호소입니다. 우리도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의 여러 섭리하심을 목도합니다. 그 일들을 살펴보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 지를 알 수 있습니다. 과거에 우리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 중 다시금 간구할 은혜는 무엇이 있는지 깊이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를 지으시고, 생명을 불어넣어 시고, 지금껏 인도하신 하나님 아버지, 곤비한 순간에 달려가 옷자락을 붙들고 한탄할 상대는 하나님뿐입니다. 우리를 창조하시고 이 땅에 살게 하신 분이 하나님이시니 우리가 세상에서 겪는 고난의 의미를 알게 하시옵소서. 우리를 손바닥에 새기시고 잊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우리가 늘 기억하며 의지하게 하시옵소서. 어떠한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신실하신 하나님을 신뢰하며 끝까지 믿음을 잃지 않게 하시고, 책임져 주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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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도할 이유 인간은 어려움을 겪을 때 마음이 상합니다. "마음의 상함"이란 히브리어로 "코체르 루아흐"라고 하는데, 문자 그대로의 의미는 "영이 부족하다"라는 뜻입니다. 마음이 상한 것을 영이 부족한 상태로 설명한 것입니다. 영이 부족하면 하나님과 교제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음성이 들리지 않습니다. 어려움을 당해 마음이 상하면 기도가 나오지 않고 하나님을 향해 마음이 열리지 않습니다. 이는 마귀가 원하는 대로 된 것입니다. 고난 때문에 기도하지 않고 하나님께 분노하는 것이야말로 마귀가 원하는 바입니다. 이것이 마귀의 진짜 의도입니다. 진정으로 하나님 뜻을 깨닫기 원하는 사람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고난을 당하면, 숨어 있던 저 밑에서부터 의심이라는 것이 무섭게 치고 올라옵니다. 그럴 때 의심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일단은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만 신뢰해야 합니다. 모든 걸 알고 모든 걸 다 볼 수 있다면 순종이 쉬울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전체적인 계획과 그림을 미리 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삶 속에서 힘들 때, 어려울 때, 의심이 올라올 때 일단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오. 분명 선하신 뜻이 있을 것이기에,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나아가겠다고 고백하는 믿음의 기도를 드리십시오.(유진소 목사) ![]() |
주님의 마음으로 채워지게 하소서! 구원의 주님! 오늘도 저희에게 허락하신 이 방송 시간에 하나님께 예배합니다.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올립니다. 홀로 영광을 받으시옵소서. 하오나 죄 많고 허물 많은 저희들인지라 거룩한 산 제물로 예배한다는 것이 너무나 부끄럽습니다. 은혜의 주요, 사랑의 하나님께서 저희를 긍휼히 여기사 모든 불의에서 씻어주시고 깨끗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거룩하신 주님! 저희들은 오늘 성찬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주님의 살과 피를 묵상하면서 하루하루를 어떻게 보내고 있는지 스스로를 성찰해 보게 하시옵소서. 주님의 피 묻은 십자가의 은혜를 생각하면서 죄로 얼룩진 우리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게 하시옵소서. 제자들이 예수님과 마지막 식사를 하면서 주님의 살과 피를 경험하게 하셨듯이 오늘도 주님을 생각하면서 어떻게든 주님의 그 고난과 부활 그리고 구원의 흔적들을 경험하게 하시옵소서. 주님! 이 시간 저희의 마음과 정신이 온통 주님의 마음으로 채워지기를 원합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신 주님을 생각하며, 저희도 우리 몫의 십자가를 잠잠히 주님의 뒤를 따를 수 있는 삶이 되게 하시옵소서. 예수님을 바라보면 주님의 흔적을 육체에 채우기 위하여 봉사와 헌신의 자리를 자원하여 찾을 수 있는 삶이 되게 하시옵소서. 또한 예루살렘을 바라보시며 통곡하시던 주님을 생각하며, 죄악에 찢기고 있는 이 민족을 보며 가슴 아파할 수 있는 저희들이 되게 하시고, 영혼을 사랑하되 죽음같이 강한 사랑을 보여 주신 주님의 사랑을 본받아 작은 사랑이라고 실천해 나가는 저희들이 되게 하시옵소서. 그리하여 육적인 시각이 영적인 시각으로 변화되는 계기가 되게 하시옵소서. 오늘도 생명을 구원하는 일에 우리의 인생을 걸게 하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
초대 교회는 어떤 모습이었을까⑤ 다섯째, 상징적 요소들, "성찬과 세례"입니다. 초기 교회에는 성찬식과 세례라고 하는 두 상징적인 행위가 있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생애와 그를 따르는 사람들의 삶에서 필연적으로 만나는 중대한 시점을 표현한 것입니다. 먼저, 성찬에 대해 알아봅시다. 예수님께서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성찬의 본을 보이셨으며, 고대 교회에서는 성만찬으로 행했습니다. 성만찬이라는 것은 식사를 하면서 성찬을 나누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은 분명히 자주 실행되었지만 매번 만날 때마다 단체로 행했는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가정 단위의 성찬도 있었던 것입니다. 성찬 도중에 기도, 예언, 가르침과 같은 신령한 요소들이 동반되기도 했습니다. 성찬은 신자들의 마음에 몇 가지 핵심 개념과 생생한 이미지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우선 이것은 예수님이 자신을 희생 제물로 내놓으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음을 상기시킵니다. 떡과 포도주로 표현되는 주님의 살과 피는 이 세상의 죄와 어둠을 치료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성찬은 유월절 식사 도중에 예수님께서 먼저 행하신 것으로, 제자들은 하나님이 애굽의 노예로 살던 이스라엘을 구해내시는 장면을 떠올렸을 것입니다. 유월절 식사 시간에 예수님이 제정하신 성찬입니다. 이 하나님의 구원 역사는 죽음의 천사들이 그들의 집을 "넘어가고" 또한 그들이 애굽 당에서 약속의 땅으로 가기 위해 광야를 "넘어감"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더욱 사악한 형태인 영적 노예 상태로부터 우리를 구원하고자 하십니다. 성찬이 공동체의 정식 만찬이었다는 사실은, 1세기의 문화적 상황에서 볼 때, 낯선 사람과는 나눌 수 없는 친밀하고 독특한 우정으로 서로를 받아들인다는 표시였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자발적으로 가족 관계를 맺은 사람들은 이제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이 "공동체 식탁"을 공유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누가 성찬을 감독할 수 있었을까요? 흥미롭게도 성경은 이 문제에 관해 침묵합니다. 아마도 초기 교회들은 이 부분에 대해 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이 직접 열두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저녁식사를 하던 때가 유일한 예입니다. 이러한 한 번의 사건이 전형적인 사례가 되기는 어렵지만, 실질적으로 볼 때 지도자 위치에 있던 사람들이 교회 모임에서 성찬을 시작했음이 틀림없습니다. 현재의 가정교회에서 어떻게 성찬을 진행할까는 아직도 연구 중입니다. 가장 성경적인 성찬에 대해 더욱 준비해야 할 것입니다.(계속..)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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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위로하지 말라! 우리가 예수님을 죽였다는 애통함을 통과해야 진실한 기쁨과 희락을 회복할 것입니다. 이것이 깊은 신앙입니다. 우리가 잘못 배운 경박한 신앙으로 구원받았다고 스스로 위로하지 말라! 기독교의 엔터테인먼트화를 회개하십시오! 엔터테인먼트가 발달하면서 교회는 눈물이 사라졌습니다. 경박한 공연은 넘쳐나지만, 통곡의 회개 기도회는 사라져 갔습니다. 우리가 이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오히려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십시오. 내가 예수님을 죽였다는 분명한 인식 아래 회개로 돌아서서 분명한 죄의 용서함을 받아야 비로소 성령 충만해집니다. ![]() |
“예림의집”이란? 예림의집은 “예수님께서 임하셔서 거하시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세상 가운데로 보내시면서 마태복음 28장 29절,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임재를 통하여 실제로 그리스도인에게 오셔서 그리스도인의 모든 삶을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예림의집은 예수님의 사역에 동참시키시는 주님의 그 부르심에 순종하여 세워진 후원 모임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으로 주님이 주신 권능으로 담대히 나아가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영접하는 우리의 마음을 거처로 삼으십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요한복음 14장 23절,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여러분은 사도행전 2장을 기억하실 겁니다. 오순절에 예수님이 약속하신 성령님이 그들에게 임하시자 그들은 예수님께서 전에 하신 말씀의 성취를 생생하게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마음에 거하시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몸과 마음을 비롯한 전인격이 예수 그리스도의 거처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성령님이 제 마음속에 들어오셔서, 그분을 섬기고 거기서 그분과 즐거워하고 그분을 알아가는 것이 가장 큰 축복임을 고백합니다. 그분을 제 마음에 모셨던 그날 저녁을 저는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1986년 여름, 제가 고 2 때 청소년 연합 여름 수련회 저녁 집회 설교시간에 일어난 일입니다. 주님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사건은 얼마나 감격적인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주님의 임재하심은 제 중심에서 발생한 엄연한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그 후로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모신 것에 대해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영원히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그리스도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새로운 삶이 시작된 나는 “주님, 저의 모든 것은 주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뜻대로 사용하옵소서!”라고 고백했습니다. 물론 주님은 기꺼이 저의 고백을 받으셨고, 저를 주님의 영광된 사역에 동역자로 삼으셨습니다. 주님을 마음에 모신 저는 날마다 주님을 찬송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저의 삶에서의 주님과의 동거가 시작되었고, 예림의 집의 사역도 시작되었습니다. 예림의집의 "예림"은 세 가지 깊은 의미를 가집니다. 첫째, 예수님이 임재하신 마음, 모임이란 뜻이고, 둘째, 예수님의 그림자로 빛과 소금으로 살겠다는 마음가짐이며, 셋째, 예수님의 재림을 기대하고, 기다리며, 준비한다는 뜻입니다! 이 세 가지의 정신을 모토로 하여 선교사와 개척교회를 돕고 있으며, 온라인 사역과 찬양사역, 그리고 21세기 새로운 교회의 모델인 가정교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예림의집 사역을 소개합니다 첫째, 온라인 선교사역 ①다음 카페 “예림의집”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회원가입을 하시면 그 순간부터 저의 예림의집 사역이 동참하게 됩니다. 현재 회원 수 1300여 명으로 이들이 잠정 후원자가 되어 기도 후원, 물질 후원, 재능기부 등을 하게 됩니다. 카페를 매개로 하여, 서로의 비전과 기도 제목을 나누고, 힘을 합쳐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해 갑니다. 저의 사역에 동참하시길 원하시는 분은 다음 검색 창에 예림의집을 치세요! ②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은 따로 회원 가입을 할 필요 없이 언제, 어디서나 방문하여 필요한 정보와 신앙 글들을 접할 수 있습니다. 검색어를 통해 접근하여, 현재 다음 블로그 80만여 건, 네이버 블로그 40만 건의 방문자 수를 기록 중입니다. 다음 카페 예림의집과 연동되어 하루 평균 20건 이상의 정보가 업로드되어 현재 4만 편이 넘는 좋은 글들을 접하실 수 있습니다. ③페이스북 활동(김정민) 요즘 활성화되어있는 페이스북 활동을 통하여 온라인 선교의 지경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저를 친구 초대해 주시고 팔로우해 주시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현재 25개의 그룹을 만들어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친구들을 만나고, 복음을 전하며, 선교 동원가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제 이름 "김정민"을 많이 친구 추가해 주세요! ④유튜브 방송 "예림의집TV" 복음 전파와 영적 무장의 방편으로 유튜브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매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6일 방송하며, 새벽 기도회(월-금 오전 5:00), 예림의집 이야기(월-금: 오후 5:00),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토: 오후 5:00)을 실시간 방송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주일예배, 짤 영상 모음 등 영적 무장과 복음 전파에 관련된 영상들을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검색창에 "예림의집TV"를 치시고 많이 오셔서 ✔️구독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둘째, 선교사/개척교회 후원 사역 이 사역은 찬양사역을 하던 저에게 새로운 비전을 주셔서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게 하신 사역입니다. 선교사님들과 개척교회를 바르게 후원하기 위해서는 제가 먼저 선교와 교회 개척 사역에 헌신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예림의집 카페 회원들을 포함한 그동안 주께서 연결해 주신 후원자 1800여 명이 함께 감당해 가는 사역입니다. 첫 번째, 기도 후원 사역은 주께서 연결해 주신 선교사님이나 개척교회를 위해 40 명의 기도 용사를 세우는 사역입니다. 제1호 필리핀 “김성재 선교사님”과 서울 상도동 “주님의 교회”를 필두로, 현재 26명의 선교사님과 20개의 개척교회를 기도로 후원하고 있고, 그 지경을 넓혀 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물질 후원 사역으로 앞에서 말씀드린 기도 후원자들 중에 하나님께서 자원하는 마음을 주신 분들이 물질 후원을 하게 됩니다. 재정 후원은 선교사님과 개척교회 목회자 가정의 기초 생활비를 우선적으로 지원하도록 원칙을 세웠습니다. 물품 후원은 선교나 교회 개척에 필요한 다양한 물품들을 자원하여 후원하게 됩니다. 특히 도서 후원은 성경책, 신앙 도서, 아이들 학습 도서 등. 작은 도서관을 만들 수 있도록 후원합니다. 세 번째, 재능기부 사역은 주님께서 주신 모든 달란트를 활용하여 선교와 교회 개척을 지원하는 사역입니다. 예를 들어, 선교 지원팀, 여름 성경 학교 진행팀, 찬양팀, 자원봉사단 등이 있습니다. 모든 재능 기부 사역은 “자비량”을 원칙으로 합니다. 특히 전도 지원팀을 구성하여 개척교회를 지원합니다. 이 사역을 통하여 새로운 선교사들과 교회 개척자들이 새워질 것입니다. 선교지나 개척 현장에서 필요한 프로젝트 그룹을 조직하여 지원합니다. 셋째, 찬양 세미나/찬양 집회 사역 제가 약 30년간 해오던 찬양 사역의 일환으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찬양을 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특별히 부여하신 사역입니다. 아직도 찬양에 대한 무지와 편견으로 주님을 맘껏 찬양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제가 경험한 찬양에 대한 놀라운 비밀을 나누는 사역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잠시 멈추고 준비 중이며 내년부터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이 2018년 가을에 발간되었습니다. 저는 비록 짧은 시간 동안 여러분을 만나지만, 찬송은 너무나 소중하기에 글로써 여러분들의 곁에서 치침이 되어드리고자 합니다. 찬송에 대한 저의 지난 30년간의 찬양사역의 총결산의 책입니다. 본 책의 내용은 앞서 설명한 다음 카페와 블로그 예림의집과 페이스북 그리고 토요일에 방송되는 찬양 방송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통해 미리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특히 개척교회는 요청하는 수량을 무료로 제공해 드립니다. 예림의집 사역에 동참하는 방법 첫째, 유튜브 <예림의집TV>방송을 봐주시고,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이나 페이스북 <김정민>의 글을 봐 주시는 것만으로도 일차적으로 동참하는 방법입니다. "구독/좋아요/홍보"까지 해 주시면 더욱 좋겠죠. 둘째,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오셔서 회원이 되어 주시고, 여러 게시판의 글을 통해 영성 훈련을 하시고, 여러분의 삶 속에 적용하셔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십시오. 좋은 글들과 댓글을 올려주시면 더욱 좋겠지요. 셋째, 다음 카페 <사역>코너에 있는 찬양사역/선교후원사역/개척후원 사역에 적금 동참하시는 방법입니다. 제일 중요한 기도 후원과 성령님이 인도하심을 따라 재정과 재능 후원에 동참하시면 더욱 좋습니다. 넷째, 여러분이 섬기는 공동체에 저를 초청하는 방법입니다.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3개월 전에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다섯째, 제가 펴낸 책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구입하셔서 정독하시는 것입니다. 포털 검색창에 책 이름을 치시고, 온라인상으로는 구매하시면 됩니다. 정독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하십시오! 김정민 목사 010-9442-6928 yerim21@hanamil.net 다음 카페 예림의집: http://cafe.daum.net/HomeOfYERIM 다음 블로그 예림의집: http://blog.daum.net/yerim21 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https://blog.naver.com/yerimess 유튜브 예림의집TV: https://www.youtube.com/channel/UCarpDnpNgU0RQn9ksDdSPPw 후원 계좌: 농협 3560686657493(예금주: 김정민) |
예림의집 김정민 목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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