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의 핵심 진리⑩ 하나님의 불가해성
스위스의 신학자 칼 바르트는 어느 세미나에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받았습니다. "박사님, 지금까지 신학을 공부하시면서 가장 심오하다고 생각하신 것은 무엇입니까?" 그는 잠시 생각한 후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예수님이 날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그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처음에 학생들은 지나치게 간단한 그의 대답에 키득키득 웃었지만 얼마 있지 않아 그가 정말 진지하게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고 숙연해졌습니다. 바르트는 심오한 것을 묻는 질문에 단순하게 대답했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는 중요한 두 가지 개념에 주의를 집중시킵니다.
첫째, 가장 단순한 기독교의 안에 사람의 평생을 사로잡을 만한 심오함이 있습니다. 둘째, 아무리 많은 신학 공부를 해도 우리는 결코 하나님 성품의 부요함을 아는 데 있어서 어린아이의 수준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존 칼빈은 다른 비유를 사용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린아이의 혀짤배기소리로 말씀하신다고 했습니다. 부모들이 갓 태어난 아기가 알아듣도록 혀짤배기소리를 내는 것처럼, 하나님도 우리 같은 비천한 존재들과 교제하시기 위해 혀짤배기소리를 내신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도 하나님을 완전하게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총체적으로 이해하지 못하게 하는 뿌리 깊은 장벽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는 유한한 피조물이고 하나님은 무한한 존재시라는 점입니다. 유한한 존재가 어찌 무한한 존재를 이해하겠습니까? 중세 신학자들의 신학 연구에 지배적 원리로 자리 잡은 문구 하나가 있습니다. 바로 "무한한 것을 유한한 것에 담을 수 없다"라는 것입니다. 이 원리는 정통 기독교에서 가장 중요한 교리 한 가지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불가해성"이라는 교리입니다. 이 말은 자칫, 유한한 존재는 무한한 존재를 파악할 수 없으므로 우리는 하나님에 대하여
아무것도 알 수 없다는 식으로 잘못 이해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이해 밖에 계신 분이라면 우리가 하는 모든 종교적인 말이 신학적 헛소리일 뿐이며 우리는 알지도 못하는 신에게 제단을 쌓고 있다는 말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불가해성이란 그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불가해성이란 우리가 하나님을 전혀 알 수 없다는 뜻이 아니라 "우리의 지식이 부분적이고 제한적이어서 총체적으로 완벽한 지식에 못 미친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시를 통하여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 자신에 대한 지식은 실제로 유용하고 적절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계시해주시는 만큼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유한한 존재는 무한한 존재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가 이해하는 것 이상입니다. 성경은 "감추어진 일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속하였거니와 나타난 일은 영구히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속하였나니"(신명기 29:29)라고 말합니다. 마틴 루터는 "감춰진 면'과 "나타난 면"이라는 하나님의 두 가지 면을 언급했습니다. 신령한 지식의 한 부분은 우리 시야로부터 감춰져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이 나타내 주신 빛 안에서 살아갑니다. 그 빛 안에서 살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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