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림의집 2417번째 이야기
진정한 자유..! 사탄은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벗어날 때 자유로워진다고 우리를 속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 구속될 때 진정한 자유를 누리게 됩니다. 죄로부터 자유로워지기 때문입니다.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결코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생각과 영의 영역에서도 죄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 단호한 결단이 요구됩니다. 십자가에 나의 옛 자아를 못 박기로 결단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가까워질수록 우리는 죄의 문제 때문에 괴로워하게 됩니다. 원하는 선은 행하지 않고 원치 않는 악을 행하기 쉬운 우리의 죄 된 속성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 |
나에겐 당신이 더 중요합니다! 한 번은 마이애미에 있는 책임자가 일하다가 분에 못 이겨 욕설과 폭언을 잔뜩 쓴 이메일을 회사 내부용 인터넷을 통하여 전 직원에게 보낸 일이 있습니다. 제가 그 메일을 확인한 것은 밤 11시, 깜짝 놀라서 일단 담당 직원으로 하여금 다 지우게 했습니다. 그래서 메일이 도착한 지 10분 만에 삭제되긴 했으나, 이미 수신자의 절반이 그 메일을 확인한 상태였습니다. 참으로 큰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저는 일단 그에게 시간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닷새 후, 비행기를 타고 가서 그와 식당에서 마주 앉아 그 상황에 적합한 성경 말씀을 읽어주었습니다. 그제야 그는 자기가 한 행동이 옳지 않았음을 깨닫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저는 그에게 괜찮다고 위로한 후에 기도해 주고는 "비행장까지 데려다 달라"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는 그때까지도 제가 그를 위하여 말씀을 읽고 기도해 주려고 일부러 거기까지 왔다는 사실을 몰랐는지 깜짝 놀랐습니다. 그는 제가 다른 볼일을 보러 왔다가 자기를 만났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 그에게 “내가 아무리 바빠도 나에겐 당신이 더 중요하다”라고 말해주었습니다. 그 일이 있은 뒤, 그는 천사처럼 순해져서 일에 전념하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사람들은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자신의 힘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를 알게 됩니다. 만일 제가 그의 경솔한 행동을 질책하고 문책했다면, 그의 행동은 개선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후로도 똑같은 실수를 반복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행동은 개선되지 않은 채 마음에 상처만 남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 앞에 자신을 비추어보고 스스로 잘못을 깨닫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동시에 주변 동료들이 그를 위로하고 격려함으로써 부끄러움을 잊게 하고 자기 일에 전념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필요합니다.(팀하우스 대표 하형록) 그렇습니다. 어떤 사람이 잘못했을 경우, 무조건 야단치거나 그냥 덮어두는 것은 올바른 해결 방법이 아닐 겁니다. 필자는 그 올바른 방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아주 악질적인 사람이 아닌 다음에야, 위의 방식으로 할 경우,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겁니다. 사실, 방법을 알면서도 실행에 옮기기가 쉽지 않은데, 하 사장은 그야말로 언행일치의 사람입니다.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고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만일 하루에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짓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누가복음 17:3-4). ![]() |
기독교의 핵심 진리⑧ 성경 해석 문자화 된 서류를 이해하려면 먼저 그 서류를 해석해야 합니다. 미합중국에는 헌법을 해석하는 임무를 가진 고도로 숙련된 사람이 아홉 명이 있습니다. 그들이 미국의 대법원을 구성합니다. 하물며 성경을 해석하는 것은 미국의 헌법을 해석하는 것보다 훨씬 더 엄숙한 일입니다. 즉 성경 해석에는 세심한 주의와 부단한 노력이 요구됩니다. 성경은 그 자체가 대법원입니다. 따라서 성경 해석의 주된 규칙은 "성경은 자기 자신의 해석자다."라는 원칙입니다. 이 말은 "성경은 성경으로 해석한다"라는 뜻입니다. 이는 성경 해석의 가장 기본 원칙입니다. 애매했던 성경의 어떤 부분이 다른 부분에서 명확해집니다. 즉 성경을 성경으로 해석한다는 것은 성경의 한 본문을 다른 본문과 대립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모든 텍스트는 직접 접해 있는 문맥뿐 아니라 성경 전체의 문맥에 비추어 해석해야 합니다. 덧붙여서, 유일하게 합법적이고 정당한 성경 해석 방법은 문자적 해석 방법입니다. 그러나 문자적 해석에는 많은 혼란이 있습니다. 문자적 해석이란 성경을 적혀 있는 그대로 해석한다는 의미입니다. 다시 말해 성경을 기록할 때 사용되는 모든 어형을 일상적인 규칙에 따라 해석한다는 뜻입니다. 명사는 명사로 동사는 동사로 다룹니다. 시는 시로 다룹니다. 역사적 기사 역시 역사적 사건으로 다룹니다. 비유는 비유로, 과장법을 사용한 부분은 과장된 사실 그대로 다룹니다. 이런 관점에서 성경은 다른 여느 책을 해석할 때 적용되는 규칙에 따라 해석되어야 합니다. 물론 성경은 세상의 책들과 다릅니다. 그러나 그 해석에 있어서는 다른 책들처럼 다루어져야 합니다. 성경이 우리 자신의 욕망이나 선입관에 따라 해석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성경이 실제로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이해해야 하며, 우리 자신의 견해로 보려는 마음을 억제해야 합니다. 그릇된 교리를 성경으로 뒷받침하려는 것은 이단이나 하는 짓입니다. 사탄이 예수님을 죄에 빠지게 하려고 유혹할 때도 성경을 인용했습니다(마태복음 4:1-11). 성경의 근본 메시지는 어린아이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단순합니다. 그러나 말씀의 "단단한 음식"까지 바르게 이해하려면 세심한 주의와 연구가 필요합니다. 성경이 다루고 있는 몇 가지 문제는 너무도 복잡하고 심오해서 뛰어난 신학자들이 다년간의 노력을 투자해서 해석해야 합니다. 여기 건전한 성경 공부를 필요한 몇 가지 해석 원리를 소개합니다. 저 또한 이 원리에 따라 해석합니다. 첫째, 단순한 사실을 서술한 본문은 교훈적 본문에 비추어 해석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모리아 산에서 이삭을 바치는 아브라함 이야기는 하나님께서 처음에는 아브라함이 참 믿음을 가졌을지 모르셨던 것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교훈적 본문에 비추어볼 때 하나님은 전지(全知) 하시다는 것이 명백합니다. 둘째, 암시적인 것은 명시적인 것에 비추어 해석해야 합니다. 이것은 특정 본문이 뭔가를 암시하는 것처럼 보일 때 그것이 성경의 다른 부분에서 언급한 명시적인 어떤 것과 대립된다면 해석에 문제가 있다고 보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셋째, 성경 해석은 논리 법칙에 따릅니다. 예를 들어 모든 고양이에게 꼬리가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어떠 고양이는 꼬리가 없다고 추론할 수 없습니다. 반대로 만약 어떤 고양이에게 꼬리가 없는 것이 사실이라면 모든 고양이에게 꼬리가 있다는 말은 틀린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추론의 기술적 법칙이 아니라 상식의 문제입니다. 성경의 잘못된 해석 대부분이 성경으로부터 끌어온 비논리적 추론 때문에 생겨납니다. 하나님은 구원에 이르는, 천국에 이르는 지도인 성경을 애매모호하게 만드시지 않았습니다. 또 특정인만 알 수 있도록 만드신 것도 아닙니다! ![]() |
![]() |
수아 사람 빌닷의 대답 "수아 사람 빌닷이 대답하여 이르되 네가 어느 때까지 이런 말을 하겠으며 어느 때까지 네 입의 말이 거센 바람과 같겠는가 하나님이 어찌 정의를 굽게 하시겠으며 전능하신 이가 어찌 공의를 굽게 하시겠는가 네 자녀들이 주께 죄를 지었으므로 주께서 그들을 그 죄에 버려두셨나니 네가 만일 하나님을 찾으며 전능하신 이에게 간구하고 또 청결하고 정직하면 반드시 너를 돌보시고 네 의로운 처소를 평안하게 하실 것이라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욥기 8장 1-7절). 본문은 이제 둘째 친구인 수아 사람 빌닷의 대답으로 시작합니다. 그는 교리적 공의의 잣대로 욥의 말을 평가합니다. 그러나 위로를 주지는 못합니다. 수아 사람 빌닷이 욥의 불평을 듣고 질책합니다. 빌닷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공의를 확신하며 하나님을 찾으라고 합니다. 전능하신 이에게 간구하고 또 청결하고 정직하면 하나님이 반드시 돌보실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렇게 할 때 시작은 미약하지만 나중은 심히 창대하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욥은 지금 무슨 죄를 지어서 고난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빌닷의 진단은 원일을 잘못 파악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정의를 굽게 하시겠는가(1-3절). 교리적 교훈이나 가르침만으로는 진정한 위로가 되지 못합니다. 빌닷은 엘리바스보다 강력한 어조로 욥을 비판합니다. 그는 2절, "어느 때까지 거센 바람 같은 말을 계속하겠는가?라고 다그칩니다. "어느 때까지"(7:19)와 "바람"(6:26)은 욥이 탄식하며 언급한 말을 인용한 것입니다. 빌닷은 "거센 바람"이라고 하며 욥의 말이 제어할 수 없이 거칠고 위험천만해 바람같이 사라질 공허한 말임을 드러냅니다. 빌닷은 하나님이 3절에서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말합니다. 하나님은 정의와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그의 "하나님이 어찌 정의와 공의를 굽게 하시겠는가?"라는 수사적 질문은 하나님은 절대 그런 분이 아님을 강조합니다. 빌닷이 욥이 당하는 고통의 문제에 대한 답은 이렇습니다. 하나님은 그릇된 일을 행하시는 분이 아니기에, 욥과 그의 가족이 당하는 모든 고통은 결국 그들의 탓이라는 것입니다. 빌닷의 말은 옮은 말처럼 들립니다. 하지만 빌닷의 권면에는 선하신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에 "왜 비극과 애매한 고난이 늘 존재해 왔는지"에 대해 고민한 흔적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고민 없이 말하는 정답은 해결책이 아닌 폭력이 되기 쉽습니다.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4-7절). 성도는 절대화된 교리로 하나님의 정의를 제한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빌닷은 자신의 확신을 욥의 자녀들에게도 적용합니다. 하나님은 정의와 공의를 굽게 하시는 분이 아니기에 욥의 자녀들의 죽음에도 이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아직 살아 있는 욥에게는 5-6절, 하나님을 찾고 자비를 구함으로 회복을 경험하라고 촉구합니다. 이어서 그 유명한 말을 합니다. 7절,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이 유명한 성구는 욥기 전체를 볼 때 빌닷의 말은 사실로 증명되었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확신하는 교리의 틀 속에 갇힌 빌닷의 말이 욥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욥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회개를 전제로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 욥은 그의 죄 때문에 고난을 받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고난에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테스트하실 경우, 사탄이 주는 경우, 마지막이 자신의 죄로 인한 고난입니다. 이 모두를 염두에 두어 판단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기계적으로 판단하고, 현재 고난에 대한 이해 없이 미래를 전망하는 것을 맹목적 신앙으로 치달을 수 있습니다. "영원한 정의와 공의로우신 하나님 아버지,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만으로 하나님의 공의를 함부로 단정 짓는 일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깨닫습니다. 우리의 고난은 위로받기 원하면서도 다른 사람의 고난은 판단하려고 했던 생각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의 긍휼을 함께 구하며 고난에 동참하는 진실한 친구가 되게 하시옵소서. 어려운 이웃을 대할 때 공감과 배려를 바탕으로 마음을 살피고 그를 위해 기도해 주며, 그의 필요를 채워줄 수 있는 선한 사마리아인이 되게 하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
![]() |
깨어진 상황에서 순종하기 언젠가 우리 아이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아빠, 어렸을 때 저를 때려서라도 피아노를 가르치시지 왜 안 그러셨어요?" 그래서 대답해 주었습니다. "그때는 아무리 하라고 해도 너는 안 하겠다고 했어." 우리도 종종 비슷한 질문을 하나님께 합니다. "하나님, 저를 쳐서라도 하나님 일에 복종시키시지 왜 그냥 놔두셨나요?" 여기에 중요한 원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기다림 가운데 순종하지 않으면 하나님 뜻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우리가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그분 뜻이 내 삶에 나타나기도, 나타나지 않기도 합니다. 이렇듯 시간 속에서 인내하며 순종하는 자만이 알 수 있는 것이 하나님 뜻입니다. 이는 마치 파도타기와 같습니다. 파도를 잘 타는 사람은 파도가 오기를 기다렸다가 바다의 흐름에 몸을 맡깁니다. 그들은 파도에 맞서는 것이 아니라 파도의 흐름에 자신을 맡기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성령님의 인도하심의 자신을 맡기는 것이 진정한 순종입니다. 깨어진 상황, 그러니까 내 뜻대로 안 되고, 내 힘이 부족함을 느꼈을 때, 도무지 승리가 보이지 않을 때에도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기대하고 그분의 뜻을 물어 그 뜻대로 살아내는 것이 진정한 순종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우리 뜻이 깨지는 경험을 합니다. 저 역시 그랬습니다. 하나님은 제가 정말 하고 싶다고 생각한 일을 참 많이 막으셨습니다. 그러나 그 일로 제가 절망하게 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주어진 상황에서 순종했을 때 하나님이 그 일을 막으셨던 이유를 발견하곤 했습니다. 지금은 "왜 이렇게 일이 안 풀리지?"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깨닫습니다. 내가 답답해하며 투정했을 때 하나님이 다른 일을 준비하고 계셨음을, 그리고 그 일이 놀라운 기적임을 말입니다. 우리 모두 어떠한 상황에서도 순종하는 삶이 됩시다!(김병삼 목사) ![]() |
조국의 통일이 오게 하시옵소서! 저희의 드리는 예배를 기뻐 받으시는 하나님 아버지! 죄인들을 불러 주셔서 거룩한 예배에 동참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저희들은 항상 주님의 사랑을 비껴갈 수 없는 존재들임을 깨닫습니다. 그 사랑 앞에 감격하여 가난한 마음으로 예배드리오니 상한 심령을 받아주시옵소서. 사랑의 주님! 여전히 저희들을 주님 앞에 내놓을 것은 부끄러운 죄밖에는 없습니다. 주님께 칭찬받고, 상급 받기 어려운 행동을 하며 살았음을 고백합니다. 늘 육신의 생각에 이끌려서 주님의 뜻과는 동떨어진 생활을 하는 저희들을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회개하오니 크신 긍휼로 품어주시고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 이 시간에 사랑하는 조국을 위하여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추운 겨울만큼이나 아직도 이 나라는 분단이라는 시린 아픔을 안고 있습니다. 아직도 남과 북이 서로 대치된 채 늘 전운이 감돌고 있습니다. 주님! 이제껏 조국의 통일을 위하여 눈물 뿌려 기도한 성도들의 부르짖음을 기억하시고 어서 속히 이 민족의 통일을 앞당겨 주시옵소서. 국민의 혈세를 더 이상 군비증강에 쏟는 일이 없게 하시고, 오히려 고통받는 자들을 헤아리고 도와주는 일에 쓰이게 하시옵소서. 주님! 지금 이 땅에 분단된 나라는 우리나라뿐입니다. 아직 종전이 되어 있지 않아 언제 전쟁이 일어날지 모른 상황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다시는 이 강산 이 강토에 아벨과 같은 억울한 피가 쏟아지지 않도록 전쟁을 막아주시고, 남과 북이 서로 하나가 되어 영원한 평화가 아침 이슬같이 내려지는 이 민족이 될 수 있도록 긍휼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오늘도 주의 전을 찾은 성도들 가운데 상처 받고 마음 아파하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질병으로 고통받는 성도들도 있습니다. 주님의 위로와 치료하심을 경험할 수 있는 이 은혜의 시간이 되게 하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
초대교회는 어떤 모습이었을까?① 신약성경에 등장하는 가정교회는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그리스도인들은 신자들의 모임에서 정확히 무엇을 했을까요? 그들은 공동체로 함께 살아가면서 서로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요? 당시 초대교회 대부분의 가정교회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핵심사항은 무엇이었을까요? 이번 주제는 초대교회 공동체의 모임 형식을 먼저 검토한 후 가정교회를 특징짓는 여러 요소들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닮아야 하고 닮을 수 있는 초대교회 정신과 특징 요소들을 지금 이 시대 가정교회에 어떻게 가져올 것인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교회 모임의 원칙으로 "다 함께 참여하고 서로에게 배운다."입니다. 1세기 교회 모임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그들은 예배 중심, 은사 중심, 전도 중심 또는 가르침 중심이었을까요? 우리는 이런 질문들에 답할 수 있습니다. 교회 모임의 형식과 목적에 대한 명료한 지침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신자들의 모임에 대한 실황중계식의 자세한 설명은 없지만, 성경의 몇몇 본문에서 우리는 교회 운영의 두 가지 주요 원칙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참여와 상호작용"입니다. 참여는 모든 사람이 모임에 무엇인가를 기여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소수의 적극적 참여자가 수동적인 구경꾼들을 이끌면서 진행되는 형식보다는 모든 사람이 하나님이 주신 능력과 재능을 사용하면서 차명할 수 있는 기회와 그에 대한 책임을 나누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신자들이 모이는 목적과 특징에 대해 매우 길게 얘기한 다음, 성령이 인도하시고 참여자들에게 동등한 기회가 주어지는 모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요약했습니다. "그런즉 형제들아 어찌할까 너희가 모일 때에 각각 찬송시도 있으며 가르치는 말씀도 있으며 계시도 있으며 방언도 있으며 통역함도 있나니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고전 14:26). 바울은 좀 더 자세한 은사들의 목록을 제시합니다. 그런 모습은 공동제가 계속될수록 더욱 활발하게 나타났을 것입니다.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사람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사람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고전 12:7-10). 상호작용은 모임 중에 사람들이 서로에게 배우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 명의 지도자와 성도들 사이의 관계가 주가 되지 않고, 각 사람들 사이의 관계가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교회가 함께 모일 때 모든 사람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배우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교회가 함께 모일 때 모든 사람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배우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서로"라는 용어로 나타납니다.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엡 5:19-2).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히 10:25). 초대교회의 모임은 일종의 영적인 "저녁식사 파티"와 같아서 모든 사람마다 무엇인가를 가져오면 다른 사람들은 거기서 유익을 얻습니다. 신약성경 형태의 교회 모임은 각 사람에게 그들의 경험을 나누거나 가르치거나 예언하거나 노래를 부르는 등과 같은 영적 선물을 활용할 기회를 줍니다. 한 사람만의 쇼라든지 일방통행식 대화, 또는 형식적인 예식 대신 모든 사람의 영적 은사가 발휘되는 자연스럽고 참여 지향적인 모임이었습니다! ![]() |
![]() ![]() |
자기 마음대로 하나님을 섬긴 죄! 우리는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는 것, 하나님의 말씀과 안전거리를 두는 것, 아담이 하나님의 말씀을 선악의 표준으로 삼지 않고 아담 자신을 선악의 표준으로 삼은 것처럼 자기 마음대로 하나님을 섬긴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찔리고 채찍에 맞은 것은 우리 죄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을 죽여놓고 그 아들의 아버지인 하나님께 사과하고 용서를 구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예수 죽였음을 고백하고 전심으로 사죄해본 일이 없습니다. 이제는 마음을 열고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 나아가 모든 죄를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 |
“예림의집”이란? 예림의집은 “예수님께서 임하셔서 거하시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세상 가운데로 보내시면서 마태복음 28장 29절,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임재를 통하여 실제로 그리스도인에게 오셔서 그리스도인의 모든 삶을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예림의집은 예수님의 사역에 동참시키시는 주님의 그 부르심에 순종하여 세워진 후원 모임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으로 주님이 주신 권능으로 담대히 나아가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영접하는 우리의 마음을 거처로 삼으십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요한복음 14장 23절,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여러분은 사도행전 2장을 기억하실 겁니다. 오순절에 예수님이 약속하신 성령님이 그들에게 임하시자 그들은 예수님께서 전에 하신 말씀의 성취를 생생하게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마음에 거하시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몸과 마음을 비롯한 전인격이 예수 그리스도의 거처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성령님이 제 마음속에 들어오셔서, 그분을 섬기고 거기서 그분과 즐거워하고 그분을 알아가는 것이 가장 큰 축복임을 고백합니다. 그분을 제 마음에 모셨던 그날 저녁을 저는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1986년 여름, 제가 고 2 때 청소년 연합 여름 수련회 저녁 집회 설교시간에 일어난 일입니다. 주님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사건은 얼마나 감격적인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주님의 임재하심은 제 중심에서 발생한 엄연한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그 후로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모신 것에 대해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영원히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그리스도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새로운 삶이 시작된 나는 “주님, 저의 모든 것은 주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뜻대로 사용하옵소서!”라고 고백했습니다. 물론 주님은 기꺼이 저의 고백을 받으셨고, 저를 주님의 영광된 사역에 동역자로 삼으셨습니다. 주님을 마음에 모신 저는 날마다 주님을 찬송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저의 삶에서의 주님과의 동거가 시작되었고, 예림의 집의 사역도 시작되었습니다. 예림의집의 "예림"은 세 가지 깊은 의미를 가집니다. 첫째, 예수님이 임재하신 마음, 모임이란 뜻이고, 둘째, 예수님의 그림자로 빛과 소금으로 살겠다는 마음가짐이며, 셋째, 예수님의 재림을 기대하고, 기다리며, 준비한다는 뜻입니다! 이 세 가지의 정신을 모토로 하여 선교사와 개척교회를 돕고 있으며, 온라인 사역과 찬양사역, 그리고 21세기 새로운 교회의 모델인 가정교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예림의집 사역을 소개합니다 첫째, 온라인 선교사역 ①다음 카페 “예림의집”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회원가입을 하시면 그 순간부터 저의 예림의집 사역이 동참하게 됩니다. 현재 회원 수 1300여 명으로 이들이 잠정 후원자가 되어 기도 후원, 물질 후원, 재능기부 등을 하게 됩니다. 카페를 매개로 하여, 서로의 비전과 기도 제목을 나누고, 힘을 합쳐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해 갑니다. 저의 사역에 동참하시길 원하시는 분은 다음 검색 창에 예림의집을 치세요! ②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은 따로 회원 가입을 할 필요 없이 언제, 어디서나 방문하여 필요한 정보와 신앙 글들을 접할 수 있습니다. 검색어를 통해 접근하여, 현재 다음 블로그 80만여 건, 네이버 블로그 40만 건의 방문자 수를 기록 중입니다. 다음 카페 예림의집과 연동되어 하루 평균 20건 이상의 정보가 업로드되어 현재 4만 편이 넘는 좋은 글들을 접하실 수 있습니다. ③페이스북 활동(김정민) 요즘 활성화되어있는 페이스북 활동을 통하여 온라인 선교의 지경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저를 친구 초대해 주시고 팔로우해 주시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현재 25개의 그룹을 만들어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친구들을 만나고, 복음을 전하며, 선교 동원가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제 이름 "김정민"을 많이 친구 추가해 주세요! ④유튜브 방송 "예림의집TV" 복음 전파와 영적 무장의 방편으로 유튜브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매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6일 방송하며, 새벽 기도회(월-금 오전 5:00), 예림의집 이야기(월-금: 오후 5:00),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토: 오후 5:00)을 실시간 방송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주일예배, 짤 영상 모음 등 영적 무장과 복음 전파에 관련된 영상들을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검색창에 "예림의집TV"를 치시고 많이 오셔서 ✔️구독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둘째, 선교사/개척교회 후원 사역 이 사역은 찬양사역을 하던 저에게 새로운 비전을 주셔서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게 하신 사역입니다. 선교사님들과 개척교회를 바르게 후원하기 위해서는 제가 먼저 선교와 교회 개척 사역에 헌신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예림의집 카페 회원들을 포함한 그동안 주께서 연결해 주신 후원자 1800여 명이 함께 감당해 가는 사역입니다. 첫 번째, 기도 후원 사역은 주께서 연결해 주신 선교사님이나 개척교회를 위해 40 명의 기도 용사를 세우는 사역입니다. 제1호 필리핀 “김성재 선교사님”과 서울 상도동 “주님의 교회”를 필두로, 현재 26명의 선교사님과 20개의 개척교회를 기도로 후원하고 있고, 그 지경을 넓혀 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물질 후원 사역으로 앞에서 말씀드린 기도 후원자들 중에 하나님께서 자원하는 마음을 주신 분들이 물질 후원을 하게 됩니다. 재정 후원은 선교사님과 개척교회 목회자 가정의 기초 생활비를 우선적으로 지원하도록 원칙을 세웠습니다. 물품 후원은 선교나 교회 개척에 필요한 다양한 물품들을 자원하여 후원하게 됩니다. 특히 도서 후원은 성경책, 신앙 도서, 아이들 학습 도서 등. 작은 도서관을 만들 수 있도록 후원합니다. 세 번째, 재능기부 사역은 주님께서 주신 모든 달란트를 활용하여 선교와 교회 개척을 지원하는 사역입니다. 예를 들어, 선교 지원팀, 여름 성경 학교 진행팀, 찬양팀, 자원봉사단 등이 있습니다. 모든 재능 기부 사역은 “자비량”을 원칙으로 합니다. 특히 전도 지원팀을 구성하여 개척교회를 지원합니다. 이 사역을 통하여 새로운 선교사들과 교회 개척자들이 새워질 것입니다. 선교지나 개척 현장에서 필요한 프로젝트 그룹을 조직하여 지원합니다. 셋째, 찬양 세미나/찬양 집회 사역 제가 약 30년간 해오던 찬양 사역의 일환으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찬양을 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특별히 부여하신 사역입니다. 아직도 찬양에 대한 무지와 편견으로 주님을 맘껏 찬양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제가 경험한 찬양에 대한 놀라운 비밀을 나누는 사역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잠시 멈추고 준비 중이며 내년부터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이 2018년 가을에 발간되었습니다. 저는 비록 짧은 시간 동안 여러분을 만나지만, 찬송은 너무나 소중하기에 글로써 여러분들의 곁에서 치침이 되어드리고자 합니다. 찬송에 대한 저의 지난 30년간의 찬양사역의 총결산의 책입니다. 본 책의 내용은 앞서 설명한 다음 카페와 블로그 예림의집과 페이스북 그리고 토요일에 방송되는 찬양 방송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통해 미리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특히 개척교회는 요청하는 수량을 무료로 제공해 드립니다. 예림의집 사역에 동참하는 방법 첫째, 유튜브 <예림의집TV>방송을 봐주시고,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이나 페이스북 <김정민>의 글을 봐 주시는 것만으로도 일차적으로 동참하는 방법입니다. "구독/좋아요/홍보"까지 해 주시면 더욱 좋겠죠. 둘째,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오셔서 회원이 되어 주시고, 여러 게시판의 글을 통해 영성 훈련을 하시고, 여러분의 삶 속에 적용하셔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십시오. 좋은 글들과 댓글을 올려주시면 더욱 좋겠지요. 셋째, 다음 카페 <사역>코너에 있는 찬양사역/선교후원사역/개척후원 사역에 적금 동참하시는 방법입니다. 제일 중요한 기도 후원과 성령님이 인도하심을 따라 재정과 재능 후원에 동참하시면 더욱 좋습니다. 넷째, 여러분이 섬기는 공동체에 저를 초청하는 방법입니다.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3개월 전에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다섯째, 제가 펴낸 책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구입하셔서 정독하시는 것입니다. 포털 검색창에 책 이름을 치시고, 온라인상으로는 구매하시면 됩니다. 정독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하십시오! 김정민 목사 010-9442-6928 yerim21@hanamil.net 다음 카페 예림의집: http://cafe.daum.net/HomeOfYERIM 다음 블로그 예림의집: http://blog.daum.net/yerim21 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https://blog.naver.com/yerimess 유튜브 예림의집TV: https://www.youtube.com/channel/UCarpDnpNgU0RQn9ksDdSPPw 후원 계좌: 농협 3560686657493(예금주: 김정민) |
예림의집 김정민 목사 올림.
'예림의집 메일 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예림의집 2419번째 이야기 (0) | 2021.10.19 |
---|---|
예림의집 2418번째 이야기 (0) | 2021.10.18 |
예림의집 2415번째 이야기 (0) | 2021.10.13 |
예림의집 2414번째 이야기 (0) | 2021.10.12 |
예림의집 2413번째 이야기 (0) | 2021.10.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