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림의집 메일 모음

예림의집 2414번째 이야기

예림의집 2021. 10. 12. 14:02

예림의집 2414번째 이야기

사색의 바다

진정한 선교는..!


준비를 열심히 나는 것은 좋지만, 철저한 준비가 오히려 사람들을 지치고 힘들게 할 때도 있습니다. 아울러 더 크게는 하나님이 일하실 기회를 모두 차단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계획한 방법만을 통해 역사하시도록 제한하지 말아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은 결코 우리의 계획에 제약을 받고 일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진정한 선교는 하나님이 자신을 그 땅에 보내신 이유를 하나님께 묻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자신을 맡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것이 일상 속의 선교임을 있지 맙시다!

 

예림가족 이야기

아이들이 그렇게 자라는 모습이..

어느 단체에서 의사, 영양 학자, 약사 등 1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그들이 절대 안 마시는 식품 1위는 탄산음료였습니다. 탄산음료에는 당분과 인공첨가물이 가득하답니다. 콜라 2캔만 마셔도 하루 당 섭취 권장량을 훌쩍 넘긴다고 합니다. 우리 아이들이 고등학교에 다닐 때, 이렇게 물은 적이 있습니다. “만일 내일 학교 시험이 있는데, 열심히 공부하면 A를 받을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C를 받을 가능성이 높아. 그래서 공부를 하려고 하는데,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어. 매우 다급한 상황이었어. 그 친구의 부모님이 부부 싸움을 해서,
아버지는 이혼하겠다면서 나가버리고, 어머니도 상처를 받아 ‘집에서 나가겠다.’고 해. 그러면서 친구가 서럽게 울어. 그럴 때, 너희는 어떻게 하겠니?” 이에, 첫째 딸은 ‘가서 위로해 주어야 한다.’고 했고, 고2인 둘째는 ‘공부를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그런 경우가 생겼을 때는 꼭 희생을 각오해야 한다. C를 받아도 괜찮아. 왜냐하면, 한두 번 시험 잘못 봤다고 해서, 그것으로 인생이 잘못되지는 않아!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기 때문에 친구를 위하여 자기 시간을 희생할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이 그것을 매우 귀하게 보실 거야. 또, 그 친구를 위하여 시간을 희생하는 것은 단순한 희생이 아니다. 그 친구가 나중에 어려움을 극복하고 더 성공한다면, 훗날에 너희에게 큰 도움이 될 수도 있다. 그렇게 사람은 서로 돕고 사는 거다. 정말 필요한 사람은 ‘공부 잘하고 실력 있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들이 좋아하고 믿는 사람’이다.” 아이들이 저의 말을 이해했는지, 실제로 자기 자신을 희생하면서 살고자 노력합니다. 우리 집에는 손님이 많이 옵니다. 그때마다, 아이들은 스스럼없이 자기 방을 손님에게 내주고 자매끼리 함께 방을 쓰거나, 학교 기숙사에 있는 친구와 지내기도 합니다. 그렇습니다. 아이들이 그렇게 자라는 모습이 저에게는 더없이 감사합니다.(하형록)

그렇습니다. 아시다시피, 십자가는 희생과 사랑을 의미합니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목숨을 희생함으로써 인류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고 할 때, 이러한 예수님의 모습을 본 받아 살겠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이런 말을 하는 저 자신부터가 심히 부끄럽습니다. 예수를 본받아 희생적인 삶을 살고 있노라고 말할 자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번 용기 내어 실천해 보려고 합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마가복음 8장 34절 말씀입니다!

 

단장 칼럼

기독교의 핵심 진리⑤ 하나님의 법


하나님은 자신 외에 어떤 법에도 구속받지 않으십니다. 즉 하나님께서 복종해야 하는 독립적이고 중대한 법칙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자신에 대한 하나의 법이십니다. 쉽게 말하면 하나님께서 자신의 도덕적인 성품을 따라 행동하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은 도덕적으로 완전할 뿐 아니라 완전함의 근원적인 표준이 됩니다. 하나님의 행위는 완벽합니다. 그의 성품이 완벽하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님은 얹나 자신의 본성을 따라 행동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절대로 자의적이거나 독단적이거나 변덕스럽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올바르게 행하십니다. 하나님은 피조물인 우리 또한 옳게 행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경에서 드러내신 자신의 도덕 법칙을 따라 살라고 요구하십니다. 하나님의 법은 궁극적인 의의 기준이며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궁극적인 규범입니다. 하나님께는 우리를 다스리시는 통치자로서 우리에게 의무를 부과하시고, 순종을 명령하시고, 우리의 양심을 구속하실 권한이 있으십니다. 또한 우리가 그의 법을 어기는 불순종에 대하여 징계하실 능력과 권리를 갖고 계십니다. 죄는 하나님의 법에 불순종하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어떤 법은 하나님의 성품에 직접적인 기반을 둡니다. 이러한 법은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에서 영속적이고 상호 교통하는 요소들을 반영합니다. 다른 법은 사회의 일시적 상황을 위한 것들입니다. 어떤 것은 절대적이고 영구적인 반면, 어떤 법들 가령 이스라엘의 음식과 의식에 대한 규례 등은 역사적인 원인 때문에 하나님께서 무효화하실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오직 하나님 자심만이 그러한 법들을 파기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는 결코 자율적이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우리 자신의 법을 따라 살 수 없습니다. 사실 그럴 자격이 없습니다.
인류의 도덕 상태는 타율의 지배를 받으며 다른 사람의 법에 따라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 타율은 신에 의한 통치, 즉 하나님의 법입니다. 즉 신율입니다. 자율은 자신의 법, 타율은 다른 사람의 법, 신율은 하나님의 법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주를 법으로 다스리시며 하나님의 도덕법은 십계명에 나타나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성품의 법에 따라 행동하십니다. 하나님은 그의 도덕법을 우리 양심에 나타내시고 말씀으로 계시하십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그의 법을 파기할 권한이 있으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하나님의 법을 딸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새찬송가 부르기

 

오늘의 Q.T.

이해하고 동정하는 진정한 친구


"낙심한 자가 비록 전능자를 경외하기를 저버릴지라도 그의 친구로부터 동정을 받느니라 내 형제들은 개울과 같이 변덕스럽고 그들은 개울의 물살 같이 지나가누나 얼음이 녹으면 물이 검어지며 눈이 그 속에 감추어질지라도 따뜻하면 마르고 더우면 그 자리에서 아주 없어지나니 대상들은 그들의 길을 벗어나서 삭막한 들에 들어가 멸망하느니라 데마의 떼들이 그것을 바라보고 스바의 행인들도 그것을 사모하다가 거기 와서는 바라던 것을 부끄러워하고 낙심하느니라 이제 너희는 아무것도 아니로구나 너희가 두려운 일을 본즉 겁내는구나 내가 언제 너희에게 무엇을 달라고 말했더냐 나를 위하여 너희 재물을 선물로 달라고 하더냐 내가 언제 말하기를 원수의 손에서 나를 구원하라 하더냐 폭군의 손에서 나를 구원하라 하더냐 내게 가르쳐서 나의 허물된 것을 깨닫게 하라 내가 잠잠하리라 옳은 말이 어찌 그리 고통스러운고, 너희의 책망은 무엇을 책망함이냐 너희가 남의 말을 꾸짖을 생각을 하나 실망한 자의 말은 바람에 날아가느니라 너희는 고아를 제비 뽑으며 너희 친구를 팔아 넘기는구나 이제 원하건대 너희는 내게로 얼굴을 돌리라 내가 너희를 대면하여 결코 거짓말하지 아니하리라 너희는 돌이켜 행악자가 되지 말라 아직도 나의 의가 건재하니 돌아오라 내 혀에 어찌 불의한 것이 있으랴 내 미각이 어찌 속임을 분간하지 못하랴"(욥기 6장 14-30절).


본문 중 18절, "대상"은 낙타나 말에 상품을 싣고 떼를 지어 먼 곳을 다니면서 장사하는 사막 지역의 상인을 가리킵니다. 19절, "데마"는 아카비만 남동쪽에 위치한 오아시스 도시로 대상의 중심지였습니다. "데마의 떼들"은 북아라비아 상인들을 가리킵니다. 욥은 자신을 동정하지 않는 친구들을 개울처럼 변덕스러우며, 두려운 일을 보고 겁낸다고 말합니다. 욥은 자신에게 허물이 있으면 가르쳐 보라고 하며, 친구들을 향해 고아를 제비 뽑고 친구를 팔아넘기는 자들이라고 질책합니다. 욥은 자신의 의가 건재하니 친구들에게 돌아오라고 요청합니다.


아무것도 아님이 된 친구들(14-21절).
어려울 때 함께하는 친구가 진정한 친구입니다. 14절은 다양한 번역이 가능합니다. 개역개정 성경의 의미와 같이 "진정한 친구는 그가 하나님 경외함을 더는 지속할 수 없을 때도 동정을 버리지 않는다."라고 번역할 수도 있고, "친구를 떠난 친구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에서도 떠난다."라고 번역할 수도 있습니다. 어떤 식으로 이해하든 어려울 때 힘이 되어야 하는 친구의 도리를 강조한다는 점에서는 동일합니다. 욥은 자신이 겪는 부당한 고난을 누군가 알아주기를 특히, 친구들이 알아줄 것을 기대했습니다.
그래서 친구들이 찾아왔을 때, 그는 따뜻한 위로를 기대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욥은 15절, 친구들을 개울(와디)에 비유합니다. 건기와 우기의 변화가 심해 그냥 찾아갔다가는 낭패를 보기 십상인 "와디"가 친구들과 같다는 것입니다. 욥은 21절, 친구들이 그에게 "아무것도 아님(nothing))이 되었다고 일침을 가합니다. 이는 친구란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하는지를 일깨워줍니다. 누군가의 아픔을 알아준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가까웠던 친구들의 태도에서 욥은 배신감을 느낀 것입니다. 고통당하는 이에게 우리는 어떤 친구로 인식될지 묵상합시다.


친구들아, 제발 돌아오라(20-30절).
친구들이 욥에게 보여준 우정은 급하게 흘러, 필요할 때 길어서 쓸 수 없는 "개울의 물살" 같았습니다. 가장 필요한 것을 채워 주는 것이 진정한 우정이요 사랑입니다. 욥이 친구들에게 원한 것은 물질적 도움이나, 원수의 손에서 구원하는 것 같은 부담스럽고 위험한 행동이 아닙니다. 그는 단지 24절, 자신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 깨닫게 해 달라고 합니다. 25절, 긍휼 없는 옳은 말이나 책망은 고난 당하는 자에게 상처를 주기 쉽습니다. 또한 26절 낙심한 자의 말을 가지고 문제를 삼아서는 안된다고 말합니다.
그의 말은 "바람"과 같기 때문입니다. 바람은 거칠고 정제되지 않은 말을 가리키는 그림 언어입니다. 고난 당해 낙심한 자에게 필요한 것은 이해와 동정 그리고 공감입니다. 욥은 친구들에게 28-29절, "돌아오라"라고 호소합니다. 지금의 자신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태도를 버리고 진정한 친구로 돌아오라고 애타게 요청합니다. 이 세상은 마치 지옥 같아서 사방에 고통당하고 괴로워하며 절망에 빠진 사람들이 넘쳐납니다. 그들은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우리가 고통당하는 친구의 필요가 무엇인지 잘 알기 위해서는 어떤 태도가 필요할까요?


"우리의 진정한 친구가 되어 주시는 주님! 우리가 늘어놓았던 틀에 박힌 조언이나 긍휼 없는 책망이 고통당하는 사람을 더 괴롭히는 일이었음을 깨닫습니다. 우리가 어떤 모습이든지 우리의 진정한 친구가 되어 주시는 주님을 바라봅니다. 우리 속에 주님의 마음을 넘치게 부어 주시고, 주님의 뜨거운 사랑의 열정을 채워주셔서 강퍅한 태도를 버리고 잠잠히 함께하는 위로자가 되게 하시옵소서. 가장 강력한 도움을 그를 위하여 기도하는 것이니 기도의 중보자가 되게 하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찬양의 향기

 

그리스도인의 삶

내가 달려야 할 십자가..!


일본에서 처음으로 순교자가 생긴 도시는 나가사키입니다. 20명의 일본인 그리스도인과 6명의 선교사가 교토에서 출발해 한 달 동안 끌려다니며 고통을 받다가 마침내 나가사키에 도착해서 십자가 처형을 당했는데, 이들을 기념한 곳이 "일본 26 성인 기념관"입니다. 그곳에는 26개의 동상이 있는데 이 중 3개는 당시 열두 살, 열세 살, 열다섯 살에 순교당한 어린아이 동상입니다. 그 어린 것들이 부모와 같이 처형을 당한 것입니다. 이들 중 한 아이가 자기 눈앞에서 부모가 십자가에 달리는 것을 보고 핍박하는 자에게 이렇게 물었다고 합니다.
"내가 달려야 할 십자가는 어디에 있습니까?" 또한 6명의 선교사 중 필리핀에서 온 로렌조 루이스는 "나는 믿음을 버리느니 차라리 천 번을 죽겠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세상이 우리를 미워하고 이상히 여겨도,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과 기쁨이 됩니다. 이것이 신앙의 역설입니다. 믿음으로 하나님께 삶을 의탁하십시오. 그리고 그때 나타나는 하나님 영광을 즐거워하십시오. 비록 고난의 길일지라도 끝까지 믿음의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을 사십시오. 우리 앞에 놓인 길은 막연하고 불확실하기만 합니다. 캄캄한 망망대해와도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실 영광과 기쁨은 분명하기에 우리는 말씀을 따라 담대히 나아갈 수 있습니다. 오늘도 그 길을 걷고 있는 수많은 하늘 나그네를 통해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나그네인 그리스도인이 할 일은 본향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과 눈을 하나님께 고정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달려야 할 십자가에 주님께서 달리셨으니 우리는 나의 십자가를 지고 그분을 따르는 것만이 최선입니다. 우리의 여정은 결코 쉽고 아름답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고 영광스러운 그 길을 걸어갑시다!(진재혁 목사)

 

기도의 횃불

목표와 표어를 이루게 하시옵소서!

자비로우신 하나님 아버지! 저희를 예배자로 세워 주셔서 주님을 찬양하며 경배할 수 있게 하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저희 각 사람의 마음을 성령님이 주장하여 주셔서 오전과 오후에 예배할 수 있게 하시니 얼마나 감사한지요. 저희를 향하신 주님의 은혜와 사랑임을 믿습니다. 일평생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면서 주어진 예림의집TV 방송을 통해 신앙의 삶으로 이끌어 주시옵소서. 사랑의 주님! 이 시간,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마주하고 있으니 저희에게 많은 부끄러운 모습이 있음을 고백합니다. 주님 앞에 내놓을 것은 죄로 얼룩진 심령밖에 없습니다.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의 넓으신 사랑으로 품어주시고 새롭게 하시는 주님의 긍휼을 덧입게 하시옵소서. 온전한 주님의 자녀로 이끌어 주시옵소서. 은혜로우신 하나님 아버지! 저희 공동체가 주님의 뜻을 이룰 수 있는 공동체가 되기를 소망하며 2021년 시작하면서 세웠던 목표와 표어를 돌아봅니다. 우리가 한마음 한뜻으로 말씀과 기도와 찬양으로 영적 무장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순종과 섬김으로 주님이 원하시는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로 세워지게 하시옵소서. 아직 3개월이 남았습니다. 더욱 분발하여 열심히 달려가겠나이다.
목표와 표어를 이루어 내기 위하여 헌신과 충성을 아끼지 않게 하시고, 맡겨진 직분과 직책을 따라 부끄럼 없이 책임을 다할 수 있게 하시옵소서.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한 일이라면 가리지 않고 앞장서서 일할 수 있는 저희 모두가 되게 하시고, 더욱 엎드려 기도하며 더욱 겸손하여 희생으로 주님을 본받을 수 있는 신앙생활이 되게 하시옵소서. 지금도 사탄은 삼킬 자를 찾으려고 극성을 부리고 있지만, 성령으로 충만하여 사단의 권세와 계략을 결박할 수 있게 하시고, 말씀을 붙잡고 미혹의 영을 잘 분별하여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게 하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가정교회를 말하다

초기 성도들은 어디에서 모였을까?

또 다른 저의 관심사는 "초대교회 성도들은 어디에서 어떻게 모였을까?"였습니다. 그에 따른 성경적 대답은 이렇습니다. 먼저는, 개인의 집(가정)에서 모였습니다. 복음서는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이 다른 여러 장소 가운데서도 집에서 일상적으로 이루어졌다고 기록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실 때 한 집의 1층, 가축의 구유에 누이셨습니다. 그리고 아기로 태어나신 예수님은 집에서 경배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장모를 집에서 치유하셨습니다. 최후의 만찬도 집에서 이루어졌고, 집으로 몰려온 무리들에게 예수님은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복음을 전하도록 제자들을 짝지어 보내시면서 각 동네와 각 지역에 들어가 집집마다 다니라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집집마다 다니며 그들이 전하는 메시지에 응답하는 "평화의 사람"을 찾고 그 사람의 집을 영적 전초기지로 삼도록 지시를 받았습니다. 개인의 집(가정)은 또한 초기 교회의 삶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오순절 직후에 사도 베드로와 예루살렘 교회는 매일 집에서 집으로 다니며 모임을 가졌습니다. 그들은 집에서 같이 음식을 먹고 기도하며, 물건을 나누어 쓰고 사도들의 가르침을 따르는 공동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베드로는 로마 관료인 고넬료의 집에서 그의 가족과 친구들이 모여 있을 때 그리스도를 전했습니다. 얼마 후 예루살렘에서 극심한 박해가 일어났습니다. 다소 사람 사울은 집집마다 다니며 신자들을 수색했고, 교회가 열리는 집마다 박차고 들어갔습니다. 나중에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 회심한 사울(사도 바울)은 로마제국을 가로지르는 선교여행을 하면서 신자들로 하여금 집에서 장기적으로 모이도록 했고, 그의 서신 말미에는 이러한 모임을 위해 자기 집을 내어준 집주인들에게 건네는 인사가 담겨 있습니다. 서신서들의 끝부분을 읽어보십시오.
사도 요한은 독자들에게 거짓 교사들을 집에 받아들이지 말라고 경고하는데, 이 경우 대부분 공공 집회가 아닌 가정교회 모임을 가리킵니다. 이들 가정교회는 당시 예루살렘, 에베소, 골로새, 고린도, 라오디게아, 드로아, 빌립보 그리고 로마에 이르기까지 전반적으로 확산되어 있었습니다. 우리는 1세기의 모든 신자들이 전적으로 집에만 모였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신자들이 모일 경우, 그리고 심지어는 복음 증거의 일환인 경우에도 대체로 집에 모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현상들은 가정교회 운동으로 부를 수 있게 됩니다.
다음으로, 공공장소의 경우입니다. 물론 신자들이 공공장소에 모이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때때로 예루살렘 성전 뜰이나 회당에 큰 무리로 모였습니다. 이러한 사실들은 교회가 가정에 모였다는 내용과 서로 배치되는 게 아닌가 생각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배경을 제대로 이해하면 이 문제가 해결됩니다. 첫째,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민족적으로 볼 때 유대인들이었기 때문에 성전 뜰이나 회당에 모이는 유대식 종교생활은 어느 정도 자연스러운 일상의 한 부분이었습니다. 초대교회가 생긴 이후에도 부지런히 성전에 모였습니다.
하지만 회심한 유대인들이 이러한 공공 장송 모인 장면을 유심히 들여다보면 그들이 주로 복음 증거를 위한 장소로 활용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곳에선 주로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 동료 유대인들을 신앙으로 끌어들일 목적으로 설교하거나 치유를 행했습니다. 둘째, 그리스도인들은 몇몇 회당에서 쫓겨나기 전까지 가정교회로 초대할 수 있는 회심자를 얻기 위해 그곳에서 복음 증거를 계속했습니다. 바울의 경우, 회당에서 복음 전하는 것을 금지당한 이후에는 복음 사역을 계속하기 위해 강의실(두란노 서원)을 빌려야만 했을 정도입니다.(계속..)

축복의 노래

복음 쪽지~㉾

십자가에 못 박힌 사람..!

이렇게 고백합시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십자가에 못 박힌 사람이 되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다. 내가 예수와 같이 죽음을 믿는다. 예수 혼자 죽은 십자가가 아니라 나도 같이 죽는 십자가로 믿는다!" 본질적인 죄의 문제,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는 근원적 죄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단연코 변화되지 않습니다. 십자가 부활을 믿는다고 할 때는 "나의 죄"와 관련해서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내 죄의 문제를 해결하는 십자가와 부활로 믿어야 합니다. 당신에게 제 말이 전달되었다면, 당신이 구원을 받을 기회가 제공되었다는 뜻입니다!

 

“예림의집”이란?

예림의집은 “예수님께서 임하셔서 거하시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세상 가운데로 보내시면서 마태복음 28장 29절,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임재를 통하여 실제로 그리스도인에게 오셔서 그리스도인의 모든 삶을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예림의집은 예수님의 사역에 동참시키시는 주님의 그 부르심에 순종하여 세워진 후원 모임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으로 주님이 주신 권능으로 담대히 나아가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영접하는 우리의 마음을 거처로 삼으십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요한복음 14장 23절,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여러분은 사도행전 2장을 기억하실 겁니다. 오순절에 예수님이 약속하신 성령님이 그들에게 임하시자 그들은 예수님께서 전에 하신 말씀의 성취를 생생하게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마음에 거하시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몸과 마음을 비롯한 전인격이 예수 그리스도의 거처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성령님이 제 마음속에 들어오셔서, 그분을 섬기고 거기서 그분과 즐거워하고 그분을 알아가는 것이 가장 큰 축복임을 고백합니다. 그분을 제 마음에 모셨던 그날 저녁을 저는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1986년 여름, 제가 고 2 때 청소년 연합 여름 수련회 저녁 집회 설교시간에 일어난 일입니다. 주님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사건은 얼마나 감격적인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주님의 임재하심은 제 중심에서 발생한 엄연한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그 후로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모신 것에 대해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영원히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그리스도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새로운 삶이 시작된 나는 “주님, 저의 모든 것은 주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뜻대로 사용하옵소서!”라고 고백했습니다. 물론 주님은 기꺼이 저의 고백을 받으셨고, 저를 주님의 영광된 사역에 동역자로 삼으셨습니다.
주님을 마음에 모신 저는 날마다 주님을 찬송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저의 삶에서의 주님과의 동거가 시작되었고, 예림의 집의 사역도 시작되었습니다. 예림의집의 "예림"은 세 가지 깊은 의미를 가집니다. 첫째, 예수님이 임재하신 마음, 모임이란 뜻이고, 둘째, 예수님의 그림자로 빛과 소금으로 살겠다는 마음가짐이며, 셋째, 예수님의 재림을 기대하고, 기다리며, 준비한다는 뜻입니다! 이 세 가지의 정신을 모토로 하여 선교사와 개척교회를 돕고 있으며, 온라인 사역과 찬양사역, 그리고 21세기 새로운 교회의 모델인 가정교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예림의집 사역을 소개합니다

첫째, 온라인 선교사역
①다음 카페 “예림의집”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회원가입을 하시면 그 순간부터 저의 예림의집 사역이 동참하게 됩니다. 현재 회원 수 1300여 명으로 이들이 잠정 후원자가 되어 기도 후원, 물질 후원, 재능기부 등을 하게 됩니다. 카페를 매개로 하여, 서로의 비전과 기도 제목을 나누고, 힘을 합쳐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해 갑니다. 저의 사역에 동참하시길 원하시는 분은 다음 검색 창에 예림의집을 치세요!
②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은 따로 회원 가입을 할 필요 없이 언제, 어디서나 방문하여 필요한 정보와 신앙 글들을 접할 수 있습니다. 검색어를 통해 접근하여, 현재 다음 블로그 80만여 건, 네이버 블로그 40만 건의 방문자 수를 기록 중입니다. 다음 카페 예림의집과 연동되어 하루 평균 20건 이상의 정보가 업로드되어 현재 4만 편이 넘는 좋은 글들을 접하실 수 있습니다.
③페이스북 활동(김정민)
요즘 활성화되어있는 페이스북 활동을 통하여 온라인 선교의 지경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저를 친구 초대해 주시고 팔로우해 주시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현재 25개의 그룹을 만들어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친구들을 만나고, 복음을 전하며, 선교 동원가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제 이름 "김정민"을 많이 친구 추가해 주세요!
④유튜브 방송 "예림의집TV"
복음 전파와 영적 무장의 방편으로 유튜브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매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6일 방송하며, 새벽 기도회(월-금 오전 5:00), 예림의집 이야기(월-금: 오후 5:00),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토: 오후 5:00)을 실시간 방송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주일예배, 짤 영상 모음 등 영적 무장과 복음 전파에 관련된 영상들을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검색창에 "예림의집TV"를 치시고 많이 오셔서 ✔️구독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둘째, 선교사/개척교회 후원 사역
이 사역은 찬양사역을 하던 저에게 새로운 비전을 주셔서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게 하신 사역입니다. 선교사님들과 개척교회를 바르게 후원하기 위해서는 제가 먼저 선교와 교회 개척 사역에 헌신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예림의집 카페 회원들을 포함한 그동안 주께서 연결해 주신 후원자 1800여 명이 함께 감당해 가는 사역입니다.
첫 번째, 기도 후원 사역은 주께서 연결해 주신 선교사님이나 개척교회를 위해 40 명의 기도 용사를 세우는 사역입니다. 제1호 필리핀 “김성재 선교사님”과 서울 상도동 “주님의 교회”를 필두로, 현재 26명의 선교사님과 20개의 개척교회를 기도로 후원하고 있고, 그 지경을 넓혀 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물질 후원 사역으로 앞에서 말씀드린 기도 후원자들 중에 하나님께서 자원하는 마음을 주신 분들이 물질 후원을 하게 됩니다. 재정 후원은 선교사님과 개척교회 목회자 가정의 기초 생활비를 우선적으로 지원하도록 원칙을 세웠습니다. 물품 후원은 선교나 교회 개척에 필요한 다양한 물품들을 자원하여 후원하게 됩니다. 특히 도서 후원은 성경책, 신앙 도서, 아이들 학습 도서 등. 작은 도서관을 만들 수 있도록 후원합니다.
세 번째, 재능기부 사역은 주님께서 주신 모든 달란트를 활용하여 선교와 교회 개척을 지원하는 사역입니다. 예를 들어, 선교 지원팀, 여름 성경 학교 진행팀, 찬양팀, 자원봉사단 등이 있습니다. 모든 재능 기부 사역은 “자비량”을 원칙으로 합니다. 특히 전도 지원팀을 구성하여 개척교회를 지원합니다. 이 사역을 통하여 새로운 선교사들과 교회 개척자들이 새워질 것입니다. 선교지나 개척 현장에서 필요한 프로젝트 그룹을 조직하여 지원합니다.

셋째, 찬양 세미나/찬양 집회 사역
제가 약 30년간 해오던 찬양 사역의 일환으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찬양을 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특별히 부여하신 사역입니다. 아직도 찬양에 대한 무지와 편견으로 주님을 맘껏 찬양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제가 경험한 찬양에 대한 놀라운 비밀을 나누는 사역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잠시 멈추고 준비 중이며 내년부터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이 2018년 가을에 발간되었습니다. 저는 비록 짧은 시간 동안 여러분을 만나지만, 찬송은 너무나 소중하기에 글로써 여러분들의 곁에서 치침이 되어드리고자 합니다. 찬송에 대한 저의 지난 30년간의 찬양사역의 총결산의 책입니다. 본 책의 내용은 앞서 설명한 다음 카페와 블로그 예림의집과 페이스북 그리고 토요일에 방송되는 찬양 방송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통해 미리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특히 개척교회는 요청하는 수량을 무료로 제공해 드립니다.


예림의집 사역에 동참하는 방법

첫째, 유튜브 <예림의집TV>방송을 봐주시고,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이나 페이스북 <김정민>의 글을 봐 주시는 것만으로도 일차적으로 동참하는 방법입니다. "구독/좋아요/홍보"까지 해 주시면 더욱 좋겠죠.
둘째,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오셔서 회원이 되어 주시고, 여러 게시판의 글을 통해 영성 훈련을 하시고, 여러분의 삶 속에 적용하셔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십시오. 좋은 글들과 댓글을 올려주시면 더욱 좋겠지요.
셋째, 다음 카페 <사역>코너에 있는 찬양사역/선교후원사역/개척후원 사역에 적금 동참하시는 방법입니다. 제일 중요한 기도 후원과 성령님이 인도하심을 따라 재정과 재능 후원에 동참하시면 더욱 좋습니다.
넷째, 여러분이 섬기는 공동체에 저를 초청하는 방법입니다.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3개월 전에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다섯째, 제가 펴낸 책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구입하셔서 정독하시는 것입니다. 포털 검색창에 책 이름을 치시고, 온라인상으로는 구매하시면 됩니다. 정독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하십시오!


김정민 목사
010-9442-6928
yerim21@hanamil.net
다음 카페 예림의집: http://cafe.daum.net/HomeOfYERIM
다음 블로그 예림의집: http://blog.daum.net/yerim21
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https://blog.naver.com/yerimess
유튜브 예림의집TV: https://www.youtube.com/channel/UCarpDnpNgU0RQn9ksDdSPPw
후원 계좌: 농협 3560686657493(예금주: 김정민)

예림의집 김정민 목사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