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림의집 메일 모음

예림의집 2413번째 이야기

예림의집 2021. 10. 11. 13:47

예림의집 2413번째 이야기

사색의 바다

예수님의 피..!


내 경험과 지식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하나님이 일하심을 몸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피야말로 영적 전쟁의 가장 중요한 기본이 되며, 순교자의 피는 바로 예수님이 흘리신 피의 또 하나의 모본입니다. 하나님께만 의존하며 길을 걸어갈 때 하나님의 놀라운 인도하심을 체험할 수 있고, 하나님께서 당신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한 도구로 우리를 사용하심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께 부름을 받은 우리는 자신이 준비한 것에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사역해야 합니다. 말씀과 기도와 찬양으로 영적 무장하는 오늘 방송이 됩시다!

 

예림가족 이야기

버림받은 느낌을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전문가들은 "식전에 과일을 먹는 것이 과식을 막아준다"라고 추천합니다. 식후에 후식으로 과일을 먹게 될 경우, 혈당을 급격히 높여서 성인병 위험까지 커지게 한답니다. 그 당시, 재활원 출신으로 휠체어를 타고 연주하는 "베데스다"라는 연주단 형들이 있었습니다. 첼로와 바이올린과 비올라로 이루어진 앙상블이었는데, 꽤 유명했습니다. 형들은 가끔씩 와서 원생들에게 무료로 악기를 가르쳐주었습니다. 나도 바이올린을 켜고 싶었지만 악기를 장만할 돈이 없었습니다. 바이올린을 배우던 형들 중 한 사람이 "다리가 썩어 들어가는 병"에 걸렸습니다.
그 형은 얼마 뒤에 죽었습니다. 재활원의 생활은 한마디로 슬픈 경험이었습니다. 그곳은 생사고락의 작은 축소판이었습니다. 열 살에서 서른 살에 이르는 각양각색의 장애를 가진 이들은, 세상의 그늘에서 소리 없이 신음하는 ‘힘없는 영혼들’이었습니다. 그중에는 부모마저 감당할 수 없어서 그곳에 버리고 간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때때로, 교회나 구호단체에서 빵과 우유를 사들고 와서 우리에게 나누어주었습니다. 그들은 외롭고 쓸쓸한 우리에게 사랑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특히 성탄절 전후에는, 여러 교회 팀들이 와서 노래나 연극 등을 보여주고 갔습니다.
그러나 한 시간짜리 공연을 보고 나면, 우리는 더욱더 버림받은 느낌을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어디에서 위문품이 왔으니, 먹을 것을 타가라"라고 하면, 아이들은 천 원짜리 과자 한 봉지를 얻기 위하여 북새통을 이루었습니다. 일회성 방문은 우리를 더욱 비참하게 만들었습니다. 누군가를 돕고 위로한다는 것은 지속적인 관계가 형성될 때만 가능합니다. 아무리 거룩한 종교의 이름으로 다가온다고 해도, 그것이 관계로 발전하지 못하면 값싼 동정과 소외의 심화로 이어집니다. 이웃을 돕는다는 것은 단순한 감정이 아닙니다. 공감이 있어야 합니다.(김인강 교수)

그렇습니다. 아시다시피, 공산주의는 정치적인 방법으로 나눔을 실시합니다. 그러다 보니, 그 나눔이 온전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기계적이고 강제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김 교수는 "자신의 인생을 진정으로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물질만을 나누는 게 아니라, 사랑이 포함된 삶을 함께 나누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거기에다, 기독교는 "내 것이 아닌 하나님의 것을 함께 나눈다."라는 생각으로 나눔을 실천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누가복음 18장 22절에서 부자 청년에게 재산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단장 칼럼

기독교의 핵심 진리④ 특별계시와 성경

예수님은 광야에서 시험을 받으실 때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마태복음 4:4)라고 말씀하시며 마귀를 꾸짖으셨습니다. 역사적으로 교회는 성경을 복스 다이(vox Dei, 하나님의 음성), 혹은 버붐다이(verdum Dei, 하나님의 말씀)라고 단언하면서 예수님의 이 가르침을 반복해왔습니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은 그것이 하나님의 거룩한 손으로 직접 쓰였다거나 하늘에서 낙하산에 실려 내려왔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의심할 여지없이 많은 인간 저자들에 의해 기록되었습니다.
성경을 자세히 연구해 보면 각 저자의 독특한 문체와 어휘, 특별한 강조, 관점, 그 외 나름대로의 독특한 방식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의 그런 점들이 인간의 특성을 포함하는 데 어떻게 그것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볼 수 있을까요?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는 것은 교회가 믿고 있는 대로, 성경을 기록한 인간 저자들이 하나님에 의해 영감을 받았다는 주장에 근거합니다. 사도 바울은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디모데후서 3:16)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를 영감(inspiration)이라는 단어로 표현합니다.
이 영감이라는 단어는 "하나님이 숨결을 불어넣으신"이라는 헬라어를 번역한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성경에 숨결을 불어넣으셨습니다. 우리가 입으로 말할 때 숨을 내쉬는 것처럼 궁극적으로 성경은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성경은 인간 저자에 의해 기록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 원천적 근원은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이 바로 선지자들이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라는 말로 메시지를 시작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또한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요 17:17) 하시고 "성경은 폐하지 못하니니"(요 10:35)라고 하신 이유입니다.
영감이라는 말에는 또한 성경의 글을 성령께서 "감독하시다"라는 뜻이 포함됩니다. 성경의 원본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감독하셨는지는 알려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영감"이란 하나님께서 자신의 메시지를 성경 저자들에게 받아쓰게 하셨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오히려 성령님께서 인간 저자들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감동) 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이 "무류 하고 무오 하다"라고 단언합니다. 성경의 저자는 궁극적으로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은 틀린 것을 영감 하실 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말씀은 모두 진리이고 신뢰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문학 작품은 어느 것이든 오류를 범할 여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평범한 인간의 창작물이 아닙니다. 성경이 하나님에 의해 영감받고 감동되었다면 잘못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말은 오늘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경의 번역본이 오류가 없다는 의미가 아니라 성경 원본이 절대적으로 정확하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성경에 있는 모든 말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말이 아닙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직접적인 말뿐만 아니라 인간의 말과 함께 심지어 사단의 말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오히려 성경의 위대한 점입니다. 성경은 제일 솔직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 인간의 타락과 범죄, 사단의 참소, 욥의 친구들의 잘못된 주장 등도 그대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경은 인간을 위한, 구원을 위한 책입니다. 인간사 또는 세상사의 모든 것들이 기록되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인간의 구원에 필요한 모든 사항을 기록한 하나님의 안내서입니다. 또한 성경은 그리스도인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지혜와 법칙을 담아 놓은 책입니다. 성경의 번역 과정에서 오역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 또한 성령님의 조명 하에 우리에게 유익을 줍니다. 물론 우리는 바른 성경 번역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새찬송가 부르기

 

오늘의 Q.T.

고통 중 가장 큰 기쁨..!


"욥이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괴로움을 달아 보며 나의 파멸을 저울 위에 모두 놓을 수 있다면 바다의 모래보다도 무거울 것이라 그러므로 나의 말이 경솔하였구나 전능자의 화살이 내게 박히매 나의 영이 그 독을 마셨나니 하나님의 두려움이 나를 엄습하여 치는구나 들나귀가 풀이 있으면 어찌 울겠으며 소가 꼴이 있으면 어찌 울겠느냐 싱거운 것이 소금 없이 먹히겠느냐 닭의 알 흰자위가 맛이 있겠느냐 내 마음이 이런 것을 만지기도 싫어하나니 꺼리는 음식물 같이 여김이니라 나의 간구를 누가 들어 줄 것이며 나의 소원을 하나님이 허락하시랴 이는 곧 나를 멸하시기를 기뻐하사 하나님이 그의 손을 들어 나를 끊어 버리실 것이라 그러할지라도 내가 오히려 위로를 받고 그칠 줄 모르는 고통 가운데서도 기뻐하는 것은 내가 거룩하신 이의 말씀을 거역하지 아니하였음이라 내가 무슨 기력이 있기에 기다리겠느냐 내 마지막이 어떠하겠기에 그저 참겠느냐 나의 기력이 어찌 돌의 기력이겠느냐 나의 살이 어찌 놋쇠겠느냐 나의 도움이 내 속에 없지 아니하냐 나의 능력이 내게서 쫓겨나지 아니하였느냐"(욥기 6장 1-13절).


오늘의 본문에서 욥은 자신의 괴로움을 비유로 표현하면서도 결정적으로 그의 믿음이 변함이 없음을 고백합니다. 욥은 괴로움이 바다의 모래보다도 무거워 자신의 말이 경솔했다고 고백합니다. 그칠 줄 모르는 고통 가운데서도 그가 위로받고 기뻐하는 이유는, 거룩하신 이의 말씀을 거역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욥은 무기력함을 토로하며, 자신에게 아무런 도움과 능력이 없음을 한탄합니다. 우리도 극심한 고난과 고통을 당하면 욥처럼 자포자기하는 심정이 되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때에라도 욥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해야 함을 명심합시다.


탄식에는 이유가 있다(1-7절).
욥의 친구들처럼 잘못된 충고는 상대방에게 괴로움을 더할 뿐입니다. 욥은 자신의 괴로움을 토로합니다. 2절의 "괴로움"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카아스"는 5장 2절, 엘리바스의 발언에서는 "분노"로 번역되었습니다. 엘리바스는 "분노"가 미련한 자를 죽인다며 분노를 그치라고 하지만, 욥에게 그것은 "괴로움"일 뿐이고 측정할 수 없을 만큼 크고 무거운 짐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말이 정제되지 않고 경솔할 수밖에 없었고, 거칠어질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욥은 괴로움에 탄식과 반성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4절, 욥은 자신이 당하는 고난을 하나님의 공격으로 여깁니다. 전능자의 독화살을 맞고 두려움에 사로잡혔기에 자신의 탄식은 이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에게 있어 가장 큰 두려움은 하나님의 징계일 것입니다. 욥은 지금 자신이 하나님의 징계를 받고 있다고 여기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6-7절, "싱거운 것이 소금 없이 먹히겠느냐 닭의 알 흰자위가 맛이 있겠느냐 내 마음이 이런 것을 만지기도 싫어하나니 꺼리는 음식물같이 여김이니"라고 탄식합니다. 욥의 고난은 욥이 생각하기도 싫고 받아들이기도 힘든 참으로 고통스러운 상황인 것입니다.


말씀을 거역하지 않음(8-13절).
욥은 8절에서 자신이 바라는 것이 이루어지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가 원하는 것은 죽음의 세계에서 경험하는 안식입니다. 10절은 난해 구절 중 하나로, 다음과 같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만약 죽음이 현실이 된다면 그것은 내게 위로가 될 것이다. 나는 고통 가운데서도 기뻐할 텐데, 그 이유는 거룩하신 이의 말씀을 거역하지 않았다는 확신 때문이다!" 그래서 욥은 회개 대신에 하나님께 탄식하고 질문하는 길을 택합니다. 욥은 "하나님을 찾으라"라는 엘리바스의 충고를 완전히 거부하는 셈입니다.
욥은 11-13절, 더는 버틸 힘이 없다며 죽음을 갈망하는 이유를 밝힙니다. 욥의 고난은 하나님의 응답 안에서만 해결책을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고난 속에도 주님은 계신다고 말합니다. 혹은 고난에는 하나님의 깊은 뜻이 있다고도 말합니다. 하지만, 주님의 함께하심과 하나님의 깊은 뜻을 세상 사람들이 깨닫게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음을 종종 잊곤 합니다. 이것을 잊은 채 건네는 위로는 "얼른 죽으면 좋겠다!"라는 욥의 반응처럼 듣는 사람을 격앙시킬 뿐입니다. 욥처럼 고통 가운데서도 말씀을 거역하지 않았다는 확신은 죽음을 어떻게 맞이하게 할까요?


"우리의 고통과 괴로움을 모두 아시며 구원하시기 원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참혹한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 말씀을 거역하지 않았던 욥의 모습에 도전을 받습니다. 죽음을 구할 만큼 버텨 내기 힘든 현실일지라도 하나님만이 도움이시고 피난처 이심을 기억하게 하시옵소서. 눈을 들어 하나님의 계획을 보고, 마음을 열어 다른 사람의 신음을 듣게 하시옵소서. 또한 편협되고 잘못된 위로로 인하여 고난 중에 있는 형제자매를 더욱 절망에 빠뜨리지 않도록 우리를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찬양의 향기

 

그리스도인의 삶

바른 분별, 바른 적용..!


그리스도인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하나님의 뜻이 충돌하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는 무엇을 기준으로 분별해야 할까요? 하나님이 내게 하시고자 하는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 하셨다면, 대개는 똑같은 말씀을 나에게도 하실 것입니다. 또한 그 조언을 들었을 때, 내 마음속에 기쁨이 샘솟을 것입니다. 물론 다른 사람을 통해 말씀을 하실 때도 있지만, 그럴 때는 대부분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잘못 알아들었거나 잘못 해석했을 경우입니다. 그럴 때 내가 영적으로 깨어 있다면 그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인 줄 바로 알고 돌이킬 것입니다.
언젠가 어떤 사람이 우리 교회에서 기도하다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면서 부목사님을 통해 제게 쪽지를 전해 주었는데, 제가 대장암 말기라는 하나님 음성을 들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물론 저는 그때나 지금이나 건강합니다. 만일 정말로 제가 대장암 말기라서 하나님이 알려 주시려고 했다면, 제게 직접 말씀해 주시지 않았겠습니까? 하나님 말씀을 대할 대 주의할 점은 하나님 뜻을 주관적으로 자신에게만 적용해야지 객관화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객관화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공개한다는 뜻이고, 다른 사람에게도 적용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말씀하신 것은 그 문제에 대해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나더러 씨름하라는 것이기 때문이지 다른 사람에게 자랑하거나 강요하고, 또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듯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바르게 적용하기 위해서는 바른 분별을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분별을 위해 나에게 말씀하신 하나님 듯을 먼저 따르고, 말씀과 기도의 훈련을 잘 받아야 합니다. 신비주의를 내세운 휘황찬란한 말이 아닌, 하나님 말씀을 자신에게 올바로 적용하는 훈련이 우리에게는 필요합니다. 기록된 말씀이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황성은 목사)

 

기도의 횃불

뜨거운 믿음이 회복되게 하시옵소서!

세상에 빛으로 오신 주님! 존귀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찬양합니다. 어둠 속에서 헤매던 가련한 저희들이 그 이름을 영접하여 생명의 길을 찾았사오니 감사와 찬송을 주님께 드립니다. 저희의 심령을 날마다 새롭게 하셔서 벅찬 감격으로 주님을 찬송할 수 있게 하시고, 찬송 중에 임하시는 주님을 경험하는 삶이 되게 하시옵소서. 주님! 이 뜨겁고 감격스러운 예배의 자리도 점점 더 식어져가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할 때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삶의 고백이 묻어 있는 새 노래로 주님께 올릴 찬송을 불을 수 있도록 우리를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주님께 예배해야 할 믿음의 무리들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에 마음을 빼앗겨서 이 복된 자리를 찾지 않고 있습니다. 주님이 뜨겁지도 않고 차지도 않은 라오디게아교회를 책망하신 것을 기억합니다. 뜨겁지도 않고 차지도 않은 미지근한 상태에 있으면 토하여 버릴라는 요한계시록 3장 16절의 그 무서운 말씀이, 오늘 저희들에게 주시는 말씀이 돌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두렵고 떨리는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주님!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다"라고
요한일서 2장 15, 16절에 말씀하셨사오니, 주님을 더욱 사랑하고 예배를 더욱 사모할 수 있는 믿음을 회복시켜 주시옵소서. 썩어 없어질 세상의 재물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게 하여 주시고, 영원한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할 수 있는 믿음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세상 유혹이 넘실거려도 믿음의 주요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님만을 바라보며 나아가는 삶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올 한 해에 저희에게 더욱 성숙된 신앙의 모습이 보여질 수 있게 하시옵소서. 오늘의 방송을 통하여 나눈 모든 말씀과 기도와 찬양으로 우리를 영적 무장시켜 주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가정교회를 말하다

그들은 자기 자신을 어떻게 보았는가?

가장 먼저 언급해야 할 문제는 초기 기독교 공동체가 자신들을 어떻게 이해했는가 하는 점입니다. 다음은 신약성경에서 발견할 수 있는 초기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던 몇 가지 핵심 개념들입니다. 이 개념들을 기초로 하여, 그들은 자신들이 어떻게 해야 보다 실천적인 조직을 구성하고 제대로 역할을 감당할 수 있는지를 판단했습니다. 달리 말하면, 그들의 신념이 그들의 행동을 결정했고, 그들의 역할이 그들의 형태를 결정했으며, 그들이 받은 위임령이 그들이 취할 방법을 결정했습니다. 그러면 그들의 모습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총회"입니다. 신약성경에 가장 흔하게 접하는 단어 중 하나는 헬라어 "에클레시아"이며 114회나 등장합니다. "총회" 또는 "모임"이라는 의미를 가진 이 단어는 주로 "교회"로 번역됩니다. 즉 교회는 "총회"라는 것입니다. 신약성경에서 "교회"라는 단어는 3가지 의미로 쓰이는데, 어떤 살마의 집에서 신자들이 모이는 것을 언급할 때, 범도시 또는 지역 교회를 언급할 때, 그리고 보편교회(공교회)를 언급할 때입니다. 이 단어는 특별한 건물이나 종교의식 또는 사례를 받는 전임 성직자 그룹을 언급할 때는 한 번도 사용되지 않았다는 점을 명심합시다.
초기에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은 그런 것들을 전혀 몰랐습니다. 교회라는 이 특별한 단어는 신자로서 총회를 이루고 회합하며 같이 모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둘째, "제자"입니다. 이 용어는 예수님 주변으로 몰려든 사람들이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습니다. 때때로 많은 사람들이 팔레스타인의 먼지 나는 길 위에서 예수님을 따라다니긴 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열두 명이라는 적은 수의 사람들만을 특별히 택하시고 사도라 칭하시며 그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직접 이들을 불러 세워 특별한 제자훈련을 시키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들과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고, 또한 그들이 스스로 훌륭한 지도자들이 되고, 다른 사람들을 훈련시킬 수 있도록 훈련하셨습니다. 성경은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또한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 예수님은 누가 자신의 제자인지를 규정하시고 또 그들이 모일 때마다 함께 하겠다고 약속하심으로써, 초기 기독교 공동체가 모일 때마다 예수님을 중심에 두도록 가르치시고 격려하셨습니다.
셋째, "그리스도의 신부"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와 교회 사이의 신비한 연대를 남편과 아내 사이의 관계로 비유함으로써 우리의 주목을 끌고 있습니다. 그 원동력은 사랑과 순종입니다. 세례 요한과 사도 요한도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를 묘사하기 위해 이 비유를 사용했는데, 예수님도 결혼잔치 비유를 통해 이를 언급하셨습니다. 넷째,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바울은 교회를 예수 그리스도의 몸으로 비유한 이미지를 여러 차례에 걸쳐 즐겨 사용했습니다. 그리스도와 몸인 교회 사이에 살아 있고 유기적이며 상호의존적인 관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머리 없는 몸은 생명이 없고 아무런 역할을 수행할 수 없는 것처럼, 명령을 수행해야 할 몸이 없다면 머리 또한 아무 소용이 없게 됩니다.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그의 몸에게 지시를 내리시므로, 그 몸을 이루는 각각의 지체들 즉 신자들이 맡겨진 사명을 위해 하나로 연합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신자들은 또한 몸을 이루는 지체들이 제각기 감당하는 역할을 서로 인정하고 격려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 비유는 교회가 중요하게 여겨야 할 두 가지 주된 역할이 무엇인지 보여 줍니다. 첫째, 신자들 사이의 연합이며, 둘째, 상호의존적인 사역이라는 기회 제공입니다.
다섯째, "하나님의 가족"입니다. 사도들이 저작을 보면 교회를 가족과 관련된 용어로 묘사하는 대목이 유독 많습니다. 하나님을 가리켜 하늘에 계신 아버지라 부를 뿐 아니라, 하나님의 가족, 어린 자녀, 하나님의 권속, 형제, 자매 등의 표현을 썼습니다. 1세기 신자들은 이런 표현들에 쉽게 공감할 수 있었는데, 당시 지중해 연안의 사회에선 가족 간의 연대뿐 아니라 법적 결속력이 매우 강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미지는 교회가 공동체의 구성원 여부를 명확히 규정하는 경계를 갖는 것이 매우 중요한 사안임을 보여줍니다. 마지막으로 "성령이 거하는 전"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신자들을 가리켜 하나님의 선하신 기쁨을 위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질 살아 있는 돌이라고 했습니다. 이 신령한 집이란 거룩한 제사장, 즉 모든 신자들이 하나님께 신령한 제사를 드리는 장소입니다. 베드로는 이런 이미지를 분명 의도적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하나님이 사람의 손으로 지은 건물 안에 거하신다는 관념이 종식되었음을 알리고 있습니다. 유대인의 성전 제도는 이제 종식되었고, 오히려 거룩한 장소에 국한되지 않는, 참되고 신령한 예배가 드려지는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바로 우리의 마음이요, 모임입니다!

축복의 노래

복음 쪽지~㉾

길을 잃은 자..


하나님께서는 오랫동안 당신을 기다리셨습니다. 당신이 짬을 낼 때까지 계속 참으시고, 당신이 하나님을 부당하게 대하는 지금 이 순간에도 인내로 기다리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위해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당신은 그분께 돌아오기 전까지는 길을 잃은 자입니다. 우리의 마음의 주인 자리는 비어 있는 법이 없습니다. 우리 마음에 하나님이 주인 노릇을 못하고 계신다면, 나 자신이 주인 노릇을 하고 있거나 아니면, 누군가에게 조종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누군가는 당신을 세상에서 가장 절망스러운 곳인 지옥으로 안내할 바로 사탄입니다!

 

“예림의집”이란?

예림의집은 “예수님께서 임하셔서 거하시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세상 가운데로 보내시면서 마태복음 28장 29절,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임재를 통하여 실제로 그리스도인에게 오셔서 그리스도인의 모든 삶을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예림의집은 예수님의 사역에 동참시키시는 주님의 그 부르심에 순종하여 세워진 후원 모임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으로 주님이 주신 권능으로 담대히 나아가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영접하는 우리의 마음을 거처로 삼으십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요한복음 14장 23절,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여러분은 사도행전 2장을 기억하실 겁니다. 오순절에 예수님이 약속하신 성령님이 그들에게 임하시자 그들은 예수님께서 전에 하신 말씀의 성취를 생생하게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마음에 거하시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몸과 마음을 비롯한 전인격이 예수 그리스도의 거처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성령님이 제 마음속에 들어오셔서, 그분을 섬기고 거기서 그분과 즐거워하고 그분을 알아가는 것이 가장 큰 축복임을 고백합니다. 그분을 제 마음에 모셨던 그날 저녁을 저는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1986년 여름, 제가 고 2 때 청소년 연합 여름 수련회 저녁 집회 설교시간에 일어난 일입니다. 주님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사건은 얼마나 감격적인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주님의 임재하심은 제 중심에서 발생한 엄연한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그 후로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모신 것에 대해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영원히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그리스도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새로운 삶이 시작된 나는 “주님, 저의 모든 것은 주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뜻대로 사용하옵소서!”라고 고백했습니다. 물론 주님은 기꺼이 저의 고백을 받으셨고, 저를 주님의 영광된 사역에 동역자로 삼으셨습니다.
주님을 마음에 모신 저는 날마다 주님을 찬송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저의 삶에서의 주님과의 동거가 시작되었고, 예림의 집의 사역도 시작되었습니다. 예림의집의 "예림"은 세 가지 깊은 의미를 가집니다. 첫째, 예수님이 임재하신 마음, 모임이란 뜻이고, 둘째, 예수님의 그림자로 빛과 소금으로 살겠다는 마음가짐이며, 셋째, 예수님의 재림을 기대하고, 기다리며, 준비한다는 뜻입니다! 이 세 가지의 정신을 모토로 하여 선교사와 개척교회를 돕고 있으며, 온라인 사역과 찬양사역, 그리고 21세기 새로운 교회의 모델인 가정교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예림의집 사역을 소개합니다

첫째, 온라인 선교사역
①다음 카페 “예림의집”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회원가입을 하시면 그 순간부터 저의 예림의집 사역이 동참하게 됩니다. 현재 회원 수 1300여 명으로 이들이 잠정 후원자가 되어 기도 후원, 물질 후원, 재능기부 등을 하게 됩니다. 카페를 매개로 하여, 서로의 비전과 기도 제목을 나누고, 힘을 합쳐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해 갑니다. 저의 사역에 동참하시길 원하시는 분은 다음 검색 창에 예림의집을 치세요!
②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은 따로 회원 가입을 할 필요 없이 언제, 어디서나 방문하여 필요한 정보와 신앙 글들을 접할 수 있습니다. 검색어를 통해 접근하여, 현재 다음 블로그 80만여 건, 네이버 블로그 40만 건의 방문자 수를 기록 중입니다. 다음 카페 예림의집과 연동되어 하루 평균 20건 이상의 정보가 업로드되어 현재 4만 편이 넘는 좋은 글들을 접하실 수 있습니다.
③페이스북 활동(김정민)
요즘 활성화되어있는 페이스북 활동을 통하여 온라인 선교의 지경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저를 친구 초대해 주시고 팔로우해 주시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현재 25개의 그룹을 만들어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친구들을 만나고, 복음을 전하며, 선교 동원가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제 이름 "김정민"을 많이 친구 추가해 주세요!
④유튜브 방송 "예림의집TV"
복음 전파와 영적 무장의 방편으로 유튜브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매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6일 방송하며, 새벽 기도회(월-금 오전 5:00), 예림의집 이야기(월-금: 오후 5:00),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토: 오후 5:00)을 실시간 방송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주일예배, 짤 영상 모음 등 영적 무장과 복음 전파에 관련된 영상들을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검색창에 "예림의집TV"를 치시고 많이 오셔서 ✔️구독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둘째, 선교사/개척교회 후원 사역
이 사역은 찬양사역을 하던 저에게 새로운 비전을 주셔서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게 하신 사역입니다. 선교사님들과 개척교회를 바르게 후원하기 위해서는 제가 먼저 선교와 교회 개척 사역에 헌신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예림의집 카페 회원들을 포함한 그동안 주께서 연결해 주신 후원자 1800여 명이 함께 감당해 가는 사역입니다.
첫 번째, 기도 후원 사역은 주께서 연결해 주신 선교사님이나 개척교회를 위해 40 명의 기도 용사를 세우는 사역입니다. 제1호 필리핀 “김성재 선교사님”과 서울 상도동 “주님의 교회”를 필두로, 현재 26명의 선교사님과 20개의 개척교회를 기도로 후원하고 있고, 그 지경을 넓혀 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물질 후원 사역으로 앞에서 말씀드린 기도 후원자들 중에 하나님께서 자원하는 마음을 주신 분들이 물질 후원을 하게 됩니다. 재정 후원은 선교사님과 개척교회 목회자 가정의 기초 생활비를 우선적으로 지원하도록 원칙을 세웠습니다. 물품 후원은 선교나 교회 개척에 필요한 다양한 물품들을 자원하여 후원하게 됩니다. 특히 도서 후원은 성경책, 신앙 도서, 아이들 학습 도서 등. 작은 도서관을 만들 수 있도록 후원합니다.
세 번째, 재능기부 사역은 주님께서 주신 모든 달란트를 활용하여 선교와 교회 개척을 지원하는 사역입니다. 예를 들어, 선교 지원팀, 여름 성경 학교 진행팀, 찬양팀, 자원봉사단 등이 있습니다. 모든 재능 기부 사역은 “자비량”을 원칙으로 합니다. 특히 전도 지원팀을 구성하여 개척교회를 지원합니다. 이 사역을 통하여 새로운 선교사들과 교회 개척자들이 새워질 것입니다. 선교지나 개척 현장에서 필요한 프로젝트 그룹을 조직하여 지원합니다.

셋째, 찬양 세미나/찬양 집회 사역
제가 약 30년간 해오던 찬양 사역의 일환으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찬양을 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특별히 부여하신 사역입니다. 아직도 찬양에 대한 무지와 편견으로 주님을 맘껏 찬양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제가 경험한 찬양에 대한 놀라운 비밀을 나누는 사역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잠시 멈추고 준비 중이며 내년부터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이 2018년 가을에 발간되었습니다. 저는 비록 짧은 시간 동안 여러분을 만나지만, 찬송은 너무나 소중하기에 글로써 여러분들의 곁에서 치침이 되어드리고자 합니다. 찬송에 대한 저의 지난 30년간의 찬양사역의 총결산의 책입니다. 본 책의 내용은 앞서 설명한 다음 카페와 블로그 예림의집과 페이스북 그리고 토요일에 방송되는 찬양 방송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통해 미리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특히 개척교회는 요청하는 수량을 무료로 제공해 드립니다.


예림의집 사역에 동참하는 방법

첫째, 유튜브 <예림의집TV>방송을 봐주시고,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이나 페이스북 <김정민>의 글을 봐 주시는 것만으로도 일차적으로 동참하는 방법입니다. "구독/좋아요/홍보"까지 해 주시면 더욱 좋겠죠.
둘째,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오셔서 회원이 되어 주시고, 여러 게시판의 글을 통해 영성 훈련을 하시고, 여러분의 삶 속에 적용하셔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십시오. 좋은 글들과 댓글을 올려주시면 더욱 좋겠지요.
셋째, 다음 카페 <사역>코너에 있는 찬양사역/선교후원사역/개척후원 사역에 적금 동참하시는 방법입니다. 제일 중요한 기도 후원과 성령님이 인도하심을 따라 재정과 재능 후원에 동참하시면 더욱 좋습니다.
넷째, 여러분이 섬기는 공동체에 저를 초청하는 방법입니다.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3개월 전에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다섯째, 제가 펴낸 책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구입하셔서 정독하시는 것입니다. 포털 검색창에 책 이름을 치시고, 온라인상으로는 구매하시면 됩니다. 정독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하십시오!


김정민 목사
010-9442-6928
yerim21@hanamil.net
다음 카페 예림의집: http://cafe.daum.net/HomeOfYERIM
다음 블로그 예림의집: http://blog.daum.net/yerim21
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https://blog.naver.com/yerimess
유튜브 예림의집TV: https://www.youtube.com/channel/UCarpDnpNgU0RQn9ksDdSPPw
후원 계좌: 농협 3560686657493(예금주: 김정민)

예림의집 김정민 목사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