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성도들은 어디에서 모였을까?③
어제 이어서, 그러나 사회적 위치와 부를 가진 그리스도인들도 없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면 에티오피아 환관, 로마 장교 고넬료, 상인 루디아, 도시의 재무관 에라스도, 로마 황제 가이사의 집 사람들, 노예 주인 빌레몬, 그리고 무명의 부유한 그리스도인들이 있었습니다. 만일 교회 건물이 중요했다면 예수님 당시에도 로마 당국이 유대 지역사회를 위해 회당을 건축했듯이 이런 부유한 개인들이 교회 건물 마련을 위해 자금을 댔을 것입니다. 그러나 1세기 동안 성경이든, 고고학 자료든 그 어디에서도 교회 건물이 건축되었다는 기록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셋째, 초기 기독교가 발전하고 성장하는 과정에서 가정교회는 임시적인 형태였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사도들은 장래 어느 시점에 가서는 그리스도인들이 특별한 교회 전용 건물을 사용하길 기대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은 그들이 거의 300년 동안 가정교회 형태를 계속 유지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어울리지 않는 설명입니다. 초기의 신자들은 당시에 어떤 형태로든 종교 전용 건물을 사용하지 않았던 매우 드문 종교 그룹에 속합니다. 이런 사실은 신들에게 성전을 지어 바쳤던 헬라인들이나 로마인들 그리고 예루살렘의 그들의 성전을 가지고 있던
유대인들과 뚜렷한 대조를 보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종교를 위한 전용 건물을 사용했다는 최초의 고고학 증거는 3세기에 이르러서야 발견됩니다. 유프라테스 강변에 위치한 한 가정집인데 약 백 명 정도의 신자들이 들어갈 수 있는 규모로 구조가 변경된 형태였고, 겉으로는 개인 집과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예는 분명 1세기 관습을 대표하는 것도 아니며, 3세기에 와서조차 일반적이지 않은 예외적인 경우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공동 소유의 부동산을 소유하게 된 것은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합법화시킨 기독교에 돈을 쏟아붓기 시작한
4세기 초반 이후의 일입니다. 결론적으로, 교회가 지속적으로 가정에서 모였던 현상이 박해나 가난 때문이거나 교회 발전 단계의 초기 현상이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는 점을 말하고 싶습니다. 그보다는 다른 요인을 고려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그들의 신학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교회를 하나의 가정,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 상호작용이 빈번히 일어나는 모임으로 바라보았고, 그런 시간이 그들을 가정에서 모이게 했을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초대교회가 그 경제성 내지 효율성 제고를 위해 가정교회 형태를 일부러 활용했거나 그렇게 해야
한다고 주창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가정교회의 형태는 단순하게도 사도들에 의해 시작되고 본보기로 자리 잡은, 그리스도인의 신앙 및 가치의 자연스러운 결과였습니다. 이러한 1세기 가정교회를 그대로 현재로 가지고 오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여기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시도해 보는 것은 정말로 가치가 있는 모험입니다. 비록 실패할지도, 교회가 흩어질지도 모르는 위험성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성경대로, 초대교회의 정신으로 교회를 운영하는 것을 다양하게 시도해 보는 것 도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숙제이고 사명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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