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자기 자신을 어떻게 보았는가?
가장 먼저 언급해야 할 문제는 초기 기독교 공동체가 자신들을 어떻게 이해했는가 하는 점입니다. 다음은 신약성경에서 발견할 수 있는 초기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던 몇 가지 핵심 개념들입니다. 이 개념들을 기초로 하여, 그들은 자신들이 어떻게 해야 보다 실천적인 조직을 구성하고 제대로 역할을 감당할 수 있는지를 판단했습니다. 달리 말하면, 그들의 신념이 그들의 행동을 결정했고, 그들의 역할이 그들의 형태를 결정했으며, 그들이 받은 위임령이 그들이 취할 방법을 결정했습니다. 그러면 그들의 모습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총회"입니다. 신약성경에 가장 흔하게 접하는 단어 중 하나는 헬라어 "에클레시아"이며 114회나 등장합니다. "총회" 또는 "모임"이라는 의미를 가진 이 단어는 주로 "교회"로 번역됩니다. 즉 교회는 "총회"라는 것입니다. 신약성경에서 "교회"라는 단어는 3가지 의미로 쓰이는데, 어떤 살마의 집에서 신자들이 모이는 것을 언급할 때, 범도시 또는 지역 교회를 언급할 때, 그리고 보편교회(공교회)를 언급할 때입니다. 이 단어는 특별한 건물이나 종교의식 또는 사례를 받는 전임 성직자 그룹을 언급할 때는 한 번도 사용되지 않았다는 점을 명심합시다.
초기에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은 그런 것들을 전혀 몰랐습니다. 교회라는 이 특별한 단어는 신자로서 총회를 이루고 회합하며 같이 모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둘째, "제자"입니다. 이 용어는 예수님 주변으로 몰려든 사람들이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습니다. 때때로 많은 사람들이 팔레스타인의 먼지 나는 길 위에서 예수님을 따라다니긴 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열두 명이라는 적은 수의 사람들만을 특별히 택하시고 사도라 칭하시며 그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직접 이들을 불러 세워 특별한 제자훈련을 시키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들과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고, 또한 그들이 스스로 훌륭한 지도자들이 되고, 다른 사람들을 훈련시킬 수 있도록 훈련하셨습니다. 성경은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또한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 예수님은 누가 자신의 제자인지를 규정하시고 또 그들이 모일 때마다 함께 하겠다고 약속하심으로써, 초기 기독교 공동체가 모일 때마다 예수님을 중심에 두도록 가르치시고 격려하셨습니다.
셋째, "그리스도의 신부"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와 교회 사이의 신비한 연대를 남편과 아내 사이의 관계로 비유함으로써 우리의 주목을 끌고 있습니다. 그 원동력은 사랑과 순종입니다. 세례 요한과 사도 요한도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를 묘사하기 위해 이 비유를 사용했는데, 예수님도 결혼잔치 비유를 통해 이를 언급하셨습니다. 넷째,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바울은 교회를 예수 그리스도의 몸으로 비유한 이미지를 여러 차례에 걸쳐 즐겨 사용했습니다. 그리스도와 몸인 교회 사이에 살아 있고 유기적이며 상호의존적인 관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머리 없는 몸은 생명이 없고 아무런 역할을 수행할 수 없는 것처럼, 명령을 수행해야 할 몸이 없다면 머리 또한 아무 소용이 없게 됩니다.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그의 몸에게 지시를 내리시므로, 그 몸을 이루는 각각의 지체들 즉 신자들이 맡겨진 사명을 위해 하나로 연합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신자들은 또한 몸을 이루는 지체들이 제각기 감당하는 역할을 서로 인정하고 격려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 비유는 교회가 중요하게 여겨야 할 두 가지 주된 역할이 무엇인지 보여 줍니다. 첫째, 신자들 사이의 연합이며, 둘째, 상호의존적인 사역이라는 기회 제공입니다.
다섯째, "하나님의 가족"입니다. 사도들이 저작을 보면 교회를 가족과 관련된 용어로 묘사하는 대목이 유독 많습니다. 하나님을 가리켜 하늘에 계신 아버지라 부를 뿐 아니라, 하나님의 가족, 어린 자녀, 하나님의 권속, 형제, 자매 등의 표현을 썼습니다. 1세기 신자들은 이런 표현들에 쉽게 공감할 수 있었는데, 당시 지중해 연안의 사회에선 가족 간의 연대뿐 아니라 법적 결속력이 매우 강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미지는 교회가 공동체의 구성원 여부를 명확히 규정하는 경계를 갖는 것이 매우 중요한 사안임을 보여줍니다. 마지막으로 "성령이 거하는 전"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신자들을 가리켜 하나님의 선하신 기쁨을 위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질 살아 있는 돌이라고 했습니다. 이 신령한 집이란 거룩한 제사장, 즉 모든 신자들이 하나님께 신령한 제사를 드리는 장소입니다. 베드로는 이런 이미지를 분명 의도적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하나님이 사람의 손으로 지은 건물 안에 거하신다는 관념이 종식되었음을 알리고 있습니다. 유대인의 성전 제도는 이제 종식되었고, 오히려 거룩한 장소에 국한되지 않는, 참되고 신령한 예배가 드려지는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바로 우리의 마음이요, 모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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