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림의집 메일 모음

예림의집 2412번째 이야기

예림의집 2021. 10. 8. 14:41

예림의집 2412번째 이야기

사색의 바다

상식적이지 않은 것을 요구하시기도..


우리가 하나님께 묻지 않고 우리의 경험과 지식에 의거해서 일상적으로 일을 계획하고 진행시킨다면 그 사역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을 보기는 어렵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때로는 상식적이지 않은 것을 요구하기도 하시고, 때로는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으로 우리가 전진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믿음의 분량을 키워주시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초청에 응해서 우리의 전체를 맡길 때, 하나님은 놀라운 일들을 위리에게 보여주십니다. 우리 믿음의 반응만큼 하나님의 경이로우심을 체험하게 됩니다. 주님께 우리의 모든 것을 맡기는 그리스도인이 됩시다!

 

예림가족 이야기

참 너그러운 합리주의자!

소설가 ‘헤밍웨이’는 “말은 현실을 만들어낸다.”라고 했습니다. 실제로 그렇습니다. 말을 늘여서 발음하면 "마알"이 되는데, 마알은 "마음의 알갱이"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말이 마음의 알갱이란 것입니다. 말은 곧 자기 생각과 마음입니다. “잠깐, 거기 말고 오른쪽에 대도록 해요!” 기어를 후진으로 변경하고 들어가려는데, 옆자리에 앉은 남편이 돌연 제동을 걸었습니다. 순간, 짜증이 났습니다. 하지만, 저는 ‘타인의 의견을 무시하지 않는 자칭 합리주의자’입니다. 끓어오르는 마음을 국 누르고서 어금니 꽉 깨물고 차를 세운 뒤 말했습니다.
“이쪽 말고 저쪽에 대야 하는 이유를 말해 봐요! 그러면, 당신이 원하는 쪽에 주차하겠어요.” 남편은 잠시 당황하더니 그 이유를 말했습니다. 설득력은 그다지 없는 말이었지만, 어쨌든 이유를 말했으니 차 꽁무니를 돌려 남편이 선호하는 자리에 주차했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스스로 ‘참 너그러운 합리주의자’라고 생각했습니다. 뒷자리에 조용히 앉아있던 초등학생 아들이 입을 열었습니다. “아까, 엄마가 아빠한테 ‘이유를 대보라’고 했을 때, 아빠가 좀 곤란했을 것 같아요!” 아빠 편을 드는 것입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딸이 엄마 편을 들었습니다.
“무슨 소리야? 엄마는 그냥 이유를 물었을 뿐이야. 그리고 결국 아빠가 원하는 자리에 차를 댔잖아? 이건 합리적인 거야!” 하지만, 아들은 다시 “합리적? 그게 무슨 뜻이야? 다른 사람 마음은 생각하지 않는다는 거야?” 저는 ‘원칙과 규정에 맞게 일을 처리하면 그걸로 되었다.’고 여겼습니다. 거기서 상대에게 한 발짝만큼만 아량 같은 것을 베풀었지만, 그래도 제법 너그러운 합리주의자가 된 것 같아서 뿌듯했습니다. 그런데,‘이유와 결과를 묻는 합리의 이름 뒤에 머쓱한 누군가의 마음이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합리주의자일까요?(정명원)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교훈하신 “너희가 남에게 대접받고 싶은 그대로 남을 대접하라.”라는 말씀은 아주 단순 명료하나 결코 실천하기가 쉽지 않은 말씀입니다. 말하자면, "상대방이 내 마음을 이해해 주기 바라기 전에, 내가 먼저 상대방의 마음을 이해해 줘야 한다."라는 겁니다. 이 세상 사람 반의반만이라도 이 말씀을 실천한다면, 이 세상은 지금보다 훨씬 더 평화롭게 될 겁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마태복음 7장 12절, 우리가 황금률이라 부르는 말씀입니다!

 

단장 칼럼

기독교의 핵심 진리③ 직접 일반 계시와 간접 일반 계시

오늘도 조금 어려운 이야기입니다. 일반 계시는 두 가지 유형으로 구별됩니다. 매개체를 통해 전해지는 계시와 직접 전달되는 계시입니다. 간접 일반 계시는 뭔가를 통해서 전해지는 계시입니다. 하늘이 하나님을 드러낼 때 하늘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매개체, 즉 수단이 됩니다. 이런 의미에서 전 우주는 하나님 계시의 매개체입니다. 성경은 온 땅이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 차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슬프게도 우리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바로 그 영광을 보지 못합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만 보며 살아가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그의 영광스런 피조물 가운데서 공급하시는 기사와 경이에 대해 모르고 있습니다. 그 모든 것이 드러나 있지만, 우리는 그것을 직접 맛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종교적 개념이 실제적으로 표현되지 않는다면 아무런 가치가 없습니다. 장엄한 하나님의 임재가 우리를 사방으로 둘러싸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종종 장님이 되고 귀머거리가 됩니다. 단지 가던 길을 멈춰 꽃향기를 맡아보는 것만으로는 알 수 없습니다. 꽃에는 달콤한 향기 이상의 것이 들어 있습니다. 꽃은 그 지으신 자의 영광을 나타냅니다.
그러므로 자연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을 인식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계시와 접촉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자연을 가득 채우고 자연 속에서, 자연을 통해 나타납니다. 하나님은 또한 사람의 마음에 직접 자신을 계시하십니다. 이를 직접 일반 계시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2장 12-16절에서 "우리 마음에 새겨진 하나님의 법"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존 칼빈은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하나님께서 심어주신 신성에 대한 인식(sense)를 말합니다. "사람의 마음속에는 자연적인 직관으로 분명하게 판단할 수 있는 신성에 대한 인식에 존재하며..
그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모든 인간에게 부여된 것이며, 하나님께서 끊임없이 새롭게 하시며 때로 확장시키시는 인식이다"라고 말합니다. 세계 어느 곳의 문화든 일종의 종교적 활동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서 인간은 부정할 수없이 종교적인 존재라는 것이 드러납니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종교적입니다. 물론 그 종교의 성격은 형편없이 미신적인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미신적인 것조차,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선천적인 지식이 왜곡될 수는 있어도 말살될 수는 없다는 것을 증명해 줍니다. 신을 부인하는 사람에게도 종교성은 존재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존재하시며 하나님이 우리에게 자신의 법을 주셨다는 사실을 영혼 깊은 곳에서부터 압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가 지난 칼럼의 주제에서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말할 때 여러분의 마음이 움직였으며 이렇게 그다음 칼럼을 듣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의 명령에서 도망치기 위해 그러한 신지식을 억제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이러한 내면의 소리를 잠재울 수는 없습니다. 억제할 수는 있어도 없애버릴 수는 없는 것이지요. 성령님께서 그 사람의 마음에 임하셔서 그 신지식을, 종교성을 깨우시기 때문입니다!

 

새찬송가 부르기

 

오늘의 Q.T.

주관적 경험 만으로 판단하지 말라


"어떤 말씀이 내게 가만히 이르고 그 가느다란 소리가 내 귀에 들렸었나니 사람이 깊이 잠들 즈음 내가 그 밤에 본 환상으로 말미암아 생각이 번거로울 때에 두려움과 떨림이 내게 이르러서 모든 뼈마디가 흔들렸느니라 그 때에 영이 내 앞으로 지나매 내 몸에 털이 주뼛하였느니라 그 영이 서 있는데 나는 그 형상을 알아보지는 못하여도 오직 한 형상이 내 눈 앞에 있었느니라 그 때에 내가 조용한 중에 한 목소리를 들으니 사람이 어찌 하나님보다 의롭겠느냐 사람이 어찌 그 창조하신 이보다 깨끗하겠느냐 하나님은 그의 종이라도 그대로 믿지 아니하시며 그의 천사라도 미련하다 하시나니 하물며 흙 집에 살며 티끌로 터를 삼고 하루살이 앞에서라도 무너질 자이겠느냐 아침과 저녁 사이에 부스러져 가루가 되며 영원히 사라지되 기억하는 자가 없으리라 장막 줄이 그들에게서 뽑히지 아니하겠느냐 그들은 지혜가 없이 죽느니라"(욥기 4장 12-21절).


함께 읽은 본문 중 19절 "흙집"은 흙으로 창조된 인간의 육체를 빗댄 표현입니다. 이제 엘리바스는 자신의 주관적인 계시 경험을 통해 욥을 판단하며 정죄합니다. 엘리바스는 환상 중에 한 영이 자기 앞으로 지나가며 들려준 목소리를 욥에게 전합니다. 사람은 창조주 하나님보다 의로울 수 없고 깨끗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종도 믿지 않으시고 천사도 미련하다 하신다고 말합니다. 그러니 흙집에 사는 사람은 더욱 보잘것없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이 말은 엘리바스의 개인의 의견일 뿐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오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엘리바스의 계시 경험(12-16절).
엘리바스는 전통에 근거한 경험적 진술에 더해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받은 "계시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의 주장을 펼칩니다. 그가 깊은 잠에 빠졌을 때 "어떤 말씀"이 조용히 임하고 "가느다란 소리"가 들리는 것을 경험합니다. 그리고 어떤 "영"이 자기 앞을 지나가는 것을 느껴 털이 곤두서기까지 합니다. 그 영이 자신의 눈앞에 있었지만 "형상"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고 조용한 중에 어떤 소리만 들릴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엘리바스의 경험은 그의 개인적인 경험일 뿐입니다. 또한 명확하지 않습니다.
그의 경험을 자세히 살펴보면 모든 것이 명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어정쩡한 분이 아니십니다. 그렇다고 그의 개인적인 계시 경험이 틀렸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엄연한 개인적인 개시 경험입니다. 그러한 경험을 다른 이에게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이렇듯 하나님 모습은 보지 못하고 음성만 전달받은 엘리바스의 계시 경험은 모세나 엘리야의 계시 경험을 떠올리게 하지만, 그들이 받은 계시는 명확했습니다. 그는 이처럼 성경의 위대한 인물들과 견줄 수 있는 계시 경험을 이야기함으로, 자신의 주장에 권위를 부여하려고 합니다.


인간은 하나님보다 의로울 수 없다(17-21절).
엘리바스가 이 경험을 이야기한 이유는 17절, "사람이 어찌 하나님보다 의롭겠느냐 사람이 어찌 그 창조하신 이보다 깨끗하겠느냐"라는 말을 뒷받침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질문의 답은 당연히 "아니요"입니다. 18절,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종이나 천사들조차 하나님 앞에서 흠결이 있습니다. 제아무리 천사라 할지라도 미련한 존재일 뿐입니다. 하물며 흙으로 지음 받은 인간이 어떻게 감히 하나님 앞에 원망과 불평을 쏟아 낼 수 있냐며 욥을 나무라는 것입니다. 그의 말은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린 말입니다.
인간은 아침과 저녁 사이에 사라져 가루가 도는 연약한 존재일 뿐임은 맞습니다. 욥이 자신의 의로움을 주장할 수 없는 것은 그가 죄인이어서가 아니라 연약한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엘리바스는 자기주장의 확실함을 담보하기 위해 계시 경험을 이야기했지만, 그의 말대로 그 역시 한없이 연약한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그의 주관적 계시 경험을 모든 상황에 적용할 수는 없습니다. 제아무리 대단한 계시 경험일지라도 때와 상황에 맞게 적용하지 않으면 유익이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받은 주관적 계시 경험을 아무에게나 무분별하게 적용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전지전능하시고 유일한 세상의 주인이신 하나님 아버지, 의로우신 하나님 앞에 도저히 나아갈 수 없었던 우리에게 십자가 구속으로 완전한 길을 내어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감격스럽습니다. 연약하고 허무한 인생이 주님으로 인해 값지고 아름답게 변화되었으니 교만함을 버리고 겸손하지만 당당한 주님의 자녀로 살게 하시옵소서. 우리가 경험하고, 목도하고, 깨달은 모든 것들은 우리 개인에게 꼭 필요한 것이니 모두에게 적용되는 것은 아님을 명심하게 하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찬양의 향기

 

그리스도인의 삶

원수가 우리를 괴롭힐 때..!


영적 전쟁이 일어나면 우리가 겪는 현상 뒤에 우리를 공격하는 존재가 있다는 것을 항상 의식해야 합니다. 욥의 친구들은 원수가 욥을 공격하고 있다는 사실을 꿈에도 알지 못했습니다. 영적 전쟁에 대한 감각이 없었던 그들은 결국 욥에게 죄가 있다고 단정했습니다. 영적 전쟁을 이해하지 못해서 욥을 돕기보다는 괴롭게 했습니다. 상황이 꼬이고, 관계가 어려워지고, 삶이 힘들 때 우리는 원수의 공격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사탄은 언제든지 우리를 넘어트리고 자신의 종으로 삼기 위하여 틈을 노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영적 전쟁의 특징 중 하나는 자신에게 벌어진 일에 대해서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대응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필요 이상으로 화가 나거나 두렵거나 외로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딱 그 순간만 그렇습니다. 전쟁을 치르는 순간에는 괴로움과 두려움이 파도처럼 몰려와 금장 내 삶을 망가뜨릴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다만 전쟁 중일 뿐입니다. 그래서 상황과 감정을 분리해 살펴야 합니다. 객관적인 시선으로 상황을 관찰하고 말씀으로 판단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는 기도가 절실합니다. 영적 전쟁은 단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이런 상황이 되면 아이들이 내 얼굴을 살폈습니다. 그러나 가족과 내 상태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하면서부터 훨씬 여유 있게 아이들을 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문제가 아니라 원수의 문제라는 것을 알고 서로 따뜻한 마음으로 나눌 때, 평강을 누릴 수 있습니다. 자신의 힘겨운 고난의 상태에 대해 말할 수 있는 동료를 만드십시오. 분노와 위축된 감정이 아닌,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 내면을 주장할 때 원수는 힘을 잃습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평소에 영적 무장이 되어 있어야 합니다. 말씀과 기도와 찬양으로 무장합시다!(김길 목사)

 

기도의 횃불

부흥의 불씨를 살리게 하시옵소서!


온 누리에 자비를 주셔서 날마다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주님께 찬양함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감사드립니다. 이 시간, 저희들이 드리는 찬양가 기도를 통하여 주님만이 홀로 영광을 받으시옵소서. 또한, 오늘 주님께 드려지는 이 찬양이 우리의 일상에서 항상 한결같을 수 있도록 저희의 믿음을 굳게 세워주시옵소서. 사랑의 주님! 무엇보다도 오늘 나눈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구주 되시는 예수님의 삶을 더 깊이 깨닫고 실천하는 오늘이 되게 하시옵소서. 그 어떤 열악한 조건과 환경을 만날지라도 우리의 믿음을 지켜가게 하시옵소서!
은혜의 주님! 교회 공동체를 오늘날까지 든든히 세워주시고 인도하심을 감사드립니다. 갈수록 믿음을 지켜가기가 어려워지고 있는 현실 속에서, 그럼에도 우리에게 부흥을 주시옵소서. 주님의 지체된 저희 모두가 꺼져가는 부흥의 불씨를 다시 살릴 수 있는 은혜를 더하여 주시옵소서. 열심을 다하여 더욱 기도할 수 있게 하시고,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하기에 힘쓸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우리 공동체가 이 지역에 구명선의 역할을 잘 감당할 수 있는 구원의 방주가 되게 하시고, 산 위에 세워진 등대가 되게 하시옵소서!
이 세상이 썩어가는 것을 막는 소금의 역할을 다하는 우리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우리에게 성령님으로 충만케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맡겨진 각자의 사명을 믿음으로 감당하여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이루어가게 하시옵소서. 혹여 사역의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주님만을 바라보며 위로와 평안을 얻을 수 있게 하시옵소서. 우리의 삶이 예배인 것을 깨닫습니다. 우리가 있는 그곳이 바로 예배의 자리입니다. 악한 마귀가 우리의 삶에 일절 틈타지 못하게 막아주시고 언제나 말씀과 기도와 찬양으로 영적 무장하게 하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가정교회를 말하다

그때 그 교회..!


성경에 기초해서 초대교회, 1세기의 교회는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교회"라는 단어를 보면, 특정한 날에 정해진 건물에 모여 특정한 사람들의 리더십을 따라 예배를 드리는 모임을 떠올리거나 아니면 무슨 무슨 위원회, 무슨 교파, 어떤 조직 또는 사례를 받는 전임 사역자 등을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이러한 양상은 3세기 이후 지난 1700년간 기독교의 전통 중 하나로 자리해 왔습니다. 따라서 오늘날과 아주 달랐던 1세기 그리스도인들의 모임과 조직 그리고 그들의 사고를 살펴보면 우리는 아마도 충격을 많이 받을지도 모릅니다.
만약 1세기 그리스도인이 오늘날을 살아간다면 특히 서구에서 교회라고 부르는 것들을 아주 이상하게 바라볼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가정교회 운동을 점도 구체적으로 준비하며 예수님과 제자들이 교회의 역할과 형태에 관해 언급한 1세기 당시의 증거를 찾기 위해 신약성경을 검토하면서 특별히 다음과 같은 일곱 가지의 핵심 질문에 대해 살펴볼 것입니다. 첫째,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자기 자신을 어떻게 보았는가? 둘째, 초기 교회 성도들은 어디에서 모였는가? 셋째, 1세기 교회들은 어떤 모습이었는가? 넷째, 초대 교회는 어떤 리더십을 가졌는가? 
다섯째, 가정교회는 어떻게 하나의 운동으로 이어졌는가? 여섯째, 초기 교회는 어떻게 성장했는가? 마지막 일곱째, 사도들은 교회가 자신들의 청사진을 따르길 기대했는가?입니다. 저는 이것들을 하나하나 조명해 가면서 여러분과 초대교회를 닮은 가정교회를 만들어가는 시도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여기서 다시 한번 강조하는 것은 이러한 운동 특히 교회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운동은 철저히 성경의 토대 위에 세워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일을 위하여 제일 우선적이고 절대적으로 성경에 의존하기 하였습니다. 그것이 성령님의 이끄심입니다.(계속..)

축복의 노래

복음 쪽지~㉾

지금 즉시 돌이켜 회개하면..


당신이 지금 즉시 돌이켜 회개하면 성령님께서 다른 본성과 성향을 주실 것입니다. 그러면 죄를 지으며 사는 것보다 죄를 버리는 것이 더 큰 즐거움이 될 것입니다. 당신이 알고 있는 모든 죄와 고의로 범한 모든 죄에서 즉각 따나십시오! 단호하게 결단하고 다시는 그 길로 가지 마십시오. 육신의 정욕을 부추길 소지가 있는 모든 장소와 기회들을 의도적으로 피하십시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돌이켜 회개해야 한다는 조건으로 자신을 당신에게 선물로 주시고 영원한 생명까지 주셨습니다. 모든 죄를 값없이 용서해 주시겠다고 제안하고 계십니다!

 

“예림의집”이란?

예림의집은 “예수님께서 임하셔서 거하시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세상 가운데로 보내시면서 마태복음 28장 29절,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임재를 통하여 실제로 그리스도인에게 오셔서 그리스도인의 모든 삶을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예림의집은 예수님의 사역에 동참시키시는 주님의 그 부르심에 순종하여 세워진 후원 모임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으로 주님이 주신 권능으로 담대히 나아가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영접하는 우리의 마음을 거처로 삼으십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요한복음 14장 23절,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여러분은 사도행전 2장을 기억하실 겁니다. 오순절에 예수님이 약속하신 성령님이 그들에게 임하시자 그들은 예수님께서 전에 하신 말씀의 성취를 생생하게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마음에 거하시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몸과 마음을 비롯한 전인격이 예수 그리스도의 거처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성령님이 제 마음속에 들어오셔서, 그분을 섬기고 거기서 그분과 즐거워하고 그분을 알아가는 것이 가장 큰 축복임을 고백합니다. 그분을 제 마음에 모셨던 그날 저녁을 저는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1986년 여름, 제가 고 2 때 청소년 연합 여름 수련회 저녁 집회 설교시간에 일어난 일입니다. 주님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사건은 얼마나 감격적인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주님의 임재하심은 제 중심에서 발생한 엄연한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그 후로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모신 것에 대해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영원히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그리스도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새로운 삶이 시작된 나는 “주님, 저의 모든 것은 주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뜻대로 사용하옵소서!”라고 고백했습니다. 물론 주님은 기꺼이 저의 고백을 받으셨고, 저를 주님의 영광된 사역에 동역자로 삼으셨습니다.
주님을 마음에 모신 저는 날마다 주님을 찬송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저의 삶에서의 주님과의 동거가 시작되었고, 예림의 집의 사역도 시작되었습니다. 예림의집의 "예림"은 세 가지 깊은 의미를 가집니다. 첫째, 예수님이 임재하신 마음, 모임이란 뜻이고, 둘째, 예수님의 그림자로 빛과 소금으로 살겠다는 마음가짐이며, 셋째, 예수님의 재림을 기대하고, 기다리며, 준비한다는 뜻입니다! 이 세 가지의 정신을 모토로 하여 선교사와 개척교회를 돕고 있으며, 온라인 사역과 찬양사역, 그리고 21세기 새로운 교회의 모델인 가정교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예림의집 사역을 소개합니다

첫째, 온라인 선교사역
①다음 카페 “예림의집”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회원가입을 하시면 그 순간부터 저의 예림의집 사역이 동참하게 됩니다. 현재 회원 수 1300여 명으로 이들이 잠정 후원자가 되어 기도 후원, 물질 후원, 재능기부 등을 하게 됩니다. 카페를 매개로 하여, 서로의 비전과 기도 제목을 나누고, 힘을 합쳐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해 갑니다. 저의 사역에 동참하시길 원하시는 분은 다음 검색 창에 예림의집을 치세요!
②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은 따로 회원 가입을 할 필요 없이 언제, 어디서나 방문하여 필요한 정보와 신앙 글들을 접할 수 있습니다. 검색어를 통해 접근하여, 현재 다음 블로그 80만여 건, 네이버 블로그 40만 건의 방문자 수를 기록 중입니다. 다음 카페 예림의집과 연동되어 하루 평균 20건 이상의 정보가 업로드되어 현재 4만 편이 넘는 좋은 글들을 접하실 수 있습니다.
③페이스북 활동(김정민)
요즘 활성화되어있는 페이스북 활동을 통하여 온라인 선교의 지경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저를 친구 초대해 주시고 팔로우해 주시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현재 25개의 그룹을 만들어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친구들을 만나고, 복음을 전하며, 선교 동원가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제 이름 "김정민"을 많이 친구 추가해 주세요!
④유튜브 방송 "예림의집TV"
복음 전파와 영적 무장의 방편으로 유튜브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매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6일 방송하며, 새벽 기도회(월-금 오전 5:00), 예림의집 이야기(월-금: 오후 5:00),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토: 오후 5:00)을 실시간 방송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주일예배, 짤 영상 모음 등 영적 무장과 복음 전파에 관련된 영상들을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검색창에 "예림의집TV"를 치시고 많이 오셔서 ✔️구독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둘째, 선교사/개척교회 후원 사역
이 사역은 찬양사역을 하던 저에게 새로운 비전을 주셔서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게 하신 사역입니다. 선교사님들과 개척교회를 바르게 후원하기 위해서는 제가 먼저 선교와 교회 개척 사역에 헌신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예림의집 카페 회원들을 포함한 그동안 주께서 연결해 주신 후원자 1800여 명이 함께 감당해 가는 사역입니다.
첫 번째, 기도 후원 사역은 주께서 연결해 주신 선교사님이나 개척교회를 위해 40 명의 기도 용사를 세우는 사역입니다. 제1호 필리핀 “김성재 선교사님”과 서울 상도동 “주님의 교회”를 필두로, 현재 26명의 선교사님과 20개의 개척교회를 기도로 후원하고 있고, 그 지경을 넓혀 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물질 후원 사역으로 앞에서 말씀드린 기도 후원자들 중에 하나님께서 자원하는 마음을 주신 분들이 물질 후원을 하게 됩니다. 재정 후원은 선교사님과 개척교회 목회자 가정의 기초 생활비를 우선적으로 지원하도록 원칙을 세웠습니다. 물품 후원은 선교나 교회 개척에 필요한 다양한 물품들을 자원하여 후원하게 됩니다. 특히 도서 후원은 성경책, 신앙 도서, 아이들 학습 도서 등. 작은 도서관을 만들 수 있도록 후원합니다.
세 번째, 재능기부 사역은 주님께서 주신 모든 달란트를 활용하여 선교와 교회 개척을 지원하는 사역입니다. 예를 들어, 선교 지원팀, 여름 성경 학교 진행팀, 찬양팀, 자원봉사단 등이 있습니다. 모든 재능 기부 사역은 “자비량”을 원칙으로 합니다. 특히 전도 지원팀을 구성하여 개척교회를 지원합니다. 이 사역을 통하여 새로운 선교사들과 교회 개척자들이 새워질 것입니다. 선교지나 개척 현장에서 필요한 프로젝트 그룹을 조직하여 지원합니다.

셋째, 찬양 세미나/찬양 집회 사역
제가 약 30년간 해오던 찬양 사역의 일환으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찬양을 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특별히 부여하신 사역입니다. 아직도 찬양에 대한 무지와 편견으로 주님을 맘껏 찬양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제가 경험한 찬양에 대한 놀라운 비밀을 나누는 사역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잠시 멈추고 준비 중이며 내년부터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이 2018년 가을에 발간되었습니다. 저는 비록 짧은 시간 동안 여러분을 만나지만, 찬송은 너무나 소중하기에 글로써 여러분들의 곁에서 치침이 되어드리고자 합니다. 찬송에 대한 저의 지난 30년간의 찬양사역의 총결산의 책입니다. 본 책의 내용은 앞서 설명한 다음 카페와 블로그 예림의집과 페이스북 그리고 토요일에 방송되는 찬양 방송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통해 미리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특히 개척교회는 요청하는 수량을 무료로 제공해 드립니다.


예림의집 사역에 동참하는 방법

첫째, 유튜브 <예림의집TV>방송을 봐주시고,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이나 페이스북 <김정민>의 글을 봐 주시는 것만으로도 일차적으로 동참하는 방법입니다. "구독/좋아요/홍보"까지 해 주시면 더욱 좋겠죠.
둘째,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오셔서 회원이 되어 주시고, 여러 게시판의 글을 통해 영성 훈련을 하시고, 여러분의 삶 속에 적용하셔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십시오. 좋은 글들과 댓글을 올려주시면 더욱 좋겠지요.
셋째, 다음 카페 <사역>코너에 있는 찬양사역/선교후원사역/개척후원 사역에 적금 동참하시는 방법입니다. 제일 중요한 기도 후원과 성령님이 인도하심을 따라 재정과 재능 후원에 동참하시면 더욱 좋습니다.
넷째, 여러분이 섬기는 공동체에 저를 초청하는 방법입니다.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3개월 전에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다섯째, 제가 펴낸 책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구입하셔서 정독하시는 것입니다. 포털 검색창에 책 이름을 치시고, 온라인상으로는 구매하시면 됩니다. 정독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하십시오!


김정민 목사
010-9442-6928
yerim21@hanamil.net
다음 카페 예림의집: http://cafe.daum.net/HomeOfYERIM
다음 블로그 예림의집: http://blog.daum.net/yerim21
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https://blog.naver.com/yerimess
유튜브 예림의집TV: https://www.youtube.com/channel/UCarpDnpNgU0RQn9ksDdSPPw
후원 계좌: 농협 3560686657493(예금주: 김정민)

예림의집 김정민 목사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