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림의집 메일 모음

예림의집 2410번째 이야기

예림의집 2021. 10. 6. 14:27

예림의집 2410번째 이야기

사색의 바다

우리의 전체를 맡길 때..!


우리가 하나님께 묻지 않고 우리의 경험과 지식에 의거해서 일상적으로 일을 계획하고 진행시킨다면 그 사역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을 보기는 어렵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때로는 상식적이지 않은 것을 요구하기도 하시고, 때로는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으로 우리가 전진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믿음의 분량을 키워주시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초청에 응해서 우리의 전체를 맡길 때, 하나님은 놀라운 일들을 우리에게 보여주십니다. 우리 믿음의 반응만큼 하나님의 경이로우심을 체험하게 됩니다. 내 경험과 지식을 내려놓을 때 하나님의 일하심을 느낄 수 있습니다!

 

예림가족 이야기

인생의 목적이 어디에 있느냐?

저는 세계의 유명한 학자들을 만날 기회가 많습니다. 가끔 그들 중에는 인격과 성격이 괴팍하기로 이름난 사람들이 있습니다. 학회나 세미나 도중 연사를 공개적으로 모역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됩니다. 그런데도, 실력이 있으면 그들의 모난 인격이 대체로 용납되고, 어떤 경우에는 그런 점으로 인하여 천재성이 더 빛나 보이기까지 합니다. 저녁식사 시간에 학자들이 심심하지 않도록 가십거리를 제공해 줘서 한편 고맙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런 행동이 사실 썩 유쾌한 일은 아닙니다. 그런가 하면, 인격적으로도 훌륭하고 실력도 있는 학자들이 있습니다.
그 "인생의 목적이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서, 그 인간성이 다르게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오로지 자기 분야에서 성공하고 인정받는 것이 인생의 목표라면, ‘인격의 완성’이나 ‘공동체에서 다른 사람들과의 어울림’은 개의치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자아가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져서 뒤틀리고 왜곡되는 것을, 학문의 이름으로, 또는 유명한 학자라는 이유로 정당화할 수는 없습니다. 저는 남들보다 뛰어나지 못한 ‘한낱 작은 자’에 불과합니다. 낮은 자리에서 사회의 냉대와 차별을 받았고, 가난과 질병 때문에 고통당한 적이 많았습니다.
함께 공부하던 동기들 중엔 참으로 똑똑한 이들이 많았습니다. 때로는 그들에 비하여 "저의 능력이 너무 형편없다"라는 생각에 우울해지는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하나님께로부터 성실하게 공부하되, 자족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만큼 행하면서, 제가 가진 만큼 사람들을 섬기는 것입니다. 공부 역시, 제가 할 수 있는 만큼 하되, 온 마음을 다합니다. 경건하고 윤리적으로 살되,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말씀을 전하며 실력 있는 학자가 되는 것, 이것을 하나님 믿는 자의 소명으로 삼았습니다. 이것이 제 원동력입니다.
우리는 본질적으로 죄인인 동시에 예수님의 장성한 분량까지 이르러야 하는 소명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가난하지만 가장 부요하고, 고난 속에서도 소망을 바라보고, 결핍 속에서도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셨던 예수님, 그리고 무한한 사랑을 그 안에 간직한 채 죽기까지 겸손하셨던 그분을 본받는 것이 우리의 소명일 것입니다. 저는 예수님에 대해 많이 묵상합니다. 그 가운데 예수님을 닮아가죠. 복음서를 통해서 예수님의 깊은 삶을 배우고 닮아가는 것은 저에게 있어서 매우 큰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도 이와 같은 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김인강교수)

그렇습니다. 실력도 있고 인격적인 사람, 그 누구나 바라는 바가 아닐까 싶습니다. 하지만, 쉽지 않은 일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바라보면서 주님 닮아가기를 원하지만, 옛사람이 붙잡고 늘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 앞에 서면 그야말로 벌레만도 못한 존재’라는 것을 머리로는 인식하면서도, 실제로는 여전히 몇 푼 안 되는 옛사람의 교만이 주님의 길을 가로막습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로마서 7:24-25).

 

단장 칼럼

기독교의 핵심 진리① 하나님의 계시


우리가 기독교에 대해 아는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계시로 드러내 주신 것들입니다. "계시한다."라는 말은 "베일을 벗긴다"라는 뜻입니다. 즉 가려져 있는 어떤 것의 덮개를 여는 것을 말합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다양한 방법으로 계시하신다고 말합니다. 그분은 자연 안에서, 그리고 자연을 통해 그 영광을 드러내십니다. 고대에는 꿈과 환상을 통해 자신을 계시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섭리하신 흔적은 역사 속에 나타나 있습니다. 하나님은 영감 된 말씀 속에 자신을 게시하십니다. 결정적으로 "인간이 되신 예수님"을 통하여 나타내셨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여러 모양"으로 계시하신다고 말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일반 계시와 특별 계시라는 두 가지로 분류합니다. 우리는 일반 계시를 통해 하나님이 존재하신다는 지식을 얻습니다. 시편에는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라고 말합니다(시편 19:1). 이러한 나타남은 너무도 명명백백하기 때문에 인간을 포함한 세상 만물 모두가 알 수 있습니다. 일반 계시는 하나님의 영원한 능력과 신성을 보여줍니다(로마서 1:18-23). 그러나 자연 속에 나타난 계시는 계시의 전부가 아닙니다. 자연 속의 계시로는 하나님을 모두 알 수는 없습니다.
자연 속의 계시로는 우리가 성경에서 볼 수 있는 하나님의 구원에 대해서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자연 속에 계시된 하나님은 성경 속의 하나님과 동일한 하나님입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성경을 읽거나 복음을 듣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햇빛이 모든 시간, 모든 장소, 모든 사람에게 비치듯 날마다 하나님의 일반 계시가 주어집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자신을 증거하십니다. 우리 눈에 보이는 세상은 그 세상을 지은 자의 영광을 반사하는 거울과도 같습니다. 세상은 하나님을 위한 무대입니다. 이 우주는 무대이지 세상의 주인공은 절대 아닙니다.
어머니 같은 자연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자연은 그 자체로 생명을 만들어 낼 수 없습니다. 생명을 만들어내는 능력은 자연을 지은 분, 하나님께 있습니다. 자연을 생명의 근원으로 여기는 것은 피조물과 창조자를 혼동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자연 숭배는 그 형태를 불문하고 하나님께서 역겨워하십니다. 일반 계시를 통해 모든 인류는 하나님이 존재하신다는 것을 압니다. 신이 있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죠. 무신론은 사실에 대한 무조건적인 부정입니다. 성경이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시편 14:1)라고 말한 이유입니다.
성경이 무신론자를 "어리석은 자"라고 부를 땐, 그에 대한 도덕적 판단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즉 성경에서 말하는 "어리석은 자"란 얼간이, 혹은 바보의 의미가 아니라 "부도덕하다"라는 의미입니다. 또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므로 하나님을 부인하는 것은 어리석음의 극치입니다. 불가지론자 즉, "사물의 본질이나 실재의 참모습을 사람의 경험으로는 인식할 수 없다."라고 주장하는 자들은 무신론자들보다 그나마 좀 나은 편이지만 그들 역시 일반 계시의 힘을 부정합니다. 그들은 신의 존재를 완전히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그들은 오히려 신의 존재를 증명할 만한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입장을 취합니다. 그들은 신의 존재 여부를 미결의 문제로 남겨 둠으로써 자신들의 결정을 유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반 계시의 명확함을 비추어 볼 때 불가지론의 입장도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철두철미한 무신론자의 입장 못지않게 역겨운 것입니다. 마음과 생각이 열린 자라면 누구에게나 하나님의 영광은 놀라운 것입니다.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정말로 엄청난 분이신 것입니다. 일반 계시는 신이 있다는 것을, 특별 계시는 그 신이 누구인가에 대한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줍니다!

 

새찬송가 부르기

 

오늘의 Q.T.

죽음의 세계를 동경함


"어찌하여 내가 태에서 죽어 나오지 아니하였던가 어찌하여 내 어머니가 해산할 때에 내가 숨지지 아니하였던가 어찌하여 무릎이 나를 받았던가 어찌하여 내가 젖을 빨았던가 그렇지 아니하였던들 이제는 내가 평안히 누워서 자고 쉬었을 것이니 자기를 위하여 폐허를 일으킨 세상 임금들과 모사들과 함께 있었을 것이요 혹시 금을 가지며 은으로 집을 채운 고관들과 함께 있었을 것이며 또는 낙태되어 땅에 묻힌 아이처럼 나는 존재하지 않았겠고 빛을 보지 못한 아이들 같았을 것이라 거기서는 악한 자가 소요를 그치며 거기서는 피곤한 자가 쉼을 얻으며 거기서는 갇힌 자가 다 함께 평안히 있어 감독자의 호통 소리를 듣지 아니하며 거기서는 작은 자와 큰 자가 함께 있고 종이 상전에게서 놓이느니라 어찌하여 고난 당하는 자에게 빛을 주셨으며 마음이 아픈 자에게 생명을 주셨는고 이러한 자는 죽기를 바라도 오지 아니하니 땅을 파고 숨긴 보배를 찾음보다 죽음을 구하는 것을 더하다가 무덤을 찾아 얻으면 심히 기뻐하고 즐거워하나니 하나님에게 둘러 싸여 길이 아득한 사람에게 어찌하여 빛을 주셨는고 나는 음식 앞에서도 탄식이 나며 내가 앓는 소리는 물이 쏟아지는 소리 같구나 내가 두려워하는 그것이 내게 임하고 내가 무서워하는 그것이 내 몸에 미쳤구나 나에게는 평온도 없고 안일도 없고 휴식도 없고 다만 불안만이 있구나"(욥기 3장 11-26절).


함께 읽은 본문 중 14절, "모사"는 왕의 조언자요 상담자를 가리킵니다. 이들은 왕에 버금가는 지위와 명예를 누렸습니다. 욥은 그의 극심한 고통 가운데 자신이 태어날 때 죽어서 나오지 않은 것을 한탄합니다. 그랬다면 지금 평안히 누워서 자고 쉬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고난을 당하는 이는 숨은 보배를 찾기보다 죽기를 더 바라고, 무덤을 찾아 얻으면 기뻐합니다. 욥은 자신에게 평온과 안일과 휴식은 없고 불안만 있다고 호소합니다. 그가 얼마나 극심한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당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저주하지 않는 것이 신기할 정도입니다.


탄원의 질문(11-19절).
하나님을 향한 정직한 부르짖음은 "나"를 알아가는 여정의 첫걸음입니다. 욥은 "탄원의 질문"으로 자신의 존재 이유를 묻습니다. 11-12절과 20절에 나오는 "어찌하여"는 탄원시에 나타나는 두드러진 특징입니다. 다윗은 시편 10편 1절에서 "여호와여 어찌하여 멀리 서시며 어찌하여 환난 때에 숨으시나이까"라며 탄원합니다. 또 시편 22장 1절에서는 "여호와여 어찌하여 멀리 서시며 어찌하여 환난 때에 숨으시나이까"라고 탄원합니다. 그는 자신이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편안히 안식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땅에서 서로 다른 지위를 가졌던 이들(왕, 모사, 고관)이 죽음의 세계에서는 모두 동일한 안식을 누립니다. 그곳에서는 악한 자가 소요를 그치고, 피곤한 자가 쉼을 얻습니다. 갇힌 자가 평화를 누리고, 큰 자나 작은 자가 같아지고, 종이 상전으로부터 자유를 얻습니다. 욥이 원했던 것은 죽음 자체가 아니라 죽음의 세계에서 누리는 안식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모습들은 주검의 겉모습일 뿐입니다. 욥은 극심한 고통 속에서 죽음을 그렇게 미화한 것입니다. 오늘날 죽는 것이 사는 것보다 낫다고 여겨질 만큼 힘든 때 우리는 주로 어떤 행동을 하나요?


왜 빛과 생명을 주셨는가?(20-26).
죽음의 세계는 안식과 평화가 있는 것 같고, 현실 세계는 고통과 수고만 가득한 것 같습니다. 욥은 이런 상황을 스스로 이해할 수 없기에 수많은 "어찌하여"를 쏟아 냅니다. 자신이 마주한 고난의 원인을 찾을 수 없기에 답답해하는 모습입니다. 욥은 피하고 싶은 현실 세계를 마주하며 20절, "어찌하여 고난당하는 자에게 빛을 주셨으며 마음이 아픈 자에게 생명을 주셨는고"라고 부르짖습니다. 이는 고통으로 가득한 삶의 의미를 묻는 탄식입니다. 욥은 하나님을 "이중적"으로 행동하시는 분으로 묘사합니다.
하나님이 한편으로는 욥에게 빛과 생명을 주시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23절, 그를 "둘러싸시며" 고난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욥은 자신의 삶을 하나님에 의해 봉쇄되어 빠져나갈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으로 묘사합니다. 하나님의 모순된 행동으로 인해 욥은 "불안" 가득한 현실을 마주합니다. 안정과 질서는 사라지고 무질서와 혼란의 파도가 욥을 엄습해 왔던 것입니다. 그러나 감당하기 힘든 문제 앞에서도 모든 일의 주권자이신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참 신앙입니다. 오늘날도 우리에게 하나님이 때로는 복을 때로는 환난을 주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어제나 오늘이나 신실하신 하나님 아버지, 감당하기 힘든 고난 때문에 하나님의 돌보심이 느껴지지 않아 불안하고 두려웠던 날들을 고백합니다. 평온과 안식이 사라진 현실에 부딪혀도 하나님의 선하신 손에 우리의 삶을 맡기게 하시옵소서. 하나님만이 우리가 태어나고 살아가는 이유임을 고백하며 살아가게 하시옵소서. 절망 속에서도 하나님을 찾고 바라며 구하게 하시옵소서. 우리의 삶이 힘들 때일수록 더욱 주님께 기도하고 성령께 매달리는 믿음의 역사가 있게 하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찬양의 향기

 

그리스도인의 삶

무엇을 좇고 있습니까?

네덜란드 출신의 아브라함 카이퍼(1837-1920)는 50년이 넘는 공직 생활을 하며 수상, 목사, 하원과 상원 의원, 교수와 편집인 등을 지낸, 화려한 이력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가 저술한 200권 이상의 책은 각 분야의 베스트셀러로 이름을 올렸습니다. 딸에게 쓴 그의 편지를 보면 그의 업적이 그냥 나온 것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나의 소명은 높고 나의 과업은 영광스러운 것이다. 내 침대 위에는 십자가상이 걸려 있는데 내가 그것을 쳐다볼 때면 매일 밤 주님이 나에게 이렇게 물으시는 것 같다. '나의 쓴 잔에 버금가는 너의 고통이 무엇이냐?'
그분의 섬김은 너무나 높고 영광스러운 것이다." 그가 평생에 걸쳐 좇아간 길은 예수님을 따르는 길이었습니다. 당신이 힘들고 지친 이유는 무엇입니까? 무엇 때문에 매 순간 안달하며 다름질 하고 있습니까? 당신이 살아가는 목적은 자신입니까, 예수님입니까? 마을을 위해 사는 이는 마을의 칭송을 받고, 나라를 위해 사는 사람은 애국자가 됩니다. 그러나 피조물을 초월한 창조주, 영원한 본질이고 실체이신 분, 너무나 탁월하셔서 세상의 어떤 것과도 비교가 불가능한 가장 크신 분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은 그만큼 큰 사람이 될 것입니다.
성경에 노아가 그랬고, 아브라함이 그랬으며, 모세가 그랬고, 다윗이 그러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시선을 고정시켰던 사람들입니다. 그러하기에 어떠한 어려움과 고난 속에서도 그들은 결국 하나님을 위해 살았으며 하나님께서 그들을 기꺼이 축복하시고 함께하셨던 것입니다. 우리도 그들처럼 살 수 있고, 살아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한 뜻입니다. 우리에게 깊은 소원을 두신 주님을 신뢰합시다.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궁극적인 목적은 오직 하나님의 영광입니다.(조동천 목사)

 

기도의 횃불

때를 놓치지 않게 하시옵소서!

지극히 자비하신 하나님 아버지! 저희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영원한 생명과 구원을 얻은 그 영광스러운 무리 중에 들게 하신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저희들이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경배할 수 있게 된 것은 전적으로 주님의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 때문인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 앞에 담대하게 나아와 거룩하신 하나님을 대면할 수 있게 된 것도 전적인 주님의 보혈인 것을 믿습니다. 이 시간, 하나님을 예배하면서 거룩함을 입은 무리들과 교제를 나눌 수 있게 된 것도 주님의 십자가 보혈 때문인 것을 믿습니다.
그 사랑 그 은혜를 기억하며 날마다 예배의 삶을 살아가는 기쁨과 영광을 누리는 저희들이 되게 하시옵소서. 저희를 구속하신 주님! 허물과 죄로 인한 상한 심령들을 돌아보시옵소서. 저희들의 삶을 돌아볼 때 의롭고 선한 것이 하나도 없었음을 고백합니다. 그야말로 생각과 마음과 행동 모두가 죄악의 흔적뿐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나이다. 이 시간, 회개하기를 원하오니 긍휼을 베푸셔서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저희 심령 속에 꽁꽁 얼어붙은 죄악의 모든 요소들을 완전히 끄집어내어 주셔서 성령의 불로 말끔히 불태워 주시옵소서.
깨끗함과 정결한 마음으로 주님께 예배하며 생명의 말씀을 받을 수 있도록 은총을 내려주시옵소서. 이날까지 저희의 생명을 연장시켜 주시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주시는 주님! 저희의 삶이 날마다 말씀에 대한 순종과 믿음으로 이루어질 수 있게 하시옵소서. 저희의 말에는 절제와 진실이 있게 하시고, 하나님 앞에서는 충성과 근면이 있게 하시옵소서. 저희의 심령 속에는 항상 주님의 사랑이 넘쳐나게 하시고, 저희의 손과 발에는 항상 주님을 높이는 향기가 묻어날 수 있게 하시옵소서. 만물을 새롭게 하시고 성장케 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시간이 지날수록 깊어가는 가을처럼, 우리의 신앙의 농도도 짙어지게 하시옵소서. 자연 만물도 창조주이신 주님께 더 성장하여 열매 맺는 모습을 보여드리는 것과 같이 우리 또한 믿음으로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시옵소서. 또한 저희들은 택함 받은 주님의 자녀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돌이켜 보게 하시옵소서. 주님! 저희로 하여금 때를 놓치지 않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붙들어 주시옵소서. 믿음이 성장할 때를 놓치지 말게 하시고,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는 신앙의 삶이 되게 하시옵소서. 하나님의 은혜로 충실한 열매를 맺게 하시옵소서.
하나님을 힘써서 찾을 수 있는 때를 놓치지 않게 하시고, 더욱 간절함을 가지고 기도에 힘쓸 수 있는 기회를 잃지 않는 신앙의 삶이 되게 하시옵소서.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라면 몸을 깨뜨려 봉사하며 충성할 수 있게 하시고, 주님이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라면 마음을 다하여 섬기며 희생할 수 있는 신앙의 삶이 되게 하시옵소서. 그리하여 점점 더 영적으로 부요해지고 믿음의 큰 열매를 맺는 축복의 사람이 되게 하시옵소서. 사랑의 주님! 오늘도 주님의 위로의 손길, 치료의 손길, 축복의 손길이 필요한 교우들이 우리 주위에 많이 있습니다.
그들의 상한 심령을 찾아가 주셔서 갈급한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병든 육신을 치료해 주시며, 갈한 영혼에 소성함을 얻게 하여 주시옵소서. 어두운 눈이 밝아지고, 하늘의 지혜와 평안과 기쁨이 넘치게 하시옵소서. 주님! 저희들은 지금 고난과 역경 속에 코로나19라는 긴 터널을 지나고 있습니다. 고난이 없으면 주님과 함께 받을 영광도 없다는 것을 기억하여, 주님의 고난받으심에 적극 동참하려는 간절함이 있게 하시고, 주님의 마음으로 주변의 안타까운 곳을 돌아볼 수 있는 긍휼을 품을 수 있게 하시옵소서. 예수님을 높이 전하게 하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가정교회를 말하다

교회의 본질과 사명

새로운 교회의 패러다임을 준비하면서 교회의 본질을 생각하지 않을 순 없었습니다. 성경적인 교회는 어떠한가, 초대교회는 어떻게 새워졌고, 어떠한 정신으로 시작되었는가를 살펴보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본질을 생각하면서 거실에 모여 하나님과 서로를 알아가기에 힘쓰는 작은 무리들이 도시 전체를 가득 메운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이들은 정기적으로는 가정에서 모이지만 사무실과 아파트, 그리고 대학 캠퍼스 동아리방에서도 모입니다. 그리고 복음을 들고 거리고 나갑니다. 사람들은 그들은 "가정교회"라고 부릅니다!
이런 가정교회는 한 사람이 모임을 주도하지 않고, 각자의 은사를 발휘해 모두가 기여하면서 함께 참여하고 영향을 주고받습니다. 그들은 무엇보다 하나님과 믿음에 대해, 복음 증거에 대해, 그리고 가정과 사회, 문화, 자녀 양육, 관계, 진로, 고난과 아픔 등 다양한 주제들에 대해 나누기 위해 매주 모입니다. 그들은 함께 프로젝트를 시작할 수도 있고, 성경을 읽고, 기도하고, 함께 울고, 함께 먹고, 함께 성찬에 참여하고, 세례를 베풀고, 그리고 어느 대는 그저 어울려 교제하기도 합니다. 참으로 이 공동체의 모습은 지상 천국의 모습일 것입니다.
이러한 가정교회는 전통적인 성직자가 인도하고 주관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이웃을 사랑하고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이 우리 삶의 핵심임을 발견합니다. 여기에 참여하는 이들은 1세기 예수님의 제자들이 그러했듯 공동체 안에서 그리고 복음을 증거하는 가운데 예수님의 주님 되심과 성품을 다시금 발견하기를 기대합니다. 교회 전용 건물이나 사례를 월급처럼 받는 성직자, 화려한 예배, 고비용이 프로그램은 원하지 않으며 실제로도 이런 것을 필요로 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말씀과 기도와 찬양으로 영적 무장을 추구하는 공동체입니다.
이러한 공동체의 삶의 경험은 너무도 강렬한 것이어서 하나님을 믿지 않거나 교회에 회의적이던 이웃, 직장 동료, 가족, 그리고 친구들이 긍정적으로 변하게 되고 그 모임에 속속히 참여하게 됩니다. 이 모임이 지속적으로 성장하여 참여 인원이 많아지면 전략적으로 새로운 모임으로 분립하게 되는데, 이 새로운 모임은 가까운 이웃의 집으로, 기업체의 기도 모임으로, 또는 교육기관으로도 확산됩니다. 이 모임의 지도자는 보다 효과적인 공동체로 자리가 위해 몇 가지 본질적인 부분만을 강조하고 힘을 실어주지만 많으은 것들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가정교회는 교회의 경계선을 한정하지 않습니다. 도시 전체를 아우르는 단일하고 일치된 교회로서 여러 가정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사역할 때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지체들의 연합이 모든 이들에게 분명하게 드러나게 됩니다. 가정교회는 교파나 전통에 따른 경계선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이는 도시 전체를 아우르는 한 몸 된 지체로서 함께 동역하는 데 방해가 되기 대문입니다. 서로를 네트워크로 연결하기 위해 가정교회는 가정끼리 만나거나, 함께 배우고 예배하기 우해 공동으로 행사를 개최하기도 하는 유기적인 공동체입니다.
마치 피가 혈관을 순환하듯 여러 가정교회와 심지어 여러 도시를 다니며 섬기는 순회 사역자들을 세워갑니다. 이런 순회 사역자들도 서로 정기적으로 만나고 기도하고 정보를 교환하고, 새로운 가정교회를 전략적으로 성장시키기 위해 협력합니다. 이렇게 하여 누룩이 반죽에 퍼지듯 교회는 도시 전체로 퍼져갑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새로운 가정교회가 세워지고, 지도자들이 도시를 순회하고 서로가 연결되면서 가정교회는 장차 많은 세대를 일으켜 세우는 하나님의 운동으로 확장되어 갈 것입니다. 이것이 제가 꿈꾸는 가정교회의 모습입니다!

찬양 묵상

복음 쪽지~㉾

구원을 소망한다면..


성도는 땅의 번영을 품삯으로 요구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재물과 소망을 천국에 쌓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들은 그리스도인이 아닐 것입니다. 회개하지도 않고, 거룩한 삶을 살지도 않으면서 구원을 소망한다면, 그것은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것이 아니라 마귀와 당신 자신에게 소망을 두는 것입니다. 악인들이 넘쳐나면 더욱 담대하게 그들을 따라 살아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경건한 사람들이 적으면 더욱 담대하게 그들을 멸시해도 괜찮고, 바른길을 걸으면 너무 까다로운 게 아니냐고 생각합니다. 구원을 소망한다면, 하나님께 나아오십시오!

 

“예림의집”이란?

예림의집은 “예수님께서 임하셔서 거하시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세상 가운데로 보내시면서 마태복음 28장 29절,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임재를 통하여 실제로 그리스도인에게 오셔서 그리스도인의 모든 삶을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예림의집은 예수님의 사역에 동참시키시는 주님의 그 부르심에 순종하여 세워진 후원 모임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으로 주님이 주신 권능으로 담대히 나아가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영접하는 우리의 마음을 거처로 삼으십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요한복음 14장 23절,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여러분은 사도행전 2장을 기억하실 겁니다. 오순절에 예수님이 약속하신 성령님이 그들에게 임하시자 그들은 예수님께서 전에 하신 말씀의 성취를 생생하게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마음에 거하시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몸과 마음을 비롯한 전인격이 예수 그리스도의 거처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성령님이 제 마음속에 들어오셔서, 그분을 섬기고 거기서 그분과 즐거워하고 그분을 알아가는 것이 가장 큰 축복임을 고백합니다. 그분을 제 마음에 모셨던 그날 저녁을 저는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1986년 여름, 제가 고 2 때 청소년 연합 여름 수련회 저녁 집회 설교시간에 일어난 일입니다. 주님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사건은 얼마나 감격적인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주님의 임재하심은 제 중심에서 발생한 엄연한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그 후로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모신 것에 대해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영원히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그리스도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새로운 삶이 시작된 나는 “주님, 저의 모든 것은 주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뜻대로 사용하옵소서!”라고 고백했습니다. 물론 주님은 기꺼이 저의 고백을 받으셨고, 저를 주님의 영광된 사역에 동역자로 삼으셨습니다.
주님을 마음에 모신 저는 날마다 주님을 찬송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저의 삶에서의 주님과의 동거가 시작되었고, 예림의 집의 사역도 시작되었습니다. 예림의집의 "예림"은 세 가지 깊은 의미를 가집니다. 첫째, 예수님이 임재하신 마음, 모임이란 뜻이고, 둘째, 예수님의 그림자로 빛과 소금으로 살겠다는 마음가짐이며, 셋째, 예수님의 재림을 기대하고, 기다리며, 준비한다는 뜻입니다! 이 세 가지의 정신을 모토로 하여 선교사와 개척교회를 돕고 있으며, 온라인 사역과 찬양사역, 그리고 21세기 새로운 교회의 모델인 가정교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예림의집 사역을 소개합니다

첫째, 온라인 선교사역
①다음 카페 “예림의집”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회원가입을 하시면 그 순간부터 저의 예림의집 사역이 동참하게 됩니다. 현재 회원 수 1300여 명으로 이들이 잠정 후원자가 되어 기도 후원, 물질 후원, 재능기부 등을 하게 됩니다. 카페를 매개로 하여, 서로의 비전과 기도 제목을 나누고, 힘을 합쳐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해 갑니다. 저의 사역에 동참하시길 원하시는 분은 다음 검색 창에 예림의집을 치세요!
②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은 따로 회원 가입을 할 필요 없이 언제, 어디서나 방문하여 필요한 정보와 신앙 글들을 접할 수 있습니다. 검색어를 통해 접근하여, 현재 다음 블로그 80만여 건, 네이버 블로그 40만 건의 방문자 수를 기록 중입니다. 다음 카페 예림의집과 연동되어 하루 평균 20건 이상의 정보가 업로드되어 현재 4만 편이 넘는 좋은 글들을 접하실 수 있습니다.
③페이스북 활동(김정민)
요즘 활성화되어있는 페이스북 활동을 통하여 온라인 선교의 지경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저를 친구 초대해 주시고 팔로우해 주시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현재 25개의 그룹을 만들어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친구들을 만나고, 복음을 전하며, 선교 동원가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제 이름 "김정민"을 많이 친구 추가해 주세요!
④유튜브 방송 "예림의집TV"
복음 전파와 영적 무장의 방편으로 유튜브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매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6일 방송하며, 새벽 기도회(월-금 오전 5:00), 예림의집 이야기(월-금: 오후 5:00),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토: 오후 5:00)을 실시간 방송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주일예배, 짤 영상 모음 등 영적 무장과 복음 전파에 관련된 영상들을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검색창에 "예림의집TV"를 치시고 많이 오셔서 ✔️구독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둘째, 선교사/개척교회 후원 사역
이 사역은 찬양사역을 하던 저에게 새로운 비전을 주셔서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게 하신 사역입니다. 선교사님들과 개척교회를 바르게 후원하기 위해서는 제가 먼저 선교와 교회 개척 사역에 헌신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예림의집 카페 회원들을 포함한 그동안 주께서 연결해 주신 후원자 1800여 명이 함께 감당해 가는 사역입니다.
첫 번째, 기도 후원 사역은 주께서 연결해 주신 선교사님이나 개척교회를 위해 40 명의 기도 용사를 세우는 사역입니다. 제1호 필리핀 “김성재 선교사님”과 서울 상도동 “주님의 교회”를 필두로, 현재 26명의 선교사님과 20개의 개척교회를 기도로 후원하고 있고, 그 지경을 넓혀 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물질 후원 사역으로 앞에서 말씀드린 기도 후원자들 중에 하나님께서 자원하는 마음을 주신 분들이 물질 후원을 하게 됩니다. 재정 후원은 선교사님과 개척교회 목회자 가정의 기초 생활비를 우선적으로 지원하도록 원칙을 세웠습니다. 물품 후원은 선교나 교회 개척에 필요한 다양한 물품들을 자원하여 후원하게 됩니다. 특히 도서 후원은 성경책, 신앙 도서, 아이들 학습 도서 등. 작은 도서관을 만들 수 있도록 후원합니다.
세 번째, 재능기부 사역은 주님께서 주신 모든 달란트를 활용하여 선교와 교회 개척을 지원하는 사역입니다. 예를 들어, 선교 지원팀, 여름 성경 학교 진행팀, 찬양팀, 자원봉사단 등이 있습니다. 모든 재능 기부 사역은 “자비량”을 원칙으로 합니다. 특히 전도 지원팀을 구성하여 개척교회를 지원합니다. 이 사역을 통하여 새로운 선교사들과 교회 개척자들이 새워질 것입니다. 선교지나 개척 현장에서 필요한 프로젝트 그룹을 조직하여 지원합니다.

셋째, 찬양 세미나/찬양 집회 사역
제가 약 30년간 해오던 찬양 사역의 일환으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찬양을 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특별히 부여하신 사역입니다. 아직도 찬양에 대한 무지와 편견으로 주님을 맘껏 찬양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제가 경험한 찬양에 대한 놀라운 비밀을 나누는 사역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잠시 멈추고 준비 중이며 내년부터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이 2018년 가을에 발간되었습니다. 저는 비록 짧은 시간 동안 여러분을 만나지만, 찬송은 너무나 소중하기에 글로써 여러분들의 곁에서 치침이 되어드리고자 합니다. 찬송에 대한 저의 지난 30년간의 찬양사역의 총결산의 책입니다. 본 책의 내용은 앞서 설명한 다음 카페와 블로그 예림의집과 페이스북 그리고 토요일에 방송되는 찬양 방송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통해 미리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특히 개척교회는 요청하는 수량을 무료로 제공해 드립니다.


예림의집 사역에 동참하는 방법

첫째, 유튜브 <예림의집TV>방송을 봐주시고,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이나 페이스북 <김정민>의 글을 봐 주시는 것만으로도 일차적으로 동참하는 방법입니다. "구독/좋아요/홍보"까지 해 주시면 더욱 좋겠죠.
둘째,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오셔서 회원이 되어 주시고, 여러 게시판의 글을 통해 영성 훈련을 하시고, 여러분의 삶 속에 적용하셔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십시오. 좋은 글들과 댓글을 올려주시면 더욱 좋겠지요.
셋째, 다음 카페 <사역>코너에 있는 찬양사역/선교후원사역/개척후원 사역에 적금 동참하시는 방법입니다. 제일 중요한 기도 후원과 성령님이 인도하심을 따라 재정과 재능 후원에 동참하시면 더욱 좋습니다.
넷째, 여러분이 섬기는 공동체에 저를 초청하는 방법입니다.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3개월 전에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다섯째, 제가 펴낸 책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구입하셔서 정독하시는 것입니다. 포털 검색창에 책 이름을 치시고, 온라인상으로는 구매하시면 됩니다. 정독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하십시오!


김정민 목사
010-9442-6928
yerim21@hanamil.net
다음 카페 예림의집: http://cafe.daum.net/HomeOfYERIM
다음 블로그 예림의집: http://blog.daum.net/yerim21
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https://blog.naver.com/yerimess
유튜브 예림의집TV: https://www.youtube.com/channel/UCarpDnpNgU0RQn9ksDdSPPw
후원 계좌: 농협 3560686657493(예금주: 김정민)

예림의집 김정민 목사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