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림의집 2386번째 이야기
무척이나 흥분시키는 모험! 하나님과 묻지 않고 혼자 결정해서 길을 가는 사람들은 어려운 문제가 닥치면 피해 가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늘 불안하고 피곤할 뿐입니다. 인생의 짐이 무겁게 느껴지기만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산다는 것은 우리를 무척이나 흥분시키는 모험을 감행하는 것입니다. "모험"이라는 표현을 쓰는 이유는 이것이 그리 쉽지만은 않기 때문입니다. 만약 하나님의 응답이 없을 때 그저 움직이지 않고 데드라인까지 기다려본 적이 있습니까? 다음에는 그렇게까지 기다려 보세요. 왜냐하면 그렇게 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 |
사사기 11장 21절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시혼과 그의 모든 백성을 이스라엘의 손에 넘겨 주시매 이스라엘이 그들을 쳐서 그 땅 주민 아모리 족속의 온 땅을 점령하되" 이스라엘이 얻은 약속의 땅은 세상 나라가 힘으로 정복한 땅과 같지 않습니다. 아모리 족속의 온 땅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에 "넘겨주신" 기업입니다. 그 기업을 누리고 즐거워할 특권은 온전히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신 구원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얻은 구원의 은혜는 성도만이 누리는 은혜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은 누구도 빼앗을 수 없습니다. 성도는 이러한 확신 안에서 살아야 합니다. ![]() |
사는 게 귀찮습니다! 대학교 3학년 초, 폐가 아파지기 시작했습니다. 무거운 가방을 메고 1시간 동안 걸어가서 강의를 들은 뒤, 집에 돌아와 잠시 쉬고 다시 과외하러 나가는 고단한 날들이 이어지던 때였습니다. 목발을 짚고 너무 오래 걷다 보니, 갈비뼈에 폐가 부딪치면서 폐에 구멍이 난 것입니다. 2주간 치료하고 퇴원했으나, 다시 통증이 시작되어 병원으로 실려 갔습니다. 갈비뼈 사이를 벌려 폐를 수술했는데, 숨 쉴 때마다 죽고 싶을 만큼 아픈 고통이 밀려왔습니다. 진통제를 맞아도 몇 시간 있다가 다시 통증이 계속되었습니다. 참으로 고통스러웠습니다. 숨을 쉬면 아프고, 숨을 쉬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반지하 방에 누워서 두 계절을 지낸 후에야 겨우 바깥세상을 구경했을 정도로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불과 몇 주 후, 반대편 폐에 똑같은 통증이 나타났습니다. 엑스레이 사진을 본 의사는 ‘갑자기 폐가 파열되면 심장마비가 올 수 있다’며 ‘당장 수술하자’고 했습니다. 하지만, 수술받는 대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고통을 또다시 겪을 생각을 하니 끔찍했습니다. 앞으로도 제 인생은 고통의 연속일 거라는 절망이 밀려왔습니다. 더 이상 사는 게 귀찮아졌습니다! 계속 건강 문제로 걸려 넘어질 테고, 지하방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고, 학비 마련을 위하여 과외하러 다녀야 하고, 수학과를 나와 봐야 별로 할 것도 없을 거라는 생각이 겹치면서 ‘그냥 지금 천국 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막상 한강에 가니, 지금까지 저를 돌봐준 사람들이 떠오르면서 ‘이대로 죽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라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와 함께 한적한 기도원을 찾아갔습니다. 내가 어떡해야 할지, 눈앞이 캄캄하고 절망적이었습니다. 할 수 있는 게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원망하기보다는 그냥 하소연을 했습니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합니까? 나으면 또 아프고, 나으면 또 아프고, 사는 게 귀찮습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저를 데려가시면 좋겠습니다.” 이런 기도를 드렸습니다. 고통이 극심하면 죽는 게 두렵지 않은 시간이 왔습니다. 아픈 몸으로 학교 다니며 과외하고, 그렇게 계속 살 자신이 없었습니다. 하루하루를 사는 것이 고통이요, 지옥이었습니다. 이렇게 사는 것은 죽느니만 못한 삶인 듯싶습니다. 신앙이 깊지 않았던 저는 하나님께 하소연하듯 기도하면서도 그분이 저를 어찌해 주실지 믿지 못한 체 그저 고통만 호소할 뿐이었습니다.(김인강) ☞내일 계속.. ![]() |
종교 이야기..② 다음으로 "유교"에 대해 살펴봅시다. 한마디로 말해서 유교는 "철학"입니다. 공자는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신을 갈망했지만 결국 그 신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운명하는 순간에도 "침묵하는 신"에 대해 언급했을 뿐입니다. 유교는 그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예의 바르고 교양 있는 인격자가 될 수 있는 철학이나 윤리를 제공하지만, 신에 대해서는 아무런 답도 주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유교의 시조인 공자는 신을 찾았으나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의 가르침은 후대에 더욱 발달하여 동양인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다음으로 "기독교"입니다. 기독교는 처음부터 신에 대해 언급하는 유신론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세기 1:1). 기독교는 시작부터 신에 대해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비칭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창세기 1:3). 인간과 동식물을 포함한 천지 만물을 하나님이 창조하셨다고 주장합니다. 사람이 받아들이든지 말든지, 기독교는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고 선포합니다. 기독교는 신에 대해 분명하게 언급하고 있으므로 이것이 사실인지를 탐구해 본 후에 신에 대하여 참인지 결정하면 될 것입니다. 다음으로 "힌두교"입니다. 힌두교는 자아를 육체적 욕망에서 해방시켜 세상혼과 합치시키고 윤회를 피하여 무한 세계에 이르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힌두교의 신은 유대교나 기독교에서 말하는 것과 다릅니다. 인격적인 신이란 없고 만물이 곧 신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도 힌두교는 영원한 존재나 실체를 일컫는 창조의 신 브라만을 추구하는데, 예수와 석가, 크리슈나를 일간의 형태로 온 브라만의 화신이라고 믿습니다. 한편 브라만 신을 인간 속에서 찾을 수 있다는 말은, 반대로 말해서 인간이 신이 될 수도 있다고 주장하는 힌두교의 교리입니다. 마지막으로 "이슬람교"입니다. 이슬람교의 무슬림들은 자기들이 믿는 알라신에 대해서 "절대 유일하시고 전지전능한 천지 만물의 창조자요 지배자"라고 주장합니다. 알라가 유일하다는 것은 그 본질이 인간의 인지능력을 넘어서고 피조물과 비교를 거부하는 초월신이라는 뜻입니다. 그 알라가 무함마드를 최후의 예언자로 보내 인간이 지킬 규범과 신조를 계시했다고 합니다. 무슬림들은 최후의 종말을 믿습니다. 이 최후의 심판 때 알라를 믿고 그 신조와 규범을 따른 자들은 부활하여 천국에서 평안한 생활을 하고, 그렇지 않은 자는 심판의 형벌을 받는다 믿습니다. 죽은 자들은 선하거나 악한 행위에 따른 보응을 받아 천국과 심판의 생활로 나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무슬림들은 평생 살면서 자신의 행동이 구원에 이르는 분량이 되는지 안되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일생 이슬람의 율법과 규범을 준수하고자 부단히 노력합니다. 이렇게 율법주의 즉 행위를 통해 구원을 얻는 종교는 율법이 정한 행위를 실천할 때 위안을 주기 때문에 인간을 끊임없이 행위와 규범의 노예로 만들어 버립니다. 결론적으로 이슬람은 율법을 지켜야 구원을 얻는 유신론 종교입니다. 이슬람교는 기독교와는 전혀 다른 유신론입니다. 이 세계적인 5대 종교 외에도 수많은 종교들이 있으며 신에 대한 언급 또한 수없이 많습니다. 또 앞에서 말한 것처럼 죽을 때까지 찾아보아도 참 신을 만날 확률은 만 분의 일도 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세계적인 대종교를 통해 신의 존재 여부를 확인하지 못한다면 차라리 포기하는 것이 현명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저 사는 날 동안 열심히 즐기면 최고일까요? 아니면 신이 있다고 밝힌 종교 중에 하나라도 자세히 살펴보는 것이 좋을까요? 그래서 저는 유신론의 입장을 분명히 밝힌 기독교를 통해 신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겠습니다! ![]() |
이기적 욕망이 부른 잘못된 서원 "이에 여호와의 영이 입다에게 임하시니 입다가 길르앗과 므낫세를 지나서 길르앗의 미스베에 이르고 길르앗의 미스베에서부터 암몬 자손에게로 나아갈 때에 그가 여호와께 서원하여 이르되 주께서 과연 암몬 자손을 내 손에 넘겨 주시면 내가 암몬 자손에게서 평안히 돌아올 때에 누구든지 내 집 문에서 나와서 나를 영접하는 그는 여호와께 돌릴 것이니 내가 그를 번제물로 드리겠나이다 하니라 이에 입다가 암몬 자손에게 이르러 그들과 싸우더니 여호와께서 그들을 그의 손에 넘겨 주시매 아로엘에서부터 민닛에 이르기까지 이십 성읍을 치고 또 아벨 그라밈까지 매우 크게 무찌르니 이에 암몬 자손이 이스라엘 자손 앞에 항복하였더라 입다가 미스바에 있는 자기 집에 이를 때에 보라 그의 딸이 소고를 잡고 춤추며 나와서 영접하니 이는 그의 무남독녀라 입다가 이를 보고 자기 옷을 찢으며 이르되 어찌할꼬 내 딸이여 너는 나를 참담하게 하는 자요 너는 나를 괴롭게 하는 자 중의 하나로다 내가 여호와를 향하여 입을 열었으니 능히 돌이키지 못하리로다 하니 딸이 그에게 이르되 나의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여호와를 향하여 입을 여셨으니 아버지의 입에서 낸 말씀대로 내게 행하소서 이는 여호와께서 아버지를 위하여 아버지의 대적 암몬 자손에게 원수를 갚으셨음이니이다 하니라 또 그의 아버지에게 이르되 이 일만 내게 허락하사 나를 두 달만 버려 두소서 내가 내 여자 친구들과 산에 가서 나의 처녀로 죽음을 인하여 애곡하겠나이다 하니 그가 이르되 가라 하고 두 달을 기한하고 그를 보내니 그가 그 여자 친구들과 가서 산 위에서 처녀로 죽음을 인하여 애곡하고 두 달 만에 그의 아버지에게로 돌아온지라 그는 자기가 서원한 대로 딸에게 행하니 딸이 남자를 알지 못하였더라 이것이 이스라엘에 관습이 되어 이스라엘의 딸들이 해마다 가서 길르앗 사람 입다의 딸을 위하여 나흘씩 애곡하더라"(사사시 11장 29-40절). 오늘 함께 읽은 본문은 자신의 이기적인 욕망으로 인하여 잘못된 서원을 하나님께 드려 암몬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영광스러운 날에 비극적인 결말을 보게 된 사사 입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입다는 암몬을 이기고 무사히 돌아오면 가장 먼저 자신을 영접하는 사람을 번제물로 드리겠다고 서원합니다. 그가 돌아올 때 그의 딸이 소고를 잡고 춤을 추며 나와서 영접합니다. 이를 본 입다는 오히려 딸을 원망하고, 입다의 딸은 두 달간 친구들과 산 위에서 처녀로 죽음을 애곡하게 해 달라는 허락을 받고, 그녀가 애곡하고 내려오자 입다는 서원 대로 행합니다. 이기적인 욕망이 부른 서원(29-31절). 암몬 왕과의 협상이 결렬로 전쟁이 시작됩니다. 29절, 이때 하나님의 영이 입다에게 임합니다. 이는 하나님이 입다와 함께하신다는 표징이며, 하나님의 능력이 그에게 임했음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 순간 입다는 하나님께 경솔한 서원을 합니다. 30-31절, "그가 여호와께 서원하여 이르되 주께서 과연 암몬 자손을 내 손에 넘겨주시면 내가 암몬 자손에게서 평안히 돌아올 때에 누구든지 내 집 문에서 나와서 나를 영접하는 그는 여호와께 돌릴 것이니 내가 그를 번제물로 드리겠나이다 하니라"라고 서원을 합니다. 아브라함의 경우와 같이 하나님이 이삭을 제물로 받치라고 명령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요구하시지도 않았는데 입다 임의대로 누군가를 희생시켜 자신의 승리를 보장받으려고 한 이기적인 행동이었던 것입니다. 이는 인신 제사로 암몬 사람이 그들의 신 몰렉을 숭배할 때 사용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역설적이게도 입다는 암몬과 싸우면서 암몬 사람처럼 하나님을 섬긴 것입니다. 입다의 서원은 11장 9절에서 "머리"가 되려는 개인적 욕망과 연결됩니다. 조건을 걸고 하나님과 거래하려는 것은 불신앙입니다. 우리도 아직 포기하지 못한 욕망이 있는지 살펴봅시다. 입다의 승리와 서원 이행(32-40절). 하나님 말씀에 대한 무지가 인간을 불행으로 몰아갑니다. 하나님은 입다의 서원과 무관하게 이스라엘에 승리를 안겨 주십니다. 개선을 하고 돌아오는 입다를 처음 맞은 사람은 그의 무남독녀입니다. 입다는 자신의 옷을 찢으며 한탄합니다. 자신이 한 어리석은 서원 때문에 하나뿐인 딸이 희생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입다는 오히려 자신의 옷을 찢으며 한탄하며 딸을 보고 35절, "어찌할꼬 내 딸이여 너는 나를 참담하게 하는 자요 너는 나를 괴롭게 하는 자 중의 하나로다"라며 불쌍한 딸을 원망합니다. 그러나 자신이 한 어리석은 서원 때문에 하나뿐인 딸이 희생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이로 인해 승리의 기쁨은 애곡으로 바뀌고 맙니다. 입다의 서원은 믿음을 가장한 무지와 불신의 표현에 불과합니다. 율법은 레위기 27장에서 잘못된 서원을 돌이키거나 축소시킬 수 있도록 규정합니다. 그러므로 입다는 서원한 딸을 살릴 기회가 있었습니다. 입다의 잘못된 이기심과 공명심 때문에 그의 딸을 죽이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는 헌신은 바른 헌신이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도 거래(흥정) 하는 방식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있는 일이 없는지 살펴봅시다. "우리의 잘못된 서원을 원치 않으시는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일을 수행하도록 하나님의 영으로 세밀히 인도해 주시는 은혜가 얼마나 놀라운지요! 그러나 주님 뜻과 상관없이 경솔하게 말을 내뱉어 발목 잡히는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옵소서. 욕심과 고집과 잘못된 공명심 때문에 승리의 은총을 애곡으로 바꾸지 않도록 늘 성령님으로 충만하게 하시옵소서. 미련하고 연약한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시사 강한 손으로 붙들어 주시옵고, 말씀과 기도와 찬양으로 무장하게 하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
긍정의 생각으로 살아가게 하시옵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곧 그 아이의 아버지가 소리를 질러 이르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하더라"(마가복음 9:23-24). 우리에게 언제나 가장 적당한 때에 제일 좋은 것으로 공급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오늘도 긍정의 생각으로 사는 하루가 되게 하시옵소서.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힘 있게 살아갈 수 있는 삶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설령, 실족케 하는 일이 발생한다 할지라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주님의 섭리하심을 바라보며 긍정이 생각으로 날마다 살아갈 수 있게 하시옵소서. 우리가 만나고 접촉하는 사람들에게도 웃을 수 있는 기쁨과 즐거움을 선물할 수 있는 능력의 삶을 살아가게 하시옵소서. 또한, 어떤 대화를 하든지 언어로 축복을 담아낼 수 있는 모습으로 하루를 살게 하시옵소서. 또한, 어떤 일을 하든지 행위 가운데 적극적인 모습을 보일 수 있게 하시고, 창조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일이 되게 하시옵소서. 우리 주님은 긍정의 생각으로 사는 자를 통하여 미래를 열어가는 축복의 그릇으로 사용하실 것을 믿습니다. 주님! 오늘도 긍정의 생각을 가지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이웃을 부요케 하며, 하나님의 희망을 심는 하루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에게 거저 주신 하나님의 구원을 생각하며 하루를 힘 있게 살아가게 하시옵소서. 우리의 상황과 여건만을 바라볼 때에 우리에게 부정적인 생각이 엄습해 옵니다. 하나님 예수님만을 바라볼 때 우리는 그 무엇도 극복할 수 있음을 믿습니다. 그 모든 악조건들을 무릎으로 기도함으로 극복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도 말씀으로 위로하여 주시고, 기도로 우리의 호소를 들어주시고, 찬양으로 모든 삶의 태도를 주님께로 집중하게 하시옵소서. 우리의 꿈과 비전을 하나님이 마음과 일치하게 하시고, 굳건한 믿음의 소유자로 성장하게 하시옵소서. 우리의 마음을 주님께서 주시는 선한 긍정함으로 가득 차게 하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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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림의집”이란? 예림의집은 “예수님께서 임하셔서 거하시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세상 가운데로 보내시면서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 29)”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임재를 통하여 실제로 그리스도인에게 오셔서 모든 삶을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예림의집은 예수님의 사역에 동참시키시는 주님의 그 부르심에 순종하여 세워진 선교 후원 단체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으로 주님이 주신 권능으로 담대히 나아가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영접하는 우리의 마음을 거처로 삼으십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요 14:23)”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여러분은 사도행전 2장을 기억하실 겁니다. 오순절에 예수님이 약속하신 성령님이 그들에게 임하시자 그들은 예수님께서 전에 하신 말씀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마음에 거하시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몸과 마음을 비롯한 전인격이 예수 그리스도의 거처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성령님이 내 마음속에 들어오셔서, 그분을 섬기고 거기서 그분과 즐거워하고 그분을 알아가는 것이 가장 큰 축복임을 고백합니다. 그분을 제 마음에 모셨던 그날 저녁을 저는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1986년 여름, 제가 고 2 때 청소년 연합 여름 수련회 저녁 집회 설교시간에 일어난 일입니다. 주님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사건은 얼마나 감격적인 일이었는지요! 그것은 제 중심에서 발생한 엄연한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그 후로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모신 것에 대해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영원히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계 3:20).” 그리스도께서 제 마음에 들어오신 새로운 삶이 시작된 나는 “주님, 저의 모든 것은 주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뜻대로 사용하옵소서!”라고 고백했습니다. 물론 주님은 기꺼이 저를 받으셨고, 저를 주님의 영광된 사역에 동역자로 삼으셨습니다. 저는 날마다 주님을 찬송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저의 삶에서의 주님과의 동거가 시작되었고, 예림의 집의 사역도 시작되었습니다. 예림의집의 "예림"은 세 가지 의미를 가집니다. 첫째, 예수님이 임재하신 마음, 모임이란 뜻이고, 둘째, 예수님의 그림자로 빛과 소금으로 살겠다는 마음가짐이며, 셋째, 예수님의 재림을 기대하고, 기다리며, 준비한다는 뜻입니다! 예림의집 사역을 소개합니다 첫째, 온라인 선교사역 ①다음 카페 “예림의집”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회원가입을 하시면 그 순간부터 저의 예림의집 사역이 동참하게 됩니다. 현재 회원 수 1200여 명으로 이들이 잠정 후원자가 되어 기도 후원, 물질 후원, 재능기부 등을 하게 됩니다. 카페를 매개로 하여, 서로의 비전과 기도 제목을 나누고, 힘을 합쳐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해 갑니다. 저의 사역에 동참하시길 원하시는 분은 다음 검색 창에 예림의집을 치세요! ②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은 따로 회원 가입을 할 필요 없이 언제, 어디서나 방문하여 필요한 정보와 신앙 글들을 접할 수 있습니다. 저는 다음 커뮤니티 공식 파워 블로거로 활동 중이며, 현재 78만여 건이 넘는 방문자 수를 기록 중입니다. 다음 카페 예림의집과 연동되어 하루 평균 20개 이상의 정보가 업로드되어 현재 3만 9천여 편의 글들을 접하실 수 있습니다. ③페이스북 활동(김정민) 요즘 활성화되어있는 페이스북 활동을 통하여 온라인 선교의 지경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저를 친구 초대해 주시고 팔로우해 주시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현재 22개의 그룹을 만들어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친구들을 만나고, 복음을 전하며, 선교 동원가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많이 친추해 주세요! ④유튜브 방송 "예림의집TV" 복음 전파와 영적 무장의 방편으로 유튜브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매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6일 방송하며, 새벽 기도회(월-금 오전 5:00), 예림의집 이야기(월-금: 오후 5:00),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토: 오후 5:00)을 실시간 방송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주일예배, 짤 모음 등 영적 무장과 복음 전파에 관련된 영상들을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많이 오셔서 좋아요/구독/홍보를 부탁드립니다. 둘째, 선교사/개척교회 후원 사역 이 사역은 찬양사역을 하던 저에게 새로운 비전을 주셔서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게 하신 사역입니다. 선교사님들과 개척교회를 바르게 후원하기 위해서는 제가 먼저 선교와 교회 개척 사역에 헌신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예림의집 카페 회원들을 포함한 그동안 주께서 연결해 주신 후원자 1500여 명이 함께 감당해 가는 사역입니다. 첫 번째, 기도 후원 사역은 주께서 연결해 주신 선교사님이나 개척교회를 위해 40 명의 기도 용사를 세우는 사역입니다. 제1호 필리핀 “김성재 선교사님”과 서울 상도동 “주님의 교회”를 필두로, 현재 20명의 선교사님과 17개의 개척교회를 후원하고 있고, 그 지경을 넓혀 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물질 후원 사역으로 앞에서 말씀드린 기도 후원자들 중에 하나님께서 자원하는 마음을 주신 분들이 물질 후원을 하게 됩니다. 재정 후원은 선교사님과 개척교회 목회자 가정의 기초 생활비를 우선적으로 지원하도록 원칙을 세웠습니다. 물품 후원은 선교나 교회 개척에 필요한 다양한 물품들을 자원하여 후원하게 됩니다. 특히 도서 후원은 성경책, 신앙 도서, 아이들 학습 도서 등. 작은 도서관을 만들 수 있도록 후원합니다. 세 번째, 재능기부 사역은 주님께서 주신 모든 달란트를 활용하여 선교와 교회 개척을 지원하는 사역입니다. 예를 들어, 선교 지원팀, 여름 성경 학교 진행팀, 찬양팀, 자원봉사단 등이 있습니다. 모든 재능 기부 사역은 “자비량”을 원칙으로 합니다. 특히 전도 지원팀을 구성하여 개척교회를 지원합니다. 이 사역을 통하여 새로운 선교사들과 교회 개척자들이 새워질 것입니다. 선교지나 개척 현장에서 필요한 프로젝트 그룹을 조직하여 지원합니다. 셋째, 찬양 세미나/찬양 집회 사역 제가 약 30년간 해오던 찬양 사역의 일환으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찬양을 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특별히 부여하신 사역입니다. 아직도 찬양에 대한 무지와 편견으로 주님을 맘껏 찬양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제가 경험한 찬양에 대한 놀라운 비밀을 나누는 사역입니다.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3개월 전에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이 2018년 가을에 발간되었습니다. 저는 비록 짧은 시간 동안 여러분을 만나지만, 찬송은 너무나 소중하기에 글로써 여러분들의 곁에서 치침이 되어드리고자 합니다. 찬송에 대한 저의 지난 30년간의 찬양사역의 총결산의 책입니다. 본 책의 내용은 앞서 설명한 다음 카페와 블로그 예림의집과 페이스북 그리고 토요일에 방송되는 찬양 방송을 통해 미리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예림의집 사역에 동참하는 방법 첫째, 유튜브 <예림의집TV>방송을 봐주시고,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이나 페이스북 <김정민>의 글을 봐 주시는 것만으로도 일차적으로 동참하는 방법입니다. "구독/좋아요/홍보"까지 해 주시면 더욱 좋겠죠. 둘째,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오셔서 회원이 되어 주시고, 여러 게시판의 글을 통해 영성 훈련을 하시고, 여러분의 삶 속에 적용하셔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십시오. 좋은 글들과 댓글을 올려주시면 더욱 좋겠지요. 셋째, 다음 카페 <사역>코너에 있는 찬양사역/선교후원사역/개척후원 사역에 적금 동참하시는 방법입니다. 제일 중요한 기도 후원과 성령님이 인도하심을 따라 재정과 재능 후원에 동참하시면 더욱 좋습니다. 넷째, 여러분이 섬기는 공동체에 저를 초청하는 방법입니다.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3개월 전에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다섯째, 제가 펴낸 책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구입하셔서 정독하시는 것입니다. 포털 검색창에 책 이름을 치시고, 온라인상으로는 구매하시면 됩니다. 정독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하십시오! 김정민 목사 010-9442-6928 yerim21@hanamil.net 다음 카페 예림의집: http://cafe.daum.net/HomeOfYERIM 다음 블로그 예림의집: http://blog.daum.net/yerim21 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https://blog.naver.com/yerimess 유튜브 예림의집TV: https://www.youtube.com/channel/UCarpDnpNgU0RQn9ksDdSPPw 후원 계좌: 농협 3560686657493(예금주: 김정민) |
예림의집 김정민 목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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