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D. 고든/성령

동여매임

예림의집 2021. 8. 24. 19:50

동여매임

 

요한복음 11장으로 넘어가면 무능한 그리스도인에 대한 또 다른 사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 이유가 조금 다릅니다. 요한복음 11장은 부활 장 도는 나사로 장으로 불리는데 이 사건은 베다니라는 동네 밖에서 일어납니다. 저 멀리 무덤이 있고 그 안에는 한 시신이 있었는데 그 앞에 예수님이 서계셨습니다. 그리고 뒤에는 여러 제자들과 마리아, 마르다, 그리고 동네 사람들과 예루살렘에서 온 사람들까지 모여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또렷하고도 큰 소리로 이미 시신이 된 나사로에게 명령하셨습니다. "나사로야 나오라!" 요한복음은 이 명령 후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정확하게 묘사합니다.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당신이라면 나사로가 무덤에서 걸어 나올 때 똑바로 쳐다볼 수 있었겠습니까? 아마도 나사로의 눈은 흐리멍덩하고 그의 뺨은 창백하지 않았을까요?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생명의 주인이신 예수님은 나사로에게 육체적으로나 영적으로 생명을 주셨습니다. 그것도 아주 활기 넘치는 생명력을 불어넣어 주셨을 것입니다. 최소한 나흘 이상 아무것도 먹지 못했던 나사로의 얼굴은 수척했을지 모르지만 그의 눈에는 생기가 넘치고 그의 뺨은 홍조를 띄었을 것입니다. 그는 진정 다시 살아났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나사로의 몸에는 천과 수건이 덮여 있어서 여전히 걷거나 말할 수 없는 상태였을 것입니다. 나는 나사로가 살아 나오는 장면을 읽을 때마다 어떤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주님은 그들에게 생명을 주셨고 그들은 분명 예수님의 말씀에 응답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수의에 단단히 동여매여 있습니다. 그들의 삶은 주님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무기력합니다. 나는 당신에게 진심으로 묻고 싶습니다. 혹시 당신이 그런 부류의 그리스도인은 아닙니까? 당신은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아무런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아마도 어떤 이는 "그게 무슨 말이세요?"라고 되물을 것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당신은 신앙생활을 방해하는 개인적인 습관이나 상회적 관습으로 인해 또는 사업상의 활동이나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갈등을 겪을 때마다 입을 다물고 주님을 고백하거나 선포하는 일로부터 슬쩍 도망치지 않느냐는 말입니다.

만약에 당신이 속한 직장이나 공동체에서 당신이 그리스도를 위해 일하거나 표현하지 않는다면 성령님의 능력은 당신의 삶에서 점점 더 쇠퇴하여 작아질 것입니다. 일상생활에서 당신은 하나님을 위해 성령님의 능력을 발휘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오히려 잘못된 것과 타협하기 위해 성령의 능력을 포기해 버리진 않았습니까? 나는 당신이 그런 부류의 그리스도인이 아니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은 분명히 알 것입니다. 또한 냉혹하고 비판적인 세상도 우리에 대해 잘 알고 있습니다. 게다가 교묘하고 예리한 사탄도 당연히 알고 있을 것이며, 우리 주님도 물론 아실 것입니다. 당신은 세상과 사탄과 주님 앞에서 어떤 사람으로 보일지 궁금하지 않습니까? 잘 모르겠다면 당신의 하루의 삶을 살펴보면 금방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성령님께서 지금 우리의 삶을 조명해 주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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