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D. 고든/요한복음

함축적인 말

예림의집 2021. 7. 19. 21:28

함축적인 말

 

요한은 아주 간단한 말로 조용히 말합니다. "빛이 어둠에 비치되"(요한복음 1:5). 요한은 이 짧은 말에 많은 것을 담고 있습니다. 이 한 마디에 피조 세계의 모든 역사가 들어있습니다. 요한은 창조의 시간부터 예수님이 사람들 속으로 들어오실 때까지의 모든 역사를 한 마디로 압축했습니다. 엘리야는 호렙산에서 참하나님을 만났습니다. 하나님은 크고 강한 바람이나 지진이나 불속에서 나타나지 않으시고 세미한 음성으로 엘리야에게 다가오셨습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해야 할 일을 깨달음으로 새로운 존재가 되었습니다. 엘리야는 참하나님을 만난 후, 다메섹으로 달려가 어두운 세상에 밝은 빛을 비추기 시작했습니다. 엘리야는 호렙산에서 새로운 비전을 갖게 되었습니다(열왕기상 19:11-21).

만약 성령이 하나님의 일을 행하신다면 어떤 모습일까요? 분명 우리가 상상도 할 수 없이 거대하고 위대한 일이 드러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하나님의 일에 동참할 선택권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우리가 원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성취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일을 위해 우리 안에 예수님의 모든 사건들을 담아 주셨습니다. 사람들이 보기에는 아주 작은 것 같지만 그 안에는 너무도 큰일이 들어있고, 보잘것없는 것 같지만 그 안에는 가장 위대하신 분이 계십니다. 우리가 주님을 더 따뜻하게 맞이할수록 우리 마음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더 크고 분명하게 나타나며, 작게 보이던 것들이 위대하게 보일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예수님을 통해 자기 자신을 내어 주셨습니다. 우리는 구원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구원자입니다.

우리는 고난 중에 얻는 구원을 이야기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의 좋은 친구이신 예수님이십니다. 우리는 치유와 회복을 이야기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치료자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은 우리 안에 계시면서 육체적으로나 영적으로 우리를 강건하게 하십니다. "빛이 어둠에 비치되"라는 말은 예수님이 어둠을 다스리러 오신다는 뜻입니다. 어둠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두 가지 방법이 사용되는데 그중 사람의 방법은 어둠을 공격하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모든 문과 창문이 닫힌 아주 캄캄한 방에 있다고 생각해 봅시다. 우리는 아무 일도 할 수 없기 때문에 먼저 어둠을 없애기 위해 고심할 것입니다. 우리는 손에 잡히는 대로 아무거나 이용해서 창문이나 문을 열고 빛을 방 안으로 들어오게 할 것이며, 방이 밝아질 때 비로소 편안함을 느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방법은 다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사용하는 방법이 아닌 새로운 방법을 빛이 비치게 하십니다. 어둠은 빛을 이기지 못합니다. 만약 방이 어둡다 할지라도 우리 손에 성냥이 있다면 우리는 비록 작은 불빛이지만 어둠 속에서 무엇인가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어둠은 작은 성냥불 하나도 이길 수 없습니다. 어둠이 세상의 타락하고 비윤리적인 현실이라고 한다면 공동체는 그런 악행들을 몰아내기 위해 빛을 비추어야 합니다. 악은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과 가정 그리고 공동체들의 순수함을 더럽히고 타락하게 만듭니다. 세상의 어둠은 결코 우연하게 만들어진 게 아닙니다. 사람들은 이 어둠의 심각성을 쉽게 간과하지만 하나님은 어둠의 심각성을 아시고 참 빛이 세상을 비추도록 하십니다. 그러면 어둠은 하나님의 빛 앞에서 눈 녹듯 사라집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솔직하게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의 삶은 어둠 속에 있습니까? 윤리적으로 캄캄한 삶을 살고 있습니까? 영적으로 짙은 어둠 속에서 가야 할 길이 보이지 않습니까? 여러분의 사회적인 삶이나 가족이나 교회의 삶에 어둠이 깔려있습니까? 만약 여러분이 어둠 속에 있다면 조금 듣기 싫은 말일지도 모르지만 내가 여러분에게 꼭 해야 할 말이 있습니다. "삶이 어두운 이유는 빛이 없기 때문입니다. 빛이 없는 여러분의 현실을 인정하십시오! 그리고 이 어둠을 물리칠 빛을 찾으십시오! 하나님은 어둠을 다스리시려는 계획을 갖고 계십니다. 물론 우리 자신들은 빛이 아니며 빛을 만들 수도 없습니다. 오직 주님이 빛이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빛을 들고 세상을 환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우리는 빛이 아니지만, 빛이 되시는 주님의 인내와 신실하심이 우리 안에 빛을 밝힙니다.

우리는 보잘것없는 작은 성냥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함께 불을 밝힐 때, 온 세상이 가야 할 길을 안내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빛을 들고 세상에서 살아가며, 사람들에게 길을 밝혀 주는 존재입니다. 만약 등불 안에 불을 켜졌지만 그 불을 보호하고 있는 유리가 더럽다면 빛은 환하게 비추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유리를 깨끗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곧 우리 안에 계신 예수님의 빛이 환하게 비추도록 우리의 삶을 정결하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남을 위하는 이타적인 삶을 살면서 그리스도의 은혜를 세상에 나눠야 합니다. 그런 삶을 통해 그리스도의 빛은 더 멀리 더 환하게 비춰집니다. 이 표현이 여러분에게 상징적으로 들린다면 여러분 주위의 사람들을 둘러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거리를 허둥지둥 걸어가며 불안과 초조가 역력한 모습으로 살아갑니다.

그들은 삶의 구렁텅이에 빠져서 헤어 나오지 못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초라한 현실입니다. 주님이 사람의 옷을 입고 오셔서 꿈꾸신 우대한 계획은 바로 이것입니다. 주님을 아는 사람은 주님과 함께 살아야 하고 주님은 주님과 함께 하는 사람 속에 빛으로 들어오셔서 그 사람의 삶을 밝히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이 우리 삶을 환하게 비추시기를 소망해야 합니다. 지금 여러분이 살아가는 곳에 어둠이 가득합니까? 그렇다면 그곳에 빛이 비추게 합시다! 어둠은 빛을 이기지 못합니다. 어둠은 또렷하게 비추는 빛의 순수함을 가리지 못합니다. 어둠은 때로는 분노하며, 재를 뿌리고, 해를 끼치며 여러분의 삶을 혼란스럽게 하지만 결국은 물러갈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주님의 놀라운 계획입니다. 주님은 자신을 통해 그 계획을 사람들에게 펼치시며 어둠의 권세에 대항하십니다.

'S.D. 고든 > 요한복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다시스 또는 니느웨?  (0) 2021.09.14
가슴에서 머리로..  (0) 2021.08.23
최선을 다하시는 하나님  (0) 2021.07.01
사람의 몸을 입으신 하나님  (0) 2021.06.05
자신의 복음서  (0) 2021.05.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