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D. 고든/요한복음

가슴에서 머리로..

예림의집 2021. 8. 23. 20:03

가슴에서 머리로..

 

이어서 요한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요한복음 1:5). 고대 영어에서는 "깨닫다"는 "붙잡다"와 "이해하다"의 의미로 사용했습니다. "이해한다"는 정신으로 마음을 잡은 상태를 의미하고,  "붙잡다"는 손으로 무엇인가를 잡는 신체적 개념이 강합니다. 우리는 주님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아주 단순한 진리입니다. 비록 우리가 대단한 명민함을 갖추고 교육을 받고 훈련을 받았다 할지라도, 우리는 주님을 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저 주님의 뜻을 아주 조금 알뿐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이해하기에는 너무나 크신 분이십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마음으로 주님의 말씀을 들어 보기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주님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며, 주님을 붙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대부분 우리들의 마음은 온전하게 준비되지 않았고, 훈련받지도 않았으며, 일상의 분주함으로 인해 말씀을 진지하게 읽지도 않습니다. 또한 우리는 순수한 마음으로 어린아이와 같이 주님에게 손을 내밀 지도 않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단지 지식적으로 아는 것은 주님을 이해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을 마음과 삶 속에 모실 때 비로소 우리가 주님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는데, 그것은 마치 주님의 함께 하심으로 우리의 가슴이 뜨거워지고 우리의 차가운 뇌도 뜨거운 감동을 느끼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게 될 때 주님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한 우리의 머리와 가슴은 우리를 온전한 삶으로 이끌 것입니다. 물론 이런 경우는 교육에서 흔하게 이야기되는 현상입니다.

학생들은 먼저 어떤 것을 향한 열정과 관심을 갖고 나서야 과학, 철학, 수학 또는 실험과 연구에서 지적으로 최선의 노력을 다합니다. 우리의 감성과 목표는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정신적 영역은 감성의 문을 지나야 비로소 열립니다. 그다음에야 감성과 지성의 불이 함께 타오르는데 이것이 바로 지연의 이치입니다. 그러나 요한이 여기서 말하려는 것은 아주 단순하고 평범한 표현입니다. 즉 어둠은 빛이 들어오는 것을 막지 못하고, 빛이 밖으로 나가는 것도 막지 못하며 빛줄기를 약하게 만들지도 못한다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어두운 세력은 정말 그렇게 하려고 시도를 했었습니다. 그 어둠은 주님을 고향 나사렛에서 쫓아냈고, 주님을 광야로 데려갔으며, 겟세마네와 갈보리에서 주님에게 고통을 안겨주었습니다.

겉으로 봐서는 한순간 어둠이 빛을 막고 세상을 지배하면서 승리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때 어둠의 세력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승리의 기쁨을 외쳤을 것입니다. 그러나 삼일 밤이 지나자 어둠의 권세는 무너져 내렸습니다. 주님의 빛은 어둠에 의해 절대로 붙들리지 않았습니다. 빛은 더 환하게 빛났으며 어둠은 그 빛을 막을 수 없습니다. 요한이 기록한 첫 번째 문단은 그처럼 강력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세상을 만들어 주시고, 사람들을 자신의 형상으로 창조하셨을 때, 어둠은 이 세상에 몰래 숨어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직접 세상에 들어오셔서 빛을 비추시면서, 사람들을 어둠에서 빠져나오도록 인도하셨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사람들이 빛을 향해 계속 움직이길 바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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