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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개의 좋은 예-다윗, "난 지금 하나님밖에 안 보여"

예림의집 2021. 7. 5. 21:51

회개의 좋은 예-다윗, "난 지금 하나님밖에 안 보여"

 

다윗의 예는 사울의 예와 대조됩니다. 다윗은 경건한 왕이기는 했으나 그 역시 죄인이었고, 강력한 왕권에 취해 자기중심적으로 변해 갔습니다. 사무엘하 11장은 다윗이 타락했음을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그는 여기서 충직한 부하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와 간음하고, 자신이 지은 죄를 덮기 위해 우리아를 죽여 버립니다. 다우시 역시 자아가 가득한 사람이었습니다. 유진 피터슨은 사무엘하 11장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가 "보내다"라고 말하는데, 실제로 이 단어의 용례를 잘 살펴보면 다윗이 얼마나 자기중심적인지 알 수 있습니다. 다음은 이 부분을 잘 설명한 김형익 목사의 설명입니다.

"1절에서 다윗은 요압과 신복과 온 이스라엘 군대를 전쟁터인 랍바로 보냈습니다. 이것은 다윗의 힘과 권력을 보여줍니다. 3절에서 다윗은 자기가 보았던 목욕하던 여인이 누구인지 알아보라고 사람을 보냈습니다. 그는 그냥 보내면 다 되는 힘 있는 사람입니다. 4절에서 그는 또 사람을 보내어 그 여인 밧세바를 자기 방으로 불러오라고 합니다. 밧세바가 임신을 하게 되자, 다윗은 다시 6절에서 요압에게 사람을 보내어(기별하여) 우리아를 자기에게 보내라고 명합니다. 다윗은 우리아를 그의 아내 밧세바와 동침시키려는 자신의 계획이 이루어지지 않자 다시 그를 전쟁터로 보냅니다. 그리고 그의 손에 요압에게 보내는 편지를 보냅니다. 이 죄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다윗은 "보내는" 다윗입니다. 그는 보내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척척 말을 들어줍니다. 더 이상 그는 직접 칼을 손에 쥘 필요가 없고, 직접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 길 필요가 없습니다. 말만 하면 됩니다. 그는 힘 있는 왕입니다."

다윗은 기세가 등등합니다. 그는 4, 5, 6, 14, 27절에서 사람들을 보냅니다. 사무엘하 11장에서 그리고 있는 다윗은 사무엘상 15장에서 그리고 있는 사울보다 덜 이기적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훨씬 더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이며 교활합니다. 사실상 사울보다 더 사악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반전이 시작됩니다. 반복되던 "보내다"라는 동사가 12장 1절에서 이렇게 사용되면서 마무리되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서 나단을 다윗에게 보내시니." 다윗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사람들을 보냈지만, 그보다 더 크신 왕께서 다윗에게 한 사람을 보내십니다. 그 사람은 담대한 심령으로 다윗에게 회개를 촉구합니다(사무엘하 12장). 무시무시한 죄를 범했지만 죄를 지적받은 다윗은 사울과는 다르게 반응했습니다. 변명하며 어떻게든 심판을 피하고자 했던 사울과는 달리 다윗은 진지하게 자신의 문제를 깨닫고 회개하며 돌이킵니다. 그가 회개하며 했던 말의 일부를 읽어 봅시다.

시편 51편은 다윗이 범죄 한 후 선지자 나단이 그를 찾아왔을 때 했던 회개입니다. "내가 주께만 범죄 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주께서 심판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시편 51:4). 다윗은 "내가 주께만 범죄 하여"라고 말합니다. 그렇다고 다윗이 우리아나 그의 아내 밧세바에게는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다는 말이 아닙니다. 다만 자신이 사람들에게 지은 사악한 죄의 본질을 하나님을 향한 반역이라고 생각한다는 의미입니다. 다윗의 신경이 온통 하나님께만 가 있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물론 우리아와 밧세바에게도 잘못했지만, 그가 가장 죄송해하는 대상은 하나님입니다. 이제 드디어 다윗의 시선은 자아에서 하나님께로 옮겨 갑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적 회개"입니다. 김형익 목사의 설명을 다시 인용합니다.

"율법적 회개는 죄의 결과로 받게 될 형벌이 두려워서 하는 것이지만, 복음적 회개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망가뜨린 죄 자체 때문에 슬퍼한다. 율법적 회개는 우리가 너무나 비참하고 후회하고 있어서 그 죄를 용서받을 만한 자격이 있다는 것을 하나님께 납득시키는 자학의 한 형태로서, 결국 자기 의를 새우는 행위가 된다. 하지만 복음 안에서 우리는 예수님이 우리 때문에 고난을 당하셨고 비참해지셨다는 것을 안다. 따라서 용서를 획득하기 위해 우리 스스로를 괴롭게 할 필요가 없다."

복음적으로 회개하는 사람들에게 회개는 고통스럽고 괴로운 일이 아닙니다. 그들의 관심은 온통 하나님께 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느끼는 슬픔은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만드는 것이기에 그 끝에는 기쁨이 있습니다. 복음적 회개는 하나님을 다시 사랑하고 화해하며 즐거워하기 위한 회개입니다. 반면에 율법적 회개는 끊임없이 자기를 증명하기 위한 고행일 뿐입니다. 복음적 회개의 끝에 용서와 화목이 있다면, 율법적 회개의 끝에는 교만과 불만족과 거절감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