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림의집 메일 모음

예림의집 2341번째 이야기

예림의집 2021. 6. 16. 14:15

예림의집 2341번째 이야기

 

사색의 바다

큰소리로 외쳐 보세요!


주위에 아무도 없을 때, 예를 들어 숲 속이나 혼자 거실에 있을 때, 일부러라도 혼자 옥상에 올라서 하나님께 큰소리로 얘기를 해보세요. 감사한 것들, 좋은 것들을 소리쳐 말해 보세요! 진심으로 "제게 멋진 친구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맑은 날씨, 시원한 바람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친구들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랑하는 아내와 인생을 함께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라고 외쳐보세요. 숨이 찰 때까지 계속 말해보세요. 부끄러워하지 말고, 당신의 삶을 인도해 주시고, 책임져 주시는 하나님께 큰 소리고 감사드리세요! 흐뭇해하실 하나님의 표정을 상상해 보세요!

 

한절 묵상

출애굽기 26장 14절


"붉은 물들인 숫양의 가죽으로 막의 덮개를 만들고 해달의 가죽으로 그 윗덮개를 만들지니라"


거무스름한 해달(혹은 돌고래) 가죽으로 덮인 성막의 겉모습은 너무나 수수하고 평범합니다. 아름다운 색채와 금으로 꾸며진 성막 내부와는 사뭇 다른 모습입니다. 안을 보지 못하고 겉만 훑어보면, 성막은 보잘것없는 텐트에 지나지 않습니다. 보이는 것으로는 성막의 존귀함을 깨달을 수 없습니다. 신앙은 보이는 것 너머를 볼 수 있는 깊이가 있어야 합니다. 겉에 머무르는 신앙으로는 하나님을 알 수도, 그분에 영광에 이르지도 못합니다.

 

예림가족 이야기

그녀의 마음은..


암(癌)이라는 진단이 나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처음에는 병을 부정합니다. 그다음에는 ‘왜 자신이 이런 병에 걸렸는지?’ 안타까워하면서 분노합니다. 미심쩍은 생각에, 이 병원 저 병원을 다니고, 검진을 몇 차례나 받은 후에야, 자신의 병을 인정하는 환자도 있습니다. 뒤늦게 자신이 암 환자라는 현실과 타협하기에 이릅니다. 그 후 치료의 단계에 들어서면, 대부분 우울증에 빠져듭니다. 죽음에 대한 공포가 그를 가만 놔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부정, 분노, 타협, 우울, 이 네 단계가 바로 환자들이 겪는 심리적 과정입니다.
이 네 단계를 거치고 나서야 그 모든 사실, 곧 자신의 병이 암이며 그래서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최종 인정합니다. 하지만, 좀 더 영리한 환자라면 이렇게 질문할 것입니다. “선생님, 살 수 있을까요? 요새는 수술만 잘되면 살 수 있다는데, 수술할 수 있는 상태인가요? 아니면..” 그렇습니다. 중요한 것은 "살 수 있는가?"입니다. 삶과 죽음이라는 근본적인 질문 앞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알몸으로 서는 일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얼마나 두려운 일입니까? 제가 아프기 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중년의 한 여성을 진단했는데, 유방암 4기였습니다.
그 여성은 “선생님, 제가 얼마나 살 수 있을까요?” 하고 물었습니다. 제가 “6개월 전후 왔다 갔다 합니다.”라고 하자, 그녀는 고개를 숙였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낙심하지 않고 항암치료를 열심히 받았습니다. 그리고 6개월이 지났지만, 그녀는 죽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녀가 사망진단서를 써 달라고 했습니다. “왜 그러십니까?” 하고 묻자, “생명보험금을 타서 나도 쓰고 친척들한테 신세 진 것도 갚으려고요.” 안 된다고 하자, “제가 죽고 난 후에 제 생명보험금을 다른 사람들이 쓰는 게 싫단 말이에요.” 그녀의 마음은 ‘암세포의 욕심’과 닮아 있었습니다.(이희대 박사) 


아, 어쩌면 좋습니까? 이게 우리 인간의 마음이던가요? 욕심을 부린 들, 뭐하려고 그러는 걸까요? 하지만, 그 누구를 탓하고 비난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네 보통 사람의 마음이 거기에서 거기 아닐까요? 코람데오! 하나님 앞에서 바로 서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야 겸손할 수 있습니다.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라고 야고보서 1장 14, 15절에서 말씀하십니다. 인간의 욕심을 끝이 없는 것 같습니다. 죽음을 앞둔 순간에도 욕심을 부리니 말입니다.

 

단장 칼럼

안전지대를 떠나라!


오늘 칼럼을 끝으로 "하나님께 돌아오는 연습"이란 주제로 나누었던 칼럼을 마무리하고 내일부터는 새로운 주제로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에스라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바벨론에 붙잡혔다가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을 말씀으로 일깨운 사람이었습니다. 에스라 역시 바벨론 땅에 잡혀간 포로였습니다. 처음에 이스라엘 포로들은 우상을 섬기는 바벨론 땅에서도 믿음을 지키며 살겠다고 굳게 다짐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바벨론 땅에서도 믿음을 지키며 살겠다고 굳게 다짐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바벨론 문화에 융화되고 맙니다.
에스라는 한 해를 새롭게 맞이하는 정월 초하루에 예루살렘으로 떠납니다. 바벨론은 이주민에게 어느 정도의 자유를 보장했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포로들은 바벨론에 잘 정착하여 그럭저럭 먹고 살만했습니다. 따라서 예루살렘으로 떠난다는 데에는 힘겹게 닦은 기반을 모두 버린다는 의미가 담겨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은 아무것도 남지 않은 폐허였습니다. 그러나 에스라는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습니다. 옛 조상 아브라함이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약속의 땅으로 간 것처럼 말입니다. 이것은 에스라와 그를 따라나선 사람들에겐 큰 도전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꿈을 이루고 성공할 수 있는, 더 유리한 환경과 사람을 찾아 움직입니다. 좋은 학군을 찾아 이사하고, 더 좋은 환경을 찾아 이민을 떠납니다. 하지만 에스라는 정반대였습니다. 그동안 이루어 놓은 것을 모두 버리고 폐허를 향해 떠났습니다. 성경은 에스라가 하나님을 잘 아는 사람이었다고 말합니다. 에스라는 하나님의 뜻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결코 유대 포로들의 바벨론 정착이나 이스라엘 땅의 재건에 있지 않았습니다. 왜 그토록 자신들이 오랜 포로 생활로 고통받아야 했는지, 이스라엘이 왜 멸망했는지,
이스라엘 백성이 깨닫는 데에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다시는 같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길 바라셨습니다. 죄의 노예로 살아가면 어떤 결과가 돌아오는지 깨달아 하나님께 다시 돌아오길 바라셨습니다. 그래서 에스라는 바벨론을 떠났습니다. 하나님이 부르시는 자리로 즉각 나아갈 수 있도록, 바벨론이라는 안전지대를 떠났습니다. 익숙하고 편안한 삶의 방식과 가치관을 떠나, 하나님의 뜻이 있는 곳을 향해 나아간 것입니다. 자신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분별하십시오. 혹시 그 자리를 떠나야 할 때는 아닌지 분별하십시오.
떠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고통이 따릅니다. 그러나 그 고통이 따르는 길은 주님 앞으로 더 나아가는 길입니다. 부르심을 향한 우리의 여정이 "에스라의 행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혹시나 지금까지 여러분이 하나님과 너무 멀어져 있었다면, 세상의 즐거움에 매몰 되어 그 자리가 좋다 하고 머물러 있다면, 이제 하나님께로 돌아오시기 바랍니다. 지나친 안정감은 하나님이 우리의 삶에서 일하실 수 있는 통로를 막는 장애물이 되기도 합니다. 언젠가는 알게 될 것입니다. 고생이라고 생각했던 그 두려움의 바닷물 속이 그분의 날개 그늘 아래라는 사실을..!

 

오늘의 Q.T.

하나님이 임하시는 거룩한 성소


"너는 조각목으로 성막을 위하여 널판을 만들어 세우되 각 판의 길이는 열 규빗, 너비는 한 규빗 반으로 하고 각 판에 두 촉씩 내어 서로 연결하게 하되 너는 성막 널판을 다 그와 같이 하라 너는 성막을 위하여 널판을 만들되 남쪽을 위하여 널판 스무 개를 만들고 스무 널판 아래에 은 받침 마흔 개를 만들지니 이쪽 널판 아래에도 그 두 촉을 위하여 두 받침을 만들고 저쪽 널판 아래에도 그 두 촉을 위하여 두 받침을 만들지며 성막 다른 쪽 곧 그 북쪽을 위하여도 널판 스무 개로 하고 은 받침 마흔 개를 이쪽 널판 아래에도 두 받침, 저쪽 널판 아래에도 두 받침으로 하며 성막 뒤 곧 그 서쪽을 위하여는 널판 여섯 개를 만들고 성막 뒤 두 모퉁이 쪽을 위하여는 널판 두 개를 만들되 아래에서부터 위까지 각기 두 겹 두께로 하여 윗고리에 이르게 하고 두 모퉁이 쪽을 다 그리하며 그 여덟 널판에는 은 받침이 열여섯이니 이쪽 판 아래에도 두 받침이요 저쪽 판 아래에도 두 받침이니라 너는 조각목으로 띠를 만들지니 성막 이쪽 널판을 위하여 다섯 개요 성막 저쪽 널판을 위하여 다섯 개요 성막 뒤 곧 서쪽 널판을 위하여 다섯 개이며 널판 가운데에 있는 중간 띠는 이 끝에서 저 끝에 미치게 하고 그 널판들을 금으로 싸고 그 널판들의 띠를 꿸 금 고리를 만들고 그 띠를 금으로 싸라 너는 산에서 보인 양식대로 성막을 세울지니라 너는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늘게 꼰 베 실로 짜서 휘장을 만들고 그 위에 그룹들을 정교하게 수 놓아서 금 갈고리를 네 기둥 위에 늘어뜨리되 그 네 기둥을 조각목으로 만들고 금으로 싸서 네 은 받침 위에 둘지며 그 휘장을 갈고리 아래에 늘어뜨린 후에 증거궤를 그 휘장 안에 들여놓으라 그 휘장이 너희를 위하여 성소와 지성소를 구분하리라 너는 지성소에 있는 증거궤 위에 속죄소를 두고 그 휘장 바깥 북쪽에 상을 놓고 남쪽에 등잔대를 놓아 상과 마주하게 할지며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늘게 꼰 베 실로 수 놓아 짜서 성막 문을 위하여 휘장을 만들고 그 휘장 문을 위하여 기둥 다섯을 조각목으로 만들어 금으로 싸고 그 갈고리도 금으로 만들지며 또 그 기둥을 위하여 받침 다섯 개를 놋으로 부어 만들지니라"(출애굽기 26:15-37).


오늘 함께 읽은 본문은 어제에 이어 성막 구성에 필요한 나머지 기물들을 만드는 방법과 특히 마지막에 성소와 지성소를 구분하는 휘장을 만드는 방법과 그 휘장을 중심으로 성전 기물들의 배치를 자세하게 명령하고 있습니다. 널판과 띠는 조각목으로 만들고 금으로 쌉니다. 성소와 지성소를 구분하는 휘장은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짜서 만들고 그 위에 그룹을 수놓습니다. 지성소 휘장 안 증거궤 위에 속죄소를 두고, 휘장 바깥에는 상과 등잔대를 마주하게 놓습니다. 성막 문 휘장도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수놓아 짜서 만듭니다.


성막의 벽(15-30절).
성막은 왕이신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입니다. 성막의 벽을 구성하는 나무 널판들과 이를 연결하는 나무 때(가로대)는 29절, 다 금으로 씌우고, 띠를 널판에 고정시킬 고리도 금으로 만듭니다. 나무 널판을 세울 받침은 은으로 만듭니다(19-21, 25절). 성막에서 받침은 항상 "거룩한 차등 현상"을 따라 그 위에 위치한 기둥이나 벽채보다 한 단계 낮은 재료가 사용됩니다. 이러한 성막 벽은 조립식으로 만들어지는데, 이는 성막은 임시 거처로 광야생활 40년 동안 이스라엘의 백성의 중심에서 이동하기 때문입니다.
성막의 벽을 구성하는 나무에 금을 씌워 성막 구조물을 만드는 이유는 성막이 왕이신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 다시 말해 왕궁과 같은 곳이기 때문입니다. 백성은 왕이신 하나님을 항상 극존중해야 합니다. 우리가 왕이신 하나님과 영원히 동행하며 그분이 주시는 은혜를 누리는 방법은 그분을 날마다 높여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상 2장 30절 하반절에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왕이신 하나님을 존중하는 사람과 멸시하는 사람은 각각 어떻게 될지 묵상합시다. 


성막의 휘장들(31-37절).
성막에는 휘장이 세 개가 있습니다. 본문은 그중에서 31-35절, 지성소 휘장과 36, 37절, 성소 휘장을 다룹니다. 뜰과 연결된 휘장은 27장 16-19절에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거룩함의 차등 현상"에 따라 가장 귀한 재료들로 만든 지성소 휘장에는 성막의 가장 안쪽 덮개인 1절의 성막과 마찬가지로 그룹들이 정교하게 수놓습니다. 이 그룹들은 창세기 3장 22-24절, 에덴에서 추방당한 아담과 하와가 생명나무로 가는 길을 막던 그룹들처럼, 상징적으로 하나님께로 가는 길을 막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마태복음 27장 51절,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몸이 찢기심으로 지성소 휘장이 찢어졌습니다. 하나님께 가는 길이 요한계시록 2장 7절, 그 피에 힘입는 모든 이에게 열린 것입니다. 증거궤가 놓인 지성소는 이스라엘 백성에겐 두려움의 장소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죄 사함의 은혜를 베푸시기 위해 임하시는 "속죄소"로 인해 지성소는 두려움이 아닌, 하나님 은혜를 상징하는 자리로 바뀝니다. 그 속죄소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허무시고 그 값을 치르신 십자가를 상징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를 깊이 묵상하는 시간이 됩시다.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의 은혜를 부어주신 하나님 아버지, 성막의 핵심 요소는 아닐지라도, 그다지 주목받지 못하고 덜 중요해 보일지라도, 성막을 든든히 세우기 위해 반드시 있어야 하는 널판의 사명을 묵상해 봅니다. 어떤 역할이든 하나님이 전해 주신 바로 그 자리에서, 말씀을 통해 알려주신 방법대로 신실하게 감당하게 하시옵소서. 언제나 주님의 십자가 보혈을 생각하며, 날 위해 못 박히신 존귀한 어린양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고 그 넘치는 은혜를 덧입어 주님의 자녀답게 살아가게 하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기도의 횃불

피난처가 되시는 하나님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주하며 전능자의 그늘 아래에 사는 자여, 나는 여호와를 향하여 말하기를 그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내가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이는 그가 너를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심한 전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시편 91:1-3).


우리의 피난처가 되시는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자녀라 여겨주시고,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게 하셨지만 죄악의 본성에 내려 두지 않기를 다짐합니다.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않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 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섬기며 믿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고백이 변하지 않게 하시옵소서. 하나님은 오늘, 성경의 사람들처럼 우리에게도 주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세상과 함께 사람을 지으셨고 그 역사를 주관하시는 주인(왕) 이심을 깨달았을 때, 우리는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지음을 받았고, 우리에게 하나님의 형상을 주셨다는 것이 솔직히 충격이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이 하나님을 대적하며 지냈고, 하나님이 없는 자처럼 살아왔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형상에 대하여 깨닫게 하신 이 감동, 저의 생명이 끝나는 날까지 저의 가슴을 뛰게 하시옵소서.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인 우리를 위하여 우리에게 피할 거처가 되어주셨다는 말씀 앞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우리의 후손들에게까지 의지할 안전한 집이 되어 주시니 그 약속에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에게 피난처가 되어 주시고, 우리의 후손들도 하나님의 품에서 피난처를 누리게 하시옵소서. 이제, 우리는 우리와 우리의 후손들에게 행복을 선물해 주는 것은 하나님을 믿음이라고 깨닫습니다. 우리 후손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도록 복음을 전해주고 하나님을 섬기도록 이끌게 하시옵소서. 세상에서 지내는 동안에 하나님의 삶의 기업이 되어 주시겠다는 약속으로 깨닫습니다. 우리로 말미암아 시작된 복음의 가정, 이제 우리의 기도로 말미암아 복음의 2세대, 복음의 3세대로 이어지는 하나님의 사랑과 복을 내려 주시옵소서.
그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장 복되고 안전한 집이 되어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원수의 손에서 자기 백성을 보호해 주시는 피난처가 되어주심을 믿게 하시옵소서. 이어서 우리 집안의 자자손손에게 하나님께서 안식처가 되어주신다는 약속에 감사하고 감사합니다. 우리 집안에서도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의 거룩한 계보가 이어지는 것을 보게 하여 주시옵소서. 거룩한 집안으로 선택해 주셨으니 이제 우리가 드릴 것은 감사와 찬양과 경배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주님께 영원토록 예배하는 우리가 되게 하시옵소서.
하나님을 우리 집안의 보장으로 삼게 해 주셨으니 영광을 드리게 하시옵소서. 할렐루야! 우리가 자신의 의지와 감정대로 살면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어리석은 자기 되지 않기를 원합니다. 흔들리지 않고, 영원히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함이 오늘의 삶에서 증거가 되게 하시옵소서. 우리 모두가 지존자 하나님의 은밀한 곳에 거주하면서 전능자의 그늘 아래 살게 하시고, 하나님을 우리의 피난처요, 우리의 요새요, 우리가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고백하게 하시고, 언제나 하나님을 신뢰하며 기쁨과 감사의 삶을 살아가게 하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찬양의 향기

 

"예림의집”을 소개합니다

 

예림의집은 “예수님께서 임하셔서 거하시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세상 가운데로 보내시면서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 29)”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임재를 통하여 실제로 그리스도인에게 오셔서 모든 삶을 함께하신다는 말입니다.  예림의집은 예수님의 사역에 동참시키시는 주님의 그 부르심에 순종하여 세워진 선교후원 단체입니다.

 

첫째, 온라인 선교사역

①다음 카페 “예림의집”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회원가입을 하시면 그 순간부터 저의 예림의집 사역이 동참하게 됩니다. 현재 회원 수 1200여 명으로 이들이 잠정 후원자가 되어 기도 후원, 물질 후원, 재능기부 등을 하게 됩니다. 카페를 매개로 하여, 서로의 비전과 기도 제목을 나누고, 힘을 합쳐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해 갑니다. 저의 사역에 동참하시길 원하시는 분은 다음 검색 창에 “예림의집”을 치세요!

②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

다음/네이버 블로그 예림의집은 따로 회원 가입을 할 필요 없이 언제, 어디서나 방문하여 필요한 정보와 신앙 글들을 접할 수 있습니다. 저는 다음 커뮤니티 공식 파워 블로거로 활동 중이며, 현재 76만여 건이 넘는 방문자 수를 기록 중입니다. 다음 카페 “예림의집”과 연동되어 하루 평균 20개 이상의 정보가 업로드되어 현재 3만 2천여 편의 글들을 접하실 수 있습니다.

③페이스북 활동(김정민)

요즘 활성화되어있는 페이스북 활동을 통하여 온라인 선교의 지경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저를 친구 초대해주시고 팔로우 해 주시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현재 22개의 그룹을 만들어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친구들을 만나고, 복음을 전하며, 선교 동원가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많이 친추 해 주세요!

④유튜브 방송 "예림의집TV"

복음전파와 영적무장의 방편으로 유튜브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매주 월요일부터 토요일가지 6일 방송하며, 새벽 기도회(매일: 오전 5:00), 예림의집 이야기(월-금: 오후 5:00),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토: 오후 5:00)을 실시간 방송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설교, 성경공부 등 복음전파와 관련된 영상들을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많이 오셔서 좋아요/구독 부탁드립니다.

 

둘째, 선교사/개척교회 후원 사역

이 사역은 찬양사역을 하던 저에게 새로운 비전을 주셔서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게 하신 사역입니다. 선교사님들과 개척교회를 바르게 후원하기 위해서는 제가 먼저 선교와 교회 개척 사역에 헌신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예림의집 카페 회원들을 포함한 그동안 주께서 연결해주신 후원자 1500여 명이 함께 감당해 가는 사역입니다.

첫 번째, 기도후원사역은 주께서 연결해 주신 선교사님이나 개척교회를 위해 40 명의 기도 용사를 세우는 사역입니다. 제1호 필리핀 “김성재 선교사님”과 서울 상도동 “주님의 교회”를 필두로, 현재 20명의 선교사님과 17개의 개척교회를 후원하고 있고, 그 지경을 넓혀 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물질후원사역으로 앞에서 말씀드린 기도 후원자들 중에 하나님께서 자원하는 마음을 주신 분들이 물질 후원을 하게 됩니다. 재정 후원은 선교사님과 개척교회 목회자 가정의 기초 생활비를 우선적으로 지원하도록 원칙을 세웠습니다. 물품 후원은 선교나 교회 개척에 필요한 다양한 물품들을 자원하여 후원하게 됩니다. 특히 도서 후원은 성경책, 신앙 도서, 아이들 학습 도서 등. 작은 도서관을 만들 수 있도록 후원합니다.

세 번째, 재능기부사역은 주님께서 주신 모든 달란트를 활용하여 선교와 교회 개척을 지원하는 사역입니다. 예를 들어, 선교 지원팀, 여름 성경 학교 진행팀, 찬양팀, 자원봉사단 등이 있습니다. 모든 재능 기부 사역은 “자비량”을 원칙으로 합니다. 특히 전도 지원팀을 양성하여 개척교회를 지원할 계획입니다. 이 사역을 통하여 새로운 선교사들과 교회 개척자들이 새워질 것입니다. 선교지나 개척 현장에서 필요한 프로젝트 그룹을 조직하여 지원합니다.

 

셋째, 찬양 세미나/찬양 집회 사역

제가 약 30년간 해오던 찬양 사역의 일환으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찬양을 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특별히 부여하신 사역입니다. 아직도 찬양에 대한 무지와 편견으로 주님을 맘껏 찬양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잇습니다. 그들에게 제가 경험한 찬양에 대한 놀라운 비밀을 나누는 사역입니다.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3개월 전에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010-9442-6928, yerim21@hanmail.net).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이 2018년 가을에 발간되었습니다. 저는 비록 짧은 시간 동안 여러분을 만나지만, 찬송은 너무나 소중하기에 글로써 여러분들의 곁에서 치침이 되어드리려고 합니다. 찬송에 대한 저의 지난 30년간의 찬양사역의 총 결산의 책입니다. 본 책의 내용은 앞서 설명한 다음 카페와 블로그 “예림의집”과 페이스북을 통해 미리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예림의집 김정민 목사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