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아와 다비다
"그 때에 베드로가 사방으로 두루 다니다가 룻다에 사는 성도들에게도 내려갔더니 거기서 애니아라 하는 사람을 만나매 그는 중풍병으로 침상 위에 누운 지 여덟 해라 베드로가 이르되 애니아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일어나 네 자리를 정돈하라 한대 곧 일어나니 룻다와 사론에 사는 사람들이 다 그를 보고 주께로 돌아오니라 욥바에 다비다라 하는 여제자가 있으니 그 이름을 번역하면 도르가라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더니 그 때에 병들어 죽으매 시체를 씻어 다락에 누이니라 룻다가 욥바에서 가까운지라 제자들이 베드로가 거기 있음을 듣고 두 사람을 보내어 지체 말고 와 달라고 간청하여 베드로가 일어나 그들과 함께 가서 이르매 그들이 데리고 다락방에 올라가니 모든 과부가 베드로 곁에 서서 울며 도르가가 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 지은 속옷과 겉옷을 다 내보이거늘 베드로가 사람을 다 내보내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돌이켜 시체를 향하여 이르되 다비다야 일어나라 하니 그가 눈을 떠 베드로를 보고 일어나 앉는지라 베드로가 손을 내밀어 일으키고 성도들과 과부들을 불러 들여 그가 살아난 것을 보이니 온 욥바 사람이 알고 많은 사람이 주를 믿더라 베드로가 욥바에 여러 날 있어 시몬이라 하는 무두장이의 집에서 머무니라"(사도행전 9장 32-43절).
사울의 회심과 그리스도인의 초기 삶을 서술한 사도행전은 이제 다시 베드로의 사역에 초점을 맞춥니다. 사도행전 8장 1절에서 우리는 사도들이 예루살렘에 머물면서 박해를 견디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또한, 사도행전 8장 14절에는 베드로가 사마리아에 가서 빌립을 통해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시는지를 확인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마리아에서의 사역이 끝난 후, ㅂ드로는 8장 25절, 예루살렘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9장 32절을 통해 베드로가 박해로 인해 흩어진 성도들을 방문하기 위해 여러 지역으로 여행했음을 알게 됩니다.
이러한 방문의 목적이 무엇인지는 분명히 알 수 없지만, 베드로는 두 가지 목적을 가지고 그 일을 행했을 것입니다. 우선, 베드로의 방문은 박해로 인해 흩어진 성도들에게 용기를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성도들과 함께 하면서 그들의 용기를 북돋아 주고 소망을 심어 주었습니다. 아마도 그들 중 어떤 이들은 자신의 믿음으로 인해 가족이나 친척들이 감옥에 갇히는 아픔을 당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의 믿음에 대한 확신과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둘째로 베드로의 방문은 교회의 순수성을 유지하기 위한 목적도 지니고 있었습니다. 흩어진 성도들은 용기도 필요했지만, 복음의 진리를 배워야 했습니다. 베드로는 사도로서 흩어진 제자들을 만나 진리의 복음을 가르치고 상기시킬 필요가 있었습니다. 이 사역은 교회가 교리적으로 순수함을 유지하기 위해 꼭 필요했습니다. 오늘날도 교회는 진리를 수호하고 순결을 지켜나가야 합니다.
오늘의 본문은 베드로가 방문했던 두 지역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첫 번째 방문지는 룻다라는 곳이었는데 이 도시는 예루살렘 서쪽 40킬로미터 지점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베드로가 거기에서 8년 동안 증풍 병을 앓고 있던 애니아라는 사람을 만나게 되자 그 사람을 불쌍히 여기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34절을 함께 읽습니다. "베드로가 이르되 애니아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일어나 네 자리를 정돈하라 한대 곧 일어나니" 이 말을 들은 그는 즉시 치유되고 그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베드로가 애니아에게 말한 내용에 주의를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가 애니아를 치유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베드로는 이 점에 있어서 결코 모호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기적을 일으킨 영광을 차지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자신은 단지 예수 그리스도의 권능이 흘러나오는 통로에 불과함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점이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주님께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 우리를 사용하실 때 우리는 순간마다 교만한 마음을 품게 됩니다. 그러면서 주님의 사역이 나에게 의존하고 있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그러한 생각에 빠져들면 이단이 되고 삼단이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치유 사건에서 우리는 두 가지 원리를 배우게 되는데, 그 하나는 주님이 우리를 통해 일하시기를 소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하나님이 애니아를 치유하셨을 때 놀라지 않았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시면서 다른 사람들을 어루만지기를 소망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이 우리가 원하는 대로 일하시기를 바라서는 안 됩니다 대신 우리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행하시도록 우리를 하나님의 도구로 내어 놓아야 합니다.
다른 하나는 우리가 겸손함으로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 드렸습니다. 그는 자신이 애니아를 치유하지 않았음을 알았습니다. 치유에 대한 모든 영광은 오직 주님께만 올려 드려야 합니다. 왜냐하면 치유하신 이는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소망과 겸손의 균형을 잘 유지했습니다. 이 기적의 결과로, 그 지역에 있던 사람들이 주님께로 돌아왔습니다. 만약 베드로가 그 환자는 전적으로 주님이 치유하셨다고 분명히 선언하지 않았다면 어떤 일이 생겼을까요? 군중은 어쩌면 주님이 아닌 베드로에게 더 매달렸을지 모릅니다. 만약 이런 경우가 발생해 하나님의 권능을 자신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면서 주님을 대항하는 위치에 서게 된다면,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알아야 합니다.
베드로는 룻다에서 욥바로 이동했습니다. 그 이유는 욥바의 성도들이 베드로가 방문해 주기를 청했기 때문입니다. 그곳에 도착한 베드로는 다비다라는 여인이 방금 죽었음을 알게 되었는데, 그녀는 욥바 지역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았던 훌륭한 사역자였습니다. 39절에 의하면, 그녀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옷을 만들어 주었으며 그 지역에서는 잘 알려진 인물이었습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런 그녀가 병들어 죽자 사람들은 깊은 슬픔에 잠겼습니다. 사람들은 다비다가 죽자 시체를 씻고 장례를 준비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베드로가 속히 와 주기를 바랐습니다. 그들에게는 주님이 베드로를 통해 죽은 자를 살리시리라는 소망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다비다의 사역이 필요했습니다. 베드로가 도착하자 지역 사람들이 다비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기 위해 모였은데, 과부들은 울면서 다비다가 자신들을 위해 지어준 옷들을 베드로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베드로는 그들을 방에서 내보내고 홀로 무릎 꿇고 엎드려 기도했습니다. 그리곤 다비다를 향해 말했습니다. 40절을 함께 읽습니다. "베드로가 사람을 다 내보내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돌이켜 시체를 향하여 이르되 다비다야 일어나라 하니 그가 눈을 떠 베드로를 보고 일어나 앉는지라" 베드로는 어떤 기도를 드렸을까요? 성경에는 그 내용에 대한 기록이 없지만 그가 기도를 끝내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다비다에게 일어나라고 명령한 것을 보면 분명히 다비다의 생명에 대한 주님의 뜻을 구했을 것입니다. 기도를 통해 베드로는 자신의 마음을 준비하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확신하자 그는 곧바로 그녀에게 일어날 것을 명령한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도 않고 일에 뛰어든 적이 얼마나 많습니까? 하지만 베드로는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데 먼저 힘썼고, 그다음에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기 위해 담대히 행했습니다. 다비다가 눈을 뜨고 일어나 앉자, 베드로는 그녀의 손을 잡아 이끌고 사람들에게로 나아갔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기적을 통해 주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소망을 포기한 적이 있습니까? 만약 그렇다면 그 시간은 아마도 의사가 다비다의 죽음을 선언한 때였을 것입니다. 그때에는 그녀를 위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마 우리 교회나 개인도 이런 일을 겪는 순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그때를 말입니다. 우리는 며칠 전 한 권사님을 그렇게 떠나보냈습니다. 그로 인해 우리는 지금도 너무나 참담하고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마지막 얼굴도 보지 못하고, 헤어짐의 인사도 하지 못했습니다. 여기서 여러분에게 심각한 질문을 하나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만약 애니아가 그 병이 낫지 않고, 다비다가 다시 살아나지 않았다면 어떠했겠습니까? 지금의 우리에게 닥친 현실처럼 장례식도 못하고, 빈소도 방문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여러분의 신앙은 흔들리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명심하십시오. 성경에 모두 기록되지 않았지만, 당시의 초대교회는 더 많은 사람이 예수님 때문에 고통을 당하고 죽어갔다는 것을요.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주저앉아 한없이 울고만 있지 않았습니다.
오늘 우리는 한 사람의 치유와 한 사람의 다시 삶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 때문에 고통과 멸시를 받고 죽어갔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로 인해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이 우리에게까지 미치게 된 것입니다. 그들은 끝까지 복음을 전함을 놓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주위를 살펴보시길 바랍니다. 당장 우리의 가족들 중에 아직도 참 생명이신 예수님을 모르고 방황하고 있는 사람은 없는지요. 우리의 자녀가, 부모가, 형제자매가 영적으로 죽어 있는 상태는 아닌가 말입니다. 이제 하나님이 우리에게 오셔서 생명과 소망을 다시 불어넣어 주셔서 우리가 베드로처럼 생명의 통로, 복음의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하여 마침내 절망과 탄식이 지배하는 그곳에 하나님의 소망과 치유가 우리를 통하여 꽃피우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의 삶이 아무리 힘들고 고달프더라도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우리가 불가능하다 하는 것을 가능케 하시는 분이십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주님이 치유하셨다"라는 베드로의 선언을 묵상합시다. 우리들의 일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상황이 주님의 뜻임을 믿고 나아갑시다. 또한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때와 응답하지 않으시는 때를 잘 살핍시다. 하나님께 구체적인 대답을 얻기 위하여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합시다. 우리의 일상의 삶 속에서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 않고 자신의 뜻을 먼저 행하는 일이 없도록 합시다. 무엇을 하든지 먼저 기도합시다. 그리하여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이루어지고, 영혼이 생명을 얻고,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기를 축복합니다.
"우리를 통해 생명을 구원하시려는 계획을 세우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소망을 포기하지 않게 하시옵소서.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는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기도하게 하시옵소서. 하나님께는 못하실 일이 없음을 곧게 믿고 나아갑니다. 하나님께서 여태껏 우리에게 행하신 일들을 늘 가슴에 간직하고 예림교회의 사역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하시며, 주님이 이끄시는 대로 순종하는 교회가 되게 하시옵소서. 성령님께서 조명하여 주셔서 교회와 개인의 사역에 분명한 방향을 제시하여 주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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