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제일 좋은 "아빠의 품"
저는 오래전 한 여자를 사랑했습니다. 그리고 우리 사이에 예쁜 딸이 생겼습니다. 여러 사정 때문에 혼인신고도 하지 못한 채 살았지만, 딸아이가 태어나면 혼인신고도 하고, 늦었지만 소박하게 결혼식도 하고 싶었습니다. 내내 행복할 줄 알았습니다. 아내와 나, 그리고 태어날 우리 딸.. 그렇게 아름다운 꽃길만 걸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아내가 많이 힘들었나 봅니다. 아무 준비가 되지 않은 채 엄마가 된 것이.. 못내 두려웠나 봅니다.
육군 대위로 전역하고 다니던 직장이 어려워지면서 경제적으로 무척 힘들어졌는데 그것이 많이 불안했던 모양입니다. 깊은 불안과 우울에 시달리던 아내는 딸아이가 태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집을 나갔습니다. 그렇게, 나는 '미혼부'가 되었습니다. 딸과 나를 버려두고 나간 아내가 너무도 원망스러웠지만, 내게는 마음 놓고 미워할 시간조차 사치였습니다. 생후 2개월 된 딸 사랑이는 엄마의 품을 찾아 늘 울어댔고 나는 24시간 사랑이 곁에서 아이를 품었습니다.
처음 몇 달간은 엄마 없이도 아빠인 나 혼자서도 사랑이를 정말 잘 키워낼 수 있다고 자신만만해했습니다. 보란 듯이 잘 살아내는 것.. 어쩌면 그것이 아내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의 복수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마음은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아 무너졌습니다. 사랑이는 태어났지만, 태어나지 않은 아이가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딸아이의 출생신고를 위해 기관을 찾았지만, 엄마의 인적 사항이나 동의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들었습니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습니다.
아니.. 이미 태어난 아이인데, 태어났다는 출생신고를 못 하다니요.. 내 딸 사랑이는 엄마의 동의가 없다는 이유로, 미혼부 아빠를 만난 탓으로 세상에 없는 아이로 살아야 했습니다. 세상에 없는 아이니깐 그 어떤 혜택도 받지 못했습니다. 아무 죄 없는 내 딸 사랑이가, 세상에 태어난 것을 인정받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나를 가장 절망스럽게 만들었습니다. 그때부터 사랑이의 출생신고를 위해 싸우기 시작했습니다. 1년이 넘는 긴 소송 기간을 거치며 외로운 싸움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신생아인 딸아이를 돌봐줄 가족 한 명 없는 나는 24시간 아이를 돌봐야 했기 때문에 경제활동을 할 수 없었습니다. 대한민국에 남자가 아기를 데리고 출근해서 일할 수 있는 직장은 없었습니다. 어렵게 구한 일자리에 유모차를 끌고 출근하면 고용주는 반나절도 못돼서 미안하지만, 안 되겠다며 나를 돌려보내곤 했습니다. 경제적으로 힘들었던 그때, 아이가 아팠습니다. 아이의 폐에 문제가 생겨 입원과 수술을 해야 했습니다. 수백만 원이 들었지만, 출생신고가 되어 있지 않아 그 어떤 의료보험 혜택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가지고 있는 것부터 팔기 시작했습니다. 차도 팔고, 컴퓨터도 팔고, 심지어 휴대전화까지 팔았습니다. 그래도 병원비와 생활비를 대기에는 부족했습니다. 다급한 마음에 사채에까지 손을 대고 빚이 늘어났습니다. 어느 날은 정말 분유통에 딱 한 스푼이 남아 있었습니다. 사랑이가 한 끼 먹으려면 네 스푼 정도가 필요한데, 딱 한 스푼만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 남은 기저귀도 열 장도 안 되었습니다. 수중에 돈이 한 푼도 없었습니다. 희망이 보이지 않자, 극단적인 생각까지 하게 됐습니다. 세상 무엇보다 소중하고 사랑했던 아이였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이렇게 살 수는 없었습니다.
사랑이와 함께 죽기 전에 딱 한 번만이라도 배부르게 먹이자는 마음에 길에서 구걸했습니다. 사랑이를 태운 유모차를 옆에 두고, 혹한의 겨울 거리에서 누군가 버린 택배 상자를 뜯어 글을 써 내려갔습니다. "제 딸은 엄마가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아빠 혼자서 출생신고를 못 하게 합니다. 그래서 제 아이는 주민등록번호도, 의료보험도 없습니다. 2개월 전에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는
일자리마저 잃었습니다." 그런데 거짓말처럼 5만 원이 모였습니다. 그 돈은 사랑이와 제가 일주일을 버틸 수 있는 돈이었습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고, 또 일주일만 더 살아보자는 마음으로 또 구걸했습니다. 다행히 그 사이에 다시 일자리를 구하게 됐습니다. 죽음의 문턱에서, 나는 다시 열심히 세상을 살아보기로 마음먹게 되었습니다.
사랑이는 태어난 지 1년 4개월의 시간이 지나서야 출생신고를 할 수 있게 되었고 세월이 흘러 사랑이는 유치원에 들어갔습니다. 지금은 임시직 운전이나 짐 나르는 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가고 있으며 아이가 밝게 커 줘서 감사합니다. 그래도 다른 가정처럼 잘 챙겨주지 못하는 것 같아 늘 조바심이 납니다. 이제 점점 멋 내기를 좋아하는 딸에게 옷도 사주고, 머리핀도 사주고 예쁜 가방과 구두도 사줘야 하는데.. 형편이 되지 않아 마음껏 사주지 못해 미안하고, 다른 엄마들처럼 예쁜 것을 골라주지 못해 또 미안합니다. 엄마 없는 티가 날까 봐.. 그래서 아이가 기죽을까 봐 늘 걱정입니다. 얼마 전, 유치원에서 사랑이가 한 친구와 다퉜다면서 선생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사랑이가 머리를 묶지 않고 왔는데 한 친구가 너는 엄마가 머리도 안 묶어 주냐고 했다더라고요. 사랑이가 난 엄마가 없다고 말했더니, 친구가 세상에 엄마 없는 애가 어디 있느냐고.. 그래서 서로 다투다가 사랑이가 울었어요. 집에서 아버님께 아무 말 안 했나요?" 그 말을 듣고 사랑이가 아빠인 내게 하지 못하는 말이 벌써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너졌습니다. 딸아이는 엄마가 하늘나라에 갔다고 믿고 있는데, 한 번도 내 앞에서 엄마가 보고 싶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많이 보고 싶을 텐데.. 그 어린 것이 참고만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껏 여느 엄마들 못지않게 많은 사랑을 주면서 키우고 있다고 자부했는데 왜 이리 점점 자신이 없어지는 것일까요..?(익명의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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