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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문자

예림의집 2021. 3. 22. 21:04

엄마의 문자

저는 예림의집 가족입니다. 내년이면 40이라는 나이를 바라보는 직장인이자 26살에 결혼하여 두 명의 아이를 가진 엄마이기도 합니다.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전문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일을 시작하여 지금까지 열심히 직장에 다니고 있습니다. 편찮은 아빠를 돌보시는 엄마. 그런 엄마는 저희 아이들까지 봐주셔서 그나마 제가 직장 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 10년 넘게 간병인 없이 자신의 삶을 포기하고 아빠를 돌보신 엄마의 새 신발 밑창은 항상 얼마 안 되어서 헌 신발의 밑창처럼 닳아 있었습니다.
10년 넘은 긴 시간 동안 아빠의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셨기 때문에 친정집은 늘 부족하고 물질적으로 힘들었습니다. 그러던 2017년 8월 그날도 아빠를 먼저 챙기시고 저희 아이들을 돌보러 오신 날입니다. 그런데 그날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3일에 한 번씩 신장투석을 하셔야 했던 아빠가 병원에 오시지 않는다는 전화 한 통에 엄마는 둘째 아이를 업고 다급하게 집에 가셨는데 아빠는 벌써 돌아가신 후였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엄마는 여행도 다니시고 몸과 마음에 여유가 생기셨지만, 아버지의 빈자리는 늘 아쉬워하십니다.
그리고 지난 1월 28일 출근 준비하는 중 엄마에게 한 통의 문자가 왔습니다. 그날은 제 생일이었습니다. "사랑하는 딸! 오늘 생일 축하한다. 신발장, 네 구두 안을 보렴." 봉투 안에는 20만 원이 들어있었습니다. 순간 울컥 눈물이 나오면서 엄마에게 전화해서 엄마 용돈도 부족한데 왜 이렇게 많이 넣었냐고 물었습니다. "아버지 살아계실 때 네가 고생이 많았다. 늘 엄마 옆에 있어서 미역국이나 끓여 주는 게 다였는데, 올해는 내 딸을 꼭 챙겨주고 싶었단다. 고마워 내 딸로 태어나줘서..."

눈앞이 눈물에 가려 보이지 않았습니다. 저도 어머니가 계시지 않았다면 그 힘든 시간을 버틸 수 없었을 텐데, 어머니께 감사 인사 제대로 한 번 드린 적도 없었습니다. 아이들이 저에게 왜 우냐고 물었지만, 정말 감사하고 기뻐서 운다고 말하곤 출근했습니다. 주고 또 주어도 더 주지 못해 늘 안타까운 사람. 자식을 위해서라면 자기 손이 다 닳아 없어져도 마다치 않을 사람. 고향 집의 아랫목처럼 언제나 그립고 따뜻한 사람. 듣기만 해도 먹먹해지는 이름, 그 이름은 '엄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