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영역에서 살아가기
이 이야기는 예수님의 메시지를 중심으로 세 가지 사실이 등장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메시지를 받아들일 때도 그 세 가지를 분명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첫 번째 사실은 주님과의 만남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메시지를 정당하게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먼저 주님과의 만남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삶에 대한 통제권을 주님께 바치기 위해서도 먼저 그분과의 "첫 접촉"이 필요합니다. 그다음에는 섬김을 위한 주님의 계획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충실하게 그 계획을 따라 살아가기 위해 그분과의 "긴밀한 접촉"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주님이 우리의 모든 발걸음을 통제하고 인도하시게 하기 위해서도 그분과 "지속적인 접촉"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 사실은 주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이 있었다는 것인데, 이 순종이 매우 중요합니다. 당신이 행해야 할 어떤 일을 만나게 될 때, 그것이 좋아 보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 어부들에게는 주님의 말씀을 무시하게 할 만한 몇 가지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밤새도록 일했으나 실패했습니다. 그들 안에 강력하게 자리 잡고 있는 실패에 대한 경험이 그들로 하여금 순종을 거부하게 할 수도 있었습니다. 낙심한 사람들은 그 어떤 것에서도 성공하기 어렵습니다. 모든 것을 가망이 없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고기잡이를 위한 시간은 밤이었습니다. 그들은 이미 실패를 경험했고, 그들 앞에 있는 기회는 가망이 없어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순종했습니다.
만약 베드로가 오늘날 우리들의 방식을 따랐다면, 틀림없이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이런 말씀을 드려서 죄송합니다만, 주님, 지금은 이 호수에서 고기잡이를 할 때가 아닙니다. 용서하십시오. 주님, 저는 당신이 목공일에 대해 잘 알고 계시다는 것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는 어부입니다. 멍에와 쟁기에 관한 문제라면 저는 기꺼이 주님의 말씀을 따르겠습니다. 하지만 고기잡이에 관해서라면, 주님도 아시겠지만, 저는 어릴 적부터 그 일을 해왔습니다. 나사렛 근처의 개울이나 연못에서라면 낮에도 뭔가를 잡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이곳에서는 아닙니다."
나는 많은 이들이 그런 식으로 말하는 것을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가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이 신기하지 않습니까? 그는 종종 넘어졌습니다. 또한 몇 차례나 주님께 어리석은 말을 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니었습니다. 그는 순종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습관에 반해서, 무엇이 옳은지에 대한 자신의 생각에 반해서 행동했습니다. 주님의 메시지는 분명했으며, 그가 그 메시지에 순종한 것입니다. 내면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그 음성을 분명하고 정확하게 듣는 법을 배우고, 그 음성에 순종하는 이는 복된 자입니다. 믿음은 결코 이성에 반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믿음은 이성보다 높은 곳에 있습니다. 영적 영역은 가장 높은 곳에 있습니다.
우리는 육적인 삶을 통과하고 강력한 지적인 인식과 이해도 통과해서 영적 영역에 이르러 그곳에 거해야 합니다. 탁월한 능력과 진지함을 지닌 많은 이들이 영적인 문제들과 마주한 상태에서도 그들 자신의 지적 발판을 털어버리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육신을 제어하고 정신을 훈련해 영적 차원에 이르러야 합니다. 주님으로부터 오는 분명한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야말로 온전한 능력을 얻는 통로입니다. 세 번째 사실은 예기치 못했던 결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처럼 처음 두 가지 사실이 충실하게 이행될 때 그곳에서는 언제나 그런 결과가 따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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