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D. 고든/섬김

섬기려는 열정

예림의집 2021. 2. 20. 21:46

섬기려는 열정

 

이 힘차고 분명한 섬김으로의 부르심의 두 번째 단계는 섬기려는 열정입니다. "깊은 데로 가라." 해변에서는 늘 물고기가 남획되지만, 깊은 물에서 사는 물고기들은 미끼나 그물에 익숙하지 않습니다. 해변에서는 때때로 낚싯줄이 서로 심하게 엉키기 때문에 엉킨 낚싯줄을 풀고 어부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위원회가 조직되기도 합니다. 물고기들은 미끼의 종류와 형태에 특별히 민감합니다. 전에 어떤 이들은 고기잡이에 피클을 사용했는데 결과는 형편없었습니다. 물고기들은 피클을 조금씩 뜯어먹었습니다. 하지만 그 피클 미끼에 낚이는 물고기는 거의 없었습니다. 좋은 먹이를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는 물고기들이 간간이 올라올 뿐이었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그동안 한 번도 타진되지 않았던 깊은 곳들이 있습니다.

기도 속에, 성경 공부 속에, 그리고 다른 이들을 얻는 일 속에는 언제나 깊은 곳들이 있습니다. 예수님과의 교제 속에, 성결한 삶 속에, 희생 속에, 그리고 베푸는 일 속에도 언제나 깊은 곳들이 있습니다. 그 깊은 곳의 바닥은 아직까지 그 어떤 측연(測鉛)도 닿아 본 적이 없습니다. "깊은 데로 가라." 조용하지만 강력한 주님의 음성이 우리의 가슴 가장 깊은 곳으로 다가옵니다. 이 깊은 곳에서는 우리가 다가와 섬겨주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모든 교회는 사실은 깊은 곳의 가장자리입니다. 즉 교회는 실제로 주의 따스한 메시지와 접촉한 적이 없는 사람들의 공동체라는 말입니다. 기독교 기관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마음과 읍과 도시의 중심과 가장 가장자리에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깊은 곳들이 있습니다.

이처럼 이 세상에는 깊은 곳들이 무수하게 존재합니다. 예수님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가 갖고 있는 따스한 면을 경험해 보지 못한 이들이 살아가는 모든 곳에는 깊은 곳이 존재합니다. 그런 집단이 발견되는 깊은 곳은 집단 안에 있는 사람들의 숫자만큼이나 깊습니다. 개인적인 접촉을 통해서든, 인쇄물을 통해서든, 다른 어떤 현명한 방법을 통해서든 말씀과 접촉해 본 적이 없는 이들이 모여 있는 곳에는 가장 깊은 곳이 존재합니다. 예수님은 그윽한 눈빛으로 또는 부드럽고 깊은 감정과 함께 스스로 깊은 곳에 처해 보았던 이의 진지함으로 오늘도 우리를 향해 새롭게 말씀하십니다. "깊은 데로 나아가라."

 

우리는 섬김에 대한 열정을 품어야 합니다. 그런 열정을 갖고 계셨던 주님은 가장 가까이 있는 이들과 가장 멀리 있는 이들 모두에게 다가가셔서 온 세상을 향해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분을 따르는 자들은 계속해서 세상을 향해 긴 팔을 펼쳐야 합니다. 그동안 "야망"이라는 말은 크게 오용되어 왔습니다. 이 말은 이기적인 자기 추구와 관련해 사용된 결과, 많은 사람들은 그 의미를 그런 식으로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주님이 갖고 계셨던 목적과 관련해서는 야망이라는 이 말을 원래의 문자적 의미로 적절하게 사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원래 야망이란 단순히 돌아다니는 것, 즉 호의나 표를 얻기 위해 사람들 사이로 돌아다니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그런데 "가라"라는 단어 속에는 생명이 들어 있습니다.

사람이 야망을 품는 대상이 바로 그 단어의 질을 결정하는데, 순결하고 거룩한 야망을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한 과정도 역시 순결하고 거룩합니다. 예를 들어서 주님의 말씀을 가장 먼 곳까지 전하려는 강렬한 야망은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정신 속에서, 섬김 속에서, 그리고 베풂과 희생 속에서 또한 기도 속에서 적절하게 표현되는데 그것이 바로 참된 야망입니다. 바울은 "야망"이라는 단어와 동일한 힘을 갖고 있는 한 단어를 세 차례에 걸쳐 사용하고 있는데(데살로니가전서 4:11; 고린도후서 5:9; 로마서 15:20), 그것은 바로 "힘쓰라"라는 단어입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조언하면서 "조용히 자기 일을 하고 너희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라고 말했는데, 이 말의 실제적 의미는 세상이 "야망"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남용하는 곳에서는 야망을 품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신자들에게 보낸 두 번째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런즉 우리는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

훗날 바울은 그가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자기는 아직 아무도 가지 않는 곳에 복음을 전하는 것을 자신의 목표로 삼고 그 일에 대한 야망을 품어 왔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그가 사용하는 "야망"의 문자적 의미는 명예를 지키는 것과 관계가 있습니다. 바울로서는 당시 그가 하고 있던 방식대로 행하는 것이 바로 명예를 지키는 방법이었습니다. 그는 주님이 원하시는 일을 온전하게 수행해 왔다는 명예를 얻고자 했습니다. 또한 삶 속에서나 섬기는 사역의 현장에서 언제나 주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명예를 진지하게 추구했습니다. 바울이 추구했던 세 가지 야망이 있었는데, 첫째는 세속적인 야망의 불길을 완전하게 벗어나는 것이고 둘째는 주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예수님의 죽으심과 다시 사심에 관한 이야기를 아직 아무도 알지 못하는 곳으로 나아가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주님께 순종했습니다. 주님은 갈릴리 해변의 어부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그리고 그 명령에 대한 바울의 대답은 "저는 모든 낚싯줄과 그물들을 넘어서 아직 아무도 가지 않은 곳으로 나아가는 것을 제가 해야 할 섬김으로 삼아 왔습니다."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