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듬을 통한 전력 투구
그 후에 예수님은 그로 인한 모든 결과들을 단 하나의 문장으로 압축해서 말씀하십니다.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어떤 이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나는 쉼이나 평안의 필요를 그다지 느끼지 않아. 오히려 나는 힘을 원해." 여기서 주님은 상황의 핵심을 말씀해 주십니다. 즉 힘을 얻기 위해서는 먼저 평안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당신이 평안을 누릴 때, 사람들은 당신에게 진정한 힘을 보게 됩니다. 당신이 내면적으로 평안을 누릴 때, 사람들은 당신의 삶과 섬김과 인격으로부터 나오는 진정한 힘을 의식하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평안과 힘은 동전의 양면처럼 동일한 것입니다.
그것들은 하나님으로부터 흘러나오는 한 강물의 서로 다른 움직임입니다. 하나님의 재가 당신과 훌륭하게 조화를 이룰 때 당신은 평안을 누리게 되고, 삶 속에서도 힘이 솟구치게 됩니다. 그 강의 내적인 흐름은 평안이며, 외적 흐름은 힘입니다. 따라서 평안 없는 힘은 있을 수 없습니다. 불화만큼 힘을 방해하고 지연시키는 것은 없습니다. 그것은 기계의 작동과 관련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기계 바퀴들 사이에 낀 작은 돌로 인해 생긴 마찰이 기계 전체의 작동을 가로막지 않습니까? 제자리에서 빠진 작은 너트 하나가 기계를 완전히 멈춰 서게 하고 그 기계가 갖고 있는 모든 힘을 소용없는 것으로 만들 수도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심장의 기능에서도 같은 원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심장은 생명의 핵심이자 성채입니다. 심장이 쉬면 다른 모든 것도 쉽니다. 또한 성채가 점령된다면 성 밖에 있는 것들도 다 점령된 셈입니다. 진정한 쉼은 평범한 삶 속에서 누리게 됩니다. 당신의 존재 속으로 하나님의 위대하고 향기로운 평안의 바람이 불어올 때, 당신은 그 사실을 제일 먼저 알아차립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기쁨인가요?
섬김 안에 진정한 쉼이 있습니다. 많은 이들에게 "멍에"와 "쉼"은 서로 마찰을 일으킬 것처럼 보입니다. 그 둘은 절대로 서로 어울리지 않을 것처럼 보이지만 매우 잘 어울립니다. 마찰은 멍에나 쉼 속에 있지 않고, 그것들에 대한 우리의 오해 속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단순히 멍에는 일을 의미하고 쉼은 일의 중단, 즉 더 이상 일할 필요가 없음을 의미한다고 여깁니다. 이 같은 많은 오해가 초래된 것은 우리 내면에 있는 죄의 상처 대문입니다. "쉼은 분주한 일을 그치는 것이 아니다. 쉼은 우리 자신을 더 분주하게 일하도록 활력을 주는 것이다"(존 설리반 드와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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