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신학·총신신대원/구약신학

왜 구약을 공부하는가?

예림의집 2020. 8. 6. 20:57

왜 구약을 공부하는가?

 

구약에 대한 편견들

주후 2세기의 말시온 주의는 바울 사도만이 복음을 신앙적으로 이해했던 유일한 사도라고 주장하였습니다. 바울 서신만을 진정한 성경으로 인정하고, 구약의 하나님은 악신이고, 신약의 하나님만 진정한 참하나님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혹시 여러분은 구약 설교를 많이 듣고 있다고 생각합니까?

대부분의 구약 본문의 설교는 다음의 몇 가지에 한정되어 있습니다. 십일조나 헌금을 강조하는 설교, 십계명이나 일부 율법에 대한 설교, 시편이나 잠언 등에 대한 설교, 선지서의 극히 한정된 본문에 근거한 회개 설교, 또는 우리는 구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너무 빨리 찾아버립니다.

많은 사람들이 구약은 그 자체로서는 전혀 가치가 없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치 우리는 로켓이 대기권에 진입하기 위해 연료통의 연료를 다 쓰고 나면 그 연료통을 폐기시켜 버리듯이 구약도 예수님에게 도달하면 바로 버려도 무방한 것으로 여기는 듯한 태도를 취할 때가 있습니다.

 

구약의 가치

예수님과 초대교회의 성경은 구약이었습니다. 신약성경에 언급되어지는 “말씀”이나 “성경”은 구약을 가리키는 것이었습니다.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디모데후서 3:15-17). 이 구절에서 구약은 물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을 발견하게 해주는 것이기도 하지만 또한 성도들을 가르치고, 의롭게 하고, 온전하며, 선하게 만드는 역할도 하고 있다.

구약은 예수님만 찾으면 버려도 되는 로켓의 연료통이 아니다. 구약은 신약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구약을 알아야 합니다. 먼저 요한계시록에는 구약을 직접 인용하거나 구약에 의존하고 있음이 분명한 경우가 350번 정도 됩니다. 즉 한 장당 1.5번 이상 구약에 분명하게 근거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수치는 간접적으로 구약이 암시되어 있는 경우를 제외한 것입니다.

마가복음 9장의 변화산 사건에 왜 굳이 모세와 엘리야가 여기에 등장할까요? 출애굽기 33:22, 열왕기상 19:9를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마태복음 5-7장의 산상수훈에서 예수님은 왜 산을 배경으로 택하셨을까요? 또한 예수님은 “옛사람에게 말한 바…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라고 말씀을 시작하십니다. 마태 7:29: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세 있는 자와 같고 저희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 일러라” 했습니다.

 

구약이 없다면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다루시는 방식에 대해서 얼마나 많은 것을 잃게 될까요? 시편 23편의 하나님의 사랑에 찬 돌보심의 표현을 어디에서 발견할까요? 그러므로 구약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더 잘 알게 해줍니다. 구약은 그 자체로 풍성한 가치들을 가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