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적인, 하나의 교회
영어로 "the Holy Catholic Church"를 믿는다고 고백할 때 그것은 로마 가톨릭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 우주적인 교회, 하나의 교회를 의미합니다. 즉 교회의 보편성을 말합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교회가 교파를 초월하여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마지막 기도의 핵심 내용이었는데도 아직 응답되지 않은 기도입니다.
"아버지여, 그들로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이 기도는 요한복음 17장에 다섯 번이나 언급되어 잇는데, 이 기도만큼은 하나님보다는 우리가 응답해야 할 것인지도 모릅니다. 성령의 역사는 하나 되게 하는 역사입니다. 에베소서는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에베소서 4:3)고 전합니다.
우리는 다양성을 지니면서도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루는 통일성을 구비해야 합니다. 이것이 이뤄지고 나면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처럼 그 교회의 교인들이 서로 통해야 합니다. 교인들의 상생(相生), 상통이 바로 교회 공동체의 또 하나의 핵인 성례전(Communion)입니다. 언젠가 <리멤버 타이타>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습니다.
미국에서 인종 갈등이 상존하던 시기에 흑인과 백인으로 이뤄진 미식축구팀의 실제 이야기를 다룬 것인데, 우여곡절 끝에 서로의 차이를 강점으로 만들어 가는 과정이 잘 그려져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모임은 나름대로 비슷한 점을 공유합니다. 가족, 동창회, 회사, 클럽 사교 모임이 그렇습니다. 그러나 교회 모임은 다른 곳에서는 도무지 만날 것 같지 않은 사람들이 만나서 많은 차이점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연합 정신을 키워 가는 것입니다. 그런 만큼 폭발적인 시너지 효과도 기대되는 것입니다.
한국 교회는 교파 주의, 개교회주의, 무교회주의를 지양하고 교회 간의 연합을 도모해야 합니다. 지금 통일에 대비해서 각 교단마다 북한 선교를 하고 있거나 준비하고 있습니다만 이 일만큼은 초교파적으로 실시했으면 합니다. 러시아, 중국, 조선족 등의 선교에서 보는 것처럼 교파 간의 경쟁, 물량주의, 역량이 부족한 선교사 파송, 장기적인 선교 전략의 부재 등으로 시행착오를 겪고 있는 것을 다시 반복해서는 안 됩니다.
이스라엘은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에 광야 학교를 통해 애굽의 노예 생활에서 형성된 잘못된 생각과 습관을 바꾸기 위해 많은 훈련과 연단을 철저하게 받았습니다. 공산주의의 통치하에 살아온 북한에 복음이 제대로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는 말씀을 통한 지속적이고도 치밀한 교정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한의 교회와 교인들이 각 교단의 북한선교 담당자들과 더불어 장기적이고 일관된 정책을 수립해야 하며, 지교회를 세우는 식이나 교세를 확장하기 위한 교파 교회의 난립을 지양하고 초교파적인 선교 사역을 이뤄야 합니다. 교회 이름도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라고 붙이지 않는 초교파적인 연합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통일이 된다 해도 남한처럼 북한에도 교회가 동조한 자본주의의 병폐인 자기중심적인 물질만능주의가 편만해질 것이 불을 보듯 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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