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신학·총신신대원/구약신학

신명기가 말하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예림의집 2020. 5. 13. 08:46

신명기가 말하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성경의 땅을 방문한 살마들은 그곳을 둘러보고 놀라게 됩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신명기 6:3, 11:9, 26:9 등)이라는 가나안 땅이 온통 광야와 돌밭이기 때문입니다. 북부의 소규모 평야 지대를 제외한 대부분 지역이 척박합니다. 석회암 지역이 많아 비가 와도 물을 가두어 놓고 쓸 수 없어 저수지가 무용지물인 곳입니다. 그래서 농사짓기 불리합니다. 즉, 가나안은 살기 좋은 땅으로 보기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이곳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요, 축복과 풍요의 땅으로 표현하셨을까요?


풍요와 생명의 땅, 가나안

젖과 꿀이 흐른다는 표현에서 '젖'은 소나 염소의 젖을 가리킵니다. 다소 이견이 있는 것은 '꿀'인데, 유대 구약학자와 랍비는 이것을 '과일 꿀'이라고 설명합니다. 과일 꿀은 주로 대추야자나무 열매(한국의 대추와는 다른 품종)로 만들었고 이따금 포도를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대부분이 성경 구절에서 '벌꿀'과 '과일 꿀'을 모두 '꿀'로 번역하기 때문에 구분이 어렵지만, 문맥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양자의 구분이 가능합니다.

예를 들어 삼손이 사자 사체에서 얻은 꿀은 야생 꿀이지만(사사기 14:8,9), 추수와 소산물의 복과 관련해서 성경에 나오는 꿀은 과일 꿀로 볼 수 있습니다(신명기 8:8; 역대하 31:5; 예레미야 41:8 등). 꿀은 농산물의 품목 중 하나로 꾸준히 등장하는데, 특히 감람나무유(올리브유)와 꿀, 이 두 가지는 언제나 여러 가지 농산물 품목의 끝에 나옵니다. 이때 '꿀'은 벌꿀이 아닌 농산물 품목으로서의 과일 꿀입니다. 

이상을 종합해 보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는 표현은 풍부한 젖을 생산할 수 있을 만큼 가축이 번성한 땅, 과일 농사에 적합한 땅이라는 의미입니다. 한마디로 목축과 농사가 잘 되는 땅을 말합니다. 사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는 표현이 알맞은 땅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지역입니다. 두 지역 모두 너른 평야와 큰 강을 끼고 있어 고대부터 주요 문명이 형성된 곳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땅들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부르지 않으셨습니다. 오직 가나안 땅만을 기름진 땅, 풍요의 땅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풍요의 조건, 이른 비와 늦은 비

척박해 보이는 가나안 땅은 묘하게도 비가 오면 곡식과 과실수가 쑥쑥 자랍니다. 그런데 무조건 비만 온다고 능사가 아닙니다. 반드시 '적절한 때'에 충분한 비가 내려야 합니다. 특히 파종기인 가을(양력 10-11월)에 '이른 비'가 와야 파종을 할 수 있습니다. 이때 비가 내리지 않으면 농사를 시작조차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한 해 농사를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비는 추수기인 봄철(양력 3월)에 내리는 '늦은 비'입니다. 늦은 비가 충분히 오지 않으면 곡식의 낟알에 알이 차지 않아 농사에 기울인 몇 달의 수고가 허사가 되고 맙니다. 

따라서 '이른 비'와 '늦은 비'는 이스라엘의 농사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결국 척박한 땅을 젖과 꿀이 흐르는 풍요의 땅으로 만드는 것은 때맞춰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내리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 은혜의 전제 조건은 '순종'입니다. 순종하면 복을, 불순종하면 벌을 받는 곳이 바로 약속의 땅이 것입니다.


우리는 언약 백성을 가나안 땅으로 보내신 하나님의 방법에 주목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의 비옥한 옥토가 아닌 은혜 없이는 살 수 없는 척박한 땅, 강대국의 틈바구니에 낀 짝은 가나안 땅으로 그들을 인도하시며 그곳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선택과 다른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하나님은 환경과 조건 너머에 계신 전능하신 분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는 모든 한계를 뛰어넘어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과 성실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작고 척박해 보이는 약속의 땅, 바로 거기서 그분의 일을 시작하십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이 보기 원하시는 것은 우리의 능력이나 인간적 노력이 아닌 말씀에 대한 철저한 순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