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신학·총신신대원/구약신학

모압 여인 룻과 신명기 23장

예림의집 2020. 5. 11. 09:10

모압 여인 룻과 신명기 23장


룻기는 모압 여인이 이스라엘에 와서 따뜻한 환대를 받는 감동적인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신명기 23장 3절 "암몬 살마과 모압 사람은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니"라는 규정은 이 감동에 찬물을 끼얹습니다. 모압 여인 룻이 이스라엘의 일원이 되고 다윗의 증조모까지 된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먼저 '총회에 들어온 자'의 의미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총회'는 히브리어로 '카할', 헬라어로 '에클레시아'입니다. 국가를 구성하는 적법한 국민(시민)이 모이는 공식적인 집회를 의미합니다. 총회에 들어오지 못한다는 것은 이방인이 이스라엘 사람 사이에서 섞여 살 수 없다는 말이 아니라 공식 집회의 정회원이 될 수 없다는 말로 보는 것이 좋습니다.

또한 어머니의 핏줄이 자녀의 정체성을 경정하지 못했다는 것도 기억해야 합니다. 요셉은 애굽 여인과 결혼했고 모세는 미디안 여인과 결혼했음에도 그 자녀들은 적법한 이스라엘 사람은 인정받았습니다. 물론 그 어머니들이 신앙적, 문화적으로 이스라엘에 동화되었다는 것이 전제가 됩니다(출애굽기 4:24-26).

구약의 역사에는 신앙의 순수성 보존을 우선시하는 흐름과 포용성을 강조하는 흐름이 공존합니다. 느혜미야는 암몬과 모압 여인을 아내로 맞이한 이들을 엄하게 벌했습니다(느헤미야 13:23-27). 그들 자녀들이 모국어를 말하지 못하는 상황을 보고 단호히 대처한 것입니다. 바벨론 포로 귀한 후 민족의 정체성을 확립해 가야 하는 시기의 위기의식을 읽을 수 있습니다.

반면 만민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이방인에 대한 포용을 역설하는 성경으로 룻기와 요나서를 들 수 있습니다. 보아스는 이방 여인 룻이 하나님 날개 아래에 보호를 받기 위해 이스라엘에 온 것이 크게 칭찬받을 일이라고 말합니다(룻기 2:12). 요나는 이방인에게 베타적인 유대인의 대표로 등장하며 하나님은 그런 요나에게 자민족 중심주의를 극복하라고 요구하십니다.

예수님의 비전과 바울의 선교가 온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으로 나아간 것은 이런 포용의 흐름에 선 것이라 보아야 합니다. 마태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족보에 룻을 비롯한 이방 여인들이 강조되어 등장하는 것은 신약성경의 이런 보편주의를 분명히 보여 줍니다. 물론 신명기 23장의 원래 의도인, 죄악의 영향으로부터 공동체의 순수성을 철저히 보호하라는 교훈 역시 폐기되지 않고 생생하게 살아 있음은 분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