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사랑: 보배의 가치를 발견하는 것
"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예수께서 한 어린 아이를 불러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니라 ... 삼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마태복음 18:1-6, 10).
부모는 활을 당기는 사수입니다. 자녀 인생의 미래를 향한 올바른 방향 가늠만 잘 도우십시오. 그러면 자녀들은 저 높이 저 멀리 위대한 하나님 나라의 미래를 향하여 날아갈 것입니다. 어느 애완견 훈련사의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대부분 한국에서 개를 기르는 분들의 조련 양상들을 관찰해 보면 두 가지 유형의 극단으로 갈라져 있다고 그는 지적합니다. 하나는 과잉보호형이며 또 하나는 방임형 혹은 학대형입니다.
한국에서는 사람들이 개를 과잉으로 보호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방임 혹은 학대한다는 것입니다. 개가 강아지 시절에 사람을 물면 아프지가 않기에 그것도 오히려 귀엽다고 쓰다듬고 좋아하는 경우들이 있는데, 이렇게 과잉보호하다 보면 성경이 되었을 때 사람들을 무는 개가 됨으로써 정신적 물리적 피해를 입히는 사례들이 적지 않다고 합니다.
그런가 하면 전혀 관심을 안 주다가 시시때때로 자기 기분에 따라 개를 차기도 하고 때리기도 하는 등 방임 내지는 학대형으로 기르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경우 역시 결과적으로 개와 가족 같의 유대가 끊어져, 도망갈 기회만 노린다든가 다른 견공이나 사람들을 분풀이로 물어 버리는 비정상적인 개로 자라 난다고 합니다.
저는 이런 개 이야기에서 우리가 받아야 할 교훈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좀 철이 지난 유머이기는 하지만 개가 사람을 가르치는 것을 무엇이라고 하는 줄 아십니까? 정답은 '개인 지도'입니다. 우리 모두 개인 지도를 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저는 이런 애견 양육 이야기를 읽으면서, 이것이 이 시대를 사는 우리 부모들의 자녀 양육 형태와 얼마나 유사한가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자녀들의 빗나간 욕구에 부모들이 오히려 끌려다니면서 자녀들의 무질서마저 귀엽다고 맹목적으로 옹호하며, 자녀들을 위해 인생의 모든 것을 걸고 사는 오늘의 부모들이 바로 과잉보호형 부모들 아닙니까? 그런가 하면 자녀들이 어떻게 행동하건 방임해 두었다가 어느 날 갑자기 자녀들에게 무분별하게 감정을 폭발시키고 분풀이하는 방임형 혹은 학대형 부모들이 있습니다.
오늘날 "어린이를 사랑하자" 혹은 "자녀를 사랑하자"라는 구호를 담은 호소는 사실 별 의미가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문제는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가정을 갖지는 않으셨지만 어린이들에 대한 각별한 관심과 사랑을 보여 주셨습니다. 어린이 사랑은 그분의 거룩한 습관이었습니다. 그러면 그런 예수님의 제자로서 오늘을 사는 우리는 어떻게 자녀 사랑 혹은 어린이 사랑을 실천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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