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은 삶의 안식처
안식을 뜻하는 히브리어는 "샤바트"라는 말 외에 "메누하"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메누하라는 말은 가정을 뜻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성경은 가정을 '안식할 곳'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남편을 잃어버린 외로운 여인 룻의 시어머니 나오미는 "내가 너를 위하여 안식할 곳을 구해야 하겠다"(룻기 3:1)라고 했습니다. 안식은 단순히 활동을 정지한 상태가 아니라 고요와 평화, 건강과 충만을 뜻하는 매우 적극적인 단어입니다.
유대인 신학자 아브라함 헤셀은 하나님께서 제7일에 메누하를 창조하셨고 그 후에 비로소 그분의 아름다운 창조, 행복한 창조가 완성되었다고 말했습니다. 후대에 와서 이 메누하라는 단어는 '영생'과 동의어로 쓰입니다. 메누하는 영원한 안식의 나라를 의미하며, 행복한 가정은 천국의 그림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크리스천들의 가정 모임은 어떤 의미에서 천국 모임의 그림자입니다.
초대 그리스도인들이 교회 모임 장소로 가정을 선택한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행복한 가정의 이미지가 바로 천국의 이미지를 전달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라고 말씀하셨을 때 예수님은 거대한 교호 ㅣ빌딩을 생각하신 것이 아니라, 베드로를 위시한 제자들이 오순도순 집에 모여 형성하는 행복한 공동체를 생각하셨을 것입니다.
교회란 단어는 신약성경에서 단 한 번도 건물을 뜻하는 단어가 아니었고 언제나 부름받은 제자들의 공동체를 뜻하는 단어였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제자들을 부르시고 그들과 함께 제자들의 집에서 모임을 갖기 시작하셨을 때 이미 교회는 탄생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오순절 이후 제자들은 집에서 모이던 모임을 "교회"라고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신약에서 "네 집에 있는 교회에게 편지하노니" 혹은 "네 집에 있는 교회에 문안하라"라는 말이 얼마나 자주 나옵니까? 그러하기에 교회당에서 모이는 대그룹 주일 모임만 의지하지 않고 집에서 모이는 목장 교회 모임을 중시해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거기서 우리는 진정한 공동체를 경험하고 교회의 교회 된 참 의미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분의 마지막 순간이 가까웠을 때 생애 마지막 시간을 어디서 누구와 보내고 싶어 하셨는지 아십니까? 본문이 그 대답을 들려주고 있지 않습니까? 마태복음 26장 18절에서 이미 생각해 두셨던 한 집을 지정하시며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네 집에서 지키겠다"라고 하십니다. 그분은 마지막 시간을 한 조용한 집에서 그분의 제자들과 보내고 싶어 하셨습니다. 바로 이런 제자들의 공동체에서 그분은 진정한 쉼, 천국의 안식을 나누고 싶어 하신 것입니다. 성도들 집에서의 모임을 통해 바로 그런 천국의 안식을 경험하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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