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씬함과 성적 매력(21세기의 새로운 탐식)
20세기 후반 이후 풍요로운 선진 사회에서는 건강과 다이어트에 대한 관심이 급증했고, 이에 따라 새로운 유형의 탐식이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먹거리가 풍족해지고 소비 능력이 향상되면서 비만한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게 되었고, 이에 대한 사회적 경계심이 생긴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와 같은 각성과 두려움 때문에 이전과 달리 마음껏 먹지 못하고 음식을 경계하게 되었으며, 먹거리를 선택할 때도 이전에 볼 수 없었던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사람들은 저열량, 저지방, 무가당 식품을 찾기 시작했으며, 설탕이 없으면서도 톡 쏘는 사이다, 카레인이 없으면서도 여전히 자극적인 콜라, 지방이 적음 음식, 유기농 과일 등을 찾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열량과 포화 지망, 콜레스테롤 등을 따지며 음식을 소비하는 경향은 지구촌 북반구 사회의 주요한 흐름으로 등장했습니다. 그레고리우스가 까다롭게 먹는 식습관을 탐식으로 분류했음을 기억한다면, 이처럼 음식의 종류와 성분 등에 까다롭게 반응하고 그런 음식에 집착하는 태도는 탐식의 한 유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현상 이면에는 날씬함을 아름다움과 성적 매력의 기준으로 인식하는 새로운 문화 트렌드와, 이에 편승해서 몸치장과 외모지상주의를 조장하는 상업주의가 크게 작용하고 있습니다. 이런 인식으로 인해, 뚱뚱한 사람은 성적 매력이 없고 문화에 뒤떨어질 뿐 아니라 게으르고 무능한 사람이라는 딱지가 붙을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특히 젊은이들과 여성들 사이에서 뚱뚱한 것은 이제 거의 죄처럼 간주되는 분위기입니다. 즉 날씬함이 성적 매력의 필수 요건이요 선과 덕이 되면서, 많은 여성들이 몸매를 아름답게 관리하기 위해 다이어트와 운동에 시간을 들이고, 음식을 철저히 가려 먹고, 적게 먹고, 때로는 굶기도 하게 되었습니다.
최근 여성 신학자 미첼 렐뤼키는, 이런 문화가 '날씬해지는 것'과 '구원'의 동일시를 조장해 왔다고 해석합니다. 살 빼는 것은 곧 죄 씻음을 받는 것이며, 인간은 뚱뚱했던 것을 회개하고 날씬해짐으로써 거듭남으로 나아갑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음식을 먹고 싶은 기본적인 욕망과 싸우며 처절하게 음식과 투쟁해야 합니다. 이런 경향은 마치 고대 그리스인들이 비너스를 숭배하는 것과 다르지 않을 만큼 새로운 종교 현상을 방불케 합니다. 이 "새로운 종교"의 교리에 따라 사람들의 체중을 줄이고 거식을 감수하는 등 종교적 고행을 감내합니다. 몸을 신으로 여기고 숭배하며 몸을 통해 만족을 얻는 인간의 우상숭배는 탐식을 불러일으키기 마련이고, 이와 같은 새로운 유형의 몸 숭배 사상은 현대인들을 새로운 유형의 탐식자로 만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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