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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돌봄의 교훈 승계

예림의집 2019. 11. 27. 22:20

가족 돌봄의 교훈 승계


예수님의 가족관을 선명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분의 생생한 영향을 받은 사도들이 어떤 가족관을 가지고 있었는가를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사도들 중 가장 큰 영향력으로 예수님 이후 세상을 복음화한 바울의 가르침을 생각해 보십시오.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디모데전서 5:8). 여기서 바울 사도는 가족 돌보기를 포기한 사람들은 믿음을 배반한 자라고 부릅니다.

바울은 이 교훈을 목회 승계자인 디모데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누구의 영향을 받은 것일까요? 말할 것도 없이 바로 주님이었을 것입니다. 이 디모데전서의 교훈을 시작하며 "리 구주 하나님과 우리의 소망이신 그리스도 예수의 명령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믿음 안에서 참 아들 된 디모데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디모데전서 1:1,2)라고 기록하지 않았습니까?

이 예수님의 명을 따른 목회적 교훈의 하나가 바로 가족 돌봄이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이 남기신 모범이요, 거룩한 습관의 유산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그분의 제자인 우리는 어떻습니까? 과연 가족 돌봄의 책임을 다하고 있습니까? 디모데전서에서 바울 사도는 바로 이런 가족 돌봄의 노력이 우리 믿음의 표현이며, 이 책임을 다하지 못한다면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라고 말합니다.

오늘날 기독교의 최대 문제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현대 그리스도인들의 의식 구조를 연구하는 조지 바나에 따르면 기독교의 최대 문제는 신자와 불신자의 삶에 다른 것이 없다는 것(범죄율, 이혼율 등의 면에서)이라고 지적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2세기의 한 그리스도인이 불신자인 디오그네투스에게 보낸 편지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문헌학적으로 1-2세기 그리스도인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는 매우 소중한 편지로 간주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저자는 그리스도인도 불신자와 마찬가지로 사랑하고 결혼하고 가정을 갖고 아기를 낳지만, 불신자들처럼 아기를 버리지는 않는다고 말합니다. 당시에 아기를 낙태하고, 아들이 아닌 딸을 버리는 것은 관행이었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관행을 따르지 않았던 것이었습니다.

그런 또 하나의 관행이 늙고 병든 부모를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관행도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처음 역사는 그렇게 달랐습니다. 그런데 오늘을 사는 성도들은 어쩌다가 이런 거룩한 습관을 상실했을까요? 그것은 무엇보다 삶의 주인 되신 예수님을 따르고자 하는 거룩한 동기의 결핍이나 상실 때문이 아이겠습니까? 우리는 다시 한번 삶의 유일한 모델이신 주님의 삶에 주목해야 합니다.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해 오셨다고 선언하신 주님, 그 주님의 죽으심은 결국 자신의 백성들, 곧 영적 가족들을 위한 거룩한 죽음이었던 것입니다.

괴물을 통해 역설적으로 가족의 가치를 다시 배운 영화 <괴물>의 주인공 강두의 마지막 절규를 기억하고 싶습니다. "현서야, 나는 알고 있었단다. 네가 얼마나 아빠를 사랑했는지. 남들한테 바보 소리를 듣는 아빠를 창피하게 여기기는커녕 언제나 어른처럼 입바른 소리를 하며 사랑을 나눠 주던 너였다는 걸 아빠는 다 알고 있었단다.. 맞아, 현서야 내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네 이름을 하루에 열두 번은 더 불러야 행복했다. 넌 나의 분신, 넌 우리의 가족이었으니까." 그런데 강두를 포함하여 우리의 문제는 너무 늦게 가족의 가치를 깨닫는다는 것입니다. 너무 늦게 말입니다. 당신의 가족은 안녕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