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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 새로운 창조를 위한 멈춤

예림의집 2019. 10. 16. 11:35

안식, 새로운 창조를 위한 멈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마태복음 11:29,30).

"사도들이 예수께 모여 자기들이 행한 것과 가르친 것을 낱낱이 고하니 이르시되 너희는 따로 한적한 곳에 가서 잠깐 쉬어라 하시니 이는 오고 가는 사람이 많아 음식 먹을 겨를도 없음이라 이에 배를 타고 따로 한적한 곳에 갈새"(마가복음 6:30-32).


영적 안식은 예수님을 통해 죄 사함을 얻고 영생을 선물로 받음으로 주어진 마음의 평화요 안식입니다. 그러나 이보다 중요한 것은 그 안식이 우리 안에서 계속 유지되는 일입니다. 본문은 예수님과 제자들이 배를 타고 따로 한적한 곳으로 가서 쉼을 취하게 되었다고 기록합니다. 쉼은 예수님의 거룩한 습관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동일한 쉼을 추구하면서도 진정한 쉼을 누리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성경은 그 원인이 영적인 데 있다고 가르칩니다. 우리가 쉼을 상실한 원인이 영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영적인 해결 없이는 진정한 쉼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모든 인생이 그렇게도 갈망하던 참된 쉼, 곧 안식의 처방은 무엇일까요? 우리에게 익숙한 또 다른 본문인 마태복음 11장 28-30절이 그 대답을 들려주고 있습니다. 참된 안식의 처방은 무엇입니까?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태복음 11:28).

주께서 여기에 언급하신 수고의 짐은 죄짐인 것이 틀림없습니다. 창세기에 보면 수고는 죄의 결과 인류의 삶의 장에 주어진 결과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범죄 한 첫 사람 아담에게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창세기 3:17)라고 했고, 하와에게는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창세기 3:16)이라고 했습니다. 

러시아의 기독교 작가 도스토옙스키의 말처럼 타락 이후 "이제 죄인에게는 산다는 것 자체가 수고로운 짐이 된 것"입니다. 누가 우리의 이 수고로운 인생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단 말입니까? 인간이 만일 스스로의 노력으로 이 수고로운 인생의 짐을 벗을 수 있었다면 예수님은 오실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어떤 노력으로도 해결이 불가능한 이 수고로운 인생 짐을 해결하고자 하나님은 메시아(구세주)의 오심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일찍이 선지자 이사야는 오실 메시아의 사역을 이렇게 증언합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이사야서 53:4). 바로 우리의 죄와 수고의 짐을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께서 오늘도 수고의 짐을 지고 안식을 모르는 인생들을 초대하십니다. "내게로 오라"라고..

여기서 우리가 "주께 온다"는 것은 단순히 기독교를 종교로 갖는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종교를 갖는다고 생각하는 분들에게 종교는 또 다른 짐을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당시의 바리새 종교를 신랄하게 비판하신 이유이기도 하였습니다. 마태복음 23장 4절에서 그는 당시의 대표적 종교인 바리새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

성경이 증거하는 복음적 신앙은 종교에의 예속이 아닌 한 인격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입니다. 그분은 짐을 지우시는 분이 아닌 자유를 약속하는 분이십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 이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라"(요한복음 8:32,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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