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중심의 가족관
가족은 무엇보다 소중하지만 '협의의 가족' 테두리에 갇혀 '광의의 가족'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가족주의는 인간의 이기심이 춤추는 장소에 불과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내 가족을 살리기 위해 이웃의 가족에 해를 끼치게 된다면 그것은 결코 올바른 가족 사랑이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가족보다 좀 더 큰 개념인 민족을 또한 생각해 보십시오. 민족은 소중한 가치입니다.
그러나 협의적 의미의 민족주의는 병든 애국심이요, 집단 이기주의에 불과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밝지 못한 이유 중 하나가 내 민족의 이익을 위해 다른 민족의 권리를 박탈하고 침략하는 행위들 때문 아니었습니까? 따라서 그리스도인의 가족이나 민족 사랑은 가족이나 민족보다 더 높고 더 넓은 가치의 지배를 받아야 합니다.
그러면 가족보다도 민족보다도 더 높고, 더 넓은 가치는 무엇일까요? 성경은 바로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의 가족관은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뜻 위에 서 있었습니다. 이런 가족관을 반영하는 에피소드가 복음서에 소개되고 있습니다. 한 번은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설교 중이셨는데 예수님의 육신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그분을 찾고 있었습니다. 그 소식을 전달받은 예수님이 어떻게 말씀하셨습니까?
마태복음 12장 49,50절 말씀을 보십시오. "을 내밀어 제자들을 가리켜 이르시되 나의 어머니와 나의 동생들을 보라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하시더라". 여기에서 저는 결코 혈연적 가족의 중요성을 예수께서 부인한 것은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말씀은 혈연적 가족의 범주를 초월하는 가족관을 예수께서 가지고 계셨음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예수님은 육신의 어머니 그리고 육신의 형제들만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는 제자들 또한 바로 그분의 가족임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하나님 중심의 가족관이었습니다.
언젠가 태국 파타야에서 지구촌 교회 파송 선교사님들과 그의 가족 그리고 섬김이들 등 모두 90여 명의 식구들과 한 주간을 보낸 적이 있습니다. 아프리카, 중앙아시아, 인도, 중국과 일본, 캄보디아, 미얀마, 라오스, 베트남 등지에서 그리고 태국에서 복음을 위해 수고하던 모든 가족들이 그 자녀들까지 모두 다 함게 모였습니다.
너무 소중하고 감동적인 시간이었습니다. 모두가 얼싸안고 함께 울고 함께 웃고 함께 기도하고 함께 은혜받고 함께 격려를 나눈 시간이었습니다. 그때 거기서 느낀 가장 강렬한 느낌이 무엇인 줄 아십니까? "아, 우리가 가족이었구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과 헤어지며 제 가슴에 떠오른 말씀이 바로 이 48-50절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적 가족관, 즉 하나님 중심의 가족관입니다. 우리도 목장 모임에서 깊은 은혜와 사랑을 나눌 때 혈연의 가족 못지않은 진한 가족애를 느끼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뜻 안에 묶여진 형제와 자매들.. 그들은 우리들의 또 하나의 가족입니다. 그들과 함께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기 위해 함께 묶여져 평생을 사는 것,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보여 주신 성경적 가족관의 정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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