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죽음에이르는7가지죄

탐식: 꽉 찬 배와 텅 빈 영혼

예림의집 2019. 9. 18. 20:33

탐식: 꽉 찬 배와 텅 빈 영혼


"사람의 수고는 다 자기의 입을 위함이나 그 식욕은 채울 수 없느니라"(전도서 6:7),


선진국에서 가장 꾸준히 팔리는 책은 요리와 다이어트에 관한 책이라고 합니다. 의식주 문제가 사라진 선진 사회에서는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과 살을 빼는 일이 중요한 관심사로 자리잡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20세기 후반 농수산 기술이 진보하면서 식량의 자급자족이 가능해졌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식품 산업이 자본과 결탁하면서 식품이 대량생산되고 상품화되어 시장으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오늘날 대형 마트와 시장에는 편리하게 포장된 각종 먹거리들이 즐비하게 진열되어 사람들의 식욕을 자극합니다.

수많은 잡지들과 텔레비전 방송은 맛있는 음식을 앞다투어 다루며 식도락의 즐거움과 욕망을 설파하고 부추기고 있습니다. 이처럼 음식이 풍족해진 사회적 조건 속에서, 사람들은 음식에 대한 필요와 욕구가 생겨날 때 어떤 식으로든 그 욕구를 즉각 채우는 것이 당연하고 그 자체로 선이라는 인식을 자연스럽게 지니게 되었습니다.

또한 현대 사회에서 음식은 사회문화적인 성격도 띠고 있습니다. 즉 어떤 음식을 누구와 어디서 먹느냐 하는 것이 한 사람의 신분과 계층을 나타내는 중요한 지표로 격상된 것입니다. '어떤 수준의 음식과 와인을 먹고 사느냐', '어느 레스토랑에 가느냐', '누구의 만찬에 초대받느냐', '어떤 사람들과 삭사를 자주 하느냐' 하는 요소들을 통해 우리는 그 사람의 정치적, 경제적 지위와 성향을 가늠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오늘날은 음식에 대한 무제한적 욕망 충족이 가능하고 그것을 온 사회가 지지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 음식에 독특한 사회문화적 지위까지 부여하고 있는 시대입니다. 이런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이전 사회에서 음식의 문제를 종교적이고 도덕적인 관점에서 이해하고 경계해 왔다는 것은 매우 상상하기 힘든 일입니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초대교회와 중세 시대에는 사람들이 도덕적 삶을 지키고 영혼을 순결하게 유지하기 위해 음식으로 인한 육체적 쾌락을 제어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종교개혁이 일어난 이후에도 그리스도인들은 여전히 금욕과 절제를 중요시했고, 칼뱅은 위정자들이 큰 접시가 세 차례 이상 들어오는 식사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규정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르네상스를 거쳐 근대에 들어와 종교적 영향력이 줄어들면서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가 조금씩 변회 되기 시작했습니다. 음식이 성실한 노동에 대한 보상과 일상의 즐거움으로 자리 잡고, 풍성한 식탁이 개인의 능력과 부요의 표상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경제적 풍요로 음식이 풍성해진 20세기 후반부터는 종교적 이유와는 전혀 거리가 먼 실용적 차원에서 다시금 음식에 대한 탐닉을 경계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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