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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림의집 이야기|하나님과 대화하는 101가지 방법... 사랑하는 이를 위하여
지금은 바쁘게 살아온 걸음을 멈추고 경직된 고개를 풀어야 할 때입니다. 초조함을 버리고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시간을 가지는 것은 어떨까요? 당신은 사랑하는 이를 위하여 서정시를 외어본 적이 있습니까? 그 사람과 걷고 싶은 그 숲길, 그를 위해 영화도 예매하고 그가 좋아하는 노래를 불러준 적이 있습니까? 그 사람과 함께 가고 싶은 여행지, 배들이 섬으로 떠나는 항구의 시간표를 알아보았습니까? 이 한 해가 다 가기 전에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시간을 가져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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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림의집 칼럼™|예림의집이 드리는 삶의 지혜... 고통에 대한 고찰
다윗은 시편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시편 119:71). 어느 순간 그의 고백은 나의 고백이 되었습니다. 삶이 평탄할 때는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그 말씀을 붙들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고통이 내 삶을 뒤흔들어 신음을 토해낼 때, 오히려 말씀이 나를 붙들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아픈 삶도 하나님의 말씀에 붙들려 있었습니다. '말씀이 나를 순탄한 삶으로 인도한다'라고 여겼던 생각은 여지없이 깨졌습니다. 오히려 말씀이 나를 고난 가운데로 이끌었습니다. 내가 가는 길은 그분만 아실 뿐입니다(욥기서 23:10). 고통 가운데서 이전에 깨닫지 못했던 말씀들이 보였습니다. 어려울 때 하나님은 멀찍이 덜어진 곳에서 나를 보고만 계시는 분이 아니라는 것을, 내 앞에서 저만치 가시는 분도 내 뒤에서 뒤떨어져 걷는 분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한가운데로 오시는 분이라는 것을, 사망 가운데 있는 나를 찾아오시는 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임마누엘, 성육신'이었습니다. 그분의 성육신은 우리와 함께하시는 고통의 삶,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십자가는 성육신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죽음은 흙으로 빚어진 인간이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존재의 변화라면, 성육신은 인간을 만드신 하나님이 인간이 되신 존재의 변화였습니다. 인간의 죽음보다 더한 존재의 변화가 성육신에 숨겨져 있습니다. 십자가는 인간이 되신 하나님이 우리의 고통을 지고 죽음을 맞이하신 실존의 경험이었습니다. 그분은 오늘도 인간의 고통 한복판으로 성육신하십니다. 기록된 책으로 늘 손 닿는 곳에 있는, 삶의 희로애락을 느끼게 하며, 내 마음속에 노래를 만들고, 삶의 일부인 고통 속에도 늘 함께하는 '유일한' 책은 성경입니다. 내 인생의 종착지까지 동해할 단 한 권의 책입니다. 난 오늘도 하나님을 만납니다. 사랑해요.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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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QT|매일 매일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예수께서 길을 가실 때에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보신지라 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 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 이 말씀을 하시고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이르시되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시니 (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라) 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 이웃 사람들과 전에 그가 걸인인 것을 보았던 사람들이 이르되 이는 앉아서 구걸하던 자가 아니냐 어떤 사람은 그 사람이라 하며 어떤 사람은 아니라 그와 비슷하다 하거늘 자기 말은 내가 그라 하니 그들이 묻되 그러면 네 눈이 어떻게 떠졌느냐 대답하되 예수라 하는 그 사람이 진흙을 이겨 내 눈에 바르고 나더러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 하기에 가서 씻었더니 보게 되었노라 그들이 이르되 그가 어디 있느냐 이르되 알지 못하노라 하니라"(요한복음 9:1-12).
예수님이 만난 사람은 날 때부터 맹인이었는데, 제자들은 그 사람의 병의 원인이 부모의 죄 때문인지 아니면 그 자신의 죄 때문인지를 물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특별한 목적 때문이 그렇게 된 것이라고 답변합니다(1-3절). 물론 고난과 질병의 원인이 지 때문인 경우도 있습니다(5:14).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습니다. 요셉은 죄가 없었지만 이스라엘 백성을 번성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섭리를 위해 애굽에 팔려가 13년 동안 고통을 당했습니다. 꼭 문제가 있거나 믿음이 없어서 어려움이나 질병이 찾아드는 것은 아닙니다. 여기서 '낮'은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시는 기간을 말하며, '밤'은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는 때를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계속 자신의 사명을 다하시는 일에 집중하셨는데, 그것은 '세상의 빛'으로서의 사명이었습니다(4,5절). 본문에서 예수님을 만난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은 스스로의 힘으로는 자신을 고칠 수 없는 절망적인 인간의 상태를 상징합니다. 성경에서 '맹인'은 죄의 어둠에 갇힌 절망적인 인간을 상징합니다(이사야 42:6,7). 그런 인간에게 빛을 주실 수 있는 분은 예수님뿐이십니다. 한편, 치유는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이것이 본문의 또 다른 가르침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은 기적을 예수님을 드러내는 '표적(sign)'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2:11). 그러므로 기적 자체나 그 결과에 너무 집착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관계없는 사이비 기적도 있기 때문입니다(신명기 13:1-3). 예수님은 진흙을 이겨 맹인의 눈에 바르시고 나서 그를 실로암 못으로 보내십니다. 그러자 그곳에서 씻은 맹인은 나음을 입게 됩니다(7절). 그런데 예수님은 병자를 고치실 때 어떤 경우에는 말씀으로만 하셨고, 여기서는 무언가를 사용하셨습니다. 한마디로 매이지 않으셨다는 뜻입니다. 중요한 것은 수단이 아니라 하나님이 고치신다는 사실입니다. 8,9절은 맹인이었던 사람이 눈을 떴을 때 이웃이나 주변 사람들이 보인 반응입니다. 사람들은 완전하게 달라진 그의 모습을 보며 과연 그가 전에 구걸하던 사람이 맞는지 반신반의했습니다. 이 사건은 절망적이던 한 인간이 예수님을 만나 죄의 어둠에서 벗어난 사건으로, 맹인은 예수님을 만난 후 전혀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된 사람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인생은 그 전후가 완전히 달라지는 특징을 갖습니다.
인간의 불행과 고난의 원인이 죄 때문이라는 생각은 오늘 본문뿐만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여전히 통용되는 생각입니다. 사람들은 무언가 불행한 일을 겪게 되거나 질병에 걸리면 '내가 무슨 잘못을 했지?'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물론 성경은 죄가 질병과 고통의 원인이라고 가르칩니다(5:14). 그러나 그것이 유일한 원인은 아닙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이 가르치신 대로 하나님의 섭리를 드러내려는 목적에서 이루어지는 질병이나 고통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요셉을 애굽으로 보내셔서 13년간의 괴로운 생활을 겪게 하신 것은 이스라엘을 번성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시기 위한 것이었지, 요셉이 지은 죄가 있어서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려움을 만날 때 기도하며 잘 분별해야 합니다. 회개할 것은 회개해야 하지만 하나님의 섭리를 위한 것일 때는 의연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일을 통해 내 삶에 더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읽어야 합니다(고린도후서 1:9).
"아빠 아버지,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인 저를 구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세상에 빛 되신 주님을 만난 증거를 드러내는 빛 된 삶을 살아가게 하소서. 나에게 닥치는 고난이나 질고가 나의 죄 때문인지 아니면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기 위함인지 잘 깨달아 회개할 것은 회개하고 인내하며 감내할 것은 기꺼이 감내하게 하소서. 그 모든 것들이 주님이 저를 사랑하셔서 주신 것임을 굳게 믿게 하시고, 하나님께로 더욱 가까이 가게 하소서. 이 땅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게 하시고, 주님 주신 사명을 감당하는데 저의 생애를 드리오니 인도하시고 힘을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찬양의 향기|악보를 클릭하면 찬양을 들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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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속으로..|D.L. 무지 지음/ 미션월드 라이브러리 펴냄 망원경으로 보는 마태복음②
첫 번째 설교는 산상수훈입니다. 이 설교에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을 얼마나 많이 언급하셨는지 한번 살펴봅시다. 소금, 빛, 등불, 겉옷, 비, 골방, 좀, 녹, 도적, 눈, 새, 백합, 풀, 개, 빵, 물고기, 문, 포도, 가시나무, 엉겅퀴 무화과, 반석 등.. 어떤 사람이 팔라스타인 지방을 여행하고 돌아와서, 예수님은 그곳에서 일상적으로 볼 수 있는 모든 것을 비유로 사용하신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일상적인 소개를 예화로 사용하기를 꺼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청중이 이해하지 못하는 현학적인 설교보다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 훨씬 더 낫지 않겠습니까? 등불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또한 이스라엘처럼 바위가 많은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반석과 같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웨일스에 사는 한 부인이 예수님은 웨일스 사람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누군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유대인이셨지요."라고 가르쳐 주자, 부인은 예수님은 웨일스 사람인 자신이 너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말씀을 하셨기에 그분이 웨일스 사람인 줄 알았다고 대답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주변에는 그분의 말씀을 받아 적고 인쇄하여 돌리는 이들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이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했습니다. 나는 오늘날 설교자들도 예수님처럼 설교하기 바랍니다. 문법적으로 흠이 없고 멋들어진 설교문을 작성하기보다 청중이 확실히 이해할 수 있는 메시지를 전하는 데 심혈을 기울이기 비랍니다. 그렇게 하려면 청중이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예화를 잘 사용해야 합니다. 모세는 산에서 율법을 받았듯이 예수님도 산에서 산상수훈이라는 새로운 원리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모세의 율법은 겉으로 드러나는 행위에 관한 것이었고, 산상수훈은 사람의 마음, 즉 내적인 삶에 적용되는 원칙이었습니다. 태양이 등불보다 훨씬 밝듯 산상수훈은 모세의 율법보다 더욱 밝은 빛을 비춰줍니다. 우리들이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서, 요란하지는 않지만, 크나큰 영향력을 미치는 존재가 되어야 함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이 설교에서 "너희에게 이르노니"라는 말씀은 총 열두 번 등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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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기뻐하시는찬양|그리스도인들을 위한 찬양 지침서 김정민 지음/쿰란출판사 펴냄. 찬송은 성도의 의무
세미나 및 집회를 하려고 처음 교회를 방문하면 제일 많이 듣는 말들이 있습니다. "목사님, 저는 찬송에는 취미가 없는가 봅니다." "저는 기도는 열심히 하는데 찬송에는 재능이 없나 봐요." 저는 처음 이런 질문을 받고 깜짝 놀랐습니다. 속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사람들이 찬송도 모르고 성경도 정독을 안 하는구나!' 성경 곳곳에 찬송은 취미나 재능이 아니라고, 하나님은 멋진 공연을 보시려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부터 우러나는 찬송을 원하신다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고운 목소리, 멋진 환상곡을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된 찬송을 원하십니다. 취미라는 것은 강제성이 없습니다. 또한 자기 자신을 위한 행위일 뿐입니다.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안 하면 됩니다. 하지만 찬송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은 단호합니다. "너희는 시온에 계신 여호와를 찬송하며 그의 행사를 백성 중에 선포할지어다"(시편 9:11). "너희 의인들아 여호와를 즐거워하라 찬송은 정직한 자들이 마땅히 할 바로다"(시편 33:1).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시편 150:6). 하나님은 분명히 우리에게 찬송하라고 명령하십니다. 그 누구의 명령이 아닌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면서 주님의 말씀에 "아멘'하고 순종하지 않는다면 거짓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시고, 우리를 부르시고,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이 찬송을 받으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 그분을 찬송하지 아니하고 어떻게 그리스도인이라고 감히 말할 수가 있을까요? 이 명령에는 남녀노소의 구별이 없습니다. 찬송은 달란트나 은사나 은혜가 아닙니다. 찬송은 어떤 특정인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호흡이 있는 자는 그 누구도 예외 없이 주님을 찬송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이 명령은 우리에게 의무이지만 또한 권리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찬송을 받으시기 위하여 우리를 죄의 문제, 죽음의 문제에서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그의 독생자이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 주셨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택하셔서 왕 같은 제사장이 되게 하시고, 거룩한 나라가 되게 하시고, 주님의 백성이 되게 하셨습니다(베드로전서 2:9). 이 말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찬송을 부를 수 있는 '자격증'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 자격증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인 치심을 받은 자"라는 도장이 찍혀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 자격증을 따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을 합니까? 하지만 이 찬송의 자격증은 우리가 모르는 가운데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그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곰팡이가 생기거나 불에 타지 않는 자격증입니다. 자격증을 딴 후에 장롱 속에 고이 숨겨 두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운전면허증을 따고 10년 동안 장롱 속에 고이 간직한 사람이 과연 자동차를 제대로 운전할 수 있겠습니까? 찬송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미 우리는 찬송할 자격이 있고, 찬송할 수 있고, 찬송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마음 깊은 곳에 묻어 버리고, 이조차 잊어버린 불량 그리스도인은 아닌지 돌아봐야 할 것입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찬송은 성도의 의무입니다. 찬송은 성도들이 마땅히 해야 할 사명이요, 가장 기본적인 의무임을 명심합시다. 찬송하지 않는 삶은 불순종의 죄를 날마다 짓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저는 지금도 기도할 때에 제일 먼저 찬송하지 못했던 순간을 떠올리면서 회개합니다. 숨을 쉬는 것처럼, 음식을 먹는 것처럼, 잠을 자는 것처럼 찬송이 우리의 삶에 자연적으로 녹아들게 합시다. 우리의 의무이자 권리인 찬송! 찬송이 우리의 삶이 되는 때에 믿음의 꽃이 피어날 것이고, 마침내 열매가 되어 주님의 한없는 은혜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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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림의집 홍보|예림의집을 홍보합니다♡
"예림의집”을 소개합니다
예림의집은 “예수님께서 임하셔서 거하시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세상 가운데로 보내시면서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 29)”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임재를 통하여 실제로 그리스도인에게 오셔서 모든 삶을 함께하신다는 말입니다. 예림의집은 예수님의 사역에 동참시키시는 주님의 그 부르심에 순종하여 세워진 선교후원 단체입니다.
첫째, 온라인 선교사역 ①다음 카페 “예림의집”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회원가입을 하시면 그 순간부터 저의 예림의집 사역이 동참하게 됩니다. 현재 회원 수 900여 명으로 이들이 잠정 후원자가 되어 기도 후원, 물질 후원, 재능기부 등을 하게 됩니다. 카페를 매개로 하여, 서로의 비전과 기도 제목을 나누고, 힘을 합쳐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해 갑니다. 저의 사역에 동참하시길 원하시는 분은 다음 검색 창에 “예림의집”을 치세요! ②다음 블로그 “예림의집” 다음 블로그 예림의집은 따로 회원 가입을 할 필요 없이 언제, 어디서나 방문하여 필요한 정보와 신앙 글들을 접할 수 있습니다. 저는 다음 커뮤니티 공식 파워 블로거로 활동 중이며, 현재 60만여 건이 넘는 방문자 수를 기록 중입니다. 다음 카페 “예림의집”과 연동되어 하루 평균 20개 이상의 정보가 업로드되어 현재 2만 4천여 편의 글들을 접하실 수 있습니다. ③페이스북 활동(김정민) 요즘 활성화되어있는 페이스북 활동을 통하여 온라인 선교의 지경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저를 친구 초대해주시고 팔로우 해 주시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현재 22개의 그룹을 만들어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친구들을 만나고, 복음을 전하며, 선교 동원가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많이 친추 해 주세요!
둘째, 선교사/개척교회 후원 사역 이 사역은 찬양사역을 하던 저에게 새로운 비전을 주셔서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게 하신 사역입니다. 선교사님들과 개척교회를 바르게 후원하기 위해서는 제가 먼저 선교와 교회 개척 사역에 헌신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예림의집 카페 회원들을 포함한 그동안 주께서 연결해주신 후원자 1500여 명이 함께 감당해 가는 사역입니다. 첫 번째, 기도후원사역은 주께서 연결해 주신 선교사님이나 개척교회를 위해 40 명의 기도 용사를 세우는 사역입니다. 제1호 필리핀 “김성재 선교사님”과 서울 상도동 “주님의 교회”를 필두로, 현재 20명의 선교사님과 11개의 개척교회를 후원하고 있고, 그 지경을 넓혀 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물질후원사역으로 앞에서 말씀드린 기도 후원자들 중에 하나님께서 자원하는 마음을 주신 분들이 물질 후원을 하게 됩니다. 재정 후원은 선교사님과 개척교회 목회자 가정의 기초 생활비를 우선적으로 지원하도록 원칙을 세웠습니다. 물품 후원은 선교나 교회 개척에 필요한 다양한 물품들을 자원하여 후원하게 됩니다. 특히 도서 후원은 성경책, 신앙 도서, 아이들 학습 도서 등. 작은 도서관을 만들 수 있도록 후원합니다. 세 번째, 재능기부사역은 주님께서 주신 모든 달란트를 활용하여 선교와 교회 개척을 지원하는 사역입니다. 예를 들어, 선교 지원팀, 여름 성교 학교 진행팀, 찬양팀, 자원봉사단 등이 있습니다. 모든 재능 기부 사역은 “자비량”을 원칙으로 합니다. 특히 전도 지원팀을 양성하여 개척교회를 지원할 계획입니다. 이 사역을 통하여 새로운 선교사들과 교회 개척자들이 새워질 것입니다. 선교지나 개척 현장에서 필요한 프로젝트 그룹을 조직하여 지원합니다.
셋째, 찬양 세미나/찬양 집회 사역 제가 약 25년간 해오던 찬양 사역의 일환으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찬양을 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특별히 부여하신 사역입니다. 아직도 찬양에 대한 무지와 편견으로 주님을 맘껏 찬양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잇습니다. 그들에게 제가 경험한 찬양에 대한 놀라운 비밀을 나누는 사역입니다.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3개월 전에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010-9442-6928, yerim21@hanmail.net).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이 11월 초에 발간될 예정입니다. 저는 비록 짧은 시간 동안 여러분을 만나지만, 찬송은 너무나 소중하기에 글로써 여러분들의 곁에서 치침이 되어드리려고 합니다. 찬송에 대한 저의 지난 25년간의 찬양사역의 총 결산의 책입니다. 본 책의 내용은 앞서 설명한 다음 카페와 블로그 “예림의집”과 페이스북을 통해 미리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예림의집 김정민 목사 올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