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림의집 이야기|하나님과 대화하는 101가지 방법... 구약에서의 순종②
셋째, 모세를 생각해 봅시다. 하나님께서는 시내산에서 그에게 백성에 대한 말씀을 주셨습니다.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출애굽기 19:5). 본질적인 문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은 곧 그의 영광이요 완전함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은 오직 순종을 통해 그의 뜻으로 들어감으로써 가능합니다. 넷째, 하나님의 성소를 만들던 경우를 생각해 봅시다. 우리는 출애굽기의 마지막 세 장에서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다 행하였더라"라는 말씀이 부분적으로 또는 전체적으로 열아홉 번이나 반복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다 행한 후에야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게 되었습니다(출애굽기 40:34). 이와 같이 레위기 8장과 9장에서도 제사장과 장막을 거룩하게 하는 일에 관하여 같은 표현이 열두 번이나 나오며, 명하신 대로 다 행한 후에야 "모세와 아론이 회막에 들어갔다가 나와서 백성에게 축복하매 여호와의 영광이 온 백성에게 나타나며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제단 위의 번제물과 기름을 사른지라 온 백성이 이를 보고 소리 지르며 엎드렸더라"(레위기 9:23, 24)라고 나옵니다. 그의 백성의 순종이 역사하는 곳에 하나님께서 거하기를 기뻐하신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백성들이 순종하는 가운데서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은혜와 임재하심의 관을 씌우신 것도 그들의 순종 때문이었습니다. 다섯째, 불순종의 대가로 광야에서 사십 년 동안 방한 후에야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신명기에서 모세가 말한 것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신명기보다 "순종"이란 말을 더 자주 사용하는 성경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또 신명기보다 순종이 그렇게 많은 축복을 가져다준다고 더 자주 말하는 성경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신명기 전체를 이 한 구절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내가 오늘 복과 저주를 너희 앞에 두나니 너희가 만일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들으면 복이 될 것이요 너희가 만일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도에서 돌이켜 떠나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고 본래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따르면 저주를 받으리라"(신명기 11:26-28). "너희가 만일 들으면(순종하면) 복이 될 것이요!" 그렇습니다. 이것이 복받는 삶의 비결입니다. 천국과 마찬가지로 가나안도 순종할 때에만 축복의 땅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러한 복을 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복만 달라고 기도하는 자세는 경계해야 합니다. 오히려 순종에 관심을 가지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도 복을 생각하실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 완전히 순종할 수 있을까?' 바로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사상이 되어야 합니다.
예림의집 칼럼™|예림의집이 드리는 삶의 지혜... 성경 속 예수님께..
나는 예수님을 '책'에서 만났습니다. 처음 성경책을 읽을 때 재밌어서 웃음을 터뜨렸던 기억이 납니다. 이른 아침, 배가 고프셨던 예수님이 무화과나무를 말려 죽이신 이야기였습니다(마태복음 21:18-20). 어찌나 마음 깊이 공감이 되던지, 한바탕 웃고 나서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 그분 참 성질 하고는.. 그래도 이 양반 배고픔이 뭔지 아는 분이네!" 인간의 배고픔이 어떤 것인지를 아시는 그분은 인간의 결핍을 채우지 못하는 그 상황에 대해 분노하신 것이었습니다. 이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 이야기에 종말론적인 의미가 담겨 있음은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당시 나는 배고프면 화부터 나는 나와 똑같은 분을 만났던 것입니다. 그러니 재미있으면서도 공감할 수밖에.. 내가 성경을 제대로 읽고 새기기도 전에 그분은 이미 내 삶 속에 들어와 계셨습니다. 어느 날은 성경을 읽다가 악을 쓰며 대성통곡한 적이 있습니다. 갈릴리 가나의 혼인잔치 이야기였습니다. 술이 떨어졌다고 하니까 예수님이 술을 만드시는 그 대목을 읽는데 울컥, 뜨거운 게 치밀어 올랐습니다. "이런 젠장, 왜 술을 또 만들어요. 왜? 잔칫집에 술이 떨어졌음 그만이지, 왜 또 술을 만드냐고..!" 나는 악을 써대며 울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인사불성으로 술에 취한 아버지를 모셔 오는 게 내 일이었습니다. 술에 취해 논두렁이나 밭두렁에 쓰러져 주무시는 아버지를 손수레에 태워 오는 건 나의 일상이었습니다. 난 예수님을 알기 전부터 술을 싫어했습니다. 아버지처럼 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대학 입학 후 가입한 대학생선교단체 수련회 때 예수님이 친히 술을 만드시는 이야기를 접한 것입니다. 그것도 성경에서....! 가나의 혼인잔치 장명을 읽으면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시는 예수님께 분노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술 떨어지면 그걸로 잔치 쫑내면 되지, 왜 또 술을 만들어 다시 2차를 시작하나 싶었던 것입니다. 그 순간 나는 "왜 술을 또 만드냐"라고 소리소리 지르며 통곡했습니다. 그 아픈 눈물 가운데 예수님이 찾아와셨습니다. 성경을 읽다가 말씀 속에서 예수님을 만난 건 그때만이 아니었습니다. 나중 그 선교단체의 캠퍼스 간사가 되어 사역할 때, 크나큰 아픔을 겪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내가 가르치던 많은 학생을 내 손으로 제명해야 했습니다. 그 일은 아직도 내게 아픈 상처로 남아 있습니다. 학생들을 제명하고 아파하며 울던 나에게 당신을 세 번 부인하고 다시 어부로 돌아간 베드로를 통해 예수님은 나를 찾아오셨습니다. 낙담하고 상심한 내게 거듭거듭 물어오셨습니다. "너는 나를 사랑하니?" 그 물음에 내가 격분하여 맞섰습니다. "당신을 사랑하니까 내가 여기 있는 거잖아요!" 내 대답에 "내 양을 먹이라" 하실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예상과 전혀 다른 말씀을 하셨습니다. "아이야, 네가 먼저 변해야 한다. 네가 변하지 않으면 내 양 다 죽인다.." 그날 말씀 앞에서 비로소 난 죽었습니다. 이처럼 삶의 아픔 가운데 말씀이 임하여 나를 그분에게로 인도하였습니다. 그렇게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의 빛"이 되어 주었습니다.
오늘의 QT|매일 매일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 영적 소속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 아버지는 아브라함이라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아브라함이 행한 일들을 할 것이거늘 지금 하나님께 들은 진리를 너희에게 말한 사람인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 아브라함은 이렇게 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너희는 너희 아비가 행한 일들을 하는도다 대답하되 우리가 음란한 데서 나지 아니하였고 아버지는 한 분뿐이시니 곧 하나님이시로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하나님이 너희 아버지였으면 너희가 나를 사랑하였으리니 이는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나와서 왔음이라 나는 스스로 온 것이 아니요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이니라 어찌하여 내 말을 깨닫지 못하느냐 이는 내 말을 들을 줄 알지 못함이로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내가 진리를 말하므로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는도다 너희 중에 누가 나를 죄로 책잡겠느냐 내가 진리를 말하는데도 어찌하여 나를 믿지 아니하느냐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요한복음 8:39-47).
죄의 종인 유대인들이 영적으로 마귀의 자녀라는 예수님의 지적에 대해(34, 38절), 유대인들은 계속해서 자신들의 육신적 조상이자 아버지는 아브라함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런 그들에게 예수님은 더 쉬운 설명을 합니다. 만약 그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면 아브라함과 같은 행동을 보여야 한다는 것입니다(39, 40절). 창세기에 보면,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수종했으며 하나님과 천사를 대접하기도 했었습니다(창세기 12, 18, 22장). 그는 결코 누구를 죽이려는 음모 같은 것을 꾸미지 않았습니다(7:25). 그러므로 예수님의 설명은 명확했습니다. 그들의 행동이 그들의 영적 소속을 증명한다는 것입니다. 성경 다른 본문에도 예수님이 열매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고 말씀하신 것이 나와 있습니다(마태복음 7:20). 다시 유대인들이 한층 목소리를 높여서 자신들의 유일한 영적 아버지는 하나님 한 분뿐이시라고 주장하자 예수님은 앞에서와 같은 방식으로 그들을 깨우치십니다. 만약 그들이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라면 틀림없이 예수님 자신을 사랑하고 받아들였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41, 42절). 그들이 예수님을 거절하는 배경에는 마귀가 있었습니다(44절). 즉, 눈에 보이는 현상이 전부는 아닙니다. 그 배후에는 영적인 세계가 존재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우리의 싸움의 본질이 이 땅의 사람들에 대항하여 싸우는 것이 아니라 마귀와의 영적 전쟁이라고 말했던 것입니다(에베소서 6:12). 예수님이 밝히신 마귀의 특징은 살인자요 진리가 없는 거짓말쟁이입니다(44절). 마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였습니다. 가인이 아벨을 죽일 때 그 배후에는 사탄이 있었습니다(창세기 4:7). 또 마귀는 하와에게 거짓말을 해서 선악과를 따먹도록 속였습니다(창세기 3:5). 이처럼 모든 죄의 배경에는 마귀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죄를 미워해야 합니다. 죄를 멀리하고 마귀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죄가 생각나면 마귀가 활동하고 있음을 깨닫고 주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대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귀는 도망칠 것이라고 성경은 굳게 약속합니다(야고보서 4:7, 8). 세상은 진리를 기뻐하지 않습니다(45-47절). 겉으로는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을 높이는 척하지만, 실제로는 진리나 진실보다는 자시의 욕심과 성공에 더 관심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마귀에 속해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말이 곧 마귀가 세상의 주관자라는 뜻은 아닙니다. 세상과 역사의 주관자는 하나님이시지만, 마귀는 죄를 통해 사람들을 미혹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크게 두 가지 영적 소속이 존재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 속한 삶과 마귀에게 속한 삶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귀의 존재를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우리도 신앙생활을 잘 하기 위해서 마귀에 대해 잘 알아야 합니다. 마귀는 진리를 왜곡시키며 어떻게든 사람들이 주님을 믿지 못하도록 만듭니다(베드로전서 5:8). 그러나 마귀가 전능한 존재는 아닙니다.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마귀를 대적하면 마귀는 우리를 피할 수밖에 없습니다(야고보서 4:7). 예수 그리스도는 마귀의 일을 멸하려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요한일서 3:8). 그리스도의 구원사역으로 마귀는 이미 힘을 잃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마귀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위협적인 존재인 것은 분명하지만 우리를 교란시키는 것 외에 결코 성도를 마음대로 멸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바른 믿음 가운데 서서 주님을 따르면 마귀는 우리의 적수가 될 수 없습니다. 내 힘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마귀가 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아빠 아버지, 오늘도 사탄은 영적 전쟁을 걸어오지만 주님의 이름으로 승리하게 도와주소서. 그럴수록 더욱 하나님 앞에 나아가 예배하는 삶을 살게 하시고 의의 열매를 맺게 하소서. 마귀는 결코 나를 어찌할 수 없습니다. 내 안에 성령께서 나를 보호하시고 주님의 기록된 말씀으로 물리칠 것입니다. 더불어 마귀의 결계를 허무는 적극적인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시고, 은밀하게 다가오는 마귀의 꼬임에 넘어가지 않도록 하소서. 저를 정결하게 보존하여 주시고, 담대함과 승리할 수 있는 믿음을 허락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찬양의 향기|악보를 클릭하면 찬양을 들을 수 있습니다...
성경 속으로..|D.L. 무지 지음/ 미션월드 라이브러리 펴냄 망원경으로 보는 욥기
예전에 한 신학이자 동역자가 나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욕기가 성경 전체의 열쇠라는 사실을 아십니까? 그래서 욥기를 제대로 이해한다면 성경 전체의 맥을 잡을 수가 있지요." 나는 놀라서 대답했습니다. "아니요, 처음 듣는 말인데요? 어떻게 욥기가 성경 전체의 열쇠라는 것입니까?" 그가 대답했습니다. "저는 욥기를 크게 일곱 부분으로 나눕니다. 첫 번째 부분은 '시험을 겪기 전의 온전한 자'입니다. 하나님은 욥을 온전한 자라고 말씀하셨는데, 이는 에덴동산에서의 아담의 상태와도 같습니다. 하나님이 아담을 창조하셨을 때 그는 온전하였고 시험을 받지 않은 상태였지요. 두 번째 부분은 '고난이라는 시험을 겪다'입니다. 아담이 타락했듯이 욥은 시험을 당하고 죄를 짓게 됩니다. 세 번째는 '세상의 지혜'입니다. 세상은 욥을 어떻게든 회복시켜 보고자 애쓰지요. 지혜로운 친구 세 명이 그에게 조언을 합니다. 이들의 충고는 어떤 말보다 현명하고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하나님의 은혜는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욥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던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처럼 지혜를 따르려고 애쓰지요. 그래서 필연적으로 실패하게 됩니다. 사람의 지혜는 결코 사람을 더 나아가게 만들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세 친구는 욥에게 도움을 주기는커녕 그를 더욱 비참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들은 조언을 한답시고 욥을 이리저리 찔러 댔으나 결국 하나님 앞에 두려움으로 엎드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네 번재 부분은 '중재자의 등장'입니다. 중제자 엘리후는 예수님을 예표하는 인물이지요, 다섯 번째는 '하나님이 말씀하시다', 여섯 번째는 '욥이 깨달음을 얻다'입니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나이다"(욥기 42:5, 6). 욥은 그렇게 티끌 위에 엎드립니다. 마지막 일곱 번째 부분의 핵심은, '하나님이 욥을 회복시키시다'입니다." 참으로 일리가 있는 말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또한 욥과 마찬가지 아닙니까? 그러나 우리의 나중 상태가 처음 상태보다 나음으로 인해 주님께 찬양을 드립니다! 내 친구는 욥기를 읽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마지막 부분을 보게나. 하나님이 욥에게 모든 것을 갑절로 더해 주셨다네." 그는 욥이 자녀를 잃었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하늘나라에 가 있는 열 명에 또 열 명을 얻었으니, 욥은 자녀가 스무 명이나 되는 대가족을 이룬 것입니다. 그러니 자녀와 사별한 이들이 있다면 사실은 자녀를 잃는 것이 아니라 그저 먼저 하늘나라로 보낸 것임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하나님이기뻐하시는찬양|그리스도인들을 위한 찬양 지침서 김정민 지음/쿰란출판사 펴냄. 신앙 용어가 많이 없습니다
"CCM에는 신앙 용어가 많이 없습니다. 이게 찬양일 수 있습니까?"라는 질문에서 질문자의 많은 고민을 느낄 수 있습니다. 또한 저는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을 사랑합니다. 그만큼 찬양에 대한 애정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분들에게 저는 최대한 친절하고 쉽게 설명해 드리려고 노력합니다. 여러분들도 한번 제 글을 읽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찬양을 수직적인 것으로만 인식합니다. 하나님께 우리의 마음을 드리는 것,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고백만이 찬양이라고 인식해 온 것입니다. 이것은 한편으로는 좋은 방향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수평적인 노래, 성도 간의 권면과 교제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노래는 격이 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편견입니다. 찬송가 중에도 수평적인 노래도 많습니다. <성도여 다 함께>, <우리가 지금은 나그네 되어도>,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 등 가사의 대상이 사람인 노래가 많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물론 이런 질문은 '하나님, 예수님, 할렐루야, 아멘'과 같은 말이 배제되어 있는 노래에 대한 지적인 줄 압니다. 이런 용어가 들어 있지 않는 노래는 찬양이 아니라고 단정하기도 합니다. 그런 논리라면 찬송가 <어둔 밤 마음에 잠겨>는 찬송가에서 빼야 할 것입니다. 그야말로 편견인 것입니다. 분명 찬양의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데 있습니다. 그 내용이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말입니다. 똑같은 가사를 성악이나 클래식 선율에 얹었다면 이런 문제 제기가 있었을까요? 오히려 성가곡 중에 찬양이 될 수 없는 곡들이 널려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아베 마리아>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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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림의집”을 소개합니다
예림의집은 “예수님께서 임하셔서 거하시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세상 가운데로 보내시면서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 29)”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임재를 통하여 실제로 그리스도인에게 오셔서 모든 삶을 함께하신다는 말입니다. 예림의집은 예수님의 사역에 동참시키시는 주님의 그 부르심에 순종하여 세워진 선교후원 단체입니다.
첫째, 온라인 선교사역 ①다음 카페 “예림의집” 다음 카페 "예림의집"에 회원가입을 하시면 그 순간부터 저의 예림의집 사역이 동참하게 됩니다. 현재 회원 수 900여 명으로 이들이 잠정 후원자가 되어 기도 후원, 물질 후원, 재능기부 등을 하게 됩니다. 카페를 매개로 하여, 서로의 비전과 기도 제목을 나누고, 힘을 합쳐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해 갑니다. 저의 사역에 동참하시길 원하시는 분은 다음 검색 창에 “예림의집”을 치세요! ②다음 블로그 “예림의집” 다음 블로그 예림의집은 따로 회원 가입을 할 필요 없이 언제, 어디서나 방문하여 필요한 정보와 신앙 글들을 접할 수 있습니다. 저는 다음 커뮤니티 공식 파워 블로거로 활동 중이며, 현재 60만여 건이 넘는 방문자 수를 기록 중입니다. 다음 카페 “예림의집”과 연동되어 하루 평균 20개 이상의 정보가 업로드되어 현재 2만 4천여 편의 글들을 접하실 수 있습니다. ③페이스북 활동(김정민) 요즘 활성화되어있는 페이스북 활동을 통하여 온라인 선교의 지경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저를 친구 초대해주시고 팔로우 해 주시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현재 22개의 그룹을 만들어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친구들을 만나고, 복음을 전하며, 선교 동원가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많이 친추 해 주세요!
둘째, 선교사/개척교회 후원 사역 이 사역은 찬양사역을 하던 저에게 새로운 비전을 주셔서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게 하신 사역입니다. 선교사님들과 개척교회를 바르게 후원하기 위해서는 제가 먼저 선교와 교회 개척 사역에 헌신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예림의집 카페 회원들을 포함한 그동안 주께서 연결해주신 후원자 1500여 명이 함께 감당해 가는 사역입니다. 첫 번째, 기도후원사역은 주께서 연결해 주신 선교사님이나 개척교회를 위해 40 명의 기도 용사를 세우는 사역입니다. 제1호 필리핀 “김성재 선교사님”과 서울 상도동 “주님의 교회”를 필두로, 현재 20명의 선교사님과 11개의 개척교회를 후원하고 있고, 그 지경을 넓혀 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물질후원사역으로 앞에서 말씀드린 기도 후원자들 중에 하나님께서 자원하는 마음을 주신 분들이 물질 후원을 하게 됩니다. 재정 후원은 선교사님과 개척교회 목회자 가정의 기초 생활비를 우선적으로 지원하도록 원칙을 세웠습니다. 물품 후원은 선교나 교회 개척에 필요한 다양한 물품들을 자원하여 후원하게 됩니다. 특히 도서 후원은 성경책, 신앙 도서, 아이들 학습 도서 등. 작은 도서관을 만들 수 있도록 후원합니다. 세 번째, 재능기부사역은 주님께서 주신 모든 달란트를 활용하여 선교와 교회 개척을 지원하는 사역입니다. 예를 들어, 선교 지원팀, 여름 성교 학교 진행팀, 찬양팀, 자원봉사단 등이 있습니다. 모든 재능 기부 사역은 “자비량”을 원칙으로 합니다. 특히 전도 지원팀을 양성하여 개척교회를 지원할 계획입니다. 이 사역을 통하여 새로운 선교사들과 교회 개척자들이 새워질 것입니다. 선교지나 개척 현장에서 필요한 프로젝트 그룹을 조직하여 지원합니다.
셋째, 찬양 세미나/찬양 집회 사역 제가 약 25년간 해오던 찬양 사역의 일환으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찬양을 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특별히 부여하신 사역입니다. 아직도 찬양에 대한 무지와 편견으로 주님을 맘껏 찬양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잇습니다. 그들에게 제가 경험한 찬양에 대한 놀라운 비밀을 나누는 사역입니다. 전국 교회, 신학교, 수련회, 대학 동아리,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기도원 등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갑니다. 3개월 전에 미리 연락 주시면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010-9442-6928, yerim21@hanmail.net).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양 지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이 11월 초에 발간될 예정입니다. 저는 비록 짧은 시간 동안 여러분을 만나지만, 찬송은 너무나 소중하기에 글로써 여러분들의 곁에서 치침이 되어드리려고 합니다. 찬송에 대한 저의 지난 25년간의 찬양사역의 총 결산의 책입니다. 본 책의 내용은 앞서 설명한 다음 카페와 블로그 “예림의집”과 페이스북을 통해 미리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예림의집 김정민 목사 올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