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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하는 손길

예림의집 2018. 9. 11. 15:14

치유하는 손길


예수님에게 터치는 치유의 거룩한 방편이었습니다. 그분이 터치할 때마다 사람들은 치유를 경험했습니다. 마태복음 8장 14절 이하에는 예수님이 가버나움에서 제자 베드로의 집에 들어갔다가 그 장모가 열병으로 앓아누운 것을 보고 그녀를 고치시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치유 방법이 단순하게 터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15절을 보십시오. "그의 '손을 만지시니(터치)' 열병이 떠나가고 여인이 일어나서 예수께 수종들더라." 마태는 이 사건이 바로 이사야 예언의 성취임을 알리면서 17절에 이렇게 기록합니다.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에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처치가 그분의 치유 방편임을 선포한 것입니다. 왜 터치가 치유의 방편으로 사용되었을까요? 터치는 인격과 인격을 연결하는 접촉점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보면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고생하던 여인이 예수님께 다가와 그분의 옷을 만지는 장면이 나옵니다. 성경은 터치의 순간 예수님의 능력이 그분에게서 이 여인에게로 흘러나가 여인을 치유했다고 기록합니다. 이 여인의 처치가 여인과 예수님을 연결한 것입니다. 성경에 나온 많은 병자들이 티치로 치유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동일하게 주님의 터치를 경험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치유의 기적을 맛보고 있습니다. 왜 오늘날에도 터치의 사역이 필요합니까? 주님이 이 땅에 계시던 때와 마찬가지로 지금도 동일하게 우리 스스로를 포함한 수많은 이웃들이 연약함과 질병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티파니 필드의 책에 보면 이런 이야기도 소개되고 있습니다. 2차 대전 당시 이탈리아 작은 도시에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두 고아원이 있었는데, 한 고아원은 연합군의 도움을 받아 시설도 좋았고 영양도 충분하게 공급되었지만 강 건너편 다른 고아원은 시설도 열악하고 기본 영양도 제대로 공급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시설이 좋았던 고아원보다 오히려 시설이 열악한 고아원 아이들의 발병률이나 사망률이 크게 낮았다고 합니다.

전쟁이 끝나고 몇 학자들이 이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아주 흥미로운 사실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시설이 안 좋은 고아원에 전쟁 중인 어느 날 자기 아이를 잃고 정신이 나간 엄마 하나가 들어와 아이들과 함께 살았는데, 고아원 아이들을 자기 아이로 착각하여 날마다 아이들을 번갈아 가며 안아 주고 쓰다듬어 주었습니다. 바로 그것이 두 고아원의 결정적 차이를 낳았던 것입니다 육체와 마음의 연약함에 시달리는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바로 이런 주님의 터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