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림의집 1334번째 이야기
예림의집 이야기하나님과 대화하는 101가지 방법...
노래를 불러보세요
좋아하는 옛날 노래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거든
일을 멈추고 회상해 보세요.
곡조, 노랫말과 함께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싶은
사람, 장소, 사건 등을 떠올려 보세요.
하나님이 그런 친구들을
주신 것이 감사한가요?
말썽꾸러기였던 그때의 모습보다
지금 당신이 더 마음에 드나요?
험한 인생길에서
하나님이 당신을 어떻게
보살펴 왔는지를 알겠나요?
그 곡조를 따라 불러 보세요.
당신이 받은 축복을 노래하하세요.
예림의집 칼럼™예림의집이 드리는 삶의 지혜...
비교①
바울은 사랑을 그 시대 사람들이 소중히 생각했던 다른 문제와 비교해서 설명해줍니다. 그는 먼저 사랑을 웅변과 비교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정신과 의지를 움직이게 하여 고결한 결단과 거룩한 행동을 하게하는 이 사랑은 얼마나 귀한 선물입니까? 그래서 바울은 "니갸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그 이유를 잘 알고 있습니다. 가슴속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이 없는 웅변은 감동이 없는 공허한 소리에 불과하기 때문에 사람을 설복시킬 수 없습니다.
그는 이어서 사랑을 예언과 비교해서 설명하는가 하면, 사랑과 비밀을, 사랑과 믿음을, 그리고 사랑과 구제를 비교했습니다. 왜 사랑이 믿음보다 더 클까요? 목적이 방법보다 더 크기 때문입니다. 왜 사랑이 구제보다 더 클까요? 전체가 부분보다 더 크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믿음보다 더 큰 이유는 목적이 방법보다 더 크기 때문인데 믿음을 통해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과 연결됩니다. 그렇다면 사람을 하나님과 연결시키는 목적은 무엇인가요? 그것은 사람을 하나님과 같이 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람이 하나님처럼 사랑의 존재가 되는데 필요한 방법이 바로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분명히 믿음보다 더 큽니다. 또한 사랑이 구제보다 더 큰 이유는 전체가 부분보다 크기 때문입니다. 구제는 사랑의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으며, 사랑을 행하는 무수한 벙법 중에 하나일 뿐입니다. 종종 사랑 없이 큰 구제가 베풀어지기도 합니다. 길거리에서 구걸하는 자에게 동전 한 푼을 던져주는 것은 아주 쉬운 일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비참한 광경을 보고 우러나는 동정심에 의해 한 푼의 동전을 주어 안도감을 얻곤 하는데 그것이 우리에게는 아주 작은 일이지만 그 구걸하는 사람에게는 도움을 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경이 가르치는 진정한 사랑을 하게 된다면 이웃을 위해 더 귀한 열매를 맺을 수 잇을 것입니다.
오늘의 QT매일 매일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
영적 전쟁은 어디서 일어나는가?
"또 우리 형제들이 어린 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를 이겼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들의 생명을 아기지 아니하였도다"(요한계시록 12:11).
마귀는 우리가 예수님의 성품으로 사는 것을 방해하려고 강력하게 역사하고 있습니다. 마귀가 어떤 경로를 통하여 우리를 넘어지게 하는지 알아야 마귀와의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마귀와의 영적 전쟁이 어디에서 일어날까요?
1. 우리의 생각에서 영적 전쟁이 일어납니다.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요한복음 13:2). 많은 사람이 나타나는 행동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생각인데, 생각에서 행동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귀는 생각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생각을 공격 대상으로 삼습니다.
마귀는 가롯 유다에게 예수님을 팔 생각을 넣어 주었고, 그 생각은 결국 실행되었습니다. 이처럼 마귀는 우리에게 비판하는 마음, 미운 생각, 악한 생각, 불신, 낙심, 두려움, 열등감, 죄책감 등의 생각을 심어 줍니다. 그러므로 생각의 파수꾼을 세우지 않으면 마귀의 공격에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어떤 분이 고민을 상담해 왔습니다. 인터넷에서 하나님을 비방하고 모욕하는 글을 보면서 자기도 모르게 하나님을 욕하고 대적하는 생각이 떠올라 너무 괴롭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원치 않는 생각을 하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는 생각도 든다고 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모욕하는 생각이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만약 이런 생각이 떠오른다면 그것을 자시느이 생각으로 여겨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분명히 마귀가 주는 생각입니다. 저는 그에게 마귀가 주는 생각에 휘둘리지 말고 그 생각이 떠나갈 때까지 예수님의 이름으로 대적하도록 조언해 드렸습니다.
2. 우리의 마음에서 영적 전쟁이 일어납니다.
"조각을 받은 후 곧 사탄이 그 속에 들어간지라 이에 예수께서 유다에게 이르시되 네가 하는 일을 속히 하라 하시니"(요한복음 13:27).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언 4:23). 마귀가 생각에서 역사하는 것과 마음에서 역사하는 것은 차이가 있습니다.
마귀는 맨 처음 생각을 통해 역사합니다. 우리는 마귀가 주는 생각을 분별하고 대적하면 그것을 얼마든지 떨쳐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을 지키지 못하고 마귀가 주는 생각을 품고 살면 그것이 마음에 진을 치게 됩니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팔아 넘길 생각을 버리지 않으니까 결국 마귀가 그 마음을 지배하고 말았습니다. 우리 마음에 생길 수 있는 마귀의 진은 습관적인 죄, 혈기, 두려움과 낙심, 우울증, 교만과 열등감, 분열, 분노 같은 것들입니다.
개그맨 전유성 씨가 <하지 말라는 것은 다 재미있다>라는 제목의 책을 썼습니다. 개그맨다운 제목이지만 우리에게 전해주는 메시지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이 즐거워야 합니다. 그런데 마땅히 해야 할 일은 즐겁지 않고 하지 말아야 할 일만 재미가 있습니다. 보아야 할 것은 보이지 않고 보지 말아야 할 것에 눈이 갑니다. 가야할 곳은 가지 않고 가지 말아야 할 곳에 발길이 갑니다. 다른 사람을 축복하고 사랑하지 못하고 비판하고 미워하기를 좋아합니다. 기도하고 말씀 묵상하는 습관은 갖기 어려워도 음란, 음주, 도박 같은 것에는 쉽게 빠져듭니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일까요? 악한 영이 마음을 묶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마귀의 견고한 진을 파할 수 있을까요? 마귀가 주는 생각이 마음에 견고한 진으로 자리 잡게 되면 자기 힘으로는 그것을 떨쳐버릴 수 없습니다. 마귀의 견고한 진을 파할 수 있는 능력은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뿐입니다.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십자가의 진리를 믿음으로 붙잡아야 하는 것입니다. 마귀는 죽지 않은 자아를 통해서 우리를 지배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 옛 사람이 이미 예수님과 함께 죽었다는 사실을 믿고 "나는 죽었습니다."라고 고백하면 마귀는 우리 마음을 지배할 힘을 잃게 됩니다.
제자 훈련 세미나에 참석했던 분이 저희 교회 홈페이지에 다음과 같은 후기를 올렸습니다. "이번 세마나에 참석해서 주님께 고백했습니다. '주님, 곧 개봉할 트랜스포머 3편을 보지 않겠습니다.' 그동안 제 마음은 주님 한 분만으로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웃기는 고백 같지만 트랜스포머 2편을 영화관에서 보고 난 후 지금까지 주님의 재림보다 더 간절히 트랜스포머 3편이 나오길 기다렸습니다.
지금 제게는 그 어느 것보다 트랜스포머 3편을 보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내려놓음입니다. 이제 그 영화를 내려놓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제 주님이 원치 않는 모든 것을 영원히 내려놓겠다고 결단합니다. 사탄에게 귀 기울여 더 이상 내 마음과 영혼이 상처받고, 주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주니므이 임재하심이 떠나는 최악의 삶을 계속 반복해서 살고 싶지 않습니다.
내 안에 주님이 사시기에 이제 사탄이 유혹하는 목소리, 정욕과 쾌락을 추구하는 목소리를 무시하겠습니다. 주님이 내 안에 계시고 말슴하시고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믿기에 주님게 귀 기울이며 순종하겠습니다. 주님이 내 안에서 마음껏 행하실 수 있도록 주님을 믿고 24시간 주님을 바라보겠습니다. 나는 주고 주님이 사신다는 사실을 믿습니다." 여러분의 마음 안에 자리 잡은 견고한 진은 무엇입니까?
3. 우리의 입술에서 영적 전쟁이 일어납니다
"여호와여 내 입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시편 141:3). 침이 입 속에 있을 때 그것을 더럽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 침이 입 밖으로 나오면 자기 침이라고 해도 더럽다고 느껴집니다. 그런데 우리의 말이 꼭 그와 같습니다. 어떤 생각이 우리 안에서 맴도는 것과 그 것이 말로 튀어나왔을 때가 다릅니다. 생각으로 머물러 있을 때보다 말을 통해서 고백되어지면 더 큰 영적인 권세를 갖게 됩니다.
그래서 마귀는 생각을 통해 역사할 뿐만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자신이 원하는 말을 하도록 역사합니다. 믿음 없는 말, 불평하고 원망하는 말, 비난하고 저주하는 말 등을 하게 만듭니다. 이런 말들 때문에 우리가 더러워지게 되고 결국 악한 삶의 열매를 맺어지게 됩니다. "궂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스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잠언 18:21).
어느 집사와 상담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는 형편이 어려워서 그런지 "죽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습니다. 저는 그에게 이렇게 권했습니다. "집사님이 말한 대로 된다면 정말 끔찍한 일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집사님의 말한 그대로 하신다고 하면 무슨 말을 하겠는지를 생각해 보고 그 말만 한번 해보세요."
이 말을 듣고 그는 한동안 말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서서히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 고쳐 주실것을 믿습니다. 하나님, 우리 가정 너무 화목하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남편 주신 것도 감사합니다. 약한 몸으로 힘들게 나았지만 이제는 아이를 안아서 일으킬 수도 없습니다. 건강한 아이 주신 것도 감사합니다."라고 고백하기 시작했습니다. 주님을 믿으면 우리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달라집니다.
"또 우리 형제들이 어린 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를 이겼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들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요한계시록 12:11). 마지막 때 성도들이 마귀와 싸워서 이기는 권세가 어린양의 피와 증언하는 말씀에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는 말이 마귀를 기쁘게 할 수도 있고 마귀에게 괴로움을 줄 수도 있습니다. "안 된다!", "죽겠다!", "왜 이렇게 조금밖에 안 모였지?" 등 모두 마귀가 좋아하고 기뻐하는 말들입니다.
그러나 환경이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믿음의 말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역사하실 수 있는 말을 해야 합니다. 성도들의 감사와 찬양은 마귀에게 쏘는 영적 미사이로가 같습니다. 우리가 감사하고 찬양하는 말로 하나님을 시인하고 고백하면 마귀는 즉시 떠나갈 수박에 없습니다. 여러분이 한 말이 그대로 이루어진다고 믿는다면 지금 어떤 말을 하겠습니까? 마귀가 어떤 말을 가장 싫어하겠는지 생각해보세요.
"아빠 아버지, 오늘 영적 전쟁이 어디서 어떻게 일어나는지 배웠습니다. 우리의 생각과 마음과 입술을 지켜주옵소서. 사탄이 심는 나쁜 생각을 깨닫고 바로 제거하게 하시고, 우리 마음에 사탄의 진을 칠 수 없도록 하소서. 나의 입술과 혀를 단디하여 주님이 기뻐하시는 말만 하게 하옵소서. 마귀가 싫어하는 말만 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찬양의 향기악보를 클릭하면 찬양을 들을 수 있습니다...
아침 영성 훈련그리스도인의 영성 훈련/ 정수환 목사
내가 가진 것은 시간 밖에 없습니다!
샬롬! 무더위에 건강 잃지 않도록 늘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니체’가 말하기를 ‘삶이란, 깊은 바다 위에 걸쳐진 밧줄과 같아서, 건너가는 것도 힘들고, 돌아서는 것도 힘들고, 멈춰 서 있는 것도 힘들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니체’의 말이 결코 정답은 아닙니다.
내가 가진 것은 시간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미 지나간 시간은 나로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고, 아직 오지 않은 시간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내게 있는 것은 오직 ‘현재’뿐입니다. 30대에 이미 훌륭한 업적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 안중근, 40대를 다 살지 못하고 떠난 풍운아 김옥균, 50대에 조국을 위해서 목숨을 바친 이순신, 이분들은 너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하지만, 이 겨레는 앞으로도 계속 그들의 이름을 오래오래 기억할 겁니다. 아시다시피, 우리 인간이 이 세상에 태어나거나 떠나는 것 모두 순전히 타의에 의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오늘 하루’밖에 없습니다. 어느 인생이나 ‘오늘 하루가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우리 인생이 조금은 멋있어 보이기도 합니다. 주어진 오늘 하루, 우리가 무슨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가족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도, 그리고 나라를 사랑하는 것도, 그 사랑의 본질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오늘 하루, 사랑에 전념하는 것이 ‘시간을 가장 유효적절하게 쓰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출처; 자유의 파수꾼, 김동길)
인간에게 가장 소중한 것들을, 우리는 아무 수고나 댓가 없이 소유하고 있으니, 그것은 바로 ‘시간과 공기’입니다. 그래선지, 우리는 이것들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야말로, 시간은 금(金)입니다.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엡5:15-16).
Q.T.란 무엇인가?
Q.T.란 무엇인가?
유동적으로 변하는 인간의 마음의 흐름인 경향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인간의 마음속에는 육체적 경향과 성령의 소유에 의한 하나님의 경향이 존재합니다. 우리는 지금 어느 경향에 지배를 받고 있을가요? 하나님의 경향에 따라 살기 위해서는 우리는 끊임없이 훈련해야 합니다. 이것은 매일 하나님의 임재와 음성을 경험할 수 있는 말씀을 깊이 묵상함으로 훈련되어집니다. 이것을 위한 시간이 바로 경건의 훈련 QT이다. QT는 아무 것에도 영향을 받지 않은 조용한 시간을 준비하여 주님의 말씀 앞에 서는 것입니다.
Q.T.를 잘하기 위해서는?
첫째 하나님께 결단해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기 원하는 헌신과 결단입니다. 둘째 우리의 시간을 드려야 합니다. 시간은 우리의 인생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해진 시간에 매일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셋째 방해받지 않을 시간과 장소를 마련해야합하니다. 넷째 다른 경건훈련으로 QT를 대신하지 말아야 합니다. 다섯째 매일 매일 우리에게 주시는 영적 양식을 받아야 합니다. QT는 매일 매일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한 QT는 기록하면 더욱 큰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Q,T.를 위한 준비기도
"QT를 시작하기 전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요?"라고 묻는다면, 바로 준비기도입니다. 세속의 관심과 육체적 경향으로 꽉 차있는 우리의 마음에 주님의 말씀을 바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서는 성령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QT는 성령님의 주도하에 있는 시간입니다. 성령님의 주도하심에 따라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따라서 준비기도의 시간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한 시간으로 자기 자신을 버리고 자신을 부임함으로 주님의 뜻을 따르겠다는 마음가짐을 가짐으로써 성령님의 임재와 인도를 경험해야하는 시간인 것입니다.
Q.T.의 실마리, 성경 읽기!
QT에서 읽기는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읽기는 단순히 책을 읽는 것이 아닙니다. QT에 있어서 읽기는 성령의 도움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목적입니다. QT책을 읽지 말고 말슴을 읽으십시오! 성령이 열어주시는 기회가 풍성한 것이 바로 본문을 읽기입니다. 그 말씀 속에서 하나님께서 내게 주시는 말씀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도움이 있을 때 비로서 말씀이 마음에 와 닿아서 감동이 생기고 그로인해 말씀에 대한 실마리, 종자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읽기는 오늘 내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실마리를 찾는 일입니다.
묵상이란 무엇인가?
묵상은 주님의 말씀에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의 방법입니다. 그 방법으로 묵상을 택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 율법책을 주야로 묵상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처럼 성경은 묵상을 중히 여깁니다. 성경을 지식으로 아는 것과 묵상은 차이가 있습니다. 묵상은 성령님을 의지하면서 성령님이 깨달게 해주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깊이 받아들이는 전인격적인 행동입니다. 그러므로 묵상은 겸손이며 또 기다림입니다. 주님의 임재를 따라서 살아가는 것을 배우는 것. 이것이 바로 묵상입니다.
*QT에서 가장 주의해야 할 것은, 반드시 오늘 주님이 본문을 통해서 나에게 말씀하실 것이라는 확신또한 위험하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그냥 말씀 가운데 안식을 주실 수도 있습니다. 말씀에 어떤 인간적인 제한을 두어서는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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