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림의집 1321번째 이야기
예림의집 이야기하나님과 대화하는 101가지 방법...
하나님과 야간 근무를
잠을 이루지 못하는 밤에는
불면증에 초조해지지 말고
그것을 하나님을 만나는
초대로 환영해 보세요.
야간 근부를 해 보세요.
밤이 만드는 소리들,
마룻바닥의 삐걱 소리,
바람의 방향이 바뀌는 소리,
귀뚜라미의 울음소리를 즐기며
하나님과 대화해 보세요.
마음 속에 있는
무엇이든 얘기하세요.
그리고 깊은 잠에 빠져 있는
사랑하는 모든 이들을 위해
기도하세요!
예림의집 칼럼™예림의집이 드리는 삶의 지혜...
내가 너와 다투리라
"내가 너와 다투리라." 예레미야 2장에서 우리는 마치 아버지가 아들과 다투듯이 하나님께서 그들과 다투신다는 말슴을 보게 됩니다. "나 여호와가 이와 같이 말하노라 너희 조상들이 내게서 무슨 불의함을 보았기에 나를 멀리 하고 가서 헛된 것을 따라 헛되이 행하였느냐 ... 그러므로 내가 다시 싸우고 너희 자손들과도 싸우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예레미야 2:5, 9, 13).
여기에 타락자들이 주의를 기울여야 할 부분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저버리시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하나님을 저버린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떠나시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하나님을 떠나는 것입니다. 아무 이유도 없이 말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 조상들이 내게서 무슨 불법을 보았기에 나를 떠나 멀리 갔느냐?"
당신이 처엄 하나님을 마났을 때와 지금의 하나님이 달라지신 것이 있습니까? 사람들은 하나님이 변하셨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사실 잘못은 사람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타락한 당신에게 물어보겠습니다. "하나님께 무슨 불의한 것이 있길래 그 분을 떠나서 멀리 갔습니까?"
어떤 세상의 우물도 하늘의 것을 맛 본 사람에게는 만족을 주지 못합니다. 세상은 "새로운 피조물"(고린도후서 5:17)에게는 결코 만족을 줄 수 없습니다. 명예도 재산도 세상의 기쁨도, 생명수를 맛본 자를 결코 만족시키지 못합니다. 세상의 우물이 영적인 갈증을 해소시켜줄 수는 없습니다.
다시 32절을 보십시오. "처녀가 어찌 그의 패물을 잊겠느냐 신부가 어찌 그의 예복을 잊겠느냐 오직 내 백성은 나를 잊었나니 그 날 수는 셀 수 없거늘"(예레미야 2:32). 이것이 하나님께서 타락자들에게 부과하는 죄목입니다. 그들은 "셀 수 없는 날 동안 나를 잊었다."는 것입니다.
나는 종종 젊은 여성들에게, "당신은 하나님보다 당신의 귀걸이를 더 생각하는군요."라고 말해서 그들을 놀라게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그들은 아니라고 대답합니다. 하지만 내가 "만약 귀걸이 하나를 잃어버린다면 당신은 걱정하지 않을까요? 그것을 찾으려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물어보면 그들은 "아마도 그럴겁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어쩌면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돌아섰다 할지라도 걱정조차 하지 않을 것이며, 하나님을 찾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구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들은 주님과의 교제보다 사람들과의 만남에 있어 필요한 의복과 장식에 더 많은 신경을 써 왔던 것입니다. 하지만 사랑은 잊혀지지 않는 것입니다. 만약 아이들이 부모의 품을 떠나 한마디 연락도 없고 사랑의 표시도 보내오지 않는다면 어머니들의 마음은 찢어지고 말 것입니다.
하나님은 방황하고 있는 사랑하는 이들에게 부모로서 간청하십니다. 다시 돌아오라고 호소하십니다. "도대체 내가 무슨 일을 하였기에 너희가 나를 저버리는 것이냐?" 아무런 이유 없이 떠나버린 사람들에게 주님께서 하신 말씀은 성경 안에서도 가장 온화학 사랑이 가득찬 말입니다. 그 말에 귀를 기울여 봅시다. "네 악이 너를 징계하겠고 네 반역이 너를 책망할 것이라 그런즉 네 하나님 여호와를 버림과 네 속에 나를 경외함이 없는 것이 악이요 고통인 줄 알라 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예레미야 2:19).
나는 정말로 수많은 타락자들이 돌아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물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는 일이 얼마나 악한 일니지를 알지 못했느냐고 말입니다. 진정으로 하나님을 안다면 그 누구도 하나님을 배신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배신한다는 것이 얼마나 악하고 괴로운 일인지를 인정하게 될 것입니다. 방황하는 이들을 돌아오게 하는 데 이보다 더 자주 쓰이는 말씀은 없습니다. 만약 당신이 하나님을 멀리 떠나 방황하고 있다면 이 말슴이 당신도 돌아오게 할 것입니다.
오늘의 QT매일 매일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
흔들리지 않게 하는 소망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란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라"(로마서 12:12).
그리스도인들은 하늘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보이는 현실 세계가 있지만 하나님께서 현실 세계를 넘어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며 살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천국에 대한 소망을 주시는 이유는 유혹과 핍박 앞에 흔들리지 않게 하기 위함입니다. 소망은 흔들리지 않음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니니 어떤 일이 있어도 믿음의 길에 굳게 서라는 것입니다.
천국에 대한 소망이 없는 사람들은 마귀의 공격에 견딜 수 없습니다. 작은 유혹과 핍박도 견디지 못합니다. 그러나 천국 소망을 품은 사람은 그것을 이길 힘을 갖게 됩니다. 스데반 집사는 돌에 맞아 순교하는 순간에 성령이 충만해져서 하나님의 영광과 예수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았습니다(사도행전 7:56). 천국의 영광을 본 그는 원수를 사랑하며 순교도 감당할 힘이 생겼습니다. 이처럼 천국에 대한 소망은 세상을 이기는 능력입니다.
주기철 목사를 고문하던 형사가 "너 때문에 모든 사람이 어려움을 겪고 교회가 불태워지게 되는 것이 아니냐? 고집부리지 말고 무릎 꿇어 절하라! 성경에도 위에 있는 권세에 순복하라고 했다. 그런데 너는 왜 위에 있는 사람들의 명을 어기느냐?"라고 윽박질렀습니다. 그러자 주기철 목사는 "나는 이 나라의 법을 지킬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이 땅의 시민이면서 하늘의 시민입니다. 먼저는 만주의 주시며 만유의 왕이신 하나님의 명령이 우선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고 했던 우상숭배는 하지 않을 것입니다. 모양이라도 내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 땅의 백성이기도 하니 당신들의 법을 어긴 대가로 나를 죽이시오. 나는 죽음으로 당신들이 만든 법의 대가를 달게 받겠소!"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빌립보서 1:29),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한 가지 분명한 증거가 있는데 그것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당하는 고난을 특권으로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새 번역으로 다시 번역하면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그리스도를 위한 특권, 즉 그리스도를 믿는 것뿐만 아니라, 또한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을 받는 특권도 주셨습니다"(빌립보서 1:29, 새번역).
외국인이 우리나라 군대에 가고 싶어도 그럴 수 없듯이 그리스도를 위해 받는 고난도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 나라 시민구너을 가진 살마에게만 주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당하는 고난이 특권으로 믿어지십니까? 고난을 특권으로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하나님 나라에 대해 눈이 열린 사람분입니다. 실제로 초대교회 성도들은 엄청난 핍박을 받았지만 도리어 그것을 기쁘게 생각햇습니다.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고오히 앞을 떠나니라"(사도행전 5:41). 주님을 위한 고난도 특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자녀들에게도 그 축복의 길을 가라고 격려할 수 있습니다. 세상의 부귀영화를 좇는 길이 아니라 어렵더라도 사명의 길을 가라고 말해줄 수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 나라에 눈이 뜨인 사람인지는 그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어느 선교사가 기독교를 박해하는 중동의 한 나라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는 선교하다가 순교할 각오를 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기도 중에 "한국보다 더 아름다운 곳을 보여 줄 것이다. 이 세상보다 더 아름다운 곳을 보여 줄 것이다."라는 확증을 해 주셨습니다. 자신은 순교할 각오가 되어 있었지만 열세 살 된 아들과 아홉 살 된 딸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래서 순교할 상황에 대비해야겠다는 생각에 가정 예배 때마다 아이들에게 순교의 축복에 대하여 계속 강조해 주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예배가 끝난 후에 큰 아들이 불숙 "아빠, 걱정하지 마. 하나님께서 아빠가 순교하게 해 주실거야!"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 아들은 아빠가 그렇게 좋아하는(?) 순교를 하나님이 허락해 줄 것이라고 아빠를 격려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은 고생하더라도 자녀들은 고생시키지 않으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위해 살면서 당하는 고난이 특권이라고 믿으면 그 길도 가라고 축복할 수 있습니다. 자녀에게 축복의 길을 가게 해 주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자녀가 오지의 선교사처럼 어려운 길을 가겟다고 하면 축복해 줄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의 솔직한 심정을 말해보세요. 천국 소망이 메시지는 노인들보다 청년들을 위한 것입니다. 소망은 온전한 삶, 성경한 삶, 헌신의 삶을 살게 하는 능력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려면 고난도 당한다고 믿으면, 그리스도인의 삶은 그 자체가 세상을 향함 메시지가 됩니다.
"정직하게 살다가 가난하게 된다면 하나님 나라에 가서 부요하게 살면된다. 하나님 말씀을 따라 살다가 세상에서 실패하게 된다면 하나님 나라에 가서 영광과 상급을 받으면 된다."라고 천년들에게 선포하십시오! 그리스도인들이 이런 믿음의 자세로 살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것입니다. 어두운 세상에 빛을 비추고 무너져 있는 세상을 일으켜 낼 사람들이 된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이 인생에 성공하는 참된 길입니다.
천국의 보화를 발견한 사람은 욕심이 없어집니다. 우리가 욕심 때문에 얼마나 많은 일을 그르치고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습니까? 욕심을 버리려고 노력도 해보지만 세상의 욕심은 애를 써서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천국 소망을 품으면 욕심이 사라지게 됩니다. 밭에 감추인 보화를 발견한 농부가 자기 소유를 아낌없이 팔았던 것처럼 욕심을 내려놓을 수 있게 됩니다.
중국 여행을 다녀온 어느 목사의 글입니다. "1991년도에 처음으로 중국을 방문했습니다. 그때는 중국이 이제 막 경제적으로 기지개를 켜기 시작하는 때 같아 보였습니다. 안내하시는 분이 중국도 많이 발전하고 있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 저희들을 의류와 가전제품을 판매하는 곳으로 인도해 주셨는데 그것이 그분의 실수였습니다. 만흔 가전제품이 있었지만 하나도 욕심나는 것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부분에 관해서는 우리 한국이 몇 십 년을 앞서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벌써 그 백화점에 있는 것보다 훨씬 디자인과 성능이 좋은 것들을 가지고 잇었기 때문에 욕심이 없는 마음을 가질 수 있었스니다. 저는 그때 '내가 정말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산다면 이 땅에 사는 동안에도 욕심 없이 깨끗한 삶을 살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천국 소망에 대한 눈이 뜨여야 욕심 없이 살 수 있습니다. 천국을 바라보는 눈이 열려야 비로소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않고 하나님 나라와 다른 사람의 유익을 구하는 삶을 살 수 잇게 됩니다.
제가 철원에서 군목으로 근무할 때, 평생 잊을 수 없는 꿈을 꾼 저깅 있습니다. 제가 죽어서 하나님 앞으로 걸어가는 꿈이었습니다. 저 혼자 걸어가는 길이었습니다. 저는 곧 하나님 앞에 서게 될텐데 '하나님은 나를 어떻게 맞아주실까?'하는 생각만 했습니다. 그때 소원은 오직 하나였습니다. 하나님이 안아 주시면서 "수고하였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고 하시는 그 한마디를 듣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씀만 들을 수 있다면 다른 어떤 것도 다 버릴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아타까워 하다가 깨어나니 꿈이었습니다.
그 후 "나의 유익을 위하여 살지 않겠습니다."라는 것이 저의 일평생 소원이 되었습니다. 그때 나의 유익을 구하며 살았던 것이 얼마나 두려운 일인가를 경험햇던 때입니다. 만약 그 경험이 없었다면 나의 유익을 포기하는 것이 어렵게만 느껴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나의 유익을 구하지 않기로 하자 모든 것이 분명해졌습니다.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순종하는 일에 모든 갈등이 사라진 것입니다.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것이 어렵고, 왕 되신 주님께 완전히 순종하며 사는 것이 어렵게 느껴지는 사람은 소망의 눈을 뜨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천국의 소망을 가지면 십자가는 영광이요, 기쁨이며 자랑입니다. 십자가의 삶은 소망이 넘치는 삶입니다. 천국에 대한 소망이 여러분의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빠 아버지, 흔들리지 않게하는 소망을 소유하게 하소서. 주님께서는 이미 우리에게 천국의 소망을 주셨는데, 우리는 그것을 누리며 살지 못합니다. 천국 소망에 눈뜨게 하옵소서. 그것이 확실히 믿어지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않고 하나님 나라와 다른 사람의 유익을 구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진정, 나는 죽고 예수로 살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찬양의 향기악보를 클릭하면 찬양을 들을 수 있습니다...
아침 영성 훈련그리스도인의 영성 훈련/ 정수환 목사
이 얼마나 아름답고 착한 세상입니까?
샬롬! 오늘도 주님이 함께 하시는 복된 날 되시길 빕니다. 합정역 가까이 ‘양화진(楊花津)’에는 ‘외국인선교사묘원’이 있습니다. 그곳엔 구한말과 일제강점기에 우리 민족의 발전과 계몽을 위하여 애쓰다가 돌아가신 외국인과 그 가족 417명이 안장돼 있습니다. 그야말로, 그분들은 그들과 아무 상관없는 우리나라를 위해서 목숨을 바치신 겁니다.
어느 날, 치과치료를 받고 돌아오면서 생각했습니다. 지금 내가 갖고 있는 모든 것은 다른 사람이 준 것들입니다. 모자도, 양복도, 신발도 그렇습니다. 양복감은 나와 아무 상관없는 호주인이 양을 쳐서 보내준 것이고, 구두재료는 미국 텍사스의 어떤 사람이 목축해서 그 가죽을 보내준 겁니다. 모자와 옷을 만들기 위해서 수고해준 사람들 덕분에, 나는 그것을 쓰거나 입고 있는 것입니다. 안경을 만들어준 기술자, 치과에서 도움을 베풀어준 의사와 간호사들도 있습니다. 그들 덕분에, 나는 지금 ‘사람 모습’을 갖춰 살아가고 있는 겁니다. 내가 갖고 있는 지식과 학문도, 사실은 여러 스승과 학자들로부터 받은 것입니다. 더 솔직하게 말하면, 내 생명과 내 인생 자체가 부모와 가족과 더불어 주어진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는 그 많은 사람들을 위해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가르치는 일, 이 한 가지만 하면 됩니다. 또, 그 한 가지를 열심히 하면, 사람들은 나에게 감사의 뜻을 표합니다. 이 얼마나 아름답고 착한 세상입니까? 그러니, 그 한 가지만이라도 정성껏 보답해야겠다고 다짐해봅니다.(출처; 백년을 살아보니, 김형석)
서로 도와가면서 사는 세상입니다. 그리고 서로가 진정 고마워하고 감사하면서 살아갈 때, 더욱 아름답고 착한 세상이 되겠지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3:16).
사랑하는 당신에게...
이 글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쓰는 글입니다. 부디 어떠한 경로로든, 주님께서 회심의 은혜를 주신 당신에게 이 글이 전달되기를 기도합니다. 나는 사랑하는 당신에게 빚을 진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의 선한 청지기로서 당신에게 당신이 받아야 할 몫을 나눠주고 싶습니다. 의사는 중병에 걸린 환자에게 관심을 쏟고 아버지는 죽어가는 자식에게 연민을 느끼는 것처럼 저는 아직 회심하지 못한 영혼들을 불상히 여기는 마음에서 이 글을 씁니다. 불길 속에서 타고 있는 나무를 꺼내듯이 당신을 죄악에서 건져내야만 합니다.
나는 회심하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오랫동안 사역해 오면서 그들을 주님께로 인도하고 싶은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했습니다. "주님, 저는 이 일을 감당하기 부족한 사람입니다. 제가 어떻게 믿지 않는 자들의 맺돌처럼 단단한 마음을 녹일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주님은 죄인의 마음속을 뚫고 들어가실 수 있습니다. 저는 막무가내로 활을 쏘지만 주님은 갑옷의 이음새 사이로 정확히 화살을 꽃을 수 있는 분입니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모든 불쌍한 영혼을 구원해 주시길 간절히 소원합니다."
거듭남(중생)의 좁은 문을 통과하지 않고서는 그 누구도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합니다. 저 또한 그 문을 통과했기에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음을 확신합니다. 그리고 당신도 그러했으면 좋겠기에 나느 당신의 현실에 대해 솔직하고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당신에게 유식함 말을 늘어놓거나 감언이설로 꾈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다만 성령님의 인도로 당신 스스로 죄를 깨닫고 회심할 수 있도록 돕고 싶습니다. 그러니 제 글을 찬찬히 읽어주세요.
그런데 사람들은 회심이 무엇인지 모를 수 있습니다. 저도 몰랐으니까요. 의미를 모르는 사람에게 계속 회심해야 말하는 것은 헛된 일이기 때문에 먼저 회심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개중에는 전혀 회심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으면서 하나님의 자비만 기대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도 회심이 왜 필요한지 알아야 합니다. 당신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좋은 기회를 놓치지 마십시오!
혹시 제 글을 읽는 분들중에 이미 회심했다고 생각해서 마음의 문을 굳게 닫고 있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들은 회심하지 않은 사람의 특지잉 무엇인지를 알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아무런 영적인 갈등도 느끼지 못하고 두려운 마음도 업싱 배의 돛대 꼭대기에서 잠자고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들은 회심하지 않으면 얼마나 비참해지를 알아야 할 것입니다.
또한 어떻게 회심해야 하는지를 몰라 제자리에 가만히 멈추어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만약 당신이 그런 사람이라면 제 말에 귀를 기울여 주십시오. 바로 당신을 위해 하나님께서 저를 보내신 것이니까요. 제가 당신에게 회심이 무엇이며, 왜 회심해야 하며, 어떻게 회심하게 되는지 깨닫도록 도움을 주고자 합니다. 이제 당신과 나의 회심 여행이 시작됩니다!
'예림의집 메일 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예림의집 1323번째 이야기 (0) | 2018.06.22 |
---|---|
예림의집 1322번째 이야기 (0) | 2018.06.21 |
예림의집 1320번재 이야기 (0) | 2018.06.19 |
예림의집 1319번째 이야기 (0) | 2018.06.18 |
예림의집 1318번째 이야기 (0) | 2018.06.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