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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림의집 1322번째 이야기

예림의집 2018. 6. 21. 10:14

예림의집 1322번째 이야기


예림의집 이야기|하나님과 대화하는 101가지 방법...


사랑의 간지럼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

기분좋게 간지럼을

태울 수 있는 사람을

찾아보세요!

그 웃음소리를 즐겨 보세요.

반대로 

간지럽힘을 당할 준비도 해야죠.

그런 친밀감을 느낄 수 있는 사람,

웃음을 좋아하는 사람을 주셔서

얼마나 감사한가를 

하나님께 고백해 보세요.

기분이 우울하고,

하나님과 교제가 필요하다고 

느낄 때만 아니라

일이 잘 풀릴 때도

더 많이 웃고

하나님과 더 많은 대화를

하겠다고 다짐하세요.




예림의집 칼럼™|예림의집이 드리는 삶의 지혜...


하나님을 외면한 결과


룻을 보십시오. 그는 자신의 행동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는 소돔에서 20년을 살면서 한 번도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세상적인 관점에서 볼 때 그는 아주 성공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소돔에서 가장 영향력이 잇고 부유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가정을 파멸해 버렸습니다.

늙은 타락자가 한밤중에 소돔의 거리를 돌아가니며 경고하지만 그 사위들에게 외면당하는 장면은 너무나 슬픈 일입니다. 내가 아는 한 타락한 부모의 자식들은 모두 파멸하고 말았습니다. "네 자신의 사악함이 너를 바로잡고 네 타락함이 너를 꾸짖으리라." 다윗은 이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부르집었습니다.

"오 내 안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으랴! 오 압살롬아, 내 아들아, 내 아들아"(사무엘하 18:33). 내 생각에 진정 다윗을 슬프게 한 것은 그 아들의 죽음이 아니라 '파멸' 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외면한 결과는 참혹합니다. 자신뿐만 아니라 그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참혹합니다.



오늘의 QT|매일 매일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

다가오는 하나님 나라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태복음 6:10).


우리가 죽고 난 뒤 가게 될 천국을 바라보는 눈을 여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완성될 하나님 나라에 대해 눈이 열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영혼이 구원받는 순간 왜 우리를 바로 천국으로 데려가지 않을까요? 예수님의 재림과 함게 임하게 될 하나님 나라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을 믿고 죽게 되면 예비된 천국에 가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획은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셔서 온 세상을 다스리시며 영원히 왕 노릇하시는 나라가 임하게 될 것입니다. 그 나라를 바라볼 수 있어야 우리가 염세주의에 빠지지 않고 사명이 무엇이지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천국 소망에도 미혹이 있습니다. 천국은 존재하고, 이 세상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은 곳입니다. 그렇다고 "나는 더 살고 싶지 않아. 죽는 것이 더 좋아. 빨리 천국에 가고 싶어." 하는 것은 정상적인 천국 소망이 아닙니다. 

가복음 8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어느 날 산에 올라가 놀라운 모습으로 변화되셔서 하늘에 있는 모세와 엘리야와 대화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주님과 함께 있던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도 하늘 문이 열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베드로는 자기도 모르게 초막 셋을 짓고 거기에 머무르자고 주님께 말했습니다. 이것이 천국을 본 살마의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다시 그들과 함께 산에서 내려오셨습니다. 산 아래는 귀신들과 괴로움 당하는 아버지와 가족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그들을 고쳐주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그 둘 사이에 끼었으니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 그렇게 하고 싶으나 내가 육신으로 있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빌립보서 1:23, 24). 사도 바울은 육신을 떠나 그리스도와 함께 거하기를 원했습니다. 지금 당장이라도 할 수만 있다면 천국에 가기를 소망했습니다. 천국이 얼마나 좋은 곳인지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천국에 가는 것보다 더 유익한 것이 있음을 알았습니다. 이 땅에 살면서 땅 끝까지 모든 족속에게 복음을 전해야 할 선교 완성의 사명입니다. 그는 이 땅에 임할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신 적이 있습니다.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캐복음 6:10).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서 이루어지도록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 중에 이 기도의 의미를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많은 사람이 이 세상에서 잘 살게 해 주시기를 기도하지만 하나님 나라가 임하도록 기도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는 눈이 열리면 기도 제목이 달라집니다.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더니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망시켰으며 또 롯의 때와 같으리니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짓더니 롯이 소돔에서 나가던 날에 하늘로부터 불과 유황이 비오듯 하여 그들을 멸망시켰느니라 인자가 나타나는 날에도 이러하리라"(누가복음 17:27-30).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다시 오실 무렵 사람들이 준비되지 않은 채 살아갈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시대 사람들이 저질렀던 죄에 대하여 특별히 언급하지 않고 사람들의 일상생활에 대하여 언급하셨음을 주목해야 합니다. 세상에는 온갖 심각한 죄들이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흉악한 죄를 짓지 않고 있는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 자신에게 있어서 더 큰 문제는 일상 생활에 대한 태도입니다.

많은 사람이 마치 먹고, 마시고, 학교에 가고, 일하고, 집 사고, 차를 사고, 시집 장가를 가려고 태어난 것처럼 삽니다. 세상의 삶에 빠져 그것이 유일한 목적이 되어 버렸고 그것 때문에 기뻐하거나 염려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일상생활에 매여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를 전혀 준비하지 못한 채 살고 있는 것입니다.

터키의 시인 나짐 히크메트가 <신과의 인터뷰>라는 책에서 인간에게 가장 놀라운 점이 무엇인지 묻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이 지루하다고 서둘러 어른이 되는 것. 그러고는 다시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기를 갈망하는 것. 돈을 벌기 위해 건강을 잃어버리는 것. 그리고는 건강을 되찾기 위해 돈을 다 잃는 것. 미래를 염려하느라 현재를 놓쳐버리는 것. 그리하여 결국 현재에도 미래에도 살지 못하는 것. 결코 죽지 않을 것처럼 사는 것. 그러고는 결코 살아 본 적이 없는 듯 무의미하게 죽는 것." 하나님을 믿는다는 우리가 이렇게 살고 있지 않은지 점검해 볼 일입니다.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이르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 하니"(요한계시록 11:15). 성경에는 분명히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상 나라는 반드시 망하고 예수 그리스도가 다시 오셔서 영원히 왕 노릇할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예수님께서 처음 이 땅에 오심으로 하나님 나라는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현재 진행 중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점점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완전히 임할 것입니다.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요한계시록 21:1, 2). 하나님 나라가 임하면 온갖 더럽고 악한 일들이 이 지상에서 사라지게 됩니다. 비인간적인 일, 음란과 방탕, 모든 슬픔, 눈물, 질병, 아픔, 사움, 죽음이 없어지게 됩니다. 대신 정의와 사랑이 온 세상에 충만하게 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그 세상을 가리켜 송아지와 사자가 함께 뒹굴며 놀고 어린 아이가 뱀의 굴에 손을 넣어도 해가 없는 세상이라고 묘사합니다. 모든 칼과 창은 곡갱이와 삽자루로 바뀌는 날이 옵니다. 전쟁이 필요 없는 나라입니다. 우리가 바라보는 하나님 나라는 인류 역시 이래로 사람들이 도저히 상상하지도 못하던 찬란하고 아름다운 나라입니다. 그렇기에 이 나라는 우리의 모든 것을 바쳐도 전혀 아깝지 않은 나라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것에 대한 소망이 분명한 사람은 반드시 사명을 깨닫게 됩니다. 그 나라를 바라보는 사람은 전도와 선교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됩니다. 하나님게서 연약한 우리를 통하여 이런 나라를 이루신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그러므로 이 나라를 바라보는 눈이 열리면 결코 세상에 안주하며 살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스코틀랜드의 선교사였던 데이비드 리빙스턴은 말년에 잠비아의 깊은 밀림 속에서 연락이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1871년 헨리 스탠리라는 탐험가가 리빙스턴을 찾아내기 위해 아프리카로 들어갔습니다. 1년 만에 겨우 밀림 속에서 병들어 앓고 있는 리빙스턴을 만났습니다. 식료품과 의약품이 거의 다 떨어진 채 심한 열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스탠리는 그에게 간절히 권면했습니다.

"선교사님, 아프리카의 복음 사역을 위해서 30년 간 헌신해 오셨으니까 이제 그만 하고 저와 함께 본국으로 돌아가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그 말을 들은 리빙스턴은 아주 유명한 대답을 했습니다. "아닙니다. 저에게 아프리카 선교 사역은 헌신이 아니고 오히려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큰 특권입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저에게 맡기신 이 영광스러운 일을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벅차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르로부터 약 1년이 지난 1875년 5월 1일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리빙스턴은 침대 곁에서 무릎을 꿇고 두 손을 깍지 낀 채 하나님께 기도하는 모습으로 고요히 숨을 거두었습니다.

어느 집사에게 "집사님의 사명에 대하여 생각해 보셨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는 "사명이요?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요!"라고 말했습니다. 그 집사는 좋은 직장과 직위를 가지고 열심히 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축복이 하나님께로 온 것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사명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는 눈이 열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사명이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까?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무엇을 준비하며 살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생각해 봅시다.


"아빠 아버지, 나에게 사명을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그 사명이 하나님나를 바라볼 때마다 나를 감동시킵니다. 심장이 두근거리고, 감사와 기대로 벅차오릅니다. 비록 세상의 관점으로 실패한 인생으로 평가될 지도 모르지만 괜찮습니다. 저는 가장 귀한 보물을 품은 사명자입니다.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일에 동참시켜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제가 하고 있는 이 일들이 나의 성취욕이나 위안을 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랑의 뜨거운 열정이 시발점이 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찬양의 향기|악보를 클릭하면 찬양을 들을 수 있습니다...



아침 영성 훈련|그리스도인의 영성 훈련/ 정수환 목사

죽음의 신(神)


샬롬! 늘 건강하고 평안하심을 기원합니다. 놀라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그 누구나 그 몸속에 장내(腸內)세균을 약 40조마리씩 키우고 있다는 겁니다. 장내세균은 건강뿐만 아니라 비만체질까지 좌우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세균을 바꾸면 비만체질도 바꿀 수 있다’고 하니, 비만이라서 걱정이신 분들은 세균에 관심을 가져보시기 바랍니다.


세 명의 악당(惡黨)이, 친구가 죽자, ‘죽음의 신(神)’을 찾아내서 친구의 복수를 해주기로 했습니다. 마침, 길에서 만난 한 노인에게 ‘죽음의 신을 보았느냐?’고 묻자, 노인이 숲 속을 가리켰습니다. 그런데, 그 숲 속에는 커다란 금화(金貨)자루가 있었습니다. 악당들은, 친구의 복수를 하려던 일은 잊어버리고, 날이 어두워지면 금화를 옮기기로 했습니다. 그들 중의 하나가 빵과 술을 사러 갔습니다. 남은 두 사람은, 그가 돌아오면 죽여 버리고, 금화를 둘이서만 나눠 갖기로 했습니다. 음식을 사러 간 악당은, 금화를 독차지할 욕심에, 독약을 사서 친구들에게 줄 술병에 탔습니다. 그가 숲으로 돌아오자, 기다렸던 두 사람이 그를 찔러 죽이고, 그가 사온 술과 빵을 나눠먹었습니다. 그리고 그들도 죽었습니다. 금화(돈)가 바로 ‘죽음의 신’이었던 겁니다.(출처; C닷컴, ‘캔터베리 이야기’, 서지문)


성경은 ‘인류최초의 불행이 욕심에서 왔다’고 일러주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불행의 씨’가 우리 마음속에 늘 내재되어 있는 겁니다. 고로, 그 씨가 싹트거나 자라지 못하도록, 여러 가지 방법으로 억제해야 합니다. 그 중의 하나가 신앙생활입니다. 그래서 말씀과 기도로써 욕심을 다스려야 합니다. 물론, ‘죽은 신앙’은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겠지요!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1:14, 15).


들어가는 글


찬양은 그리스도인이 행할 수 있는 가장 고무적인 행위중 하나입니다. 찬양 없이는 어떤 기도도 온전하지 않고, 어떤 날도 온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그분을 경배하며 그분께 감사함을 뜻합니다. 또한 그분이 누구신지, 어떤 일을 행하셨는지를 깨닫는 일이며, 그분의 영광을 높이는 것이기도 하고 그분께 감사를 표현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시편 기자는 "내가 여호와를 항상 송축함이여 그를 송축함이 내 입에 계속하리로다"(시편 34:1)라고 노래했습니다. 하루 종일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처음에는 힘든 일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배하고 감사할 이유들을 주위에서 둘러볼수록 찬양은 더욱 습관화 될 것이며 찬양을 즐기게 될 것입니다. 왜야하면 그것이 하나님을 더 많이 깨닫게 하고, 그분께 더욱 깊은 감사를 드리게 하며, 그래서 그분께 더 가까워지게 하기 때문입니다.

이 책에 수록된 1분 기도를 읽을 때 각 페이지를 읽는데서 그치지 말고, 각 페이지가 당신을 위한 '출발점'이 되게 하십시오. 온종일 이어질 찬양의 시작이 되게 하십시오. 물론 때로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삶이 고통스럽고 우리 마음이 낙심될 때 목소리 높여 경배하는 것은 힘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라"(에베소서 5:20)고 권면합니다. 

범사란 삶의 시련들까지도 포함합니다. 모든 일이 잘 풀릴 때에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기쁨이 우리의 상황에 근거하지 않고 그분의 존재와 우리를 위해 그분이 하신 일에 근거하기를 바라십니다. 가장 아름답고 감동적인 찬양은 고난 중에 "주여, 비록 모든 상황이 악화될지라도 저는 주님이 선하시다는 것과 저를 돌보실 것을 믿습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는 찬양입니다.

우리의 자원이 바닥난 상황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자원을 온전히 의지합니다. 그래서 더 강한 믿음이 자랍니다. 우리 자신과 우리의 상황을 하나님께 맡길 때 그분은 더 큰 영적 성숙으로 우리를 이끄실 수 있습니다. 본서의 여정을 지나면서 하나님을 찬양할 새로운 이유들을 많이 발견하고, 찬양이 당신의 삶에서 더 풍요롭고 의미 있는 부분을 차지하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