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세에 나타나신 바 된 예수(베드로전서 1:20-22)
오늘 본문에서는 20절에서 말세에 나타나신 바 된 그리스도의 비밀과 21절에서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의 믿음과 22절에서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라는 권면의 말씀으로 이어져 나갑니다.
1. 그리스도의 비밀
그리스도는 이미 세상에 나타나신 바 된 분이요 모든 사람의 입에서 오르내리는 이름이지만 지금도 그 분은 하나님의 비밀이십니다. 이 비밀은 모든 사람들에게 감추어진 비밀인데 이 비밀을 깨닫는 자에게는 구원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고 믿지 않는 자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으로 멸망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이 비밀을 알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한 가지로 하나님의 말씀으로만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은 이미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예정된 그의 백성들만이 성령의 감동하심과 깨닫게 하심으로 알 수 있는 것입니다. 20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는 창세 전부터 미리 알리신 바 된 자’라고 했습니다. 그는 창세 전에 이미 말씀으로 존재하셨고 그가 친히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뿐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창세 전에 그의 백성들을 택정 하셨기 때문에 그는 이미 창세 전부터 알리신 바 된 분입니다. 그런데 20절에 나오는 그 다음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 바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 분이 이 말세에 우리를 위하여 이 세상에 나타나신 바 되었다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왜 이 마지막 시대에 세상에 태어난 것입니까?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육신의 뜻이나 혈육의 뜻을 따른 것이 아니라 이 시대에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려고 예정하신 하나님의 뜻에 의해 태어난 것입니다.
21절에서는 그리스도인에 대한 정의를 내려 주고 있습니다. ‘너희는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분명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지만 이 세상 사람들이 믿는 것처럼 일반적인 창조주나 조물주라고 섬기는 범신론적인 하나님이 아닙니다. 애국가에 가사를 고쳐 쓴 것처럼 모든 사람들에게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하느님이 아닙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시고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되신 유일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믿고 그리스도 안에서 섬기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믿음과 소망은 그리스도 안에서 오직 우리 하나님께만 있는 것입니다.
2. 뜨거운 형제의 사랑은 어디서 나오나?
베드로 사도는 22절에서 그리스도인의 형제에 대한 사랑으로 옮기고 있습니다.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진리를 순종함으로 우리의 영혼을 깨끗하게 한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한 지체를 이루어 하나님의 교회가 형성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그리스도인 들의 사랑은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모습을 띠고 있는 것입니다.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에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마음으로 사랑하라는 말은 거짓이 없는 진실한 사랑을 의미합니다. 남녀간의 에로스의 사랑이 아닙니다. 친구간의 필레오의 사랑과도 다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한 지체로서의 사랑이기 때문에 신비한 사랑입니다. 주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서로 사랑하는 사랑이 우리가 가져야 할 사랑입니다. 죄를 용서해 주는 사랑입니다.
기쁨도 슬픔도 가난도 함께 체휼하는 사랑입니다. 이런 사랑은 마음으로 진실하게 나타나야 지속적인 사랑으로 계속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사랑은 지속적이라야 정상적인 지체를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사랑은 어떤 그리스도인이 가질 수 있는 사랑입니까? 진리를 순종함으로 그 영혼을 깨끗케 하는 그리스도인 들만이 소유할 수 있는 사랑입니다. 이 같은 사랑의 근원이 바로 진리에서 샘솟기 때문에 진리?? 버린 사람들은 이 사랑을 가지고 형제를 사랑할 수 없습니다. 성경은 거짓 사랑에 대해 경종 해 주고 있습니다. 거짓 사랑은 사랑이 아닙니다. 유혹입니다.
이단자들이 이 거짓 사랑을 가지고 우리 주변에 나타납니다. 우리는 사랑을 알면서도 이 사랑을 나타내는 일에 인색합니다. 왜 그런 것입니까? 사랑엔 희생이 따라야 하는데 희생을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아직 우리들에게는 진실한 사랑이 많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입니까? 적은 것으로부터 연습해야 합니다.
내가 베풀기 싫어도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나타내기를 연습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우리의 사랑의 폭이 넓어지면서 사랑 가운데서 참 기쁨을 느끼며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결론
하나님께서는 이미 영원 전부터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예정해 주셨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우리는 그 예정 가운데 세상에 태어나 복된 소망의 생애를 살아가니 이 또한 얼마나 놀라운 축복입니까? 우리는 이런 관계로 지체가 된 형제들입니다. 서로 마음으로 뜨겁게 사랑하여 아름다운 믿음으로 성장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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